-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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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방소멸에서 지역공생전략으로
6공화국의 왜곡된 지방자치와 균형발전이라는 신기루
- 입력 2021.06.03 13:06 조회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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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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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_창간준비3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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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1. 지역격차를 강화시킨 지방자치
1987년 6월 항쟁은 박정희 정권이 중단했던 지방자치제도를 부활시켰다. 지방자치제도는 헌법에서 법률로 위임되어 있기에 개헌과는 상관이 없었지만, 87년 6.29선언에서 노태우는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로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를 선언했다. 1988년에 지방자치법이 전면개정되면서 단체장 직선제와 지방의회가 부활되었지만, 선거시기는 밀려서 1991년 3월에 시·군·구·자치구 의원선거, 6월에 시·도의원 선거, 1995년 5월에 단체장과 지방의원 전국동시선거가 실시되었다.
1) 왜곡된 채 부활한 지방자치
6월항쟁의 성과로 지방자치제도는 부활되었지만, 자치의 방향은 중단되기 전의 자치보다 불완전하고 왜곡되어 있었다. 지방자치제도가 유보되기 직전인 1960년 12월에 치러진 선거에서는 단체장과 시도의원만이 아니라 읍면의원, 읍·면장까지 선출되었다. 이 선거로 선출된 인원이 무려 시도지사 10명, 시장 26명, 읍장 82명, 면장 1,359명, 시도의원 485명, 시의원 420명, 읍의원 1,055명, 면의원 15,376명이었다. 이 당시는 농촌의 인구도 적지 않아 읍과 면에서까지 장과 의원이 선출되었고, 전국동시선거가 아니라 각기 다른 날짜에 선거가 치러졌다. 이렇게 읍면단위까지 확장되었던 대의제도가 부활 과정에서 시군단위로 축소되었으니 제도로만 보면 제6공화국은 제2공화국보다 퇴보한 셈이다.
그리고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지금도 주민자치를 외면한 단체자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권력의 분산과 주민자치인데, 지금 체제는 권력만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그 분산도 지방정부가 아닌 국가사무를 위임받는 지방자치단체 형태였고, 조례는 법률의 하위개념으로 설정되었다. 재정 역시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80 대 20 정도로 중앙정부가 주도권을 쥔 상태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할 지방의회가 취약하고 지방자치의 주인이어야 할 주민들의 권한이 강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 같은 제도들이 2000년대 이후 도입되었지만 사실상 활용이 어렵거나 무의미한 수준으로 개악되어 도입되었다. 시민사회운동도 수도권으로 집중된 상태에서 비수도권 지역의 권력은 재정을 쥔 중앙정부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소수의 이해를 추구하는 무능하거나 부패한 권력이 되어 갔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이를 빌미로 국토이용이나 조세 관련 권한 등을 쥐고 지역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2) 지역격차만 강화시킨 지역개발
그렇다고 지방자치단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교부금과 보조금의 규모는 적지 않고, 이런 재정을 바탕으로 단체장과 관료조직이 지역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단체장 직선제가 되면서 선심성 공약으로 인한 부패 가능성이 높아졌고, 관료조직은 조직의 이해관계와 개인적인 이득을 충족하는 집단으로 변해갔다. 주민자치가 되지 않으니 이를 견제할 세력이 없고, 기업과 언론, 대학 등이 가세한 개발연합의 힘은 더욱더 강해졌다. 결국 제6공화국에서 부활된 지방자치제도는 지역사회의 기획력/주도력이 사라진 채 견제받지 않는 중앙/지방권력, 관료제도의 강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와중에 지역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허문구는 1990년대 이전까지 도시화의 진전과 지역간 공업화의 속도 차이 등이 지역간 소득격차를 벌렸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지역별 특화산업이 고착화되고, 특화산업의 지식기반화 정도에 따라 지역성장이 좌우되면서 지역간 소득격차가 확대되었다고 본다(허문구, 2006). 서민철도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에 따라 수도권으로 집중되던 산업이 90년대 중반까지 지역균형정책으로 완화되는 듯했으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수도권 규제완화와 더불어 다시 심화되었다고 평가한다(서민철, 2007). 지역격차는 중앙정부가 좌우해온 지방자치의 왜곡과 무관하지 않다.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나 1인당 소득규모로 따지면 지역격차가 완화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런 주장은 소득의 역외유출이나 인구의 자연감소에 따른 1인당 소득수준 증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재훈은 지역격차를 단순히 지역내총생산 규모나 소득규모로만 파악하지 말고 관계적 관점에서 정의하고 근접성 분석(proximity analysis)을 통해 지역 간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김재훈, 2017). 각 지역들은 소득의 생산, 분배, 지출에 따라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각 위치들간의 상대적인 거리는 지위가 된다. 이런 식으로 지역들을 같은 등급으로 묶을 수 있고 그 격차가 만든 구조를 포착할 수 있다. 김재훈은 ‘1인당 지역내 총생산’, ‘1인당 지역총소득(GRI)’, ‘1인당 개인소득’, ‘역내 소득분배율’, ‘1인당 민간소비’, 다섯 개의 지표를 분석해서 2000년과 2014년의 16개 광역자치단체를 비교한다. 그 결과를 보면, 역시나 서울이 역외소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기능하며 가장 높은 지위를 지켰고, 제조업의 한계로 울산의 위상이 흔들리는 반면 외환위기 이후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충남의 상승, 역외소득을 빨아들이며 지위를 굳히는 부산과 대전, 광역대도시와 인근 지역간의 소득격차도 더욱 커졌다. 문제는 서울과 지방간의 소득격차가 빠르게 확대되었고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역외소득에 의해 구조적으로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재훈은 ‘내생적(endogenous) 발전전략’과 구조화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의도적인 개입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3) 지역격차로 강화되는 수도권과 대도시
그러나 내생적 발전전략은 내부의 기획과 자원을 조직해야 하는데, 지금의 지방자치 하에서는 그 무엇도 쉽지 않다. 더구나 이런 지역격차는 구조화되어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이런 불평등은 지역격차를 더욱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건강불평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은 의료수요가 가장 높은 곳에 의료기관의 수가 가장 적고, 진료과목의 수도 농어촌에 비해 대도시가 훨씬 많다. 이제는 중소도시에서도 산부인과를 비롯한 전문병원을 이용하려면 대도시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진희는 건강불평등이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 인종 같은 개인적인 요인만이 아니라 열악한 거주환경이나 근린환경같은 지역적인 문제에서도 비롯된다고 본다(이진희, 2016). 즉 기존의 건강불평등과 더불어 지역적 건강불평등은 거주지역의 사회적, 물리적, 제도적 환경 차이 때문에 발생하고, 도시지역이나 수도권, 대도시 등 사회경제적 역량이 높은 지역에 비해 비도시 지역에 거주할수록 비만이나 정신건강, 질환에 대한 위험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고 지적한다.
자연히 비수도권 지역의 삶의 질은 떨어지고 사람들은 살아온 지역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떠난다. 2019년부터 수도권의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비수도권에서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지 못하는 각종 개발사업들만 소수의 이해관계를 위해 추진된다.
현재의 지방자치는 지역격차를 방치하며 불평등한 구조를 강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분권을 보류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거나 지방정부에게 권한을 떠넘기는 방식 모두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구조화된 지위와 서열을 손대지 않은 채 성장이나 혁신을 통해 지역균형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위선이다.
이제 지방자치제도는 지역공공성을 강화시키며 기후위기를 비롯한 여러 위기들에 대응할 지역 특성에 맞는 전략을 짜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회의 흐름은 여전히 공공성이 아니라 효율성에 맞춰져 있다.
2. 지방소멸이 아니라 지역서열화와 지역불평등
지방정부 유형별 고령화 현황을 보면 2003년에 ‘시’는 고령화사회 진입, ‘군’은 고령사회 진입, ‘구’는 6.39%의 고령화율을 기록했지만 2030년에는 도·농형 도시와 광역자치구를 제외한 모든 기초지방정부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특히 작은 군단위는 고령화율이 42.2%에 달해 지방자치단체의 유지가 어려울 전망이다(박철, 2017). 일본의 마스다보고서에 나온 지방소멸론이 여기저기서 얘기되면서 위기감은 더 높아졌고, 한국고용정보원은 마스다보고서의 기준에 따라 2030년 전후로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1/3이 사라질 것이라고 공포를 자극했다.
1) 지방소멸은 불가피한 현상일까?
그런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건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부족해서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이 없는 읍·면의 수는 2015년 433개에서 2019년 476개로 늘어났고, 전체 읍·면의 30% 이상에 어린이집이 없는 셈이다. 도시에서는 걸어서 10분, 15분 이내에 공공서비스를 배치하고 있지만, 농어촌에서는 몇 시간을 걸어야 공공서비스를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감내하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서울과 수도권이 중심이고 또 비수도권은 대도시권 중심으로 서열화되기 때문에 청장년층은 도시로 이동하고 고령층이 농촌에 남는다. 지방이라는 말 자체가 수도권을 중심에 놓는 말이고, 소멸이라고 하지만 그건 인간과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존립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역격차와 서열화 구조를 바꾸지 않고 무능력하거나 부패한 지방권력도 손대지 않았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는데 위기의 원인은 제대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읍면을 중심으로 지방자치와 지역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경쟁력을 가진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거점을 만들어 압축·연계 전략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일단 2021년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주민자치를 별도로 논하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읍·면·동 자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기존의 문제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최승제는 외국의 자치단체 인구에 비해 한국의 기초자치단체 인구가 훨씬 많기 때문에 지역의 경쟁력을 살리려면 기초자치단체의 규모를 읍면 단위로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최승제, 2021). 그런데 이 주장은 지방자치의 정신에 부합하지만, 서열화된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2) 압축전략이 불평등을 완화시킬까?
반면에 마강래는 압축·연계전략을 주장하며 잠재력을 가진 거점을 선정하고 거점 간 연계와 거점과 주변의 연계를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마강래, 2018). 이 주장에서 지방자치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고, 재정과 행정의 효율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 그동안 지방의 입장에서 중앙을 비판해온 강준만도 강한 지방과 약한 지방의 현실적인 역량을 인정하고 압축·연계전략을 수용하는 편이다(강준만, 2019). 그런데 소멸해도 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더구나 이미 강한 곳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건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강동우는 행정구역 중심으로 일자리의 수를 측정하는 것이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강동우, 2019). 왜냐하면, 지역의 경계를 넘어 통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역노동시장권은 시, 군 단위의 행정구역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경제의 공간적 상관관계가 중요하고 대도시가 있으면 주변지역의 인구를 빨아들여 지방소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는 소위 거점전략이 가진 위험성을 잘 드러낸다. 그래서 강동우는 지방소멸의 가능성이 큰 권역에서는 특정 지역에 제조업 기업을 유치해서 대량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읍·면 지역에 작지만, 지역사회의 활력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들이 창출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지방소멸론 자체를 되짚어봐야 한다. 한국의 상황에서 마스다보고서의 기준을 비판하는 연구도 이미 있다(원광희·채성주·설영훈, 2020: 2). 소멸위험기준인 가임연령을 한국적인 상황에 맞춰 20∼39세에서 20~44세로 조정하고 노인연령도 65세 이상에서 70세 이상으로 변경하면 전국 1/3의 기초자치단체가 소멸된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이상림 등도 일본과 달리 전체 인구에서 ‘에코붐 세대’[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로 1979~1993년에 태어난 세대]의 비율이 매우 낮고, 인구구조 변동의 속도가 더 빠른 우리나라에서 그 위험성을 기계적으로 과대 추정했다고 지적한다(이상림, 2018). 사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소멸예정지라 부르는 것은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을 ‘철거예정지’라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터라 불리는 곳에 많은 생명이 살고 있듯이, 사람과 생명이 사는 곳은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지방소멸론이 보편화되었을까?
야마시타 유스케(山下祐介)는 지방소멸론이란 인구가 줄어드는 불안감(인구감소 쇼크!)을 이용하려고 중앙부처가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전략이라고 비판한다(유스케, 2019). 일본 정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개발로 경기를 부흥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시·정·촌을 합병하고, 선택과 집중으로 공공투자를 효율화하려 했다. 중앙정부가 자기 입맛대로 살릴 지역과 없앨 지역을 구분하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역의 불안감을 이용했다. 그래서 정책의 구호는 마을과 사람을 내세웠지만 모든 정책이 일자리에 초점을 맞췄고, 농어촌의 유지보다는 벤처나 혁신,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목표가 마을만들기, 지역창생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돈을 벌어들이는 마을 만들기’였고, 돈벌이로 인구감소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고 유스케는 비판한다. 한마디로 일본의 지방창생정책은 또 다른 형태의 토건사업이었던 셈이고, 지방소멸론(추가)은 그런 사업들을 밀어붙일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지방의 인구가 줄어드는 건 일자리의 부족만이 아니라 서열화 때문이다. 앞서 지역격차에서 언급했듯이 일자리의 수만 늘린다고 불평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서열화된 체제가 문제이고, 농촌보다 도시에서, 중소도시보다 대도시에서 일하는 것이 더 많이 벌고 사회적 인정도 더 받는 것이 문제이다. 유스케는 이런 ‘직업권위의 서열화’, ‘지역의 과잉 서열화’, ‘인구의 과잉이동’이 인구를 집중시킬 뿐 아니라 정부와 시장에 자신의 생존을 맡겨야 하는 불안한 인구층을 늘려 출산율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애써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어도 이윤은 다시 수도권으로 집중되기에 농촌에 공장을 짓고 산업단지를 세워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하승우, 2020).
지방소멸론에 대한 대안으로 유스케는 도시가 아닌 마을의 정의가 실현되어 ‘다양성의 공생’이 보장되고, 행정기관의 이전이 아니라 국가에 집중된 권한이 지역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자리 만들기보다 노동개혁이 우선되어야 인구유지가 가능하다고 본다. 좋은 일자리는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제주특별자치도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임금수준이 전국 최하인 것은 시사적이다). 또한, 당분간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인구가 감소해도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일자리 중심으로 접근하면 애초에 농촌은 도시와의 경쟁이 불가능하다. 대형공장이나 회사는 수도권이나 대도시를 선호하고, 인구 역시 그런 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자리는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 어렵고 교육과 문화(성평등), 주거 등 다른 변수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공공성이 강화되어 삶의 질이 높아진다면 굳이 수도권과 경쟁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수도권과 비슷한 곳이 전국에 만들어지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올바르지도 않다. 지금 필요한 건 소멸이라는 위협보다 그동안의 불평등에 대한 보상과 불안을 씻어줄 공공성이고, 진짜 문제는 인구감소가 아니라 불안과 불평등이다.
3. 메가시티에서 지역공생으로
계속 논란이었고 앞으로도 논란이 될 가덕도 신공항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부산, 울산, 경남의 소위 ‘동남권 메가시티’이다. 인구 천만 명 이상의 메가시티를 지향하는 이 전략은 권역별 거점 대도시-인근 거점도시-주변 중소도시-농산어촌을 연계시켜 하나의 메가시티를 만들어 제2의 수도권을 만들려 한다. ‘동남권 메가시티’는 부산, 울산, 창원을 대도시권으로, 김해, 양산, 진주 등을 중소도시권으로, 밀양, 사천 등을 소도시권으로 묶어서 압축시킨다. 그리고 이런 도시지역과 농산어촌을 대중교통망으로 연결하고 접근성을 개선시킨다는 전략인데, 사실 농산어촌에 대해서는 별다른 사업이 없다. 지역특성화, 빈집, 빈점포, 빈학교를 재활용한다는 계획 정도가 얘기되는 걸 보면 농촌을 농수산물의 생산기지나 문화/관광공간 정도로 활용할 생각인 듯하다.
1) 메가시티는 성공할 수 있을까?
메가시티 전략에서 그나마 구체적인 계획은 ‘생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광역교통체계를 만들고, 이를 위해 메가시티 급행철도(MTX), 순환철도, 광역철도, 남부내륙철도, 광역도로 건설(남해-여수 해저터널 포함),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구축, 부울경 통합 광역환승할인제 도입 등을 도입한다. 그리고 부울경 광역 푸드플랜이나 평생교육 혁신 플랫폼을 추진하고 지역 인재와 기업을 협력시켜 교육과 산업의 혁신을 일으킨다는 내용도 있다. 수도권과 맞먹으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경제일 텐데, 이 부분은 다소 추상적이다. 동북아 물류 허브, 항만(진해신항)과 철도, 공항(가덕도 신공항)이 결합한 트라이포트 시스템, 스마트 산업단지, 스마트 물류단지, 부울경 수소경제권(대규모 수소생산시스템과 광역화된 수소배관망 구축), 아시아 스타트업 벨트, 부울경 창업펀드 조성 등 장밋빛 그림이다. 또한, 남해안 역사·문화 관광벨트, 가야나 유교 문화, 산악·해양 자원을 활용한 관광, 레저산업, 아시아 문화 허브, 한류 콘텐츠 활용, 부울경 낙동강 생태 인문 관광벨트 등이 문화공동체의 비전이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부울경 행정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특별연합을 2022년 상반기에 출범시킨다는 구상이다.
2개의 광역시와 18개 시군을 포괄하는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연합이니만큼 그 구상이 엄청나다.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을 삼켜버린 수도권의 완화 없이 동남권 메가시티가 지속가능한가라는 의문이다. 동북아 금융허브·물류허브 전략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되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항만과 공항, 철도를 연계시킨다는 스마트 복합물류는 아직 실체가 없는 그림만 있다. 외려 기업과 사업을 유치한다는 명목은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좋은 빌미가 되어 왔고 실제로 그랬다(부울경 수소경제권은 각종 규제를 풀 빌미가 될 수 있다). 수도권에 대한 강력한 규제정책이나 서열화의 붕괴 없이 메가시티를 만든다고 기업과 사람이 동남권으로 이동할까?
그리고 메가시티 전략은 수도권과의 불평등을 줄인다고 하지만 지역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거점 지역이 주변의 자원을 흡수할 거라는 건 명확한 일이고, 거점 중심으로 접근성을 강화시킨다고 하지만 거점 지역으로 옮기거나 오갈 능력을 갖춘 이들은 주로 공무원들일 것이다. 지금도 군 단위의 공무원들 상당수는 인근 도시에서 생활하는데, 이런 거점 전략은 이런 경향을 더 강화시킨다. 결국 행정지역에 살지 않고 지역을 모르는 공무원들이 지역정책을 세울 가능성은 더욱더 높아지고 이것은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명확한 부작용이 예상되는데 그 처방을 따라야 할까?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는 덧셈만 있지 뺄셈이 없다는 점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온실가스저감 정책이 필요한데, 수소경제권이 그것에 대한 답일까? 공공교통체계를 강화시키는 것은 긍정적이나 광역철도, 광역도로, 각종 인프라를 조성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과 자원은 ‘친환경’이라는 말로 은폐되고 있다. 그리고 전략에 포함된 여러 사업들은 기존에 추진되던 중고품들이 다시 포장되어 신상품인양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부울경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 중 하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핵발전소이고 폐쇄된 핵발전소의 해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이다.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멋진 청사진만 그리는 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대안인지 의문이다.
2) 전국의 메가시티화?
이게 끝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국가균형발전·행정수도추진단은 ‘3+2+3 메가시티’ 전략으로 수도권-동남권-충청권 그랜드 메가시티, 대구·경북-광주·전남 행정경제 통합형 메가시티, 전북-강원-제주 강소권 메가시티를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수도권의 인구가 다른 메가시티랑 동등해져야 가능한 구상인데, 이게 말이 될까? 그리고 2030년에 인구정점을 찍고 절대인구가 계속 줄어들 전망인데, 전국을 메가시티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솔직히 2020년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지역마다 대형개발사업을 기획하려는 구상으로밖에 보이지 않고 이미 그 부작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결국, 메가시티 전략은 성장전략을 유지하면서 수도권 집중을 완화시키고 지방을 활성화시킨다고 하지만 몇몇 거점들에 자원을 집중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즉 지방소멸 예정지로 꼽힌 지역들은 메가시티에서도 주변부의 지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주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관광단지가 되거나 식량거점이 되거나 재생에너지 부지가 될 수 있다. 사실 이런 결과는 특별한 전략을 세우지 않아도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메가시티 전략은 성공하면 소수의 다극화된 거점으로 집중시키는 것이고, 실패하면 전국의 수많은 산업단지들(2020년 4분기 기준 국가 47개, 일반 685개, 도시첨단 32개, 농공 474개, 총 1,238개)이 황폐화되었듯이 수많은 재원만 빨아먹은 황량한 하드웨어가 될 것이다.
3) 지방소멸에서 지역공생으로
헌법에서 지방자치의 위상을 분명히 하고, 지방자치법도 주민자치를 분명하게 명시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래야 지방자치단체의 형태를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허용한 개정안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리고 주민자치에 관한 법률을 따로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분리시키는 근본적인 문제를 낳는다. 6공화국의 왜곡과 한계를 넘어서려면 분권형을 넘어 연방형 헌법개정이 필요하고 이에 맞춰 지방자치법도 다시 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헌법과 법률 개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광역시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레 지역을 살릴 묘책은 없다. 일자리와 경제성장, 행정비용의 측면에서 추진되는 전략은 실제 삶을 놓치기 쉽다. 그리고 전염병이나 슈퍼태풍,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난을 고려하면 작은 단위로 행정권을 분할한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란 법도 없다.
기본적으로 핵심적인 공공서비스 거점은 중앙정부가 확보하고, 지방정부가 시민사회와 함께 전략을 세우고 운영하도록 정책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 방향은 거점으로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보다 지역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지금 정부 정책은 광역자치단체에 권한과 무게를 실어주지만, 기초자치단체에 권한을 줘야 하고, 대신 행정권역을 대대적으로 다시 설정하고 지방행정에 대한 주민의 통제권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물리적인 거점을 두고 사람을 집중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유연한 시스템을 만들어 사람들의 생활권을 고려한 공공서비스의 배치, 공공서비스의 이동이 필요하다.
이처럼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의 권리와 지역공공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그러려면 단체장과 관료들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지 못하도록 주민 통제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가장 기본은 정책기획이나 집행과 관련된 재정,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주민들이 행정에 설명을 들을 기회를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형식화된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질화시키고, 잘못된 행정에 대한 처벌조항을 법률에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은 아콘 펑(Archon Fung)과 에릭 올린 라이트(Eric Olin Wright)가 주장했던 역량강화참여거버넌스(Empowered Participatory Governance), 즉 자율적인 분권보다 ‘조절되는 분권(coordinated decentralization)’과 비슷하다(Fung·Wright, 2003). 왜냐하면, 토호세력이나 개발연합의 발흥을 막고 공정한 규칙을 보장할 수 있는 상급기구의 역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개입과 조정이 실제로 가능하려면 진보정당의 역할이 중요하고, 정치관계법의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온전히 만들 뿐 아니라 다른 나라처럼 선거를 통해 연합정치가 가능하고 지역정당이 설립될 수 있도록 정당법과 공직선거법도 바뀌어야 한다.
지방소멸을 막을 지방자치는 정치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을 요구하고, 헌법은 이런 요구를 담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공화국이 필요하고, 그것을 실현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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