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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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승자독식주의를 넘어 ‘공유·공생의 정치’로
- 입력 2021.06.03 12:06 조회 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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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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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1. 들어가며
“촛불이 있기는 있었던 것인가?”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지났을 때 썼던 글에서 지적했듯이(손호철, 2019), 언제부터인가 자주 밤에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서 던지는 자문이다. 즉 꿈속에서 촛불은 현실 속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단지 꿈속에서 일어난 꿈에 불과한 악몽이다. 그렇다. 촛불이 꿈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이라면, 4년 반 전 그 뜨거운 촛불이 실제로 광화문거리를, 그리고 전국 주요 도시들을 메웠다면, 지금처럼 개혁의 열기는 사라지고, 촛불에 의해 사실상 탄핵을 당했던 정치세력들의 후예인 국민의 힘이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수가 있는가?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우리 사회는 촛불을 들었을 때, 그리고 박근혜 탄핵 결정에 열광했을 때 기대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박근혜, 그리고 이명박은 자신들의 죄과에 대한 심판을 받아 감옥에 갇혀있다. 그러나 ‘촛불항쟁’의 결과로 기대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4년이 지나 임기를 다해가면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한 마디로, ‘꺼져버린 촛불’과 촛불정부를 자임해 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 아니 이를 넘어서 보수세력 등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는 ‘문재인 정부 심판’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게 나라인가’를 외치며 ‘새로운 나라’, ‘새로운 공화국’을 꿈꿨던 ‘촛불항쟁’이 왜 이처럼 비극으로 끝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뒤늦었지만 촛불항쟁이 꿈꿨던 꿈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특히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인 승자독식의 정치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이 글은 이 같은 물음에 대한 작은 답이다.
2, 무엇이 문제인가?
조국사태, 부동산, LH사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전셋값 인상파동 등 여권핵심의 ‘내로남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의 더불어민주당의 충격적인 참패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것은 이것들 때문이 아니고 조국사태서부터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었다. 이와 관련, 나는 4년 전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 즈음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세 가지 이유때문에 과거와 같은 승자독식의 정치를 넘어서, 촛불연정으로 나가야 한다. 첫째, 여소야대라는 국회에서의 객관적인 힘의 관계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라고는 하지만 의석의 40% 남짓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연정의 형태가 아니라면 촛불개혁입법을 추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로,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가능하게 한 탄핵은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혼자 한 것이 아니다. 이는 정치권에서 탄핵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정의당, 이념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는 자유주의세력이 다수인 국민의 당, 나아가 유승민 의원 등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상당의원이 같이했기에 가능했다. 셋째로, 승자독식주의와 이에 따른 사생결단의 정치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촛불연정이 아니라 승자독식주의로 나가고 말았다. 그렇다. 문제의 근원은 승자독식주의를 혁파하지 않고 계속 계승해간 것이다. 그 결과, 권력을, 정확히 이야기해, ‘요직’을 독점했는지 모르지만, 다양한 개혁적 의제들은 전혀 법제화하지 못했다.
정치학에 ‘경로의존성’이란 말이 있다. 어떤 결정적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서 한 길을 선택하면 그 선택이 이후의 선택과 가야 할 길을 규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촛불연정과 협치가 아니라 승자독식을 택한 집권초기의 문재인 정부의 선택이 이후의 경로를 규정하고 말았다(이에 대해서는 손호철, 2019). 박근혜 탄핵에 동참했던 유승민 등 ‘새로운 건전한 보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른정당의 다수가 탈당해 ‘낡은 냉전적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 힘)으로 복귀해버렸고 안철수가 돌아와 국민의 당의 주축을 끌고 나가 우경화시켰다. 따라서 촛불연정의 기반이 무너져버렸고 극우적 보수세력을 내파시키고 한국정치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물론 집권 2년 반 만에 정의당과의 ‘부분적인 촛불연정’을 통해 거대 여당의 횡포로 만신창이가 되어 개혁성이 반감되기는 했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법개정안과 공수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역시 국민의 힘에 이어 더불어민주당까지 개정선거법의 정신을 짓밟는 위성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오히려 선거법을 개악하고 승자독식주의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이 같은 꼼수에 의한 총선의 압승에 따른 오만이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 참패라는 비극을 가져오고 만 것이다.
3. 승자독식주의를 넘어서
정확한 진단이 정확한 처방을 가져온다는 것은 상식이다. 촛불도 마찬가지다. 촛불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문재인 정부가 무엇을 해야 했는가 하는 정확한 처방을 가능하게 한다.
촛불은 단순히 박근혜의 실정 때문에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촛불은 박근혜로 상징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의민주주의 실패, 다시 말해 ‘(19)87년 (헌정)체제’의 불완전한 민주화가 가져온 것이다. 국민을 대표해야 하는 대통령은 본연의 임무와 거리가 멀었고 대통령의 전횡을 견제해야 하는 국민의 대표, 즉 국회도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주권자인 국민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촛불이 원했던 것은 단순히 박근혜의 탄핵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의민주주의의 실패, 승자독식주의로 상징되는 87년 체제를 넘어서 정치가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까지도 포함하여 국민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공화국’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공화국 건설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니 위성정당 창당이 보여주듯이,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승자독식주의를 강화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같은 승자독식주의와 오만에 대한 대중의 분노로 2021년 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4년 전 촛불에 의해 심판을 받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후신인 국민의 힘이 압승을 거두고 부활하는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승자독식주의에 의해 꺼져가고 있는 ‘촛불항쟁’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대선국면 속에서 촛불항쟁이 꿈꾸었던 ‘새로운 공화국’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이와 관련, 우리가 제시해야 할 새로운 공화국의 청사진을 정치부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같은 정치개혁의 방향은 낡은 승자독식주의를 넘어서 시대적 정신인 ‘공유의 정치’, ‘공생의 정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공유의 정치, 공생의 정치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실패한 대의민주주의를 혁신할 수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수술이다. 주목할 것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촛불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에 따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설립으로 거대양당의 독점은 오히려 심화됐고 소수세력은 더욱 배제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즉 촛불에도 불구하고 대의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하고 만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당지지율에서 거대양당은 70% 미만의 지지를 받았지만, 의석은 94%를 차지해 지난 국회(2016-2020년)의 82%보다 오히려 거대양당의 독점률이 높아졌다. 반면에 사실상 유일한 ‘원내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지난번의 7%에서 상당히 오른, 근 10%의 지지를 받았지만, 의석수는 2%에 그치고 말았다. 다시 말해, 거대양당은 지지율의 근 1.4배의 의석을 차지한 반면, 정의당은 지지율의 5분의 1 의석밖에 차지하지 못함으로써 정의당에 투표한 표는 거대보수양당에 던진 표의 7분의 1로밖에 평가받지 못하고 말았다. 헌법재판소가 표의 가치가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을 고려하면 말도 되지 않는 위헌적인 결과이다.
정의당을 넘어 ‘진보정당’ 전체(진보정당의 구체적 외연에 대해서는 논쟁이 가능하다)로 확대해 보면 그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진보진영’은 9.57%를 기록한 정의당 이외에도, 민중당 1.05%, 노동당 0.125%, 녹색당 0.21%, 여성의당 0.74%, 미래당 0.25% 등 12.04%를 기록했지만(표 1. 참조), 의석수는 정의당이 차지한 6석이 전부이다. 즉 12% 득표에 의석수 2%에 그친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에 투표한 표는 거대보수양당에 던진 표의 8분의 1(정확히 계산하면 8.4/1)로밖에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표 1. 진보정당 득표현황
정의당 |
민중당 |
노동당 |
녹색당 |
여성의당 |
미래당 |
총계 |
9.57% |
1.05% |
0.12% |
0.21% |
0.74% |
0.25% |
12.04% |
이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위헌적인 파괴와 ‘보수지역양당’에 의한 승자독식주의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스라엘과 같이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순수비례대표제’이다. 이를 도입할 경우 사표가 거의 생기지 않게 된다. 다만 자신들의 지역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지역의원을 선호하는 우리의 풍토에 따른, 대중들의 거부감이 문제이다. 하지만 이제 지방자치가 활성화되어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주민들이 직접 뽑는 만큼, 지역 현안은 이들이 해결해 나가고 국회는 ‘지역’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 전국적인 시각에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 된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선호하는 우리의 풍토를 고려할 때, 차선책은 제대로 된, 독일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이를 도입하면, 우리는 소선거구제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사표를 줄이고 다양한 소수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장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지금과 같은 ‘준연동형’이라는 반쪽짜리 비례대표제를 버리고 유권자들의 표가 정확히 의석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완전한 연동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지금과 같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신을 희화화하는 위성정당의 설립을 근본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셋째, 비례대표후보 밀실공천으로 정당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적인 상향식 후보결정과정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 제일 먼저 한 ‘정치개혁’(정치개악)은 국민의 힘과 야합해 선거법에 있는 이 같은 비례대표후보의 민주적 선출규정을 삭제한 것이었다. 밀실공천을 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피력한 오만의 극치다. 넷째,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사후적으로 득표율에 맞도록 의석수를 배분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전체 의석수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개헌을 통해 전체 국회의원 수를 탄력이 있게 수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파심에서 지적하자면, 지역주의 타파를 이유로 자유주의 세력이 주기적으로 주장해온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사실상 개악에 다름아니므로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던 일본이 소선구제로 바꾸었고,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가 스스로 강령에서 밝혔듯이 “중대선거구제는 당내파벌 성행, 막대한 선거비용, 정국의 불안정과 신진인사의 진출제약 등 피해가 심각해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폐기한 제도”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역시 소수정당의 비례대표의석들이 권역별로 소수점 이하로 나누어져 버려짐으로써 비례대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위험이 매우 크다.
2) 내각제와 ‘남한연방제’
낡은 승자독식주의를 넘어서 공유의 정치, 공생의 정치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선거제도 개혁 이외에도 낡은 대통령제와 중앙집권적인 ‘단방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이와 관련, 우리는 우리의 정부 형태를 다양한 정부 형태들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표 2. 참조).
표 2. 정부형태들
|
권력집중 |
분산 |
중앙집중 |
대통령제 |
내각제 |
지방분산 |
대통령제 |
내각제 |
위의 표가 보여주듯이 우리의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와 단방제의 결합으로 그 어느 정치체제보다 중앙집권적이다(물론 북한 등에 비해서는 덜 그러하지만, 북한은 ‘정상적인’ 비교대상이라고 보기는 뭐하다.).
한국정치에서 ‘연방제’하면 우리는 남북통일방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관점과는 전혀 다른 남한 자체의 연방화, 즉 ‘남한연방제’라는 문제의식에서, 외교, 안보문제 등을 제외하고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발본적으로 지방으로 분권화시켜야 한다. 이는 여러 면에서 한국정치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첫째, 권력집중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둘째. 중앙집권화된 권력을 놓고 지역 간에 벌어졌던 지역경쟁과 관련이 깊은 지역주의 완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1987년 지역주의가 전면화된 이후 지금까지의 정치는 썩은 정치인도 자기 지역 출신이면 중앙에 내보내 중앙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찍었다면 지방자치가 발본적으로 강화되면 썩은 정치인을 찍어봐야 당할 사람은 자기 지역민밖에 없기 때문에 좋은 지역대표를 뽑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셋째, 세계는 “이제 국민국가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문제의식에서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가 결합한 ‘세방화’(glocalization)로 나아가고 있다. ‘남한연방제’는 이에 부합하는 것이다. 넷째, 어차피 이질적인 체제가 공존하는 남북체제를 생각할 때 통일은 연방과 같은 형태를 거치는 것이 불가피한 바, 통일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써도 의미가 크다.
승자독식주의의 핵심인 대통령제도 이제 손을 봐야 한다. 긴말이 필요 없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고(실질적인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었던 최규하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암살, 중도퇴진, 투옥,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제,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1987년 이후 최근까지, 특히 3김 시대에, 내각제를 극렬하게 반대해 왔다. 나는 “대통령제가 우리에게 미국식 정치가 아니라 남미식 독재정치를 가져다주었듯이, 내각제는 우리에게 유럽식 정치가 아니라 정경유착과 보수정치의 일본정치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유럽과 같은 근대적인 대중정당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내각제를 실시할 경우 사당정치와 지역주의가 결합한 3김정치가 영속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손호철, 1999, 327-331).
그러나 대통령제, 이에 따른 승자독식정치, 사생결단의 대립정치의 폐해가 너무도 심하고 3김과 같은 보스가 사라진 현재의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다수결 민주주의’ 대신 여러 세력이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공유) 협의를 통해 합의(공생)를 만들어 가는 유럽식의 ‘합의민주주의’, ‘협의민주주의’로 나갈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다수결민주주의의 문제점과 합의민주주의, 협의민주주의의 장점에 대해서는 Lijpart, 1984: Linz, 1994 참조). 대통령제/내각제와 같은 정부형태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제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대통령제와 소선거구 지역구제라는 ‘다수결주의’의 승자독식주의를 넘어서 내각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합의민주주의의 ‘공유정치’, ‘공생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3) 직접민주주의, 소수자권리, 국가보안법
제대로 된 연동형비례대표제와 내각제의 도입이 고장 난 대의민주주의의 수술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만이 아니라 그를 몰아낸 촛불이 이처럼 별 성과 없이 힘없이 꺼져버린 것은 설사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소위 ‘민주정부’는 세운다고 하더라도 국민들, 시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감시가 없이는 그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민선 공직자에 대한 국민소환제도 강화, 시민발안제 등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감시되고 보완되지 않는 대의민주주의는 장 자크 루소가 이미 300년 전 잘 지적했듯이, “국민들이 선거 날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Rousseau, 1967:99-100).
공생의 정치, 공유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형태, 선거제도 등을 사회적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넘어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 즉 5년 대통령단임제 등 이제 수명을 다한 1987년 헌법과 ‘87년(헌정)체제’를 혁신할 때, 개헌을 통해 성소수자 등 소수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본권을 업데이트시켜야 한다. 나아가 날로 심각해지는 생태문제, 이에 따른 코로나 19 등 세계적인 ‘팬데믹 시대’의 도래와 관련해, 인권을 넘어서 새로 부상하고 있는 동물권 등 모든 생명의 생명권, 자연이 그 모든 생명 형태를 통해 존재하고 유지하고 삶의 주기를 재생산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를 갖는다고 인정하는 ‘자연권(Rights of Nature)’을 헌법에 명기해야 한다, 참고로, 중미의 소국인 에콰도르가 2008년 세계최초로 자연권을 명시했다.
마지막으로,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을 폐기해야 한다. 촛불항쟁 이후에도, 소위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정부 4년이 지나가는 현 시점에도, 4.27시대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이 반국가단체 표현물 소지와 회합 통신 등 국가보안법혐의로 자택 압수수색을 받고 체포되는 등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특히 보수세력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촛불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세계 주요정치학자들이 1980년대 세계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평가하기 위해 합의하에 만든 개념으로 ‘민주주의’지만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제한하는 ‘한계가 있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O’Donnell & Schmitter, 1986)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때, 우리는 명실상부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손호철. 1999. <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 푸른 숲.
손호철. 2017.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이매진.
손호철. 2018. “6월항쟁과 ‘11월 촛불혁명’: 차이와 반복”. 손호철. <한국과 한국정치>, 이매진.
손호철. 2019. “‘꺼져버린’ 촛불과 경로의존의 정치: 문재인정부 2년을 평가한다”, <진보평론>. 2019년 여름호.
손호철. 2020. “‘다행 중 불행’인 2020년 총선”, 평등사회노동교육원 e-품, 2020.5월호.
Lijpart, Arend. 1984. Democratic Patterns of Majoritarian and Consensus Government in Twenty-One Centur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Linz, Juan. 1994. The Failure of Presidential Democracy. Washington. D.C.: John Hopkins Univ. Press.
O’Donnell, G & Philippe Schmitter. 1986. Transition from Authoritarian Rule: Tentative Conclusions about Uncertain Democracies. Baltimor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Rousseau, Jean-Jacques. 1967. The Social Contract. New York: Washington Square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