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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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반도 전쟁구조와 핵갈등 속에서 평화와 통일의 길 찾기
- 남한 정부의 역할 강화를 위한 제언
- 입력 2021.06.03 14:06 조회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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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상 서울연구원 초빙부연구위원, 전 민주노동당 평화군축운동본부장
-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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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상 (서울연구원 초빙부연구위원)
1. 시작하며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본질적 쟁점들이 역동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위기와 기대, 탄식과 절망은 하나의 드라마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과연 한반도는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지금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남북미 간 기존 논의의 성과를 유지하면서 끊어진 대화의 물꼬를 다시 트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 그리고 뒤이은 남한의 정부들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느냐에 따라 핵협상과 한반도 평화, 그리고 통일의 길을 여는 미래의 과정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남한 정부의 정책과 행위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국제동학, 남남갈등의 국내정치적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70년이 넘는 한반도의 전쟁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물론 1987년 민주화의 역사적 성과와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경제적 위상은 과거에 비해 남한 정부의 위상을 제고하고, 역할을 확대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렇지만 한반도의 핵갈등을 해결하고 전쟁구조를 해체하는 것은 남한 정부가 직면한 최고의 난제이다. 그것은 2018년에서 2019년 초에 이르는 남북미 정상들의 화려한 외교적 움직임이 문제해결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현안대응능력에 초점을 두는 것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활동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구조적 제약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둔다. 남한 정부의 역할강화는 사실 그와 같은 구조적 제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한반도 전쟁구조와 연결된 핵갈등의 본질, 남북미 관계의 구조적 성격과 제약, 남북한의 흡수통일론과 내부법제의 특징, 남북한 간 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논란을 검토한다.
2. 한반도의 전쟁구조와 핵문제
1950년 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질서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형성된 전쟁구조이다. 일반적으로 구조는 인간, 인간집단의 행위와 사고를 지배하는 사회적 행동의 틀이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역학관계의 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전쟁구조도 마찬가지다. 그 시작은 남북의 분단과 두 국가의 등장이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국가는 분단된 국토와 사람들을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통일지상주의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굴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속에는 선악구분법과 정통성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의 우월성을 근거로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사고법이 지배적이 되었다. 그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일성의 국토완정론과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이다. 그 귀결이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남북한만의 전쟁이 아니라 국제전이었고, 세계사적 냉전 속의 열전이었다. 500만 명이 넘는 사상자와 1000만 명이 넘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내면서도 전쟁의 승패는 결정되지 않은 채, 1953년 정전상태에 들어갔다.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종전은 아니었고, 그 결과 전쟁재개를 염두에 둔 무한 군비경쟁이 한반도를 무려 70여년 가까이 지배해 왔다. 전쟁구조의 본질은 적대관계이고, 그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와 당사국들의 내부 관계를 규정하는 강력한 틀로 자리 잡았다.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이 전쟁구조를 해체하고 평화공존의 관계로 전환시키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은 사실 한치의 진전도 이루어낼 수 없다. 그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전쟁구조가 작동하면서 한반도의 무한군비경쟁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남한이나 북한의 새로운 무기도입은 곧 상대방을 자극시켜 상대방의 신무기개발이나 도입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악순환이 자리잡게 되었고, 그로 인한 안보딜레마가 한반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70년대 남한의 핵개발 시도, 90년대 이후 북한의 핵개발 시도 역시 그런 안보딜레마의 결과물이다. 북핵을 둘러싼 30여 년에 걸친 협상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전쟁구조와 무한 군비경쟁의 역사가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핵을 둘러싼 협상은 전쟁의 승패를 추구하는 것과 유사하게 진행되었고, 전쟁의 승패가 결정나지 못한 것과 동일한 이유로 성공하지 못했다. 핵협상은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그것이 핵협상 실패의 본질이다.
이와 관련 북한이 남한과 미국의 압박과 제재로부터 벗어나 체제유지에 성공했고,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30여 년간의 핵협상은 북한의 승리로 끝났다는 평가가 있다. 북한, 혹은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태의 한 측면만을 과장한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이용해서 핵군비경쟁을 지속시켜 온 남한과 미국의 핵균형론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한과 미국에서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역이용해 핵군비경쟁을 부추키고 대규모 무기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북한의 핵무기가 고도화되는 만큼 남한과 미국의 핵균형론자들의 대응도 고도화되었다. 그들의 대응은 북한을 무력으로 붕괴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었다. 북한도 원하는 것을 얻었고, 미국과 남한의 핵균형론자들도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런 의미에서 핵문제의 본질은 북한의 고도화된 핵무기와 그것을 이용해서 확대되고 있는 남한과 미국의 핵균형 프로젝트를 포함한다. 그래서 북한 핵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핵문제인 것이다. 지금 이 핵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핵군비경쟁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다. 그 속에서 핵전쟁의 비극은 예고된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남한과 미국의 평화주의,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북한의 평화주의의 패배이며, 공멸을 의미한다.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자. 사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무기 개발속도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급진전된 북한의 핵무기계획은 핵무기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리비아나 이란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 수준에 이르게 될 정도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을 억제하고 비핵화를 추구했던 모든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는 그때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런데 놓쳐서는 안 될 것은 북한의 핵무기고도화가 진행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한미 간에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는 군사적 대응태세가 확립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 한미 간에는 북한의 핵무기를 겨냥한 역할분담구상이 확정된다. 2013년 미국은 대한반도 맞춤형 확장억제전략을 천명하고, 2016년부터 한미억제전략위원회(DSC), 한미외교·국방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다양한 정책협의체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또 확장억제수단의 운용연습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맞춤형 확장억제전략은 전통적인 핵우산 정책 개념보다 한 단계 발전된 억제 대응전략으로,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는 단계부터 직접 사용하는 단계까지 모든 위기상황별로 이행가능한 군사·비군사적 대응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그물망은 과거에 비해 더 포괄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맞춤형 확장억제전략을 보완하기 위한 ‘한국형 3축체계’ 구상을 확립하고, 국방중기계획에 포함시킨다. ‘한국형 3축체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여 1축 킬체인(Kill Chain), 2축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3축 대량응징보복(KMPR)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57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무기프로젝트가 북한 핵무기의 고도화에 대응해 구체화한 것이다. 이 구상의 중단은 북한 핵무기의 폐기일정이 구체화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도 그것을 중지시킬 수 없었다. 4.27선언이나 9.19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조치로 이어졌다면 그것을 중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폐기는 가시화되지 않았다. 결국,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들을 바꾸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역사상 최대규모의 군비증강을 단행하는 정권으로 비판받고 있는 배경이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가 문제인가, 아니면 미국의 맞춤형 확장억제전략이 문제인가, 한국의 3축체계 구축이 문제인가? 문제의 본질은 그 모두가 사실상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기고도화가 계속되면서 최근 일부 보수정치세력들이나 군 일각에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구상이나 나토식 핵공유제를 도입하는 플랜 B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핵우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핵무기를 이용해 핵균형을 추구하자는 논리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미국주도의 핵비확산체제 하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술핵도입이나 핵공유제가 미래의 유력한 대안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논란을 무색하게 만드는 발언이 미국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부에서조차 금기시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동북아 핵도미노 상황이 현실적 우려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트럼프의 전형적인 과장과 허세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의 발언은 이미 미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K. 왈츠의 핵균형론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것이다.이제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론, 일본의 독자적인 핵무장론도 금단의 벽을 넘어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과연 이런 상황은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핵군비경쟁은 상호확증파괴(MAD)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중단되었던 핵협상을 재개하면서 한반도 핵군비경쟁을 종식시키는 비핵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북한의 핵무기만이 아니라 북핵을 매개로 한 한미동맹의 핵균형정책까지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비핵화 방안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동북아의 핵도미노현상을 막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질서를 구축하는 길이다. 지금은 ‘비핵화 없는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미국, 남한이 합의할 수 있는 비핵화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할 때인 것이다.
3. 한반도의 전쟁구조와 남한의 지위, 역할
한반도의 전쟁구조는 당사국들의 위상과 역할을 구조적으로 규정한다. 전쟁의 실질적 사령부는 북한과 미국이다. 미국은 유엔군사령부를 주도하면서 북한과 함께 전쟁과 정전협정의 중심축을 담당해 오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남한이다. 남한은 한반도의 전쟁구조에서 북한의 적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존재한다. 전쟁의 실질적 당사자이면서도 전쟁구조 속에서는 북한과 대등한 위상과 역할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한반도 전쟁구조에서 남한은 한미동맹을 통해서만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었다면 그것은 역사해석의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지 못하고, 과도적인 협정이었던 정전협정이 68년간 계속되는 상황에서 남한은 같은 편인 미국과 적대세력인 북한 모두를 상대해야만 하는 피곤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태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는 온전히 남한과 북한이 주도하는 문제가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남한은 미국과 북한이 주도하는 전쟁구조의 종속변수로 전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반도 전쟁구조의 제약을 인식하면서, 남한의 구조적 위상과 역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한미동맹 내부에서의 지위상승과 역할확대, 남북관계의 구조적 위상확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은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위상과 역할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서이다. 따라서 남한이 그렇게 만들어 가야 가능한 것이다. 과연 남한은 한반도전쟁구조의 족쇄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남한의 위상과 역할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나타난다. 박정희 정권은 주한미군철수문제가 본격화되자 자주국방을 내세우면서,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설립하고, 핵무기개발에 나서기도 했지만, 그 시도는 좌절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미동맹 내에서 남한의 지위 상승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부 때 유엔군사령부 내 한국군의 위상 강화와 작전통제권전환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당시 군사정전위 유엔군 측 수석대표가 미군 장성에서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되는 장면은 한국군의 지위 상승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 전쟁구조에서 한국군의 지위 상승이 이루어지는 것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군사정전위원회를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반발한다. 남한을 미국의 괴뢰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의 전통적 논리가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한의 위상 강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작전통제권 전환문제는 미국의 급격한 영향력 상실에 대한 우려로 평시와 전시를 구분해 노태우 정부 때 평시작전통제권전환을 합의하고, 노무현 정부 때 전시작전통제권전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한미동맹의 해체가 아니라 존재방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조건에 바탕을 둔’ 전시작전통제권전환이라는 말도 본질적으로는 그런 맥락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전작권 전환이 완수되지 않은 것은 남한의 지위 상승에 대한 남한 내부 일부 세력과 미국의 우려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으로 인해 영향력이 축소되는 상황을 지연시키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 문제는 전작권 전환과정이 엄청난 군비증강을 동반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연 남한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과거 미국은 군사정전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북한을 직접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군사적 적대관계로만 대응했고, 국가 대 국가의 관계설정을 피하려 했다. 그 결과 남한의 대북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북한 핵 문제가 부각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 북한은 염원해 왔던 미국과의 직접적 관계를 구축하게 되자, 북미대화에 남한이 개입하는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만들려 했다. 그런 북한의 의도를 미국이 활용할 경우,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보조축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결과 남한은 북한과 미국의 태도에 따라 위상과 역할이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북미 간 갈등과 교착이 심각할 경우에는 남한의 존재가치가 높아지지만, 북미 간 본격적인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경우 남한의 역할은 급격하게 축소된다. 특히 미국은 남한이 미국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을 때 북한을 이용했고, 북한은 북미협상 관계가 본격화되면 남한의 역할을 축소 혹은 배제하려 드는 행동(通美封南)을 반복해 왔다. 김영삼 정부 때 그런 모습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김정은-트럼프 관계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과연 남한정부는 어떻게 자신의 위상을 제고하고 역할을 확대시킬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남한정부가 직면한 현실적 과제이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그런 남북미 관계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 준다. 문재인정부의 적극적 역할로 소위 ‘스몰 딜’이 구체화되고, 트럼프 정부 내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미국 내의 강경파와 국무부 관료들의 대북불신은 남한과 북한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북한과 미국의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남한이 처한 구조적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그와는 달리 비건과 김혁철 간의 실무회담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상태인데 72시간의 열차여행을 기획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도 상식적이지는 않다. 회담을 낙관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노이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북한이 그 모든 책임을 남한으로 돌리는 듯한 태도는 그런 의미에서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전략을 오판한 자신들의 실수를 남한에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노이 노딜은 사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어느 지점에서 막혀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기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종류와 규모, 핵시설의 존재 등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 역시 북한의 핵폐기 의지가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화하기 전에는 제재해제문제에 대해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당시 거론되었던 스몰 딜은 사실 남한이 북한과 미국의 협상파들을 조율하면서 만들어낸 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몰 딜은 북미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한반도비핵화의 구체적인 의미를 확정하지 못했고, 상호신뢰를 구체화할 수 있는 1단계 조치를 명확하게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궁극적 목표에 대한 명확한 합의없이 단계적 접근만 강조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강조했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접근’은 말로서만 존재한 것이다. 미국의 대북강경파와 비확산파는 스몰 딜의 그 한계를 파고들면서 노딜을 선택한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당연히 미국의 책임이 일차적이다. 북한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 남한 때문이라는 비판은 잘못이다. 남한이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지 못한 한계, 능력의 부족을 말할 수는 있어도 그 주된 책임이 남한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한의 위상제고와 역할확대는 현실적 과제이다.
문제의 핵심은 남북관계의 낡은 논의구조를 과감하게 바꾸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쏟아내는 말들 속에는 낡은 대남관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런 북한의 행동이 그 순간의 감정을 쏟아내는데 기여할 수도 있지만, 남한 정부를 만들어내는 남한사회의 대북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미관계의 낡은 관성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방위비 협상과정이나 워킹그룹의 운영과정에서 미국이 취한 태도 속에도 남한을 무시하고, 압박하는 관성들이 드러난다. 그것이 동맹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불신의 벽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미국이 알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민주화된 한국사회는 그런 미국의 횡포에 침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을 상대로 한 남한 정부의 역동적인 협상능력, 요한 갈퉁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비폭력적 투쟁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4. 내부화된 전쟁구조와 흡수통일론 : 남한의 87년 헌법과 북한의 노동당 규약전문
한반도 전쟁구조의 적대성은 남북한의 내부법제를 통해서도 재생산되고 있다. 사실 국제법적 맥락에서 볼 때, 남한과 북한은 독립된 주권국가들이다. 남북한은 모두 유엔 가입국이고, 동시 수교국도 158개국에 이른다. 따라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조약을 체결할 수도 있고, 다양한 국가적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FTA를 맺을 수도 있고, 공동시장을 창출할 수도 있다. 국가연합을 창설하거나 연방국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한은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전쟁구조가 반영된 결과이다. 이런 상태에서의 통일은 상대방을 제압해서 온전한 단일 국가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무력통일이나 평화통일 모두 그런 의미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 수단과 방법이 다를 뿐인 것이다. 그것은 열전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던 시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전상태가 오랜 기간 계속되면서 두 개의 국가 현실이 뚜렷하게 정착되고, 두 국가 간 공존협력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34년이 지난 87년 남한사회는 민주화를 통해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낸다. 인권의 강화, 대통령직선제, 권력의 분산을 실현하고 독재의 출현을 막기 위한 다양한 규범적 장치들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 시장의 횡포를 막고 경제민주화와 공정경쟁을 위한 질서도 담아냈다. 그러나 48년 헌법부터 계속되어 온 제3조 영토조항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존재를 헌법적으로 부정한다. 반면 헌법 제4조는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되 평화적으로 흡수통일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모순과 충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충돌을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하면서 북한은 반국가단체이지만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라고 규정한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만 규정했던 이전에 비해, 동반자라는 규정이 추가된 것이 적어도 민주화가 남북관계 미친 변화이다. 그러나 87년 헌법은 통일을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 즉 자유민주적 관점에 기초한 평화적 통일만을 인정한다. 적어도 법리상으로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남북의 공존형 통일은 불가능하다. 전쟁구조의 적대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평화통일을 규정하다 보니 생겨난 법적 현실이다. 그 결과 평화적 통일을 위한 노력이 헌법적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은 곧 북한을 평화적으로 붕괴시키려는 공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평화적 체제전환을 지원해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려는 논리로 해석된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은 남한과는 달리 헌법에 영토조항은 없다. 명시적으로 남한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동당규약 전문을 통해 남조선혁명과 적화통일을 규정한다. 현재의 남한을 부정하고 타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국토완정론과 민주기지론이 무력으로 남한을 정복하는 무력통일론을 의미했다면, 1961년 노동당 제4차 당대회에서 남조선 혁명론이 규정되고 70년대 이후 구체화된 북한의 연방제통일론은 남한의 혁명정당과 인민들에 의해 남조선혁명이 성공하고 난 뒤, 남한의 민주적 혁명정부와 북한의 사회주의정부가 평화적으로 연방제통일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식 흡수통일론, 즉 적화통일론의 실체이다. 이러한 북한의 통일방안은 1980년 5차 당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으로 그리고 1990년대에 낮은 단계 연방제에서 시작하여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완성한다는 통일방안으로 발전한다. 그렇지만 북한의 노동당규약은 여전히 남조선혁명론에 근거해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는 것으로 못 박고 있다. 북한 역시 평화통일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 본질은 북한식 흡수통일인 것이다.
남한 헌법과 북한의 노동당규약은 사실 한반도 전쟁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전쟁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라도 서로의 국가성을 부정하는 남북한의 내부법제를 바꾸어야 한다. 남북한의 역사적 현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지난한 평화와 통일의 과정을 고려할 때, 남북한의 상호국가승인문제와 흡수통일론의 극복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분단과 전쟁의 역사가 70년을 넘어가고 있고, 서로 다른 두 국가의 삶에 익숙한 세대가 인구의 절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더이상 단일민족으로서의 당위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통일의 실질적 근거를 만들어 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의 삶과 규범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실적 절차는 남한과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는 가운데 공동체적 결합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여 나가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전쟁구조를 해체하고 남북한이 주도해서 평화공존의 체제를 만들어 가는 것도 그 속에서 가능할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남북한의 국가성을 상호승인하면서 공동체적 통합의 길을 만들어내는 국가연합의 길은 국제법적 효력이 거의 없는 민족내부관계론 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국제법적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으로 통일의 길을 앞당기는 현실적인 방안이 되는 것이다.
5. 남북관계의 법적 성격과 특수관계론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의 ‘특수관계론’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두 개의 국가 간 관계가 아닌 민족내부관계로 규정한다.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통일을 추구한다는 독특한 문서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실상 남한 헌법과 북한 노동당규약으로 대표되는 내부법제의 적대성을 개정하지 않고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려는 의도의 결과물이다. 당연히 그 배경에는 남북한만으로 한반도의 전쟁구조를 바꿀 수 없는 현실적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남북관계는 어떤 법적 성격을 갖고 있는가? 한반도의 전쟁구조 속에서 남북한은 상호적대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존재이다. 그 결과 남북한은 서로의 적대적 실체(교전대상으로서의 지위)는 인정하지만,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남북한 특수관계론은 그것을 통일을 위한 잠정적 특수관계이며, 민족내부관계라는 방식으로 정당화했다. 과거 서독은 동독과는 달리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동독이 국제법적 주체임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분단된 국가의 통일의지와 두 국가로 나누어진 현실을 고려해서 국제법적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동독은 서독과는 달리 동서독 관계를 두 개의 국가 간의 관계로 규정하고 있었다.
사실 남한이나 북한 모두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남북한 간 합의문서를 국제법상 조약으로 만들 수 있다. 국제법상 조약체결의 주체는 주권국가가 가장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국제기구, 교전단체, 사실상의 지방자치단체 등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까지 교전단체나 사실상의 지방자치단체 수준으로만 남북한 관계를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져버렸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국회 비준동의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처음에는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하려 했으나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국회동의가 아닌 ‘대통령 재가’ 방식으로 비준 절차를 마무리한다. 이때 야당의 동의요구를 묵살하던 논리가 바로 “남북합의서는 국제적 조약이 아니므로 국회 비준이 불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므로 북한과의 합의문서는 조약이 아니라 신사협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남한의 입장이 주도적으로 반영된 문서를 법제화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한 정부는 거꾸로 법제적 효력을 부인하는 방식의 어이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남한내부정치의 비합리, 비상식의 결과이다. 당시 북한은 남한과는 반대로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약에 준해 비준 절차를 거쳤다. 북한은 ‘하나의 조선론’을 주장하면서도 남북한 간 조약체결이 가능하다는 법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한민국 법질서의 최후 보루라고 여겨지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남북기본합의서는 조약이 아니라 신사협정에 불과하다면서 그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남북관계를 국제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해버리는 비상식의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헌법을 개정하거나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판결을 번복하지 않고서는 이런 사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어려워져 버렸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87년 헌법의 틀 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을 찾으려 했다. 헌법개정을 둘러싼 치열한 남남갈등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서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의 개정만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었기에 결국 2005년에 남북관계 전반을 규율할 새로운 법률로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남북관계발전법)을 제정하게 된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제21조에서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사항에 관한 합의서는 국회가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남북한 간 합의문서의 법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마련한다. 그렇지만 동법 제3조에서 북한의 국가성을 승인하지 않는 특수관계론을 명시하고 있고, 또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성격에 대한 법적 판단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와 같은 법적 규정은 묘수라기보다는 편법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편법은 또 다른 편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지저분한 국내정치의 공방 속에서 합리적 국가선택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6.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를 둘러싼 논란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남북한 간의 합의는 법적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적 합의들이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 4.27 판문점선언이 공표된 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의 국회비준동의를 추진한다. 그런데 판문점선언의 비준동의를 둘러싼 논란의 과정에서 남북한 간 합의서를 둘러싼 과거의 논란들이 다시금 전면에 드러나면서 심각한 남남갈등 상황이 표출된다. 남남갈등은 분단과 적대의 내부화이며, 국가의 미래보다는 자기세력의 미래를 앞세운다는 권력투쟁의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 제60조와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3항에 따라 판문점 선언 자체를 국회에서 비준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북한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조약이 불가능하다는 기존 헌법해석을 이용한 근본적인 반대 논리와 ‘김정은과 (남한)주사파 간의 합의’라는 흑색선전을 결합시켜 정략적인 발목잡기에 나선다.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선언 비준동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판문점 선언이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사안을 담고 있으므로 국회비준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논리로 비준동의를 강행한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추진과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결국, 자유한국당 역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토론절차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한국당은 판문점 선언 자체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므로, 헌법과 남북관계 기본법에 따라 비준동의를 거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법적 형식을 구비해야 한다는 법리적 반론을 제기하면서도, 판문점 선언 자체를 비준동의 받으려면 그에 걸맞은 예산추계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 통일부의 부실한 대응문제가 불거지면서 국회비준동의절차는 중단되어 버린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비준동의절차의 정당성을 앞세웠지만,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하지 못했고,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를 넘어선 합리적 대안 제시에 실패했다. 물론 당시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헌법위반논란이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기존해석과 충돌한다는 논란은 발생했을 것이다. 논란의 근본적 해결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판문점선언 비준 논란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이후 9.19 평양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 단독비준으로 마무리되면서 다시 거론된다. 모법이라 할 수 있는 판문점선언이 국회비준동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비준이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냐는 논란에서부터, 국회비준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까지 더해지고, 심지어 헌법재판소에 기관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한다. 헌법의 한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헌법해석의 한계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정치권의 무능력이 정치의 사법화와 맞물리면서 심각한 혼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만 할까?
판문점선언 비준논란은 전쟁구조의 적대성을 극복하기 위한 법제적 노력 없이, 평화와 통일을 추진하는 모순적 현실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87년 헌법체제의 모순과 한계이며, 헌법규범이 입법활동, 정부차원의 평화구축 및 통일정책 수행을 방해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남한 정부가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전쟁구조의 해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헌법적 족쇄를 풀어낼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은 북한의 국가성과 통일문제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을 해결하고, 남북한 간 합의문서의 국제법적 성격과 국내법적 의미를 법상식에 맞게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야 간, 보수와 진보 간 치열하고도 수준 높은 토론을 통해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에 근거한 헌법개정과 법률정비를 단행해야 한다.
7. 나가는 말
한반도의 핵갈등은 북한과 미국, 남한의 핵옹호론자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변화시킬 가장 중요한 힘은 평화를 옹호하는 남한 사회와 정부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남한 사회는 한반도 전쟁구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87년 헌법체제가 지배하고 있다. 북한의 국가성을 부정하면서, 흡수통일론만을 강조하는 헌법규정은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법들이 남북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전쟁구조의 낡은 적대성을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남북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헌법과 법률 들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남한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회이다. 남한의 경제적 위상과 시민참여의 역동성은 수많은 나라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여전히 낡은 정치와 사회 곳곳의 시대착오성도 그런 역동적인 에너지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역동적인 에너지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다. 평화와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민주적 공론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남한 정부의 위상을 제고하고 역할을 키우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끝)
[참고문헌]
국방부, 『2018 국방백서』
로버트 콕스, “사회세력, 국가, 세계질서 : 국제관계이론을 넘어서,” 『국제관계론 강의 2』(파주:한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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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피스메이커』 (서울;중앙북스, 2008).
황지환, “월츠의 핵확산 안정론과 북한핵문제,” 『국제지역연구』 27권 1호(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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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1993.7.29. 선고 92헌바 48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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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20.8.18.
중앙일보, 2017.8.9.
CBS 노컷뉴스, 202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