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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교통수단인 걷기와 공간의 공공성
- 입력 2023.06.16 16:23 조회 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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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항주 기후위기센터장
- #경제#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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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교통수단인 걷기와 공간의 공공성-박항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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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주 정의정책연구소 기후위기대응센터장
- 현세대와 미래세대,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방안을 찾기 위한 생태주의 여정을 시민들과 함께 구현하고, 다양성·연대·자유·평화·민주주의 등의 녹색가치를 제도화하기 위해서,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기후위기대응센터 업무를 하고 있다.
1. 교통 관련 생태전환의 출발점 ‘걷기’
최근 시민단체와 개별연구자뿐만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인 교통연구원과 법제연구원 등에서 대중교통 대신에 공공교통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교통을 국민의 기본서비스로 보면, 무상대중교통이 이루어져야 한다.(주 : 안나 쿠트, 앤드루 퍼시, 2020, 김은경 옮김, 2021, 현금이냐, 현물이냐? 기본소득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로!, 클라우드 나인) 무상대중교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리고 효율적인 대중교통을 만들기 위해 광역별로 지방교통공사를 만들고 대중교통 완전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무상대중교통과 함께 자동차 이용억제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도심의 교통혼잡세, 교통분담금 등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인류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직립보행, 즉 걷기(주 : 걷기는 휠체어, 보행기 등을 이용하는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한계가 있지만, 본 글에서는 에너지원을 이용한 수송과 명확하게 구분 짓기 위해서 걷기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글에서 걷기, ‘보행친화성’의 용어는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와 관련되어서는 교통정책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인간은 백 만년 이상 자신의 육체를 이동시키기 위해서 걷기를 하였다. 울퉁불퉁한 땅을 걸을 수 있도록 발바닥 구조가 변화하고, 뇌의 균형감각 또한 걷기(가끔 뛰지만)에 맞춰 진화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본적인 이동수단인 걷기는 왜 교통정책으로 사회화되지 못했을까. 그것은 가장 약한 고리인 개인에게 ‘걷기’의 책임을 부과하고, ‘보행친화성’(Walkability)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토지와 건물의 소유가 사유화되고 외부와 차단되는 장벽으로 작동함에 따라 자유로운 걷기 범위는 축소되었고, 우회생산을 위한 도로는 이곳과 저곳을 차단하는 장벽이 되었다. ‘보행환경개선 기본계획’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며, 장애인 지하철 출퇴근 시위가 없었다면 우리는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와 공공의 자산을 개인이 소유하는 생산제일주의 체제에서 에너지원을 이용한 ‘수송’은 자본순환과 축적을 위한 우회생산의 핵심요소이다. 그러나 걷기는 사업장의 노동력을 유지하는 개인 책임이며,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걷기와 자전거는 비효율적인 운송수단일 뿐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인권이 향상되고, 사회적 생산력이 높아지고, 건강권이 개인 책임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그리고 화석연료에 의한 대기오염과 교통체증, 시간 지체, 전쟁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자동차의 ‘사회적 반생산성’이 부각 되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얻기 위해 이동거리가 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인간 본연의 육체적 행위인 걷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걷기 중심으로 생활권 형성을 목표로 하는 ‘파리 15분 도시’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걷기 중심의 생활권 형성은 공간의 공공성 강화로 이어질 것이며, 생산과 소비, 여가, 문화, 연대에 대한 새로운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 것이다. 교통과 관련된 생태전환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자력으로 이동하는 ‘걷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본 글에서는 이반 일리치(Ivan Dominic Illich)의 교통에 대한 정의와 ‘공간의 사회적 재구성’을 검토하고, 파리 15분 도시·포틀랜드 20분 동네·멜버른 20분 동네·바르셀로나 슈퍼블록 등의 외국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공간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우리나라의 15분 도시의 도입 실태를 파악하고 방안을 모색한다. 또한, 민간 건물의 공공성 확보방안을 확인한다. 이러한 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는 공생전략’과 ‘대안사회확장전략’이 필요하다.
2. 이반 일리치의 교통의 재정의와 ‘공간의 사회적 재구성’
역사발전을 교통수단(걷기-수레-동물(소, 말)-자동차-철도와 비행기)의 발달로 설명하곤 한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역사를 ‘시공간의 압착’의 역사라 정의했다. 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일주일 이상이 걸렸지만, 지금은 고속철도와 비행기(탑승절차포함)를 이용하면 3시간 이내에 도착한다. 물리적 거리는 같지만, 이동 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사회의 구성과 조건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교통수단은 사회를 규정하고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교통수단의 기술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하느냐는 국가와 도시의 특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디젤기관과 반도체 등 현대기술의 정점에 있는 자동차·고속철도·비행기는 스마트폰처럼 가치중립적인 기술 그 무엇으로 이해된다.
스마트폰에서 전달되는 정보량은 우리에게 더 많이 고려해야 할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선택을 더 풍부하게 하고,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켜 시도 때도 없이 더 넓은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그러나 정보가 확증편향으로 기울어지고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 인간의 선택은 왜곡되고 가족·친구·이웃·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줄어들며 파편화된 개인 삶에 갇힌다.
이론적으로 확증편향 및 파편화된 개인 삶과 적정한 정보수집과 다양한 삶의 ‘경계’가 어디인지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개인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확인될 뿐이다. 이 경계를 찾아 나서는 것 즉 ‘한계짓기’는 생활 유형 결정하기와 관계짓기의 기준이 된다. 이 한계짓기는 철학적으로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에 종속될 것인가, 자율적 자기결정을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정치적으로는 사회권력이 만들어 유통시키는 정보에 종속될 것인가, 정보를 재구성해 자기결정권을 확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타율적 삶을 살 것인가 자율적 삶을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교통의 편리성은 이동시간을 단축하고, 접근성을 높이고, 사람과 물건을 대량으로 빨리 이동시키는 데 있다. 반면에 환경오염, 교통체증, 시간손실, 의존성, 교통사고 등은 자동차와 같은 수송수단의 문제점이다. 이런 문제점을 이반 일리치는 교통의 ‘사회적 반생산성’ 이라 한다.
교통과 스마트폰은 ‘생산의 우회’수단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직접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을 구매하기 위해 일을 하고, 그로 인해 더욱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수단이다. 교통과 스마트폰 요금 그 자체는 매우 작지만, 이 수단을 통해서 더 많은 일과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고 믿는다. 직관적으로, 경험적으로 우리는 이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교통을 ‘스마트폰’과 같이 교통수단이 주는 시간단축 효과에 대해서 한계짓기를 해보자.
교통이 주는 시간단축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 교통수단의 ‘일반화 속도’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주행거리와 시간 사이의 단순비용에다가 교통수단의 이용료(차량구입비·연료비·보험료 등)를 지불하기 위해 버는 돈을 더하는 것이 일반화 속도이다. “철학자 장-피에르 뒤퓌는 경제학적 도구를 이용하여 자동차 운전자의 일반화 속도를 계산했는데, 결과는 시간당 7㎞였다.” 일반 보행자 시간당 4.5~5㎞보다 많았지만, 자전거 시간당 15~20㎞보다 작았다.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더 효율적이다. “OECD 국가의 경우 이동성이 개선되고 자동차의 현대화 속도가 향상되었다고 하는데도 1950년 이후로 집과 직장 사이를 오가며 보낸 시간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중심지와 교외 지역이 구분되고,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발생하는 시간손실은 자동차를 통한 시간단축보다 커졌다.(주 : 이브 코세, 2009, 배영란 옮김, 2012, 불온한 생태학, 사계절, 230~231.)
그렇지만 우리는 교통의 ‘사회의 반생산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과서와 언론매체들 그리고 보수와 진보 모두가 ‘더 빨리 더 멀리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상품’이라는 구호 아래 ‘교통’ 아니 ‘수송’정책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퇴근하는데 하루에 2시간 가까이 낭비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고속철도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과 광주를 3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것이라는 ‘중독’에 빠진다. 전 세계적으로 한 해 동안 135만여 명이, 한국에서는 3천여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는 사실에 둔감하다.(주 : 2018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해 전세계 교통사고사망자는 135만 명으로 24초에 1명꼴로 사망하였고, 5∼29세의 어린이, 청소년 세대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교통사고이다. 우리나라 2021년 교통사망자 수는 2,916명이고, 부상자는 291,608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5.6명이 사망하였고, 이중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구성비는 34.9%이다.)
이반 일리치의 말을 빌리면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에너지를 무한히 사용하는 ‘속도중독’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속도중독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실려 가는데 중독이 되어 인간의 두 발에 깃들어 있는 물리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힘을 발휘하는 법을 잊고 말았다.” (주 : 이하 인용은 이반 일리치, 신수열 옮김, 2018,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에너지 공정성에 대하여, 사월의책.의 내용을 정리·정리한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교통(traffic)은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교통을 구성하는 두 요소인 자력이동(transit)과 수송(transport) 을 구분한다. “자력이동이란 인간이 자신의 신진대사 에너지를 이용하여 장소를 옮기는 것”으로 정의하고, “수송이란 다른 에너지원에 의존하여 이동하는 방식”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인간이 ‘자력이동’ 대신에 자동차와 같은 ‘수송’에 의존하는 순간, 어느 임계점에서 수송수단이 주려 했던 이점들은 모두 사라진다고 한다. 싼 집값을 찾아 도시 외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에 더 의존한다(자동차 구입에 의한 가처분소득 감소). 그리고 교통량증가에 따라 도심으로의 접근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시간 낭비), 이동 시간 증가에 따른 피로회복시간이 증가한다(건강약화). 생활시간과 건강, 소득에 부정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화석연료사용에 따른 대기오염과 타이어 마모와 같은 미세먼지 문제를 발생시킨다(대기오염). 또한, 소수는 한가한 시간에 다수는 가장 붐비는 시간에 더 먼 곳까지 통근하는 불평등이 발생된다(불평등).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도로는 농지와 자연을 훼손하고, 아스팔트의 표면 방수처리에 의해서 도시 건조화와 지하수 고갈을 촉진한다(환경파괴).
이반 일리치에 의하면 ‘자력이동’과 ‘수송’의 조합은 사회적으로 최적을 이루는 1인당 에너지 소비량에 의해 구성되어야 하며, 이 구성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그는 교통을 통해서 자전거와 도로, 공공이동수단을 제공하지 못하는 「저설비 상태 국가」와 사회적 삶이 수송산업에 좌우되는 「과잉산업화된 국가」로 구분한다. 과잉산업화된 국가는 자본과 독점의 기술적 특징을 사회적 관계에 강요해 “수송산업이 계급특권을 결정하고, 시간부족을 강요하며, 산업 자신을 위해 부설한 궤도에 국민들을 단단히 붙들어” 맨다.
이반 일리치는 저설비상태에 있거나 과잉산업화된 세계와 별도로 ‘탈산업적 효율성을 갖춘 세계’로 ‘기술적으로 성숙한 세계’를 제시한다.
“그곳은 자전거에 몸을 실음으로써 일상의 활동반경을 세 배로 늘린 사람들의 세상이다. 이 세계의 특징은 자전거만으로는 충분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위해 다양한 보조적 동력장치를 이용하더라도 공정성이나 자유 어느 것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곳은 또한 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모든 장소가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세계, 서두르지도 주춤거리지도 않고 내키는 만큼 자기 속도로 여행할 수 있는 세계, 인간이 수십만 년 동안 두 발로 걸으며 맺어온 대지와의 관계를 끊지 않고도 먼 거리까지 수송수단을 탈 수 있는 그런 세계이다.” (이반 일리치, 102쪽)
이러한 세계는 “틀에 박힌 일정, 공간 왜곡, 시간 부족, 불평등이 언제 수명을 다할지 결정하는 일은 자기 고유의 정치과정을 일궈온 역사적 공동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일부 계급이 교통뿐만 아니라 통신, 의료, 교육 및 무기까지 독점한 사회”에서 공동체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밀주의에 물든 관료와 지식전문가의 “권력은 재전유(再專有)되어야 하며, 보통사람들의 건전한 판단에 위임되어야 한다.”
교통 측면에서 성숙한 기술의 세계로 나가는 경로는 첫째, 과잉산업화된 수송의 풍요로부터의 해방과 둘째, 에너지 의존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리고 이 두 해방은 공간의 사회적 재구성이라는 목적지로 이어진다.
이반 일리치는 에너지사용량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걷기 속도 4.5~5km)에 근거해 자력이동 중심의 ‘공간의 사회적 재구성’을 제안한다. “공간의 재구성을 통해 우리가 서 있고 걷고 생활하는 곳이야말로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모든 이가 끊임없이 새롭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 목표이다.”
새롭게 재구성된 공간은 자력이동이 주요교통수단이 되고, 수송이 보조교통수단이 되는 곳이다. 이 공간재구성을 통해 교통체증, 환경오염, 자동차에 의한 공간잠식(주차장 등), 정해진 통로(노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해진다. 또한, 과잉된 산업화는 축소되고 독점된 기술은 시민들의 판단에 따라 사용되고, 불평등은 완화된다. 끝으로, 인간의 유대관계와 생태적 다양성이 확보된다.
공간의 사회적 재구성은 18세기 중반 이후의 공동체적 사회주의에서부터 시작했으며 전원도시, 생태도시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2000년 포틀랜드 20분 동네, 2020년 파리 15분 도시 등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걷기(15분)와 자전거(5분)로 서점, 식표품 상점을 비롯한 소 상점, 학교, 문화시설, 의료시설, 공공서비스, 200m 이내에서 녹색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파리 15분 도시’ 계획은 수도자이며 사회주의자이며 생태주의자였던 이반 일리치가 제안한 자력이동(걷기와 자전거) 중심의 ‘공간의 사회적 재구성’의 현실판이라 할 수 있다.
3. 걷기 중심의 공간재구성과 15분 도시
자동차 대신에 인간 중심(자력이동)의 도시 계획은 파리, 멜버른(20분 동네), 바로셀로나(슈퍼블록), 오타와, 코펜하겐과 같은 여러 도시에서 시도하고 있다. 2000년대 말 포틀랜드에서 시작된 ‘20분 동네’는 세계의 많은 도시에 영향을 주었다.
1) 포틀랜드 20분 동네
(주 : 포틀랜드 계획은 아래 사이트와 논문을 참고하면 된다.
https://www.portlandonline.com/portlandplan/index.cfm?c=56527 (검색일 2023.5.27.)
성은영, 강현미, 허재석, 남궁지회, 2021, “n분 도시 실현을 위한 도시전략연구”, 건축공간연구원, 123~127쪽)
미국 포틀랜드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미국에서 최초로 도입하였다. 2012년 다시 수립된 포틀랜드 계획의 비전은 ‘번영하고, 교육받고, 건강하고, 공평한 포틀랜드’이다. 이 계획은 2년 동안 20개의 공공기관 파트너가 300회 이상의 공개회의와 주민, 기업, 이웃 및 비영리 단체의 20,000개 의견을 통해 만들어진 2035년까지의 전략 로드맵이다.
포틀랜드 계획 25번째 목표에서 ‘역동적인 교통’을 제시했다. 포틀랜드 주민들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거리를 16마일에서 11마일로 줄이고, 통근자가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카풀을 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비율을 일일 평균 27%에서 70%로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기후 행동 계획은 2030년까지 포틀랜드 주민의 90%가 쉽고 안전하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모든 기본적인 일상적 비업무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활기찬 동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틀랜드 '20분 동네'의 계획은 식료품점 및 기타 상업서비스의 가용성을 고려하는 것 외에도 인도, 거리 연결 및 지형과 같은 보행자 접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고려하여 수립되었다. 맵핑 분석을 통해 소상공인 중심의 지역별 소규모 상업지구를 만들고, 지역주민들에게 필수 생활서비스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포틀랜드에서는 공터를 임시 공간으로 활용해 푸드 카트나 오페라 카트 등 지역의 수요를 고려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이 참여하여 사업할 수 있도록 공유공간을 만들었다.”
2) 파리 15분 도시
파리 15분 도시 계획은 일, 쇼핑, 재미, 학습, 스포츠, 치료 등 삶에 필수적인 모든 것을 집 근처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주 : 파리 15분 도시 https://www.paris.fr/dossiers/paris-ville-du-quart-d-heure-ou-le-pari-de-la-proximite-37 (검색일: 2023.5.27.)) 이 모든 것을 도보로 15분 또는 자전거로 5분에 도달할 수 있도록 파리의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계획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는 시민들의 많은 활동이 “자동차나 대중교통에 의존하는 파편화된 도시”를 없애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시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한 장소를 여러 기능으로 사용한다. 동네의 중심이 되는 학교와 대학은 주말과 공휴일에 문을 열어 놀이터로 이용하고, 건축 용도를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한다. 그리고 역동적인 거리 조성을 위해 모든 건물 1층에 공적 프로그램을 배치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참여하는 이들에게 분양 우선권을 준다. 공간의 공공성을 다양하게 확대한다.
파리 15분 도시의 최종목표는 파리 시내에 자동차를 없애고 모든 시민이 걷거나 자전거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하고 도로와 광장 학교를 공공공간으로 전환하고 이를 위한 주민참여확대와 소통,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고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파리 15분 도시의 핵심원칙은 다음과 같다.(주 : 유무종, 2020, “파리, 15분 도시계획과 도시시설 활용방안 발표”, 건축과 도시공간, Vol 40-Winter 76~77. https://www.auri.re.kr/boardAttachPreview.es?bid=ATT&list_no=3507&seq=1 (검색일 2023.5.19.)) 첫째, 모든 시민이 특히 식료품이나 신선한 음식 및 건강관리와 연관된 상품과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각 지역에 가족 유형별로 다양한 유형과 크기의 주택을 제공하고, 일하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살 수 있도록 한다. 셋째, 모든 시민이 깨끗한 공기를 즐길 수 있도록 충분한 녹지공간을 제공한다. 넷째, 원격근무를 하는 유형의 사람들을 위해 집 근처에 소규모사무실, 소매 및 접대시설, 공동작업공간(co-working space)을 둔다.
15분 도시 개념은 ‘도시기후리더십 그룹’(C40)에서 주요정책으로 채택됐다. 이 그룹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05년 발족한 세계 대도시 협의체이며, 2020.8월 현재 97개 도시(서울, 베이징, 도쿄, 방콕, 파리, 뉴욕, 런던, 델리 등)가 참여하고 있다.
3) 멜버른 20분 동네
(주 : 성은영, 강현미, 허재석, 남궁지회, 2021, “n분 도시 실현을 위한 도시전략연구”, 건축공간연구원, 117~122와 https://www.planmelbourne.vic.gov.au/current-projects/20-minute-neighbourhoods (검색일 2023.5.24.)를 참고·인용하였다.)
호주의 빅토리아주 정부는 장기토지사용, 기반시설 및 교통계획을 통합한 ‘멜버른 2017-2050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기후위기 대응, 삶의 질 제고를 위한 주요 전략으로 '20분 동네'를 제시했다. 20분은 사람들이 현지에서 지역 의료 시설 및 서비스, 학교, 슈퍼마켓 이용을 하기 위해 걸을 수 있는 최대 시간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 20분은 집에서 목적지까지 800m를 걸어서 다시 돌아오거나 목적지까지 도보로 10분, 집으로 10분을 걷는 것을 의미한다. 도보 20분 거리 내에서 일상적인 필요를 대부분 충족하고 안전한 자전거 및 지역 교통 옵션을 선택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
멜버른계획에 포함된 멜버른 20분 동네 정책 방향 및 정책은 다음과 같다.
정책 5.1에서 ‘20분 동네 도시 만들기’ 방향을 제시하고 ① 다양한 밀도로 복합용도 이웃 만들기, ② 활기찬 이웃 활동센터 네트워크 지원을 정책으로 수립했다. 그리고 정책 5.2에서 ‘안전한 커뮤니티와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 방향을 제시하고 ① 걷기와 자전거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동네 개선 정책을 수립했다. 또한, 정책 3.3에서 ‘20분 동네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 이동 옵션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① 보행자 친화적인 동네 만들기, ② 지역 여행을 위한 자전거 네트워크 생성, ③ 지역 교통 선택 개선, ④ 기존 대중교통 근처에 학교 및 기타 지역 시설을 배치하고 안전한 도보 및 자전거 경로와 하차 구역을 제공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대표적인 정책은 다양한 공간 활용이 가능한 높은 수준의 공공장소 및 공개공간(Open Space)을 제공하여 다채로운 문화·예술 활동을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행자 중심의 거리환경 조성 및 보행(통학) 안전 보장, 가로경관 개선이다.
멜버른 20분 동네의 핵심시설은 지역 커뮤니티의 허브 역할을 하는 '활동센터(Activity Center)'이다. 활동센터는 시민들이 일하고, 쇼핑하고, 휴식을 취하며 서로 교류할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며, 상업, 주거 등의 복합용도로 개발하여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규모의 활동센터를 두었다. 광역활동센터(Metropolitan Activity Center)는 도심 대중교통 중심지에 위치하며 다양한 공공서비스(행정, 보건, 사법, 교육 등)와 소매 및 상업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시설이다. 주요활동센터(Major Activity Center)는 교외 지역의 중심역할을 하며, 마을활동센터(Neighbourhood Activity Center)는 지역 마을 단위에서 다양한 재화 및 서비스 등을 20분 이내에 접근하도록 설계하였다.
일상에 필요한 시설과 서비스를 활동센터라는 지역거점시설을 활용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지역주민의 삶의 가치를 높였다.
20분 동네 만들기의 경제적 효과를 회계적으로 구체화할 수 없지만, 다양한 조사와 문헌상으로 지역 소득 및 고용의 증가, 재산 가치 및 임대 소득의 증가, 소매업 확대, 집적경제효과, 공공지출 절감과 같은 경제적 이점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더 효과적인 주거 밀도와 토지 이용 혼합(접근성 및 다양성), 거리 연결성 및 안전에서 오는 보행 편의성이 개선되었다.(주 : Placemaking Economics Group, 2019, Identifying and valuing the economic benefits of 20-minute neighbourhoods - Higher density mixed use and walkability dimensions.
https://www.planning.vic.gov.au/__data/assets/pdf_file/0018/450135/Economic-benefits-of-20-minute-neighbourhoods.pdf (검색일: 2023. 5.25.))
4) 바르셀로나 슈퍼블록
(주 : 진광선, 2022, 21세기 공공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 ‘슈퍼블록’의 진화 (스페인 바르셀로나市), “세계도시동향” 제521호, 2022.03. https://www.si.re.kr/node/65869 (검색일, 2023. 5. 21.)'과
https://ajuntament.barcelona.cat/superilles/es/superilla/eixample (검색일, 2023. 5. 27.)를 참고·인용하였다.)
바르셀로나의 격자 모양 도시계획은 혁신적인 도시계획의 상징이었지만, 녹지 부족과 증가하는 차량과 인구 등으로 인해서 교통체증과 대기오염, 소음 등으로 주거환경이 좋지 않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르셀로나시는 ‘이동성’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비전인 ‘슈퍼블록 2015-2020’ 계획(주 : 슈퍼블록의 성공사례는 도시재생으로 조성된 첨단기술산업단지 22@ 지역에 적용된 슈퍼블록 시범 사례 및 시립 시장 리모델링 사례 중의 하나인 산 안토니 시장 주변이 있다.)을 수립·추진한다.
이 계획은 공공공간을 차량이 아닌 보행자 중심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성공적인 도시계획정책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시는 기존의 ‘슈퍼블록 2015-2020’ 계획을 넘어 도시 전체를 녹지축과 광장을 중심으로 공공공간을 재구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광장은 녹지축과 녹지축이 만나는 곳에 조성된다. 슈퍼블록 확대적용모델은 순환도로망, 녹지축 형성, 녹지축 교차로의 광장조성 등으로 구성되었다.
녹지축 형성은 녹지가 있어 편안하고 안전하게 머물고 걸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시민들의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기능을 부여한다. 이를 위해서 도로의 단차(段差)를 없애고 보행자 공간 확장, 시민들을 위한 공간 및 시설 조성, 그늘이 지는 공간 마련, 테라스 공간의 위치 및 규모를 정의하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을 마련했다. 격자 모양 도시계획 교차로에는 특징적인 파사드 ‘샤플란’(필자-광장)이 존재하며, 이곳을 교차로에 팔각형 모양의 공간(너비는 약 2,000㎡)을 녹화하고 투수성 보도블록으로 광장을 만든다. 바르셀로나 10개 지구 중 하나인 에이샴플라(Eixample) 지구에는 시민들이 최대 200m의 정사각형의 광장과 녹지 축을 만들 계획이다. 전체적으로 에이샴플라(Eixample) 지구에는 길이가 33km인 21개의 녹색 축이 있다. 21개의 새로운 공간으로 3.9헥타르의 새로운 시민 공간이 조성되고 보행자 우선 공간 33.4헥타르를 얻게 된다.
4. 우리나라의 15분 도시 도입과 민간건축물의 공공성 강화
1) 마을과 도시의 공공성 약화와 소비사회
한국의 도시 성장은 원도심에서 구도심, 구도심에서 신도심으로 변화하면서 기존 도심과 갈등구조를 형성하였다. 한광야(2020)는 한국의 도시 성장 과정에서 소통의 공간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주 : 한광야, 2020, “도시와 마을, 대립하는 공공성”, 공공성 토론회 자료집, 한국건축가협회.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E4OA (검색일, 2023.5.23.))
“한국 도시의 성장은 도시권 교통체계의 건설로 시작되었고, 그 교통거점은 도시와 마을의 중심부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켰다. 교통거점이 갖고 있는 유동인구 흡입력은 상설 시장, 쇼핑센터, 백화점으로 채워진 독립된 거대 상권을 완성하며 주민과 상인 간의 불필요한 충돌을 유발시켜 왔다. 이러한 도시 확장은 도시개발을 결정하는 정부의 공공정책 사업으로 추진된 결과이다. 다수의 사업은 도시의 기능적 프로그램(관공서, 학교, 병원, 방송국 등)의 이전과 신축의 개발사업이었고, 그 뒤를 이어 민간의 대규모 주거지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유목민적 도시개발의 중장기 결과는 공공정책의 결정권자가 행정 임기 내에 책임질 수 없는 큰 도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원도심 vs. 구도심, 원·구도심 vs. 신도심이 서로 의도치 않게 대립하며, 주민 vs. 시민, 골목상권 vs. 쇼핑센터의 소모적인 대립과 충돌 구도가 만들어져 왔다. 원·구도심을 가로지르는 2~3시간의 긴 통근 동선들이 도시권 내에 서로 분절된 거점 덩어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원·구도심에서 신도심으로 이전된 시장, 학교, 종교시설, 음식점 등은 그 물리적인 장소와 공간에 배어 있던 주민의 오래된 과거와 기억을 지웠고, 도시와 마을은 옛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었다.”
이야기와 역사가 지워지고 소통의 공간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었다. 하루에 약 2시간 동안 자동차와 대중교통(지하철, 버스)으로 이동하는 (대)도시통근권과 마을버스 및 걷기 중심의 마을생활권이 분리·중첩됐다. 도시와 마을은 개인의 자산 극대화를 위해 마을숲과 녹지공간, 그린벨트를 잠식하고 훼손했다. 또한, 하천 변을 홍수예방이라는 이름으로 제방을 쌓고 물길을 직선화해 여울을 없애버렸다. 그 결과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동식물은 하나둘 사라졌고, 그 빈자리는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는 아스팔트와 자동차가 채웠다. 마을과 도시는 건조해지고 홍수의 강도는 높아만 갔다.
한마디로 마을은 사람과 동식물의 일상적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아닌, 화폐를 지불하고 무엇인가를 소비를 해야 하는 공간(카페, 빵집, PC방, 상가,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 등)이 되어버렸다. 화폐로 매개되는 공간 속의 이야기는 ‘소비사회’를 만들었다.
2) 15분 도시 도입 현황과 도시의 공공성 강화
20여 년 전부터 지자체 단체장들이 제시하는 건강도시, 녹색행복도시, 생태관광도시, 문화도시 등은 건강증진관, 생태교육관, 평생행복관, 문화관 등을 건설하는 토목건설사업이 되어버렸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많이’라는 구호 아래 건물들은 더 크게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대지에 들어선 건물과 시설들 그리고 도로와 자동차는 성장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과잉산업화된 이후에도 토목건설족(건설사, 언론사, 정치인 등)들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큰 건물과 시설을 만들었지만, 건물에 다양성을 채워 넣고 활력을 불어넣을 사람들이 머물고, 즐기고, 교육하고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런 무관심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자본을 축적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국민의힘이 함께 추진한 초광역도시정책과 강원특별자치도법 통과는 토목건설 중심의 성장을 정치권이 어떻게 유지하고 확장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2021년 4월 서울과 부산의 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 파리 15분 도시 계획을 표방하는 공약들이 발표되었다. = 주거지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약 500m) 내에 다양한 생활 SOC를 제공하는 ‘10분 동네’(김진애) = 서울을 인구 50만 명 기준, 21개 다핵으로 분산해 21분 이내 교통거리에서 직장·교육·보육·보건의료·쇼핑·여가·문화 등을 해결하는 ‘21분 콤팩트 도시’(박영선) = 도보와 자전거 등으로 생활, 일, 상업, 의료, 교육, 여가 등 6가지 필수 기능을 15분 안에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부산 15분 도시’(박형준)를 제안하였다.
그렇지만 위의 공약들은, 파리 15분 도시의 최종목표인, 파리 시내에 자동차를 없애고 모든 시민이 걷거나 자전거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하고 도로와 광장, 학교 등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주민참여확대, 생물다양성을 확보하고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는 중요한 목표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지 않다. 현재 추진 중인 부산 15분 도시는 자동차로 15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로, 터널, 교량과 같은 시설을 만드는 토목사업으로 변질되었다.
지역의 토목건설기업과 정치권의 유착은 공항과 도로, 철도 건설이 지역 성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 도시와 마을의 문화와 예술, 교육, 환경, 운동과 여가시설 등 관계 지향적인 사업에 대한 투자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가물에 콩 나듯 만들어진 관계 지향적이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마을만들기와 사업들은 정권과 지자체장이 바뀌면 축소되거나 중단된다.
생산제일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조직되지 않으면, 공간의 사회적재구성은 토목건설사업으로 변형된다. 지방의회와 관료들은 대부분 성장 논리에 갇혀있으며, 의원 자체가 건설사업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사의 대주주들이 건설사가 많다는 점에서 더욱 비관적이다.
수십 년간 오래된 관습으로 굳어버린 생산제일주의 사고로 인해서 지금도 여전히 ‘지역 활성화’하면 토목건설사업과 많은 교통량만 떠올린다. 이것은 시민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과 거리를 편안하고 즐겁게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잊게 하는 일시적인 ‘마비 증상’에 불과하다.
협치, 정치연합의 경험이 부재하고 토목건설에 익숙한 관료의 벽을 넘어 걷기 중심의 15분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유지하기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수만 개의 시민사회단체와 사회경제조직이 다양한 운동을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한 번영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정치체처럼 조직화되어 있지 않지만, 3만 5천여 명이 모인 2022년 ‘9.24 기후정의 행진’은 지속가능한 번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나라 지자체 257곳에서 지속가능발전 기본조례를 만들어 대부분 지역에서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있다. 부족하지만 이 위원회에서 지역의 지속가능발전 계획을 점검하게 시행해 오고 있다. 이와 유사한 주민참여예산제도, 성인지예산, 온실가스인지예산, 보행환경개선기본계획, 유니버설디자인, 녹지축형성계획 등 제도와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 아직 정치체와 시민사회가 주도하고 있지 못하지만, 전략적 연대와 교육을 통해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더욱 많은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체계를 통해서 거버넌스를 유지·강화해야 한다.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활동하는 의원들과 함께 전략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에 따라 운영하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노동복지 관련 위원회, 주민참여예산 위원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우선순위에 따라 공동의 목표를 만들고 집행·점검할 필요가 있다(공생전략).
3) 민간건축물의 공공성 강화
환경을 파괴하는 최전선의 산업이 토목건설산업이다. 이렇다 보니 토목건설 사업과 협력하여 대안을 만들기보다는 녹색 진영은 ‘저항하기’로, 토목건설 진영은 ‘무시하기’로 갈등관계를 유지했다. 녹색 진영에서 건축 관련 대안 논의는 에너지제로건축과 생태건축에 한정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건축물과 단지설계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는 마을만들기에 참여한 행위자들 일부에서만 진행된다.
가. 주민들의 마을만들기
서울의 도시재생지,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밀집된 저층 주거지에 대한 재건축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주 :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는 추후검토할 과제로 남겼다. 서울연구원이 진행한 간단한 평가를 보면 서울시 2012~2015년 서울시·자치구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의 경우 4년간 12.8만~23만 명이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사업은 5,000여 건에 달한다. 사업의 적극 참여층은 여성, 30~40대, 중산층으로 조사되었고, 실제 자부담률은 18%에 지나지 않았다. “작은 주민 모임이 서로 연대해서 더 높은 단계로 진전하도록 돕는 모임 간 연계지원은 전체기간에 걸쳐 추진이 저조했다. 종합적 마을계획 수립 지원은 매년 늘었지만, 대부분 활동 지원에 가까운 단위 사업들로 실질적인 증가로 보기 어렵다.” 안현찬, 2012,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성과평가와 정책과제, 서울연구원.) 공공기관이 아닌 마을 주민들이 마을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 용산2가동에서는 다세대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아담한 미술 전시관(갤러리 더월, 2020)을 개관하였다. 그리고 마포구 연남동의 경의선 숲길 안쪽 블록에는 다세대주택을 민간이 임대하여 리모델링한 후 공방, 카페, 상점 등으로 구성된 공유 오피스(기록상점, 2019)를 구축하여 마을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은평구 구산동에서는 구청이 보건소 옆의 10개의 필지를 매입하고 이 중 세 동의 다세대주택들을 마을협동조합과 함께 마을도서관(구산동 도서관, 2016)으로 리모델링한 사례”가 있다.(주 : 한광야, 2020, “도시와 마을, 대립하는 공공성”, 공공성 토론회 자료집, 한국건축가협회. 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E4OA (검색일, 2023.5.23.)) 그 밖에도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시민조사단을 구성해 어린이 놀이터의 안전성을 점검하여 시설개선을 이루어 낸 사례도 있다. 광역시와 기초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이 자생력 있는 주민 마을 만들기로 발전한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놀이터, 전시관, 공방, 마을카페, 마을도서관 등은 ‘걷기’ 과정에서 편안하고 다양한 풍경을 제공해주는 공간이 되고 지역사회의 작은 ‘거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걷기 중심의 도시와 마을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대안사회 확장전략).
나. 자발적 참여를 통한 공공성 강화
마을 단위가 아닌 건물 단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공건축물, 공공공간의 경우 집단의 협력과 소통을 통해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때 건축가는 총괄적인 계획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과정을 학습할 수 있는 건축 교육 과정이 마련되어야 한다.(주 : 김종대, 2020, “사회적 과정으로의 공공성”, 공공성 토론회 자료집, 한국건축가협회. 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E4OA (검색일, 2023.5.23.))
민간영역에도 공공성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건축적 방법론, ‘아키텍처럴 넛지(Architectural Nudge)’가 있다.(주 : 전성은, 2020, “사유하는 공공공간”, 공공성 토론회 자료집, 한국건축가협회. 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E4OA (검색일, 2023.5.23.) 전성은은 8가지 방안을 제안했지만, 필자는 6가지로 정리하고 보완했다.) 이 방법으로 첫째,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건설할 때 ‘공개공지’를 할당받는데, 공개공지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도입을 위한 건축법 개정이 필요하다. 많은 시민은 보행 친화적인 ‘공개공지’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개공지에 대한 시민의 목소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 내부가 아닌 외부차원, 즉 도시로의 연결 가능성을 높이는 건축설계가 필요하다. 개인과 공공영역 사이에 놓여 있는 담을 느슨한 경계로 바꾸거나, 공공주택(민간)의 경계를 나무 또는 경사면 등의 경관 요소들을 울타리처럼 보이게 하는 ‘위요 경관’을 조성하는 것이다. 사유지에 공공공간을 자연스럽게 개입시킨 방법이다.
셋째, 건물에 붙어서 만들어지는 외부 공간(테라스, 발코니, 베란다, 필로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건물 저층부의 기둥을 제외한 벽을 제거하여 개방적으로 만드는 필로티(Piloti)를 막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과 습관들로 인해서 입체적 외부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넷째, 공동주택단지에서 개인의 삶을 열리게 할 공동의 장소를 설치해야 한다. 집에서 오고 가는 다양한 동선(학교길, 출퇴근길, 시장길 등)에서 주민들이 마주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주민을 연결하고 주민의 다양한 삶에 반응하는 길을 제공하는 네트워크 플랫폼으로서의 공공공간이다.
다섯째,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를 담을 수 있는 마당, 빈 공간인 공유소(共有所)와 같은 공유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주민의 수요에 반응하고 주민에 의해 공간의 성격이 규정되는 다의적인 공유소(共有所)(주 : 전성은은 설계하는 입장에서 ‘공유도시 - 공유역 - 공유소’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공간을 구분하였다. 공유역에 해당하는 것은 체육시설, 어린이시설, 노인시설, 도서관이 있다.)가 필요하다. 모임, 운동, 놀이 등이 반복적으로 일상에 이루어지면 사랑받는 장소가 된다.
여섯째,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해결하는 리빙랩(Living Lab)과 같은 플랫폼을 만드는 ‘스마트 반응체로서의 건축’을 해야 한다. 주민참여형 거버넌스 구축이 완성되면 협동조합 설립을 돕고, 그간 모은 자료들의 분석을 통해 주민의 수요에 반응하는 자생적 서비스, 지속가능한 공공공간이 필요하다.
5. 나오며: 대안사회 확장전략과 공생전략
자력이동(걷기, 자전거)과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수송(자동차, 철도 등)을 교통의 두 요소로 구분하고, 자력이동에서 ‘걷기’를 통한 공간의 공공성 강화 부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외국의 15분~20분 도시 등의 사례를 살펴보고, 국내도입을 위한 방안을 살펴보았다. 끝으로 민간건축물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검토했다.
공공영역을 자동차 중심에서 ‘걷기’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15분 도시는 토목건설족과 주택소유자들의 협력을 끌어내야 가능하다. 그리고 민간영역에서 공공성 강화는 자발적인 협력과 제도유인 등의 방안을 구축할 때 가능하다. 이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데는 정치체와 사회경제조직, 시민단체, 자발적 단체의 지속적인 노력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공동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핵심이다. ‘걷기’ 중심의 공동목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걷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찾아 공간을 하나씩 변화시켜야 한다.
도시계획가이자 저술가인 제프 스펙(Jeff Speck)은 “보행자는 극도로 연약한 종이며, 도시 생활에 있어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다. 이 생명체는 적절한 조건하에서 번성하고 번식한다”라고 썼다. 스펙은 ‘일반보행편의성 이론’에서 사람들이 걷기를 선택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걷기가 유용해야 하며, 걷기를 통해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걷기는 자동차와 다른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안전하다고 느껴져야 한다. 셋째, 옥외 거실로 보행자들을 유인할 정도로 보행환경이 편안해야 한다. 넷째, 걷기가 아름다움, 활기, 다양함이 공존하며 흥미로워야 한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는 주민들이라면 제프 스펙이 제안한 유용성·안전성·편안함·흥미로움이라는 네 가지 기준에 대해 쉽게 논의하고, 방안을 함께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더디더라도 논의하고 공동의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에 따라 운영하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탄소중립위원회, 노동복지 관련 위원회, 주민참여제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민간건축물과 공동주택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목표는 마을 단위의 주민참여를 조직해야 한다(공생전략).
공동의 목표수립과 이행하는 「공생전략」은 생산제일주의와 현 소유체계 안에서 보행 편의성이 높은 거리와 공간을 부문적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가 축적되면 어느 시점에 마을과 도시 자체를 15분 도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지방정부의 권력을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녹색 진영의 거점들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걷기 중심의 도시의 가능성을 넓힐 마을 단위의 생활협동조합, 사회경제조직, 노동자협동조합, 노동자소유기업, 비영리단체 등을 만들어야 한다(대안사회 공간의 확장전략). 이 대안 거점이 많아질수록 공간의 공공성은 강화될 것이다.
걷기 중심의 15분 도시와 공간의 공공성 강화는 협치와 연대에 기반을 둔 ‘대안사회 공간의 확장전략’과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는 공생전략’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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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버른 20분 동네
https://www.planmelbourne.vic.gov.au/current-projects/20-minute-neighbourhoods (검색일, 2023.5.27.)
바르셀로나 슈퍼블록
https://ajuntament.barcelona.cat/superilles/es/superilla/eixample (검색일, 2023.5.27.)
파리 15분 도시
https://www.paris.fr/dossiers/paris-ville-du-quart-d-heure-ou-le-pari-de-la-proximite-37 (검색일, 2023.5.27.)
포틀랜드 계획 20분 동네
https://www.portlandonline.com/portlandplan/index.cfm?c=56527 (검색일, 2023.5.27.)
https://www.planmelbourne.vic.gov.au/current-projects/20-minute-neighbourhoods (검색일, 2023.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