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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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달로 본 플랫폼노동
- 입력 2021.03.03 16:36 조회 2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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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 #플랫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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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_창간준비2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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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배달노동자들의 갑질 문제로 우리사회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2월 1일 라이더유니온이 103곳의 갑질 아파트를 인권위에 진정한데 이어, 2월 2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서비스지부에서도 76곳의 갑질아파트를 인권위에 진정했다. 배달노동자를 화물엘리베이터에 태우거나, 헬멧을 벗게 하고, 오토바이를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다. 화물엘리베에 라이더를 태우는 이유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란다. 마포의 한 고급 아파트 입주자대표에게 들은 설명은 더 황당했다. 주민들 사이에 배달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졌는데, 아파트의 위생과 품위에 맞게 배달을 시키지 말자고 주장하는 주민과 배달을 포기할 수 없다는 주민들이 맞섰다. 주민들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그동안 쓰지 않던 화물엘리베이터에 배달노동자들을 태워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자는 합의를 했다.
헬멧을 벗게 한 이유는 라이더들이 헬멧을 흉기로 사용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이전엔 마스크를 반드시 벗어야 했는데, 혹시 모를 범죄행위에 대비해 얼굴을 식별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도 코로나19이후에는 반드시 써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파트 출입금지는 좀 더 합리적인 이유다. 오토바이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뛰어 노는 아파트 단지 안에 오토바이가 드나드는 것은 내가 봐도 위험해 보였다. 수긍을 하고, 아파트 단지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뛰어가다, 내 옆을 지나가는 우체국 오토바이를 발견했을 때의 허망함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2021년에 문제가 되고 있지만, 2018년에 라이더유니온이 문제제기를 했었고, 그 이전에도 배달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존재했다. 심지어 일제시대에도 행색이 남루한 배달노동자의 출입을 막았다는 신문기사가 있다.
배달노동자에 대한 전통적인 차별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변한게 없는데, 배달업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4차 산업혁명, 플랫폼, IT 혁명.
이 변화는 갑질아파트로 배달을 갔을 때 내가 취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맥도날드에 출근해서 배달 일을 할 때 화물엘베에 태우는 아파트가 나오면, 경비원에게 나는 올라갈 수 없으니 손님에게 내려오게 하겠다고 버틴다. 대부분의 손님은 순순히 내려오지만, 개중에는 욕을 하면서 ‘뭐 이딴 일로 내려오게 해.’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귀찮고 긴장되는 일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저항이다. 맥도날드는 시급을 받고, 배달 한 건당 400원을 추가로 받는다. 거리도 2km 이내로 정해져있다. 배달을 한 건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 지금 내 앞에 벌어지는 부당함을 신속하게 넘어가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나는 맥도날드 합정점에서 일한지 5년이 넘는 경력직 라이더이로, 점장이 교체되는 동안에도 라이더룸을 지키고 있는 최고참 라이더다.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특수한 경우다. 회사가 설마 나를 버리지는 않을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쿠팡이츠나 배민라이더스, 부릉이나 바로고 같은 일반 배달대행을 하고 있을 때는 경비원의 말에 대꾸를 하거나 항의 하는 시간마저 아깝다. 맥도날드 유니폼을 벗고, 배달대행조끼를 입었을 때는 화물엘리베이터든, 일반엘리베이터든 빨리 올려 보내주기만 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언쟁이 발생하면 회사는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할게 뻔하다. 음식을 배달하는 똑 같은 일을 하는데, 무슨 옷을 입느냐에 따라 노동의 조건이 달라진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1. 플랫폼 기업. 회사가 아니라 지하철로 출근한다
플랫폼기업과 플랫폼노동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오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소위 온디맨드 노동이라 불리는 호출형 노동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한다. 플랫폼을 우리말로 바꾸면 ‘역’이다. 우리는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서 역을 이용한다. 서울의 신촌에서 강남을 가기 위해서는 2호선 지하철를 타야하는데, 이때 입장료를 내고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가끔 사람이 너무 많이 타고 있다면 탑승하지 못하고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이를, 노동에 적용해보자. 사람들은 일감이라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입장해야 하는 역이 있다. 이 역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장료를 내고 역사에 들어갔더니 나 이외에도 입장료를 내고 일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있다. 마침 일감이 역사에 도착했지만, 일부는 지금 도착한 일감열차를 타고 가고, 탑승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 일감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이와 같은 방식의 노동이 전형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바로 배달이다. 역을 앱으로 바꾸면 된다. 배달노동자들은 일감을 얻기 위해 앱이라는 역사에 반드시 접속해야 하는데, 이때 수수료를 낸다. 앱에는 배달주문이라는 열차가 실시간으로 도착하고 대기해있던 라이더들은 이 열차에 타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일명 전투콜이라 불리는, 콜 잡기 경쟁이 벌어진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콜을 잡지 못한 라이더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다음 열차가 올 때 까지 역에서 기다릴지,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이나 기차역, 택시 승강장과 같은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갈지를 말이다.
여기서 플랫폼의 경쟁력과 플랫폼자본주의의 특징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최대한 많은 열차, 즉 일감을 배차해야 역사 안에서 일감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일감을 보내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해당 역에 정차를 할지 말지, 얼마나 많은 지하철을 보낼지는 그 역사 안에 대기하는 노동자들의 숫자에 따라 달라진다. 배달노동자들이 사용하는 A의 앱에 배달주문이 1초마다 뜬다는 소문이 돈다면 배달노동자들은 너도나도 A앱을 깔고 접속하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A앱에 배달노동자들이 엄청난 수가 있다고 소문이 나면, 음식점들이 A앱과 계약을 맺고 배달주문을 맡길 것이다. 이처럼 플랫폼에서는 노동력시장을 장악하면 공급자 시장을 장악할 수 있고, 공급자 시장을 장악하면 노동력시장도 장악할 수 있다. 플랫폼은 두 개의 시장을 중개하고 정보를 독점하면서 경제적 지배력을 가지게 된다.
이를 위해서 플랫폼은 쿠폰을 뿌린다. 공급자는 많은 데 노동자들이 적다면, 노동자들을 얻고 싶어 하는 공급자들에게 돈을 걷어서 쿠폰을 뿌리면 된다. 배달노동자는 많은데 음식점이 없다면, 음식점에 수수료인하 등의 프로모션을 제공한다. 음식점도 노동자도 많은데, 손님이 없다면 손님에게 쿠폰을 뿌린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음식점이 많아 주문도 맘껏 할 수 있고 배달노동자도 풍부하게 대기하고 있어 빠르게 배달을 해주는 플랫폼이 있다면, 손님은 무조건 접속하게 된다. 이 결과를 얻기 위해서 플랫폼은 역사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매력적인 이벤트를 개최한다.
이벤트에 필요한 기금, 쿠폰비용은 국제적 금융자본으로부터 나온다. 배민은 ‘우리가 어떤민족입니까?’라고 소비자에게 물으면서 민족주의 마케팅을 했지만,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되면서 게르만민족이라며 온갖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 게르만민족이라는 비아냥은 틀렸다. 배달의민족의 최대주주는 민족자본이 아닌 중국계 투기자본이었다. 배민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의 최대주주는 남아공의 네스퍼스라는 미디어그룹이다. 많은 사람들이 쿠팡을 일본회사라고 생각하는데, 손정의가 조성한 비전펀드의 최대주주는 중동의 오일머니다. 자본에 국적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다.
국적이 없는 자본이 플랫폼기업에 투자하게 된 계기는 2008년 경제위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헬리곱터로 돈을 뿌린다고 표현할 정도로,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와 저금리기조를 유지했다. 풍부한 유동자금은 성과가 불확실한 기업이 아니라 미래에 가치가 높게 평가될 것으로 보이는 벤처 아이티 기업에 투자한다. AI, 자율주행, 4차 산업혁명 얼마나 멋진 말인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마을에서는 종교가 되고, 주식시장에서는 돈이 된다.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플랫폼기업이야말로 좋은 투자처다. 플랫폼기업은 제조업공장처럼 거대한 부지가 필요하지도 노동자를 고용하지도 생산설비가 필요하지도 않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 철폐를 이 플랫폼자본이 해냈다. 소위 먹튀 자본이라 불리는 행태들을 떠올려보자. 기업을 인수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한다. 노동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사회적 지탄도 받는다. 대규모 부동산과 생산설비를 판매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반면, 데이터만을 가진 플랫폼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려고 해도 구조조정 할 게 없다. 아이디어와 미래가치에 대한 인정만 받으면 쉽게 팔 수 있는 회사다. 실제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기술과 데이터를 개발하고, 상장하거나 매각하여 금융적 이득을 실현하는 게 꿈이다. 소위 exit다. 몇몇 기업의 책임자들은 대놓고 exit가 목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 플랫폼노동의 특징
플랫폼 자본의 특징은 플랫폼 노동을 규정한다. 첫째, 플랫폼은 대기하는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수료를 받는다. 만약 대기하는 인력에게 시간급을 보장해야 한다면, 무한한 인력을 대기시켜놓을 수 없고, 플랫폼의 장점인 수요에 맞춰서 공급을 해준다는 플랫폼의 전제가 무너진다. 우버나 배달과 같은 실시간 플랫폼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소비자의 수요에 노동력을 바로바로 공급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력을 고정급 없이 대기시켜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기시간이야말로 플랫폼노동을 사용하고 싶은 사장님들의 원초적 욕망이다. 손님이 없는 식당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노동자의 모습은 사장님에게 절망을 안겨준다. 당장이라도 환불해버리고 싶다. 잘라버리고 필요할 때만 썼다가 버릴 수 없을까? 이 욕망은 스마트폰을 들고 살아가는 사장님에게만 특별히 발생하는 게 아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도 노예노동을 감시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다. 인신을 완전히 소유하고 24시간 감시하는 것보다, 조그마한 땅뙈기를 주고 수확물을 빼앗는 게 효과적이라는 게 밝혀졌다. 중세봉건제 사회의 도래다. 땅으로부터 농노를 해방시켜 노동자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인간을 사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테일러주의는 노동자들의 동선을 최적화하기 위한 것이었고, 아예 기계에 속도에 인간을 맞춰버리는 포드주의의 등장은 게으른 노동자에 대한 걱정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는 방책이었다. 그러나 생산방식이 변하고,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짐에 따라, 유연화된 노동력 사용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졌다. 1년 또는 6개월 단위의 비정규직 노동자나 아예 노무관리의 책임을 넘겨버리는 간접고용노동자가 늘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량적 유연화라 불리는 이 과정은 맥도날드에서 정점을 찍는다. 주마다 근무시간을 늘리거나 줄여버리는 방식이다. 다음 주에 맥도날드 광고나 쿠폰이 뿌려져서 손님이 많을 것 같으면 평소 20시간 일하던 알바노동자의 근무시간을 40시간으로 늘려버리고, 햄버거병 사태와 같은 악재가 닥치면, 40시간 일하던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20시간으로 줄여버리는 것이다. 근무시간이 정해져있지 않아 해외에서는 제로아우어 계약(0시간 계약)이라 불리고 한국에서는 정감 있게 고무줄 스케줄이라 불린다.
그런데, 점심시간 11시부터 2시까지는 배달 주문이 많아 정신없이 바쁘다가 점심시간이 끝나는 3시부터 5시 사이에는 놀고 있는 배달라이더를 보면서 주마다 시간을 바꾸는 것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초마다 쓰고 버리는 플랫폼노동이 탄생하게 된다. 내가 필요할 때 순간적으로 만났다가 음식을 건넨 다음에는 책임을 넘겨버리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내 가게에 앉아있지 않고 필요할 땐 내 앞에 나타나고, 필요 없을 땐 보이지 않는 길거리로 치워버리는 것만큼 속 시원한 일은 없다.
여기서 플랫폼노동자의 두 번째 특징이 나온다. 플랫폼노동자는 결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되면 안 된다. 기본급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어쩌면 작은 이유다. 1초 단위계약인데, 건 건마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있으면 일은 언제 하겠는가. 또 음식가게 사장이 라이더에게 음식을 건네고 나면 사장님과 라이더의 관계는 끝이다. 이때마다 해고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사장에게는 끔찍한 업무가 될 것이다. 30일 전에 해고 하지 않으면 해고예고수당을 줘야 하고, 정당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부당해고가 된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1년 2년 계약직과 일당노동자를 넘어 초단위 계약 노동자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이 노동자가 되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은 공장과 회사에 출근할 필요가 없다. 손안에 있는 가까운 역, 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하면 된다. 혹자는 이것을 해방이라 부르고, 나는 이것을 초기 자본주의로의 회귀라고 부른다.
3. 배달업으로 본 플랫폼 노동
플랫폼노동의 특징을 바탕으로, 실제 배달산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자. 이를 위해서는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가 배달의 전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주문중개 앱과 배달중개 앱을 구분해야 한다. 주문과 배달이라는 말에 주목해보자. 우리가 배달주문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가 주문중개 앱이다. 소비자와 음식가게를 이어주는 플랫폼이다. 이 시장은 배달의 민족이 1위이고, 요기요가 2위인 독과점시장이다. 5천 만의 소비자들이 다운받았으니 공급자인 음식점들도 당연히 배달의 민족 플랫폼에 가입하게 된다. 음식점들은 전단지 뿌리는 광고비를 플랫폼 수수료로 돌려서 이익이고, 소비자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양한 가게를 이용할 수 있으므로 이득이다. 주문중개앱 회사는 실제 배달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회사가 아니다. 음식을 배달하는 회사는 따로 있다. 이것을 배달대행사라고 한다. 물론, 배달의 민족은 ‘배민라이더스’, 요기요는 ‘요기요익스프레스를 운영하면서 배달대행사업도 하고 있지만 서울 중심의 서비스다. 주문중개 앱만 있으면 배달산업은 굴러가지 않는다.
우리가 배민에 주문을 하면 음식가게 포스기에는 ‘배달의민족~ 주문!’이라는 큰 소리가 난다. 음식가게 주인은 주문을 접수하고, 접수한 주문의 배달을 수행하기 위해 배민이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을 띄운다. 라이더의 핸드폰에 주문을 띄워 라이더들이 주문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어플리케이션이 따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배달중개 앱이다. 대표적인 회사가 부릉, ‘생각대로’ ‘바로고’ 등이다. 솔루션업체 또는 프로그램업체라고도 한다. 이프로그램사와 동네에서 배달 사무실을 차려 기사들에게 오토바이를 리스 형태로 제공하고 관리하는 동네의 배달대행사들이 일종의 가맹 계약을 맺는다.
동네 배달대행사 사장과 기사는 동네에 기반한 오프라인의 존재들이고 배달중개 앱 회사는 이 오프라인의 기사와 동네의 배달대행사 사장, 음식점 사장을 데이터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네 가게를 뚫는 것과 기사를 모집하는 것은 동네 사람인 배달대행사 사장이 더 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보가 배달중개 앱 회사로 넘어가고 정보가 집중되면, 배달중개 앱 회사에서 직접 음식점과 라이더를 모집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배달중개 앱 회사와 오프라인 회사는 협력과 갈등의 관계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배달대행사가 생긴 이유를 떠올려보면 된다. 한 음식가게에 배달 주문은 많이 들어오는데, 오토바이 가격도 비싸고 관리비도 많이 들고 라이더 인건비도 많이 들어서 모든 배달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럴 때 오토바이와 라이더를 확보한 배달대행사가 등장해 우리가 배달을 모두 처리해줄게라고 제안해서 계약을 맺는다. 음식점은 주문이 들어오면 라이더에게 무전기나 문자로 연락을 한다. 이것을 오프라인으로 하면 너무 불편하니까 이번엔 배달중개 프로그램사가 나와서 음식점과 배달대행사에게 제안한다. 우리가 프로그램을 줄 테니깐 효율적으로 배달을 해. 그래서 실제 배달업의 주체인 음식점, 라이더, 동네배달대행업체라는 세 오프라인의 주체를 연결하는 배달대행 플랫폼사가 탄생한 것이다. 배민과 요기요가 전단지를 대체했다면, 부릉, 바로고, 생각대로 등은 무전기를 대신했다고 보면 된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비자가 주문중개 앱 통해 주문 → 주문중개회사(배달의민족/요기요 등)가 음식점으로 주문데이터 전송 → 음식점 주문접수 후 배달중개회사 프로그램에(부릉/바로고/생각대로 등) 배달일감신청 → 배달중개회사, 배달대행사와 배달대행사 소속 라이더 핸드폰으로 배달일감 데이터 전송 → 배달대행사 라이더 및 배달주문 관리.
너무 복잡한가?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맥도널드에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같은 주문중개회사 프로그램이 들어와서, 배달의 민족을 통해 주문이 들어온 햄버거 배달을 맥도널드의 직고용 라이더인 내가 배달하기도 한다. 직고용라이더가 배달을 수행하기 버거우면, 맥도날드에서 배달대행을 부른다. 맥도널드가 직접 만든 배달 앱과 콜센터로 들어온 배달을 내가 아니라 배달대행사인 부릉을 통해서 배달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배달산업은 두개의 플랫폼(주문중개 앱과 배달대행 앱)이 네 개의 오프라인(소비자, 음식점, 동네배달대행업체, 라이더)를 연결하는 산업이다. 소비자와 음식점 라이더를 한 번에 연결시키는 플랫폼도 있다. ‘쿠팡이츠’다. 배달대행사 같은 중간단계가 없다. 쿠팡이츠가 해외에서 이야기하는 플랫폼과 닮아있지만, 한국은 원래부터 배달이 발달한 나라였기 때문에 중간에 개입하는 사람들이 많고, 복잡한 구조가 됐다. 배달은 플랫폼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외주화됐고, 대행사가 존재했다. 플랫폼이라는 화려한 말을 하지만, 어플은 그냥 배달의 외주화를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플랫폼이라는 포장지가 아니라 배달이라는 알맹이를 불러야 하는 이유다.
4. 플랫폼노동의 딜레마와 근로자성
플랫폼노동의 핵심은 플랫폼기업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있다. 여기에 전제가 있다.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격보다도 중요한데, 신뢰와 사용감(사용후기와 별점 등으로 표현되는)이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는 핵심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시장점유율의 확대는 새로운 투자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한 근거가 된다. 그래서 플랫폼회사에 있어 공급자와 소비자, 투자자를 끌어 모으는 ‘이미지’는 생명이다. 그렇다면 서비스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바로 지휘 와 감독, 지시와 매뉴얼이 필요하다. 맥도널드가 전 세계에서 똑같은 맛을 내는 비결은 감자튀김을 튀기는 시간과 손 씻는 시간까지 관리하는 철두철미한 매뉴얼과 표준화에 있다. 최근 맥도널드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배달대행플랫폼사인 부릉에, 부릉 라이더들이 보온가방에 햄버거를 넣어서 배달하도록 요청했다. 그 이후 맥도널드에 들리는 라이더들의 손에는 초록색 부릉 보온가방이 들려 있었다. 이것은 배달 서비스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명확한 지휘와 감독이다. 부릉 입장에서 이런 지시는 살 떨리는 일이다. 라이더유니온이 이런 지휘감독을 근거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라도 걸어버리면, 부릉은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함은 물론이고 연차와 퇴직금, 야간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인 오토바이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부릉뿐만 아니라 배달대행시장 전체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플랫폼기업에는 다음과 같은 숙제가 던져졌다. 사장 아닌 척 지시하라.
한국에서는 동네배달대행업체뿐만 아니라 배민라이더스와 요기요플러스 같은 대형 플랫폼회사에서도 라이더들에 대한 근태관리를 철저히 했다. 요기요플러스는 라이더들에게 조를 편성해줘서 순서대로 밥을 먹게 했다. 라이더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GPS 상에서 배달구역을 벗어나는 라이더들에게 어디 가냐고 전화를 걸었으며 출근과 퇴근 조퇴 등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했다. 이 모든 기록들이 카톡 단톡방에 그대로 남아 라이더유니온과 요기요 라이더들이 노동청진정을 진행해서 근로자 판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배민라이더스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각을 하거나 무단이탈을 하면, 배달 한 건당 300원의 벌금을 매겼다. 심지어 이것은 관리자의 메신저 내용도 아니고, 계약서에 떡하니 적혀있었다. 라이더유니온이 문제제기하자 폐기했다. 이 모든 일들이 2019년에 벌어졌다.
이 기형적인 형태의 흔적이 지금의 배민커넥트와 배민라이더스에 남아있다. 2019년 배민라이더스는 직접적인 근태관리와 업무지시를 하면서도 계약서는 위탁계약서를 썼던 배민라이더스 2000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19년 여름, 일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일할 수 있다는 컨셉으로 배민커넥터를 대대적으로 모집했다. 도보, 자전거, 오토바이로 일할 수 있었는데, 역시 위탁계약서를 썼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위탁계약서를 쓰는데, 누구는 자유롭게 출퇴근하고, 누구는 종속적으로 일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커넥터를 대량으로 모집하기 위해 커넥터 우대정책을 펼쳤다. 커넥터들은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지금은 10만에 이른다. 일감을 가져가는 경쟁자가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라이더스와 커넥터가 갈등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라이더유니온의 문제지기로 라이더스에 대한 근태관리가 불가능해지자, 이 둘의 경계조차 모호해졌다.
2019년 겨울 배민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라이더유니온이 각각 노조를 만들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대표교섭노조가 됐다. 라이더스 라이더만 가입할 수 있었던 서비스연맹의 배민지회는 커넥터의 근무시간을 20시간으로, 라이더스의 근무시간을 60시간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합의했고, 둘의 차이는 시간제한뿐인 현재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커넥터 한 명이 20시간이 제한된다고 물량경쟁에서 라이더스가 우위를 차지할 수는 없다. 도보, 전동퀵보드, 전기자전거, 오토바이 등 무엇이든 배달을 할 수 있는 라이더들의 숫자가 10만을 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로모션과 배달량이 많은 피크시간대에만 커넥터들이 몰리기 때문에 주말과 피크시간대에 많은 소득을 벌어야 하는 라이더스가 더 많은 일감을 차지하지도 못했다.
배민라이더스는 업무지시를 하지 못해 벌어지는 배달속도 저하 등의 서비스 품질 하락을 수십만의 커넥터 모집으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도입한 게 AI 시스템인데, 말이 AI이지 그냥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달 콜을 지정해주는 로직이다. 배민은 AI알고리즘 모드와 전통적인 전투콜 방식의 배달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AI방식을 사용하면 보너스를 줬다. 일반배차모든인 전투콜 방식은 알고리즘이 라이더들에게 배차하고 남은 배달콜만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라이더들은 어쩔 수 없이 AI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종속된 라이더들은 회사의 방침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요기요는 등급제와 스케쥴제도 도입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총 1~5등급의 등급을 두고, 알고리즘이 배차하는 콜을 성실히 수행할수록 등급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퀘스트보너스라는 추가 배달료도 지급했다. 그래서 소위 똥콜이라 불리는 최악의 콜을 수행해야 했고, 다치더라도 수락율을 높이기 위해 일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등급이 되면 수요일에 스케쥴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때 점심피크타임과 저녁 피크타임에 스케쥴을 넣을 수 있다. 2등급은 목요일에 신청이 가능했는데, 1등급이 신청하지 않고 남겨놓은 시간대의 스케줄을 넣었다. 3등급부터는 금요일에 신청이 가능하고, 1,2등급 라이더가 남겨놓은 가장 일하기 싫어하는 시간대의 스케줄을 넣어야 한다. 신청한 스케줄을 수행하지 않으면 등급이 내려간다. 몸이 아파서 일을 나가지 못한 라이더의 경우 등급이 내려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간에 일을 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위탁계약자의 의무인가? 아니면 사용자의 분명한 업무지시인가?
완전한 플랫폼인 쿠팡이츠의 경우 이 딜레마를 성과급으로 푼다. “지금부터 7시까지 배달 한 건당 10,000원.‘ ”쿠팡이츠가 라이더의 앱에 띄우는 메시지다. 재미있는 건 이 메시지를 보관할 수는 없다. 읽어보려고 클릭을 하면 사라져버린다. 쿠팡이츠는 명확한 명령과 지시가 아니라 돈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덕분에 배달대행 업체와 같은 한국형 중간관리업체를 둘 필요도 없다. 라이더 모집도 마찬가지다. 내가 라이더를 소개해서 라이더를 쿠팡이츠에 등록 시키고, 소개받은 라이더가 배달을 수행하면 1만원의 보너스를 주는 방식이다. 관리자의 욕설과 명령보다 효과적인 지시다. 이런 살얼음을 걷는 지시와 지휘감독만으로 서비스의 질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탄생한 게 평점제도다. 손님이 따봉과 역따봉으로 표현하는 주관적 서비스평가와, 쿠팡이츠가 알고리즘으로 배차하는 콜을 수락하는지 여부를 묻는 수락율, 수락하고 나서 실제 배달을 수행했는지를 묻는 배달완료율로 평가한다. 이 색깔은 신호등 색으로 표시되는데, 초록색은 우수한 라이더로 콜 배정확률이 높고, 노란색이면 좀 더 노력해달라는 경고가, 빨간색이며 배차가 안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뜬다. 사실상의 해고다. 라이더들은 평점을 잘 받기 위해서라도 알고리즘이 지시하는 배달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은 플랫폼이 사용자로서 근로자에게 내린 지시인가 아닌가?
배민라이더스, 요기요플러스, 쿠팡이츠가 직접적인 지휘감독대신 간접적인 노동자통제를 위해 도입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실시간 요금제다. 배민라이더스는 30분씩, 구마다 요금이 달라진다. 이마저도 고정된 것이 아니고 매일매일 공지한다. 요기요플러스도 마찬가지다. 쿠팡이츠는 극단적인 형태를 띄는데 1분마다 요금제가 달라지고, 같은 구도 여러 개로 쪼개는데 예를 들어 강남을 1,2,3,4 구역으로 나눈다. 강남 1을 한 건당 1만 원으로 라이더를 모아놓았다가, 실제로는 한 건당 5천원인 강남2로 배달을 보내버릴 수도 있다. 높은 요금을 보고 접속한 라이더가 많아지면 곧바로 가격을 내려버릴 수도 있다. 접속하는 라이더들의 숫자를 조정하고, 최적의 가격으로 배달 콜을 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업체들은 높은 프로모션가격을 제공하면서도, 기본배달료인 최소배달료는 3,000원으로 묶어놓는다. 언제든지 떨어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쿠팡이츠는 3월2일부터 기본배달료를 2,500원까지 떨어트린다. 오로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라이더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근로자라는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기는 힘들다. 라이더들이 쟁취할 수 있는 노동자라는 것도 딱히 매력적이지도 않다. 노동자가 된다고 해서 획기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은 자신을 구속하는 노동법의 보호장구를 벗어던지고 장시간노동을 통해 수익을 얻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 라이더의 수익이 최저임금이하로 떨어진다면 달라지겠지만, 한국의 라이더들은 난폭운전과 속도위반으로 어떠한 불리한 노동조건도 극복해낸다. 여기에 한국 배달노동자들의 투쟁에 어려움이 있다.
5. 위험(RISK), 자본가의 미덕에서 노동자의 미덕으로의 전환
자본가가 스스로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철폐해버린 결과는 실로 끔찍한데, 몸뚱아리 외에는 가진 게 없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킬 것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맑스의 수사적 표현이라 하더라도, 지킬 게 있는 자는 저항도 어려운 법이다. 예전에는 일을 하지 못하면 소득이 제로여서 먹고 살수 없었던 것이 문제라면, 이제는 일을 하지 못하면 빚을 지게 된다. 오토바이를 구입한 비용은 쉴 틈 없이 일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게다가 생산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고, 시간이 지나면 감가로 인해 손해가 생긴다. 오토바이 유지에 필요한 기름값과 엔진오일, 정기적인 정비, 충전용 거치대, 블루투스 스피커, 헬멧, 장갑, 옷 등의 작업도구도 구입해야 한다. 오토바이 시동을 거는 순간 일단 마이너스로 시작하는 것이다. 공장을 돌리지 못해 공장이 낡아버리는 것은 과거 자본가의 불안이었지만, 이제 노동자의 불안 요소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생산수단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잘못된 상품 판매에 대한 손해를 대비하기 위해 항상 보험을 든다. 공장이라면 화재에 대비한 보험, 식품을 판매한다면 손님이 탈이 났을 때 보상을 해줄 손해보험이 필요하다. 라이더들 역시 사장 신분이므로, 혹시나 배달하면서 사람이나 차를 치었을 때를 대비한 보험을 들어야 한다. 이 배달용 보험(유상운송보험) 가격이 상식 밖이다. 30대의 경우 보통 연 300만 원이다. 출퇴근보험의 경우 16만 원 정도인데, 배달용으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24배가 되는 것이다. 20대의 경우에는 사고위험이 더높다고 보고 600에서 700만 원가량이다. 오직 대인·대물 보상만 되며, 자기차량손해와 자기신체손해에 대한 보험은 가입조차 안된다. 그래서 라이더 잘못이 큰 사고의 경우에는, 일하다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만 보상해줄 뿐 자기치료비와 오토바이 수리비, 휴업에 대한 보상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유상운송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배달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고가 나면? 도망가거나, 상대방 차량이 이 오토바이가 업무용임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거나(집 가는 길에 배가 고파서 음식 사서 들어가는 길입니다, 따위의 변명), 보험사와 잘 얘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산재보험이 중요하다. 무과실 원칙에 치료비와 휴업급여가 주어지고, 장해가 남으면 장해급여, 후유증이 발생하면 재요양 신청이 가능하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망 시 유족연금이 주어지기 때문에 산재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보험이다. 배달대행노동자는 특수고용종사자로 당연가입 대상자다. 당연가입이란,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고가 나면 가입한 것으로 쳐서 산재보상을 하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모두 당연가입 대상이고 특수고용종사자들은 13개 직종이 당연가입대상이다. 다만, 여기에 구멍이 있다. 바로 산재적용제외신청서의 존재다. 사장이 노동자에게 산재적용제외신청을 받으면 산재가입의무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라이더들은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쓰면 자신이 부담해야 할 월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을 듣고 싸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배달대행라이더가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는 월 14,030원이지만, 현장에서는 사장이 부담해야 할 14,030원까지 기사에게 떠넘겨 28,060원을 걷거나 3만원을 걷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이더들이 산재가입을 망설이는 또 다른 이유는 산재에 가입하면 유상운송보험에 들지 않은 것이 들킬까 두렵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소득이 드러나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배달대행시장은 아직까지 라이더들의 소득에 대해 3.3% 원천징수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많아서 신용불량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다. 자신의 소득이 드러나면 압류가 될까 두려운 것이다. 한편, 산재제도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라이더들의 소득기준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실제 소득이 아니라 장관고시액으로 소득기준을 정한다. 2021년 배달대행의 장관고시 월소득은 142만 5,400원 으로 최저임금보다 낮다. 이 때문에 산재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휴업급여가 원래 벌던 소득보다 100~200만 원 정도가 낮기 때문에 맘 편히 치료를 받지 못한다.
노동자가 새롭게 떠안아야 할 위험은 또 있다. 상품판매가 안 될 때(아이러니하게도 날씨가 좋은 봄가을이 비수기다) 소득이 줄어드는 위험, 배달시장의 경쟁으로 인한 상품가격 하락에 대한 위험부담도 져야 한다. 하루아침에 해고가 되어도 해고예고수당이나 퇴직금, 실업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플랫폼사가 일방적으로 배달단가를 하락시켜도 마찬가지다. 근로자라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되어 다퉈볼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항의하기도 힘들다. 은퇴 후의 노후자금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보험들은 노동자들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강제로 가입시키고 보호해야 하지만, 기존 사회보험제도가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한계와 노동자들 스스로 보호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막연한 반대여론(4대보험의 장점에 대한 구체적인 설득과 설명의 과정은 없다)을 들어 사회가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의 비난 역시 라이더가 져야 할 리스크다. 배달산업구조로 인해 빠르게 달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오토바이는 난폭자라는 비난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반면, 대형 배달플랫폼사는 오히려 스타트업, 신기술 산업이라는 좋은 이미지만을 획득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배달산업에서 돈을 버는 기업과 보험회사 모두 산업을 통해 발생하는 위험부담을 지고 있지 않다. 배달산업을 체계화하고 대규모화할 때 가장 큰 부담이었던 사고에 대한 책임문제를 라이더를 사장으로 만듦으로써 해결해버린 것이다. 오늘날 약 20조 단위의 배달시장이 탄생한 비법이다.
6. 이익을 얻는 자가 책임져라
배달대행 라이더의 사용자를 엄밀히 찾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산재에서 책임을 묻는 배달대행업체 사장, 배달대행업체와 라이더와 음식점 손님을 연결하고 배달대행 단가와 콜수로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회사,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배달대행업체를 바꿔버리겠다는 압력을 행사하여 라이더들이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음식점 사장, 라이더에게 직접적 컴플레인과 온라인 앱의 별점으로 라이더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손님, 가게와 손님을 연결하여 배달일감 자체를 늘리는 역할을 하는 소비자중개프로그램사,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는 라이더 자신이다. 이건 책임적 측면이고, 이익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손님, 배달로 수익을 얻는 음식점, 배달수수료로 돈을 버는 플랫폼사와 배달대행업체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배달대행업체에만 산재의 책임을 묻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익을 얻는 이들에게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손님과 음식점은 정당한 배달료를 지불하여 라이더들의 배달료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사들은 매출을 기준으로 산재보험료와 고용보험료를 납부하여 라이더 보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라이더 1명당 부과하기에는 이직과 이동이 많아 불가능하며, 4대보험의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 일정기간 동안 일을 하다 장기간 실업을 하고 다시 취업하기 위한 구직활동을 해야 지급되는 현행 실업부조제도는 로그인과 로그아웃으로 출퇴근과 이직을 반복하는 플랫폼노동자에게 적합하지 않다. 유급휴일이 없는 플랫폼노동자를 위해 고용보험 제정으로 여름휴가를 유급휴가로 갈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겠다. 극한의 날씨에는 위험하니 휴업하게 하고 산재예방 차원이므로 근로복지공단기금으로 책임질 수 있게 한다.
당연히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보장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근로자는 사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사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므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동3권을 보장받게 할수 있게 해야 한다. 편의점 사장들도 본사에 대해 종속적 위치에 있으므로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단체행동권 역시 파업이나 점거를 할 수 있는 사업장이 없는 라이더들이 본사 점거나 서버 다운 등 실질적 단체행동을 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 당연히도 사용자 단체가 노조와 산업별로 교섭할 수 있는 길도 열어야 하겠다.
근본적으로 디지털 인클로저에 대한 전복이 필요하다. 플랫폼자본주의의 자산인 데이터는 인류 모두가 생산한다. 공공재산인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윤을 모두에게 돌려주는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기술발전을 인간에게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7. 정책적 대안 검토
현재 배달산업관련 입법은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이 있다. 사실상 택배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에 라이더와 관련된 내용이 끼워져 있는데, 소화물배송사업으로 규정되어 있다. 많은 분들이 이 법만 통과되면 라이더들에게 좋다고 하는데, 실제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대부분이 택배내용이고 소화물배송사업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소화물배송사업자에게 인증을 줄 수 있는 제도가 들어갔는데, 면허확인, 보험확인, 산재가입 등 기업이 기본적인 내용만 확인하면 국가에서 부가세감면 부지제공 등의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라이더유니온은 인증제의 요건은 모든 배달대행창업자에게 부과되는 의무가 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등록제를 도입하라고 주장했다. 현재 실태파악도 되지 않는 배달업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수집이라도 하고, 창업의 문턱을 높이자는 의미다. 이에 국토부와 청와대 더불어민주당이 화답해 등록제를 도입하겠다고 공표한 상태지만,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라이더유니온의 요구였던 오토바이 수리센터의 등록제, 표준공임단가 등의 약속도 했다.
라이더유니온은 화물의 안전운임제와 같이 배달영역에도 안전배달료가 도입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생물법에도 최소한의 안전배달료를 도입해서 최저소득의 보장과 플랫폼들이 배달료를 통해 라이더들을 통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더불어 알고리즘에 대한 정보 접근권도 중요한 문제다. 쿠팡이츠의 실시간 배달료의 경우 수요와 공급에 따라 요금이 변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알 길이 없다. 강남1구역에 배달이 많음이라고 해서 켰더니 배달 콜이 배정되지 않거나, 강남 2구역의 배달을 보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라이더들 입장에서는 왜 내가 강남2로 끌려가는지 알 수가 없다. 쿠팡이츠는 계약서조차 교부하지 않고, 배달료 정산내역도 즉시 확인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근무조건과 기록이 담긴 앱을 캡쳐할 수 없게 만들었다. 라이더들이 정보를 가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이는 배민도 마찬가지인데, 또 하나의 강력한 플랫폼인 아이폰만이 캡쳐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종사자보호법안이 있다. 정부는 지난 12월 말, 이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라이더유니온과 민주노총은 특수고용노동자에 이어 또 하나의 노동자 신분을 만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법의 문제는 크몽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포털의 웹툰작가부터, 퀵, 배달, 대리기사와 같은 특고노동자를 플랫폼이라는 한 카테고리로 묶어서 보호하겠다는 데 있다. 현실에 맞지 않다. 또, 플랫폼기업을 직업안정법상 직업소개소로 규정하는데, 이는 라이더유니온이 꾸준히 지적해온, 플랫폼사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낳는다. 다만, 노동계의 강력한 항의이후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우선적용의 원칙을 분명히 하기는 했다.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특별법이 근로기준법보다 강력하게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내는 출구의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것을 특고 20년의 역사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플랫폼’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써 왔다. 이제는 이 불분명한 단어와 결별할 때가 됐다. 플랫폼이 아니라 배달산업, 플랫폼이 아니라 웹툰 산업처럼, 업종과 현실에 맞게 대안이 나와야 한다.
대안은 역시 강력한 노동조합이라는 쉬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플랫폼노동자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단결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가 경쟁자이며, 협상력이 떨어지는 집단이다. 노조 할 권리만 주어진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파업을 하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다른 대체인력이 즉시 투입된다. 이 말도 안 되는 힘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기존의 사회법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던가, 국가의 개입이라는 정치적 제도적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플랫폼이 무엇인가? 라는 한가한 논의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상대방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다. 전국민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전면 적용은 노조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스타트업기업의 요구이기도 하다. 모든 국민들이 플랫폼에 접속할 수 있는 예비 노동력으로 만들 수 있으며, 쿠팡이츠를 뛰었다가 배민을 뛰었다가 요기요를 뛸 수 있다. 고용보험과 산재는 한 사업장에 일하는 노동자에게만 적용하는 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유연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플랫폼은 이제 마음 놓고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고 온국민이 플랫폼노동력의 저수지가 됐다. 이런 비판적인식이 한가한 우려였으면 좋겠지만, 극단적으로 유연화된 노동, 전국민의 플랫폼노동력화를 막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의 고용충격 속에서 플랫폼노동은 실업자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 플랫폼노동은 일자리와 소득, 고용과 성장, 복지 라는 전통적인 문제의 연장일 뿐이다. 여기에 대안이 없다면 자칭 혁신가들에게 끌려갈 뿐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현재 맥도날드 배민 쿠팡이츠 등 다양한 곳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다. 2019년 5월, 라이더.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요구를 위해 출범된 라이더유니온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