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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개헌

10/11 합본호 13. 제7공화국 건설 운동

  • 입력 2024.01.25 13:51      조회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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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제7공화국 건설 운동-장석준.pdf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 오랫동안 진보정당 정책?교육 활동에 참여해 왔다.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 대안체제의 방향과 얼개를 중심으로 연구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의 가을,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탄생,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공저) 등이 있다. 




1. ‘윤석열 수호 대 심판’ 구도에서 진보정당의 공간은?

   총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당이 총선을 앞두고 가장 공들여 준비해야 할 것은 정책 공약일 것이다. 유권자는 각 정당이 내세우는 공약에 따라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결정하고 정당은 의회에서 무엇보다 자당 공약을 법률이나 예산으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정치 교과서가 설파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진보정당들은 이런 원칙에 따라 정책 공약 논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그러나 한국 총선은 다르다. 교과서가 말하는 바와 한국 정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역대 한국 총선에서 정책 공약이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적은 거의 없었다. 제6공화국 내내 그러했는데, 최근 10여 년 동안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럼, 정책 공약 말고 무엇이 총선 구도와 각 당 성적을 좌우하는가? 정치 담론이다. 물론 정책 공약도 넓은 의미의 정치 담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정치 담론이란, 한국의 독특한 정치 지형과 그 안에서 각 당이 맡는 위상과 역할을 부각해 자당에 유리하게 현실 정치 과정에 영향을 끼치려는 실천을 말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권당 혹은 적대당과 맺는 관계 속에서 자당이 국회에서 상당한 지분을 확보해야만 하는 이유를 드러내는 것이다. 한국 정당들에 정책 공약은 이런 이유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활용하면 좋을(혹은 활용 안 해도 좋은) 부수적이고 보완적인 수단일 뿐이다.

   특히 현재 한국 정치를 양분하여 독점하는 양대 정당에는 이런 정치 담론을 구성하는 것만큼 능숙하고 손쉬운 일이 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한 상황에서는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열심히 떠들면 된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반민주적’ 공세에 맞서 정권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된다. 국민의힘이 집권한 상황에서는 여야와 공수의 위치만 바뀔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외치고, 국민의힘은 야당의 ‘좌파적’ 공세에 맞서 정권을 지켜야 한다고 부르짖으면 된다. 그러면 유권자들을 양대 정당 중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두 진영으로 나누는 거대한 힘이 작동하고, 실제로 두 당 득표 총합이 90% 안팎을 오가는 선거 결과가 나온다. 

   말하자면 한국 총선을 지배하는 것은 정책 공약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이 아니라 양대 정당의 권력 게임과 이에 따른 진영 대결이다. 유럽식 의회제(내각책임제)가 아니라 미국식 대통령제이기에 이럴 수밖에 없는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제6공화국이 청년기를 지나 노쇠해져 갈수록 이런 경향이 한층 더 강해지고 있다. 국회는 그간 미약하게나마 수행하던 입법과 예결산 심의 기능마저 점차 손에서 놓아 버리고, 양대 정당이 차기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며 서로 더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총선은 이런 양대 정당 간 권력 투쟁의 연장선에서 치러진다. 

   이번 총선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간 보여준 모습이 국민의힘 지지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너무나 실망스러웠기에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울 ‘윤석열 정부 심판’ 구호가 어느 때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16~17년 촛불항쟁을 통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억 탓에 ‘정권 심판’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더 구체적인 자생적 구호로 변주되기도 한다. 

   반면에 이렇게 ‘정권 심판’ 여론이 강할수록 ‘윤석열 정부 수호’ 구호 역시 응집력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실시되는 총선이므로, 현 정부를 지키자는 외침 또한 상당히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 운영 노선과 방식에 비판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아서 이른바 중도층에 속하는 유권자들이 막판까지 고심하다 ‘심판’론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 더 강력한 구심력을 보이든 결국 양당 중심 정치 전반의 구심력이 막강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지형에서 제3의 도전자인 진보정당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독자적인 정치 담론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시대 과제에 부합하는 진지하고 훌륭한 정책을 풍부하게 갖췄다고 하더라도 이런 정책을 감싸는 인상적인 정치 담론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진보정당이 이번 총선에서 과연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는 이러한 독자적 정치 담론의 유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2. 정치적 실현 방도 없는 정책은 공허하다

   그런데 이제껏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양대 정당 틈바구니에서 자신 있게 독자적 정치 담론을 제시하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총선에서 그런 담론을 제출한 적이 있었는지 돌아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두 차례 예외가 있었다. 하나는 2004년 총선이다. 2004년 총선은 제6공화국 역대 총선 가운데에서도 특히 양대 정당 중심 정치의 구심력이 강하게 작동한 선거였다. 아마도 내년 총선에서 양당 중심 구도가 그때와 비슷한 정도로 강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때 진영 대결을 불붙인 요인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였다. 이 점에서 2004년 총선은, 구도만 놓고 보면, 진보정당이 도저히 약진할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약진했다. 단순히 활로를 열거나 원내에 처음 진출한 수준에 그치지 않고 역사상 첫 정당투표에서 13%라는 전무후무한 지지를 받으며 단숨에 제3정당 위상을 차지했다. 이때 민주노동당에게는 자기만의 정치 담론이 있었다. ‘판갈이’ 담론이 그것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였던 노회찬은 양대 정당 모두를 ‘낡은 불판’으로 호명하며 ‘불판’ 전체를 갈아엎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후보가 TV 토론회에서 이 담론을 선보이자, 노회찬 바람이 일며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판갈이’ 담론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당시 담론 지형에 개입하면서도 두 진영 중 어느 한쪽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만의 위상과 공간을 확보했다. 기본적으로 ‘판갈이’ 담론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이 점에서 ‘탄핵 찬성’ 진영에 맞서 ‘탄핵 반대’ 진영에 함께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탄핵 반대’를 내세우는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 역시 ‘낡은 불판’의 일부라 호명함으로써 ‘탄핵 반대’론을 ‘타고 넘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에서 비롯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노무현 정부 유지 쪽으로 해소하더라도 그 이후의 정치 지형이 결코 탄핵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거기에는 ‘낡은 불판’에 속하지 않은, 빈부격차와 노동권, 소외된 이들의 권리에 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또 다른 정치세력이 새롭게 진출해 있어야 한다. ‘판갈이’ 담론은 민주노동당을 바로 이런 정치세력으로 부각시켰다. 

   진보정당이 뚜렷한 정치 담론을 내세웠던 또 다른 선거는 2012년 총선이었다. 이때 통합진보당은 ‘민주대연합’을 선명히 내걸었다.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의 실패 탓에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범민주당 세력과 진보정당들이 거의 대등하게 경쟁했고, 2008년 촛불항쟁 현장에서는 오히려 진보정당들의 존재감이나 영향력이 더 두드러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촛불항쟁이 실패로 끝나고 시민사회 안에서 ‘반이명박 민주대연합’론이 강력히 대두하면서, 상황은 다시 크게 바뀌었다. 일단 진보정당들을 통합한 뒤에, 범민주당 세력을 중심에 둔 민주대연합에 통합 진보정당이 합류해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실현하자는 주장이 대세가 되었다. 바로 그 결실이 통합진보당이었다. 비록 대선이 닥치기도 전에 다시 분열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대변한 ‘민주대연합’론도 나름대로 구체적이고 힘 있는 정치 담론이었다. 이를 통해 통합진보당은 차기 정부에 진보적 색채를 더할 요소로서 자신을 내세웠고, 이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민주통합당(만)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에 표를 던질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이때의 일정한 성공이 이후 10여 년 넘게 진보정당 운동의 발목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2016~17년 촛불항쟁에서 수행한 상당한 정치적 역할(대중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한 것이나 대통령 탄핵을 선도적으로 제시한 것 등)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은 2010년대 내내 범민주당 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인식됐다. 이로 인해 정의당은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판갈이’ 담론과 ‘민주대연합’ 담론의 미묘한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 다 출발은 극우보수, 즉 노무현 대통령 탄핵 세력이나 이명박-박근혜 세력에 대한 명확한 반대다. 그런데 ‘판갈이’ 담론은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거리를 두면서 탄핵 사태 해소 이후 독자적인 제3세력이 성장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한 데 반해, ‘민주대연합’ 담론은 범민주당 세력을 중심에 둔 진영의 한 구성요소로서 진보정당의 존재와 성장 필요성을 제시했다. 자칫 미미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차이가 2000년대 진보정당 운동의 색깔과 2010년대 진보정당 운동의 색깔을 확연히 갈랐다. 

   그러나 어쨌든 ‘판갈이’ 담론이든 ‘민주대연합’ 담론이든 모두 정치적 실효성을 갖춘 담론임에는 분명하다. 사실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총선에서 이런 정치 담론을 제시한 경우보다는 전혀 제시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때마다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를 설득하는 주된 근거는 이른바 ‘소금’론, 즉 현실 정치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드는 ‘소금’ 같은 역할을 할 정당을 지지해달라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것은 양대 정당 틈바구니에서 진보정당이 존립하고 성장해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함을 자인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진보정당의 비전과 힘을 드러내지 못하니 동정론에 호소하는 격이다. 

   더구나 이제는 동정론조차 먹히지 않는다. 2004년 총선부터 따져도 진보정당이 현실 정치판에 진출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된다. 그런데 아직도 진보정당은 2004년에 민주노동당이 거둔 성취를 최대치로 삼아 그 안에서 맴돌고 있다. 물론 양대 정당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이 번번이 좌절된 탓이지만, 유권자가 보기에는 20년째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단지 ‘소금’론에 공감해 진보정당에 계속 표를 던지기에는 피로감이 클 수밖에 없다. 2004년의 ‘판갈이’론, 2012년의 ‘민주대연합’론과 같은 역할을 할, 이 시대에 맞는 정치 담론을 새롭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 운동은 이런 쇠퇴 경향을 반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3. 정의당 사회비전, ‘제7공화국 건설’을 제시하다

   ‘정권 심판’ 아니면 ‘사수’ 식의 양극화된 담론 구도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제3세력이 설득력 있는 정치 담론을 내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민을 거듭하여 메시지를 다듬더라도 진영 대결의 거대한 힘 앞에서 과연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정의당에는 총선에서 과감하게 이야기할 정치 담론으로 ‘준비된 후보’가 이미 있다. 바로 ‘제7공화국 건설’론이다. 

   정의당은 작년에 혁신재창당 방안을 모색하면서 그 일환으로 ‘사회비전’을 토론했다. 정의당의 ‘사회비전’은 현 정의당 강령 내용과 복합위기의 급격한 전개 사이에 생긴 커다란 간극을 메우려는 첫 번째 시도다. 이 간극은 정의당이 새 강령을 제정함으로써 비로소 해소될 수 있겠지만, 지금 같은 엄청난 대전환기에 부합하는 새 강령을 완성하자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토론을 거듭해야만 한다. 정의당은 이 토론의 제1단계로서 일단 총선 전까지 ‘사회비전’을 마련하기로 했고, 당원 토론 결과를 반영한 ‘정의당 사회비전’을 11월 전국위원회에서 채택했다. 이는 제2단계 강령 토론을 위한 중간 결산이면서 동시에 현 강령을 보완하고 총선 공약 토론의 기초 자료 역할을 할 문서다. 

   ‘정의당 사회비전’은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라는 지향을 10개 주제 영역에 걸쳐 풀어낸 10대 비전을 제시한다. 그중 마지막 10번째 내용이 “붕괴를 앞당기는 제6공화국을 넘어, 전환을 실현하는 제7공화국으로”다. ‘정의당 사회비전’은 국가보안법, 선거법, 정당법 등의 장치를 통해 제도정치가 시민사회와 구조적으로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야말로 제6공화국이 내장한 근본 한계이자 모순이라 진단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국회와 대통령 모두 시민을 대의하는 역할이나 국정운영 책임과는 상관없이 양대 정당 간 권력 투쟁의 수단이 되어갔다. 국회든 대통령이든 통치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실제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고위 관료 기구다. 즉, 대한민국 제6공화국은 비선출직 관료 엘리트들이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체제다. 

   이런 체제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복합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도 없다. 기후위기, 불평등위기, 돌봄위기(흔히 인구위기라 불리는) 등등이 동시에 서로 얽혀 엄습하는 시대에는 어느 때보다 더 ‘일하는 정치’가 절실히 필요한데, 제6공화국 정치는 한 마디로 ‘일하지 않는 정치’인 것이다. 진보정당운동의 숙원인 ‘일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현재의 ‘일하지 않는 정치’를 반드시 ‘일하는 정치’로 바꾸어야만 한다. 

   ‘정의당 사회비전’은 이를 위해 두 가지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 통로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민주주의 대 대의민주주의’ 구도를 상정하면서 후자 대신 전자만이 대안이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여전히 불가피한 수단이며, 대의민주주의가 원활히 작동해야만 비선출직 관료 엘리트 통치와 같은 비민주적 질서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가 말 그대로 민의를 제대로 ‘대의’하도록 만들려면, 대의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시민 직접 참여 민주주의의 영향과 압박, 감시와 충격 아래 둬야 한다. 시민 직접 참여 민주주의가 확대, 강화되어 대의민주주의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만 현대 민주주의는 전진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 대한민국 정치 질서에 우선 필요한 것은 활발한 대중운동이며, 또한 시민이 입법안과 국민투표를 발의하고 국회와 대통령을 불신임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제도적 통로다.      

   이에 더해, 현재 말기적 증상을 보이는 제6공화국 대통령제에도 충격을 줘야 한다. 그 핵심은, 대통령과 국회 모두 통치 책임을 지지 않는 현 상황과는 정반대로 대통령과 국회 모두 국정운영 책임을 확실히 나눠 갖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의회제(내각책임제) 요소를 도입-확대해야 한다.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화, 정당법의 경직된 규제(지역정당 금지, 정당연합 금지 등) 철폐, 대통령 결선투표 등을 통한 다당 구도 강화를 전제로,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대통령과 국정운영을 분담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 

   궁극적으로는 순수 의회제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핀란드식 이원집정부제(대통령은 외치, 국무총리는 내치 담당)로 귀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관한 결론은 유보하더라도, 일단은 국회가 국무총리를 선출하게 하고, 이를 통해 국회 역시 국정운영 결과에 따라 심판받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행 헌법을 개정하기 전에라도 대통령이 동의하기만 한다면, 국회가 추천한 인사를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임명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의회제 요소를 도입-확대하는 개헌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높이려면, 이런 정치적 경험을 쌓아나가는 과정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정의당 사회비전’은 마지막 단락에서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정의당이 지금부터 최소한 5가지 과제를 실행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중 첫 번째 약속이 “제7공화국 건설 운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제7공화국 건설 운동은 당연히 제6공화국 정치 질서의 기반인 현 헌법의 대폭 개정, 즉 개헌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개헌이라는 목표를 절대시하지는 않는다. 개헌 자체가 시민 다수를 설득하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과정의 최종 결과일 수밖에 없다. 제7공화국 건설 운동은 바로 이러한 대중적 설득 과정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데 중심을 둔다. 한편으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 직접 참여 민주주의와 일하는 정치의 맹아를 일상에서 실제 실천함으로써 정치 개혁에 대한 동의를 아래로부터 넓혀간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을 이러한 제7공화국 건설 운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자기만의 정치 담론으로서 다름 아닌 ‘제7공화국 건설’을 제창해야 한다. 


4. 총선에서 무엇을 말할까? : 제7공화국 건설과 개혁-개헌 거국정부 

   정의당은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는 개헌의 주된 내용으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정의당 사회비전’은 새 헌법에 반드시 담겨야 할 내용으로 다음 항목들을 제시한다.

   -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적 전환과 불평등 타파, 돌봄사회 수립을 국가 운영의 양대 목표로 삼는다. 
   - 교육, 의료, 주거, 교통 등은 시민의 기본권이며 국가가 공공적 방식을 통해 그 실현을 책임진다. 
   - 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한다. 
   - 대통령은 투표자 과반수 지지로 선출한다(대통령 결선투표제). 
   - 국무총리를 국회가 선출한다. 
   - 각급 선거의 비례성을 보장한다. 
   - 국민 발의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 국회의원과 관련한 개정 사항(선거제도 개혁, 국회 특권 폐지 등)은 국회 의결이 아닌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정의당 말고 다른 정치 세력들도 총선을 앞두고 요즘 ‘개헌’을 이야기한다. 그중에는 정의당 개헌안과 겹치는 내용도 있고,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같은 한 가지 항목만 개정하자는 극히 부분적인 개헌론도 있다. 정의당은 제6공화국 정치 질서에 조금이라도 틈을 낼 수 있다면, 어떤 흐름과도 소통하고 협상하며 교류, 연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제7공화국 건설’론은 다른 개헌론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헌법 개정 자체를 절대적 목표로 바라보지 않으며, 그보다는 양당 독점 정치로 귀결된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실질적으로 바꿔내는 데 치중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제7공화국 건설’론은 정의당판 개헌론이면서 동시에 단순한 개헌론이 아니다. 

   이러한 ‘제7공화국 건설’론은 이번 총선에서 충분히 정의당의 주된 정치 담론이 될 만하다. 현재 과반 넘는 국민이 윤석열 정부에 염증과 환멸을 느끼고 있지만,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윤석열 정부는 총선 이후에도 3년이나 더 지속된다. 그 긴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복잡해지기만 하는 복합위기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물음을 던질수록 더욱 답답해지기만 한다. 

   이런 형편이기에 특히 더불어민주당 핵심 지지층을 중심으로 대통령 탄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탄핵’은 ‘불신임’과는 다르다. 대통령이 명백한 범법을 저질렀을 때 대응하는 절차가 탄핵이며, 따라서 단순한 무능이나 잘못된 정책 노선이 탄핵 사유가 될 수는 없다. 또한, 2016-17년에 한 차례 확인했듯이, 탄핵의 주체는 시민도 아니고 국회도 아니다. 헌법재판소다. ‘탄핵’이 겉으로는 급진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결정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헌법재판관들에게 달려 있다. 즉,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탄핵’은 결코 상수가 될 수 없다. ‘탄핵’이라는 주문만 외우면서 복잡하고 힘든 현실 정치 과정에서 눈길을 돌려서는 안 되며, 이런 방향으로 유권자들을 오도해서도 안 된다.

   2016-17년 촛불항쟁을 돌이켜봐도 ‘탄핵’만 되뇌는 것은 답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촛불항쟁은 6월 항쟁 이상으로 성공을 거둔 듯 보였고, 그래서 한때 ‘촛불혁명’이라 불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나서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선출한 뒤에 한국 사회는 제6공화국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성사시켰던 일시적인 다당 구도는 다시 양대 정당 독점 구도로 돌아갔고, ‘적폐 청산’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 아래 양대 정당 간 진영 대결이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이에 환멸을 느낀 젊은 세대는 촛불항쟁 이후 괴멸되는 듯 보이던 극우보수에 귀를 열기 시작했고, 2019년 조국 사태는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뼈아픈 것은 정의당이 이 과정에서 전혀 제3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 패착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처음부터 ‘제6공화국을 넘어,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함을 못 박아야 한다. 총선에서 이를 중심으로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부각해야 하며, 새 국회에서도 이를 기준으로 대립과 연대의 전선을 그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2의 대통령 탄핵 같은 국면이 불거지더라도 이번에는 어떤 정치 행위를 하고 결정을 내리든 항상 ‘제7공화국 개헌’을 전제조건으로 달아야 한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의 혼란과 난맥상이 낡은 제6공화국의 마지막 장면이 되도록 만들고,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로 나아갈 정치적 최소 조건들을 확보해 가야 한다. 

   다만 ‘제7공화국 개헌’론이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의 정치 담론으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 설득력을 높일 또 다른 보조적 담론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와 새 국회 임기가 겹치는 3년 동안 정의당이 어떤 정국 운영을 통해 ‘제7공화국 개헌’을 조금이라도 더 진전시키려 하는지에 관해 복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이를테면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로 나아가는 개혁’과 ‘제7공화국 개헌’을 위한 ‘거국정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 국회에서 개혁과 개헌에 부분적으로라도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공동정부를 결성해 개혁을 추진하고 개헌 과정을 열겠다는 것이다. 무능한 윤석열 대통령 대신 개혁-개헌 동의 세력이 구성한 거국정부(원내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흐름들까지 포괄하는 그야말로 ‘거국’정부)가 내정을 맡아야 하며, 이를 위해 정의당은 다른 정치 세력들과 적극적으로 협상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개혁과 개헌을 위한 거국정부를 거쳐 2026년에 개헌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정치 일정을 함께 제시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개혁/개헌 거국정부’ 담론은 ‘제7공화국’ 담론을 보조함으로써, ‘윤석열 정부 심판 대 사수’ 구도가 지배할 올해 총선에서 2024년판 ‘판갈이’ 담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 노회찬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 선거운동본부. “제7공화국 11테제”. 2007.
- 장석준. “노회찬이 남긴 꿈, 제7공화국”. <한겨레> 2019. 7. 18.
- 장석준. “우리 시대의 정치,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 <근대의 가을>. 산현글방 2022.
- 장석준. “대통령이란 무엇인가…총통·독재관? 거대한 무위도식자? : 제6공화국 대통령제가 도달한 궁지”. <프레시안> 2022. 8. 30. 
- 장석준. “대통령을 대통령제에서 해방시키자 : 대통령이 '최후·최대 임무'인 국방·외교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프레시안> 2002. 9. 20.
- 장석준. “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의 대통령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대통령제 개혁의 방향, 핀란드에서 배운다”. <프레시안> 2022. 10. 14.
- 장석준. “국민 스포츠, 대통령 비판하기?…바꿔야 할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제: 한국형 대통령제 이렇게 바꾸자”. <프레시안> 2022. 10. 17.
- 정의당. “정의당 사회비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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