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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10/11 합본호 12. 정치개혁 - 과두제 청산 및 국민 주권 실현 개헌

  • 입력 2024.01.25 13:51      조회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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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정치개혁-과두제 청산 및 국민 주권 실현 개헌-이승원.pdf

 

이승원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 

- 민주주의, 포퓰리즘, 커먼즈 운동, 도시전환, 사회혁신에 관한 연구 및 관련 사회운동을 수행해 왔으며, 현재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전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민주주의,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커먼즈의 도전(공저),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공저), 역서로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좌파 포퓰리즘을 향하여,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위하여 등이 있다. 




1. 포스트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과두제화

    1) 포스트 민주주의

   21세기 민주주의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포스트 민주주의(post-democracy)’ 시대로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크라우치, 2008; 무페, 2019).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어떤 민주주의인가’가 아니라, ‘굳이 민주주의여야 하는가’로 변질되고 있음을 포함한다. ‘어떤 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이 사회가 발전하는 방식은 민주주의가 유일하며, 어떤 민주주의인가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라면, ‘굳이 민주주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사회가 발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민주주의든, 전체주의이든, 차별과 혐오이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회발전’이라는 것이 인간 개개인의 생명과 사회적 존엄성이 아니라, 자유를 누리는 정도가 사적 소유권과 부의 규모·개별 지불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를 중심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맥퍼슨, 2002; 김은희, 2016; 이승원, 2019). 

   이것은 민주주의의 정치제도적 결과가 지향하는 바가 더 이상 공적 영역을 토대로 ‘사회적 가치’나 ‘상호부조적인 공동체주의적 목표’가 아닌, 오히려 종획과 배제를 통해 사적 영역을 팽창하고 공고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리들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의해 제거되면서, 경제적 자유주의가 정치적 자유주의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포스트 민주주의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왜곡과 변형이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중요한 원인과 그 현상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샹탈 무페(Chantal Mouffe)에 따르면, 포스트 민주주의는 주요하게 ‘탈정치’와 ‘과두제화’라는 두 가지 현상을 함의한다(무페, 2019). 

    2) 탈정치 – 좌우 경계가 흐릿한 신자유주의적 중도 합의

   탈정치(post-politics)란 기성 보수 양대 정당의 중도 합의 수준으로 모든 정치 공간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제한되면서, 그 결과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과 사회운동의 의제가 정치 공간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의미한다(무페, 2019 : 32). 즉, 탈정치란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다. 탈정치란 좌우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다양한 민주적 경합 공간이 축소되고, 그 결과 대표성이 대표하는 집단과 이해관계 또한 축소되면서 대중의 정치적 선택지가 줄어드는 민주주의 후퇴 현상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예를 들어 현재의 정당법과 선거법은 양당제를 고착화하고, 다양한 정치적 대표성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시민의 정치적 선택과 참여 수준을 매우 낮게 만들고 있다. 

   탈정치는 주요하게 ‘정치적 중재의 실종’과 ‘주권적 대응력의 위기’라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정치, 혹은 정당의 최소한의 역할은 사회적 갈등이 사적 영역에서 임의로 다뤄지지 않고, 공적·사회적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다뤄지도록 하는 것이다(샤츠슈나이더, 2008). 정치적 중재의 실종이란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제도화해서 갈등의 충격을 완화하고, 합리적 해결 방안을 찾는 역할을 해야 하는 정당과 의회 정치가 중도적 합의 수준으로 대단히 협소해지면서, 점차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사회경제적 집단과 정체성들 사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정치 제도적으로 중재·해결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갈등이 정치적 중재 없는 사회화되어, 광적 팬덤(주 : 팬덤 자체가 바로 어떤 부정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팬덤은 오히려 팬덤의 대상을 일방적으로 추종하기보다, 그 대상과 소통하고, 나아가 그 대상을 넘어서 새로운 서사와 활동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생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정치 팬덤은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따라, 독재나 전체주의, 보스주의를 견제하면서 대중과 정치 지도자(집단) 사이 민주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 팬덤이 반지성주의와 결합하면서, 팬덤이 생산하는 사회적 의미와 정치적 서사가 반민주적인 경향을 보이거나, 팬덤의 대상을 오히려 반민주적으로 역규정하면서 양자 사이 수평적이고 호혜적인 정치활동을 힘들게 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팬덤 바깥의 시민·유권자들이 정치 지도자(집단)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팬덤과 비팬덤·반팬덤·대항팬덤 사이 호전적 관계를 사회적으로 형성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승원(2021)의 글을 참조하라.), 진영론, 반지성주의, 혐오 범죄 등이 갈등 해결의 방안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이승원, 2011; 2013). 주권적 대응력의 위기란 정치 공간과 힘이 보수 양당의 중도적 합의 수준으로 제한되고, 글로벌 압력에 대한 주권적 대응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즉 탈정치 상황은 다양한 저항, 압력, 합의 방식의 선택지와 폭의 축소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 신자유주의 흐름을 주도하는 초국적 금융 자본주의 세력의 ‘강제적 (예를 들어, 한국의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 수용, 한미FTA 체결, 미국 통화·금리 정책에 따른 경제적 충격, 글로벌 군산복합체의 압력에 의한 참전·무기 거래와 같은 반평화적 태도를 강제하는) 명령’을 정부가 수동적으로 수용하고, 국내 비판과 저항에 권위주의적으로 대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이승원, 2008). 

    3) 과두제화

   과두제화(oligarchization)란 사회적 약자는 물론 일반 대중이 공공성의 위기와 함께 불안정 노동자나 실업자가 되거나, 빠져나올 수 없는 부채 상태에 처하면서, 정치를 주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참여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되어, 결국 상대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특권적 지위를 점유한 엘리트들에 의해 정치가 점차 과두제로 집중되어가는 현상을 의미한다(무페, 2019: 33). 

   오늘날 포스트 민주주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과두제화는 ‘인민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인민’의 정치적 주체화와 민주 공화국의 정수인 ‘인민주권’을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고, 따라서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공통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갈 힘도, 이 공통 세계를 공적으로 향유하고 즐길 여력도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과두제화는 ‘인민’이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치안의 대상이 되거나, 정당정치의 희생양이 되도록 한다(이승원, 2013; 2011). 정치의 과두제화는 탈정치에 따른 협소한 정치 공간을 더욱 공고화할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 노동 현실을 해결보다는 이 과두제적 권력의 유지를 위해 우파 포퓰리즘적 정책의 확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포스트 민주주의가 수반하는 과두제화는 공공성에 기초한 공통 세계가 축소되면서 발생하는 정치적 결과이자 동시에, 공통 세계를 축소하고 공공성이 부정당하는 정치적 원인이기도 하다.

   포스트 민주주의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현상은 투기적이고 지대추구적인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반한 ‘정치의 과두제화’, 즉 신자유주의 과두제의 공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 과두제에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사회 세력과 시민들이 이 과두제화 때문에 정치 공간에서 배제되고, 정치 공간에서 배제된 만큼 공통 세계에서 자신들의 몫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이 과두제의 경계를 깨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 보수 정당이 독점하는 정치
   한국의 경우, 한편으로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헤게모니가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 약해지고, 다른 한편으로 2000년대 이후 신공공 관리 차원에서 공공 서비스 제공 업무 관련 민관협치, 민간 위탁, 정부 보조금 사업 등에 참여하는 많은 사회운동 단체가 정부의 행정 관료적 통제력에 강하게 영향을 받게 되면서, 보수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탈정치 현상이 점차 공고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탈정치 현상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확산 및 경제 침체, 소위 진보정당 정치세력의 내부 분열 및 노동·사회운동의 지지 기반 약화, 그리고 계속되는 선거 패배에 따른 누적된 정치적, 심리적, 경제적 피로감과 맞물리면서, 보수 정당이 지배하는 제도정치 공간에 들어갈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적지 않은 사회운동단체 지도자들이 관료 또는 의원직 출마로 보수 양당에 들어가면서, 보수 양당이 제한한 정치 공간의 경계를 깰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이 점차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대선, 총선, 지자체 선거 시기를 기점으로 반복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21세기 새로운 정치적 과두제가 점차 공고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 신자유주의적 규범의 중력
   앞으로 더 구체적인 자료 및 통계 분석을 통해 증명되어야 하겠지만, 과두제를 구축하는 보수 정당과 그 파생 정치 집단들이 각각 어떤 사회경제적 계급을 대변하든 간에, 기본적으로 글로벌 스텐다드로서의 신자유주의 규범(대표적으로, 탈규제에 기반한 시장 개방, 노동 유연화, 공공 서비스 민영화)을 모두 자신들의 중요한 정책 기조로 삼고 있으며, 한국의 맥락에서는 각 정당이 어떤 특정 산업 분야를 정책적으로 육성하든 간에 토건 및 금융투자 부문에 대한 정책에서는 핵심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목할 것은 보수 정당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국회의원 수 중 율사 출신(22대 국회의원 중 약 15%)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출신(22대 국회의원 중 거의 과반에 가까운 143명)이다.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 명문대라는 것이 정치권력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는데, 문제는 명문대 입학이 점차 사교육비와 ‘좋은 학군’을 감당할 수 있는 지불 능력/자산 규모와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이미 창당이나 선거 출마에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드는 정당·의회 정치 참여의 어려운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규범을 받아드리는 것은 물론, 신자유주의적 경쟁 구조가 초래하는 자산 규모가 교육 불평등은 물론 정치 참여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이런 맥락 속에서 현재 한국의 과두제화는 ‘신자유주의’ 과두제라 할 수 있다. 


2. 신관료적 권위주의 – 21세기 한국형 신자유주의 과두제

   특히 이러한 21세기 한국 정치의 신자유주의 과두제화는 기술·행정관료 집단이 이 과두제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정치 엘리트-행정관료-대기업-유기적 지식인의 공생적 협력관계가 특정 산업기반 중심의 경제적 이익 추구로 이어지고,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이익 추구와 연결하는 ‘신관료적 권위주의(neo bureaucratic authoritarianism) 체제’로 묘사될 수 있다.

    1) ‘관료적 권위주의’ - 정치권력, 기술관료, 자본가 3자 동맹 기반 권위주의적 지배

   신관료적 권위주의 용어는 1980년대 한국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1970년대 한국 유신정권 시대를 분석하기 위해 도입한 학술 개념인 ‘관료적 권위주의’를 신자유주의 사회의 특징에 맞게 수정 도입하기 위해 필자가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는 개념이다(Baeg 1987; Lee 2008). 우선, ‘관료적 권위주의론’은 정치학자 기에르모 오도넬(G. O’Donnell)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선순환 관계의 예외적인 상황, 즉 경제발전이 민주화를 촉발하는 ‘근대화론’과 달리, 경제발전이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의 출현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O’Donnell 1976, 1978). 오도넬에 따르면, 관료적 권위주의란 일반적으로 산업화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대중의 정치의식과 참여 수준이 향상되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운동이 활발해져, 산업화가 야기하는 여러 문제와 관련된 정치·사회적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통적인 권위주의 방식의 통치가 아니라, 산업화와 함께 고도화된 기술관료 집단이 지배 세력(당시에는 군부)과 연합하여 지식과 기술의 상대적 우위성으로 대중을 통치하는 방식이다(O’Donnell, 1978). 

   관료적 권위주의는 독재자나 군부만이 아니라, 기술관료 집단과의 이해관계 속에서 정치권력, 기술관료, 자본가 사이 3자 동맹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또한 관료적 권위주의는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하고, 경제적 부를 불평등하게 배분하면서, 3자 동맹에 기초해서 군부를 중심으로 한정된 정치세력 사이에서 권력을 재생산하는 과두제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과두제적 권력 재생산을 위해서는 필요시 경쟁적인 선거 제도를 폐지하고, 도전적인 정당을 해체하고, 노동조합에 대해 탄압하는 반민주적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시즘과 달리,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보다 정치적 무관심을 조성하고, 주로 경제적 대외 의존성이 높은 경제발전 정책을 취하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고양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최진욱, 1994). 물론, 관료적 권위주의 이론이 제기되던 당시, 국내외적으로 이 개념이 정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반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오히려 오늘날 신자유주의 사회와 국가 통치 방식과 비교해 보면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2) 카르텔을 넘어선 유기적으로 결합된 엘리트 집단에 의한 정치 독점

   한국 정치의 과두제화를 신관료적 권위주의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오도넬이 관료적 권위주의의 특징으로 제시하는 내용들이 한국 정치권력 집단에서도 대체로 겹치면서도(새로운 산업화의 성공과 그에 따른 분배적 갈등, 노동·시민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 정치적 허무주의의 확산, 외교 및 경제 차원에서 대외의존도를 높이는 가운데 민족주의에 대한 상대적 거리 두기 등), 군부가 아닌 민간 엘리트 집단이 관료 및 기업과 3자 동맹을 형성하고 있고, 집권 여부와 정치공학적 갈등을 떠나 보수 양당 구조 속에서 공통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공유하며, 무엇보다 개인 간 경쟁, 성과, 능력주의 등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과 소비문화에 기초한 문화·윤리적 자기 통치 방식 펼치는 변형된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기 이후 비록 경제 성장이 침체했지만, IMF 위기 이후 회복기에 들어선 2000년대 초반부터 팬데믹 이전까지 한국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이러한 양적 경제 성장 추이는 부의 공정한 사회적 배분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앞서 언급한 불평등과 투기적 도시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 운동 진영의 저항과 대중의 불만이 높아갔지만, 한편으로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 그리고 노동자 파업 또는 시위 주동자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및 가압류를 중심으로 하는 처벌(김정희원, 2023),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빈곤화에 따른 정치적 자원의 고갈과 정치적 피로도의 누적으로 인한 대안적 정치 운동의 쇠락이 겹치면서(주 : 혹자는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2016년 촛불집회 현상을 앞세워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을 위해선, 먼저 촛불집회가 처음부터 ‘탄핵’을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정치적 주도력이 광장의 시민에서, 의회의 민주당으로, 헌법재판소로 옮겨지면서, 시민들은 의회와 헌법재판소를 압박 또는 요청하는 정치적 수준에 머물러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결국 ‘혁명’으로까지 묘사되었던 촛불집회의 정치가 더 많은 참여와 비용이 필요한 ‘대안 정치’로 나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제도적 견제 장치도 없이 민주당 후보에 대한 투표를 유일한 정치적 선택지로 하면서 마무리된 것도 중요하게 상기할 지점이다. 어쩌면, 이미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에 대한 ‘민주당 2중대’ 또는 ‘윤석열 당선 일등 공신’과 같은 묘사가 회자되고, 점차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선호하는 개별 정치인의 공천과 당선 여부를 위해 기존 보수 양당을 중심으로 정치공학과 이에 대한 정치평론이 만연하는 것은 이미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과두제화가 일종의 정치적 상식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무의식 속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잡은 것처럼 보이는 징후로 읽힐 수 있다.), 대중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대의제 정치 공간을 확장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 축소되고 정치적 기회에서 배제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3) 정치의 사유화

   보수 정당 세력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면서 새로운 정당 또는 정치세력의 제도적 진출을 대단히 어렵게 하는 현행 한국 정당법과 선거법의 경우처럼, 과두제화는 현재 한국 대의제 정치가 공공성, 즉 공적 영역에서 ‘보이고’, ‘들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대표/재현하려는 시도보다는 정치 영역에서 배제하면서, 공적 영역의 다양성과 차이 범위를 최소화하고, 동시에 정치권력 재생산의 불확실성 또한 줄여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승원, 2023). 이것은 한국 정치의 과두 세력이 정치를 점차 사유화하는 것이다. 주로 적대적 진영 논리와 반대 세력에 대한 혐오적 대상화가 주요 정치 논리인 광적 팬덤에 기반한 정치는 사실상 팬덤의 대상인 정치 지도자 혹은 집단에 대한 비판이나 교체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도자에 대한 지지 여부가 다른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비판적 판단보다 우선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지도자가 외부로부터 정치적으로 공격받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하면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정치 공간을 차이와 다양성이 인정되고,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적 영역이 아니라, 영토화하고 사유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사유화된 정치는 공통 세계를 더욱 풍부하고 안전하게 하는 타자, 이방인, 난민, 소수자 등에 대한 우정, 환대, 연대로 확장된 친밀성을 다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전통적 가족이나 사적 영역에서의 친밀성으로 후퇴시키면서, 자유와 존엄성의 공동 기반인 공통 세계에서 ‘나’와 ‘타자’의 ‘사이’를 점점 약하게 하고, 나와 타자를 고립시켜 간다. 

    4) 국가의 사유화 – 공공 부문의 민영화

   특히, 우리 모두의 공통 자산이자 관리 체계로서의 res publica(republic)와 commonwealth 용어와 연결하면, 사유화된 정치는 국가를 사유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를 사유화한다는 것은 공공 의료(예, 진주의료원), 공공 주택(예, LH 사태), 공공 교통, 에너지 등 누구도 양도·매각 불가능한 것을 마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매각이라는 민영화에 대한 일방적 추진을 가능하게 한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6월 16일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경제 운용의 주요 기조를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기반한 경제 운용’으로 제시했다(기획재정부 2022). 이 발표에는 윤석열 정부는 공공연금 개혁, 긴축재정 기조 확립, 강도 높은 공공기관 기능-인력 조정, 민영화-영리화 추진을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입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는 민간병원 지원을 통한 공공의료 영역의 민간 이월, 사회서비스의 민간 주도 확대를 비롯, 전력, 철도, 언론 민영화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다(공공운수노조 2023). 

   이에 대해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은 정부의 공공 서비스 민영화 정책이란 사실상 공공성을 후퇴시키고 시민들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한편으로는 2023년 3월 15일 ‘공공 서비스 민영화 금지 및 재공영화 기본법’을 정의당과 민주당의 협력으로 국회 발의를 했고, 다른 한편으론 8월 17일에는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단체연합, 공적연금 국민행동 등 88개 시민단체가 모여 ‘민영화 저지 공공성 확대 시민사회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출범했다. 이후 이 흐름 속에서, 공공운수노조를 중심으로 9월부터 11월까지 총 3회에 걸친 파업 투쟁을 전개했다.(주 :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110955.html ;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104738.html) 이들은 파업의 필요성을 ‘공공성-노동권 확대를 통해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것’에서 찾았으며, 민영화 중단 및 사회 공공성 확대, 임금 격차 축소 및 실질 임금 인상, 인력 충원 및 공공 부문 좋은 일자리 확대를 주요 요구 사항으로 정부에 제시했다. 비록 이 투쟁이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데는 여러 담론적 한계, 투쟁의 주체들이 외치는 주장이 사회적 주장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적어도 이 투쟁은 공공 서비스 민영화 중단만이 아니라, 정치와 국가의 사유화에 대한 저항이라는 차원에서 해석되고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5) 시민사회의 야만화와 각자도생의 반지성주의

   이렇듯 정치가 사유화되고 과두제화된다는 것은 정치가 공적인 것과 공통적인 것을 지속하고 확장하기 위한 것과는 정반대로 작동한다는 것, 즉 사적 이익을 위해 시민사회를 축소·파괴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아닌 존재자들(인간-비인간) 사이 갈등을 조정하고 상호협력의 조건과 기반을 설정하기 위해 마련된 합의된 정치제도와 기구가 갈등을 방치하고, 그 조건과 기반을 침해한다면, 시민사회는 자유롭고 안전한 세계와는 다른 상태가 될 수 있다. 즉,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자기 신체를 보호하고, 공동체적 삶을 유지해 나가는 시민들의 삶이 그 기반이 약해지고 사라질수록 ‘만인 대 만인’ 투쟁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적나라하게 방치되어 가면서, 사회가 점차 반지성주의, 혐오, 차별, 폭력 등 불안하고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와 반대편에서 정치가 사유화될수록 기후위기, 불평등, 포스트 민주주의와 같은 공공성을 위협하는 징후들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에 따라 공동체와 개인의 신체 모두의 안전은 더욱 심각하게 위협받게 되고, ‘신체화된’ 국가로부터 방치된다. 국가라는 신체의 일부가 되지 못하는 존재들은 국가의 ‘잔재’, ‘찌꺼기’가 된다. 최근 정부가 우선순위를 주장하는 ‘재정 건전성 확보’란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사실은 국가의 건강한 재정 상태를 위해,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더욱 살기 힘들어진 취약계층, 영세 자영업자, 노인, 장애인, 비정규 노동자, 실업자, 여러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소위 ‘명문대’ 혹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청년,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아동·청소년, 각종 재난과 재해의 피해자들을 위한 시급한 지원, 보호와 안전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국가의 건강 유지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인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정치적 조정과 중재가 사라진 시민사회, 아니 시민사회를 잃어가는 상황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의 야만 세계가 되었고, 사람들은 여기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거침없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 범죄, 생계형 자살, 존비속 살인, 마약, 투기, 광적 팬덤과 배타적 진영론을 중심으로 적개심은 물론 정치 테러도 서슴지 않는 반지성주의적 선택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호프스테터. 2017; 강준만. 2019; 한상원. 2023)


3. 국민 주권 실현 개헌 - 과두제 청산과 진보적 정치공간의 확장을 위한 정치 과제

    1) 과두제 고착화를 향한 자기 복제의 정치 공학을 넘어서

   2024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중심으로 정치 시계가 맞춰진 한국 제도정치 상황과 연결된 몇 가지 의견은 다음과 같다. 

   제한된 공천과 의석수를 중심으로 ‘자신의 당선’ 혹은 ‘다수당’ (그것이 현 정권에 강력한 힘을 싣든, 그와 정반대에서 대통령 탄핵도 가능한 의석수 확보이든) 확보를 목표로 돌아가는 여의도 정당정치의 현주소는 한국 정치 과두제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두 거대 정당은 총선을 통해 각각 강력한 집권 여당 또는 대통령 탄핵소추 가능 의석수(200석 이상)를 얻기 위해 ‘강력한 여당’ 혹은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거대 야당의 시대적 역할과 이미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으며, 이것은 판세에 따라 위성정당 또는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강조로 가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정치를 ‘정량적’으로만 계산하는 매우 공학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정성적 차원, 즉 유권자의 적대감과 분노, 불안, 욕망이 어떻게 상징적으로 재구성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2024년 1월 현재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이나 병립형으로 갈지, 아니면 다른 파격적인 변화를 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주 : 두 보수 정당에서 파생된 신당 움직임은 이념적으로든 자신들이 대표하고자 하는 대중 집단의 특징에서 보든 큰 변별력이 없이 오로지 공천을 둘러싼 공학 차원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별도로 분류해서 다루지 않는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두 정당이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입법권’을 사용하여 정당법과 선거법 개정을 통제하면서, 자신들과는 다른 그래서 자신들의 정치적 파이 크기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정당의 발흥과 이들의 대안적 실험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두제를 시대적으로 고착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은, 위 두 정당과 정의당에서 이탈하여 신당을 창당하려는 정치 세력들이 한결같이 ‘양대 정당 구도 혁파’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에서 보수 양당 중심 과두제화를 비판하는 필자는 문자 그대로의 이 주장에 대해서는 매우 동의한다. 하지만, 그 전제는 지금 발흥하는 신당이 정치의 외연을 넓히고, 그간 배제되고 소외됐던 시민들을 충실히 대표하고 있는가이다. 그런데 최근 이미 공고화된 보수적 양당제와 자기복제식으로 출현하는 신당 창당 움직임을 주도하는 과두제를 깨기 위해서는 결과론적으로 다당제의 형태가 지지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다당제 구도 그 자체가 탈과두제화의 과제와 요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탈과두제화의 핵심은 새로운 정치 주체·정당의 발흥, 시민 대표성의 확장, 국민 주권 강화를 통한 대의제와 직접 민주주의 사이 정치적 균형 유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나와 창당하려는 신당 정치 세력들은 핵심적으로 ‘공천권’ 확보를 위해 기존 양당과 갈라진 정치공학적 자기 복제 정당이다. 이 세력들은 공천만 확보된다면 ‘어떤 민주주의인가’보다는 ‘굳이 민주주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실상 기존 양당에서 갈라진 세력들이며, 충분히 기존 자당 내에서 혹은 기존 반대 정당으로 옮겨서 얼마든지 자신의 정책적 주장을 제시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새로운 신당 정치 세력들은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좀 더 크게 봐서 정의당이라는 2~3당 구도를 벗어나지 않은 구 정치세력이며, 이들의 정책적 주장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은 조금 거칠게 말하면, 새로운 이념과 사회비전도, 새로운 정치적 주체도 없는 상태에서 아메바식 자기 복제나 세포분열을 하는 박테리아나 바퀴벌레 그 이상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양당이 3, 4, 5개 다수당 구도로 혹은 영국 자민당(Liberal Democratic Party)의 출현처럼 제3지대가 고착화된다는 것은 결코 탈과두제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출현을 교묘히 차단하면서 과두제화를 더욱 정교하고 공고히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선 국민 주권 개헌-후 사회대개혁 개헌을 통한 정치 공간의 민주적 확장

      가. 직접 민주주의 중심 최소주의적·수행적 개헌 추진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제9차 개헌 이후 제6공화국 체제가 37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빠르고 압축적인 사회적 변화 속에서 새롭고 다양한 권리 담론의 출현, 시대정신의 교체, 국제질서의 전환 흐름 속에서 영토조항에서부터 기본권, 권력의 구조 및 균형 장치, 경제, 지방자치에 관한 조항들의 수정 및 신설을 담은 개헌과 이에 기반한 제7공화국에 대한 요구가 다양한 층위에서 오랫동안 제시되어 왔다(이태호, 2018; 이기우, 2018; 장석준, 2023). 하지만 문제는 여러 조항을 한 번의 개헌을 통해 수정·신설하려다 보니, 국회에서 작은 부분에서라도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 헌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는커녕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개헌이 좌초되었다. 개헌에 대한 이러한 최대주의적 접근 방식은 오히려 개헌의 가능성을 제로로 수렴하게 하면서, 국회와 대통령의 어떠한 개헌 제안도 국민에게는 정치적 허풍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것은 현재 불균형한 권력 구조와 과두제화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개헌은 국민이 ‘개헌’을 각 정치세력이 자기 과시를 위해 던지는 과장된 허풍이 아니라, 실제로 더 좋은 사회의 행복한 개인의 미래를 위해 주권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개헌에 관심을 기울일 때, 그 힘을 통해 그 절차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수정된 신헌법이 사회 대개혁 추진의 발판이자 동시에 대개혁의 진전만큼 민주적으로 계속해서 수정·발전되기 위해서는 최소주의적이면서 동시에 향후 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 핵심을 개헌 내용으로 제안해야 한다. 

   그 핵심은 바로 직접 민주주의에 기반한 국민 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회, 대통령, 행정부가 독점해 온 정치 공간을 개방·확장하여, 헌법상 주권자이면서도 입법권을 직접 행사하지 못해 온 국민을 정치적 주체로 회복하는 것이다. 입법권 그리고 정치적 피위임자에 대한 소환권이 국민에게 부여되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는 과두제화되어 불균형 상태에 처한 대한민국 정치권력 구조의 균형을 민주적으로 회복하고, 이를 통해 여러 개헌 사안과 입법 과제를 활성화된 숙의 민주주의 제도와 공론장을 통해서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개헌을 통한 국민 주권 실현의 필요성 
   한국 정치의 탈과두제화가 국민 주권을 실현하고, 정치가 더 많은 주체와 정체성을 대표하도록 하여, 이들 사이 갈등을 제도적으로 다루는 정치적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출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대의제가 시민을 대표하는 공간이 계속해서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법, 선거법,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제, 원내교섭단체 제도 개선 등을 통해서 탈과두제화로서 다당제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대의제 정당과 의회 시스템에 정치를 제한하는 것이며, 이 대의제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경우, 그 문제를 해결할 첫 번째 주체가 정당과 국회의원 즉 당사자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탈과두제화가 다시 반동적으로 과두제로 퇴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는 정당, 의회, 대의제 정치가 독점하고 있는 정치 공간을 직접 민주주의 제도와 결합하여 확장하고, 헌법상 명목적으로만 규정되어 있을 뿐 수행적 권한은 보장되지 않은 국민 주권을 헌법과 법률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제도적 구현을 통한 헌법상 명시된 국민 주권의 실현을 위한 시도는 현 정치 제도를 혼란스럽게 하는 과도한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대의제가 독점하면서 불안정성을 드러내 온 정치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정치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의 대한민국 헌법(1987년 10월 29일 전부 개정)은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되어 있다. 주권(sovereignity)의 특징은 국가의 절대적이며 영구적인 권력이자, ‘예외 상태’를 선포할 수 있는 권력이며, 주권은 사실상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구체적으로는 국가를 새롭게 창조하거나, 법적 질서를 재수립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제헌적인 구성권이다. 헌법의 영어식 표기가 ‘구성’을 뜻하는 ‘Constitution’이고, 이 헌법의 절대적인 주체, 즉 주권자가 국민임이 헌법 제1조에 명시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입법권이 주권자로서의 국민에게 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헌법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1조 2항에 국민이 모든 권력의 주권자임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6조에 국민 청원권만을 명시하고 있을 뿐,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제안하고, 결정할 수 있는 국민발의와 국민투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40조를 통해 입법권을 국회에 속하는 것으로, 제52조에서 국회의원과 정부만이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국민투표는 제72조에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그리고 국회나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한 경우에만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주요하게 세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이 상황은 국민 주권을 제한한다.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 제2항과 입법권을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40조는 상호충돌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입법권을 국회에 한정 귀속시키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40조 이외에도 헌법 제52조와 제128조 제1항은 각각 법률안 발의와 헌법개정의 권한을 국회의원과 정부 그리고 대통령에게만 한정 귀속하고 있어서, 이 또한 헌법 제1조 제2항과 충돌하면서 국민 주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이 상황은 정치의 과두제화를 공고하게 만든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 과도한 정치권력을 부여한 채, 이 두 대의제 기반 권력 주체를 능동적으로 견제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치의 과두제화가 점점 공고해지고 고착될 수 있다. 특히,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의 법적 부재는 국회의원의 경우 최소 4년, 그리고 대통령의 경우 최소 5년을 법률을 위배하지 않는 한 배타적 권력을 보장하고 있어서 공고화된 과두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셋째, 국민을 위한 법률안을 정치공학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국민발의와 국민투표, 즉 주권적 국민입법권, 그리고 대통령과 주요 공직자에 대한 국민소환제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정치·사회적 갈등은 신관료적 권위주의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는 현재 과두제화된 정당-의회 정치와 대통령 중심의 행정부 체제를 중심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 정치가 파행되거나, 의회와 대통령·행정부 관계가 교착 국면에 빠지게 될 경우,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가계 부채와 부동산 투기 대책 마련, 교육·주거·의료·이동권 불평등 해소, 국공유지 및 공공재의 민영화 방치 및 재 국공유화, 차별 없고 탄탄한 사회 안전망과 돌봄 체계 구축, 취약계층 및 사회적 약자 보호, 사법 개혁, 기후위기 대응, 노동권 강화, 경제 민주화, 지역의 균등하고 자립적인 발전, 초고령화 및 인구 감소 대응, 평화·안보 체제 강화, 퇴행 없는 민주주의 기반 구축 등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를 위해 시급하고 엄중하게 다뤄져야 할 주요 법률안이 정치공학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민이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크게 희생되는 경우가 잦아지게 된다. 

   결국, 국민의 수많은 집회, 시위, 국민 청원은 물론, 특정 정당과 정치인 또는 정치개혁에 대한 정치적 열망의 투여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수많은 난제가 해결되지 못하거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 시스템, 그리고 공동체주의적이고 공생공락적인 가치가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신관료적 권위주의로 표현되는 우리 정치의 신자유주의적 과두제화, 즉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그만큼 다양한 사회 집단과 정체성을 대표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방치한 채 자기 이익 중심으로 정치를 독점하고 사회에 대한 정치의 의무를 방기한 자기 이익 중심의 대의제 정치와 관료제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과두제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지 정당법이나 선거법 개정과 같은 소극적 정치개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대의제가 과두제로 기울어지지 않고, 국민의 대표로서 그 의무적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국민의 주권적 정치를 제도적으로 구축하여, 정치적 균형을 민주적으로 맞추는 것이다. 이것은 대의제 정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 정치가 과도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대의제의 고유한 영역에 자리 배치를 하고, 대의제가 과잉 대표한, 즉 침범한 직접 민주주의 정치 영역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정치 공간을 급진적으로, 다시 말해서 국민 주권적 차원에서 확장하고, 민주적으로 재구축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다양한 주체들이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고, 특정 정치 집단이 정치권력을 장기적으로 독점하거나 권위주의적으로 경도되지 않도록 하여 여러 정치적 주체의 민주적 경합과 협력을 활성화할 수 있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더욱더 효과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더 나은 사회, 진보적 대안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정치·사회적 실험과 도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3) 위기를 넘어 국민이 원하는 나라를 위한 국민 주권 실현 개헌 - ‘국민 주권 개헌’

   아래 제시하는 헌법 개정안의 주요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헌법이 명시한 국민 주권을 법률적·제도적으로 실현하여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구현하고,
   둘째, 국회·정당과 대통령·행정부의 과두제화를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필요한 입법 및 행정 조치를 민주적이고 신속하게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셋째, 지구·국가·지역 차원에서 발생하는 여러 난제를 보다 더 효과적이고 민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민의 다양한 정치활동 및 공동체주의적 협력 활동을 활성화·지원하여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생공락할 수 있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세계를 마련해 나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다.
   우선 ‘위기를 넘어 국민이 원하는 나라를 위한 국민 주권 실현 개헌’, 약칭 ‘국민 주권 개헌’ 안은 다음과 같이 구상 초안 수준에서 제시될 수 있다. 이 구상 초안은 다양한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와의 숙의 민주적 협의와 조정을 통해 수정·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10차 개헌안 구상 초안
현행 헌법 조항 개정안(제안 사항) 비고
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26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
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26입법권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주권적 권한이며, 모든 국민은 법률안을 발의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의결할 권리가 있으며, 이에 관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모든 국민은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 및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해 국민투표를 붙일 권리가 있으며, 이에 관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국회에서 의결 또는 부결했거나,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후 국회가 의결 또는 부결한 법률안에 대하여 모든 국민은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붙여 의결 또는 부결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모든 국민은 대통령을 소환할 권리를 가지며, 국민소환의 투표 청구권자, 청구요건, 절차 및 효력 등에 관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
. 1조 제1항과 제2항에 근거하여, 국민주권에 맞는 입법권(국민발의 및 국민투표)과 국민소환제 실현
 
.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제와는 별도로 대통령이 그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경우에 관해 현행 헌법 제65조가 명시한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및 헌법 제111조 제12호가 명시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권한 존치
 
. 3항의 경우, 국회 처리 원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경우와, 국민발의에 의해 수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경우, 서로 다른 국민투표 절차를 거침. 수정안은 제1항에 규정하는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원안은 국민발의 절차 없이 국민투표 제안 절차를 통해 처리
 
. 개정안 제26조 제5항은 현행 제26조 제1항과 제2항을 묶은 것임
3장 국회
 
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3장 국회
 
40입법권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권한이며 국회에 위임할 수 있다.
. 1조 제1항과 제2항에 근거하여, 국민주권에 맞는 입법권 실현 및 국회의 권한 조정
3장 국회
 
52조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3장 국회
 
52조 국회의원, 정부, 국민은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 1조 제1항과 제2항에 근거하여, 국민주권에 맞는 입법권(국민발의) 실현
10장 헌법개정
 
1281항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10장 헌법개정
 
1281항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또는 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국민의 발의로 제안된다.
. 1조 제1항과 제2항에 근거하여, 국민주권에 맞는 입법권(국민발의) 실현
10장 헌법개정
 
130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헌법개정안이 제2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
 
10장 헌법개정
 
130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단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민의 발의로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국회 의결 없이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헌법개정안이 2항 또는 제3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
. 1조 제1항과 제2항에 근거하여, 국민주권에 맞는 입법권(국민발의 및 국민투표) 실현

   분명한 것은 최근 신당 창당 세력들이 주창하는 ‘양당 구도 혁파’는 그 양당에서 자기 복제된 정치인들의 창당과 원내 진출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을 통한 과두제 청산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선거 시기 국민에게 어떤 정치적 주장을 강조해서 제시해야 할 것인가? 
   첫째, 정의당은 소위 부패한 양당 정치 청산은 신당이 아닌 국민발의와 국민소환을 통한 ‘국민 주권 실현 개헌’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것을 위해 정의당은 개헌에 필요한 의석수가 필요하다는 구차한 주장이 아니라, 국민 주권 개헌을 주도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정당이 되겠다는, 이를 위해 지지해달라는, 그리고 다른 정당들도 이를 약속하도록 주장하는 것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의당은 국민 주권 실현 개헌과 함께 정의당의 사회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의회에서의 입법 활동은 물론, 국민 발의에 필요한 직접 민주주의 정치를 지원하고 제도적 개선에 전력투구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의당은 국민 주권 실현 개헌이 각 지역(광역, 기초, 그리고 마을)에서 주민 주권을 실현하고, 지역의 고질적이고 토착화된 문제, 그리고 인구 감소·초고령화·투기적 도시화·지역 경제 위기·생태 위기·돌봄 및 이동권 문제 등 당면한 위기를 지역 스스로, 지역과 지역 및 지역과 중앙 정부의 협력을 촉진하고 이끌기 위해 지역정당 활동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활성화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을 주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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