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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10/11 합본호 1. 거대한 사회변화와 '위기의 정치', 그리고 22대 총선

  • 입력 2024.01.25 13:48      조회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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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거대한 사회변화와 위기의 정치, 그리고 22대 총선-김병권.pdf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장

- 2019~2022년까지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정의당의 기후정책과 그린경제, 디지털경제 정책 설계를 책임졌다. 사단법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으로 8년 동안 사회경제정책을 설계했고, 서울시 혁신센터장과 협치자문관 책임을 맡아 혁신과 협치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기후를 위한 경제학』,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그린뉴딜』, 『사회적 상속』 등이 있다.

 




1. 세계 선거의 해, 하지만 어두운 민주주의 전망

   한국은 2024년 4월 22대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2024년은 글로벌 선거의 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인구의 40% 이상, 전 세계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1월 대만 선거를 시작으로 아시아에서는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란 등에서 선거 일정이 잡혀 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중심으로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과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이 해당한다. 유럽의 경우 영국에서 다시 노동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유력한 가운데, 푸틴의 집권 연장이 확실시되는 러시아 선거도 있다. 이 밖에도 오스트리아, 벨기에,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핀란드에서 총선이 있고 특히 6월에는 유럽 유권자 4억 명 이상이 720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유럽의회 선거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 가디언지는 2024년 선거를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에 비유하여 ‘민주주의 슈퍼볼(Democracy’s Super Bowl)’이라고 표현했다.(주 : “Democracy’s Super Bowl: 40 elections that will shape global politics in 2024”. 가디언 2023년 12월 17일 자.)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선거는 11월 5일에 치러지는 미국 제60대 대통령 선거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대선을 ‘아마겟돈 선거’라고 표현했는데, 전직 대통령 트럼프는 여러 건의 형사 재판이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후보 경선에 가장 유력한 후보일 뿐 아니라, 현재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다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코노미스트, 2023).

   문제는 세계역사상 최대의 인원이 참여하는 선거가 민주주의 향상을 위한 축제가 될 가능성보다, 민주주의 후퇴를 상징할 개연성이 더 높다는 점이다. 가디언지는 “미국인 10명 중 약 7명은 최근 몇 년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답했고, 프랑스에서는 73%가 이에 동의”했고 “영국에서는 10명 중 6명 이상이 5년 전에 비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최근 선진국들에서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여론을 지적했다. 이를 반영하듯 2024년 6월 유럽선거에서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슬로바키아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극우 민족주의 포퓰리즘, 반이민, 외국인 혐오 정당이 더 많이 진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처럼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노동당의 집권이 유력시되는 경우조차 현재의 노동당은 이전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키어 스타머(Keir Rodney Starmer) 경이 이끄는 노동당은 경제성장에 집착하며 이전과 달리 개혁적 경향이 많이 퇴색된 상태다.

   특히 미국에서는 정치혐오 현상이 극단적일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23년 9월에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치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미국인들의 65%는 항상 또는 대개 피로감을 보인다고 답했고, 55%는 보통 분노가 치민다고 답했다. 또한, 겨우 10%가 종종 희망이 떠오른다고 답했고, 4%만이 열광을 한다고 답했다.(주 : Pew Research Center. 2023. “Americans’ Dismal Views of the Nation’s Politics”.) 또한 정치의 현재 상황을 표현해 주는 용어로 분열된(divisive)을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서 부패한(corrupt), 엉망진창인(messy), 나쁜(bad), 극단화된(polarized), 혼란된(chaos) 등과 같은 부정적인 형용사들이 뒤를 이었다. 

 [그림 1] 미국인들은 정치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인가? (출처: 퓨리서치센터)


   정치불신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도 미국인들이 보이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서 밀리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총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2024년 새해 시점에서도 선거제도는 여전히 불확정된 상태이고, 여당과 야당에서 본격적인 분열의 조짐이 가시화되는 등 지극히 혼란스러운 정치지형에서 한국 유권자들도 정치에 긍정적인 점수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심각해지는 불평등이나 점점 벼랑 끝으로 다가서는 기후위기, 지정학적으로 아찔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전례 없는 어려움 속에서 정치권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는 정치력을 보여주는 것은 고사하고, 미국 못지않게 양극화를 부추기는 팬덤정치가 더 심해지는 상황이다. 

   정치권 내부에 갇힌 협소한 정치, 팬덤에 기대는 극단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서 2024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가 처해있는 복잡한 내외적 환경은 무엇이고 어떤 중대한 과제가 앞에 놓여있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 정치권이 헤어나지 못하는 좁은 공론장을 넘어, 정말 유권자들의 삶에 장?단기적으로 영향을 줄 굵직한 사회경제적 의제들을 파악하고 이를 정치권이 제대로 수용해서 해법을 마련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민심을 읽고 이를 공론장에 제대로 펼쳐 놓을 때 유권자들은 선택만 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 정치인들이 만든 공론장은 민심 자체와 무관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섞어놓은 혼잡한 공론장이다. 그 때문에 한국의 유권자들은 스스로 정책과 의제의 공론장을 만들어 거꾸로 정당과 정치인들을 시민의 공론장으로 불러내야 하는, 쉽지 않은 일까지 떠맡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유권자의 처지에서 역대 가장 피곤하고 어려운 선거가 될 2024년 총선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지 않기 위해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내외적 환경변수들은 무엇일까? 시민들은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몇 가지 논점을 짚어보자. 


2. 저무는 글로벌 시대, 불리해진 대외환경

   21세기 지배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을 부르는 용어는 ‘신자유주의’였다. 1945년 2차 대전 후, 선진국 자본주의 황금기를 일구어냈던 '규제적 자본주의'가 1970년대 물가상승과 불황이 함께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사실상 무너지자 그 자리를 대신한 사회경제 시스템을 신자유주의라 불렀다. ‘규제 풀린 자본주의’로 잘 알려진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특징은 경제의 금융화, 자본의 세계화, 주주자본주의, 경제에서의 작은정부 등 몇 가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서 시작되었지만,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신자유주의 기조는 이들 나라에서 지속되었고,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 아래 한국을 포함하는 다른 나라들로 번져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의 약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났지만, 기본적으로는 2010년대에도 규제 풀린 자본주의 기조는 변치 않고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때문에 여전히 선거국면에서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단골 정책 메뉴인 규제완화, 민영화, 감세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책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과연 신자유주의 프레임 안에서 정책대결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우선, 지금의 사회경제가 금융경제이고 금융 지배하의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라고 말할 수 있나? 최근 전통적인 투자은행-사모펀드가 전면에서 나서서 주주행동주의를 선도해 왔던 패턴과 다른 양상이 포착된다는 징후가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거대 자산운용사가 주도권을 쥐고 거대펀드들을 끌어들여 대규모 자본을 집중한 후, 상장주식 전체를 '보편적으로 소유'하는 새로운 패턴의 <자산운용사 자본주의>가 등장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벤자민 브라운(Benjamin Brown), 아드리엔 불러(Adrienne Buller) 같은 경제학자들이 미국이나 영국 기업들의 지분소유실태를 분석하면서 내놓은 주장이다(Buller, Adrienne. 2022; Braun, Benjamin. 2022). 이들은 대규모 자본을 동원하여 주요 상장 기업 거의 전체에 투자하는 식으로 다각화되어 있어서 특정 개별기업의 재무성과에 덜 영향받고, 특정 기업 투자수익률보다는 전체자본 규모에 비례하는 수수료에 의존한다. 블랙록·뱅가드·스테이트스트리트 등 이른바 ‘빅3’의 S&P500 기업들의 전체 지분 1/5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자본시장에서 막강한 세력으로 부상했다(Braun, Benjamin. 2022). 이들은 ESG에 관심을 보인다고 공표하지만, 실제로는 과거 주주행동주의와는 다르게 개별기업에 대해 적극 개입하지 않는 수동적 형태를 보인다. 아직 이들의 행동 패턴이 과거 금융자본과 어떻게 결정적으로 다른지는 덜 알려졌지만 주목해야 할 변화다. 

   둘째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가장 막강한 세력으로 등장한 기업들은 디지털경제의 확산을 등에 업고 급격하게 세력을 키운 구글, 아마존, 메타, 넷플릭스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다. 이들은 19세기 도금시대에 버금가는 독점적 경제권력을 기반으로 경제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인공지능기술의 부상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 2010년대부터 선도적으로 디지털 독점과 이들의 개인정보 침해를 우려했던 유럽이 규제체제를 도입하고 중국 역시 디지털 플랫폼의 과도한 성장에 견제를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시장 자율에 맡겨두었던 미국조차 플랫폼 규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위력을 꺾지는 못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디지털경제 확대와 독점화는 노동의 양상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팀 우, 2020). 

   셋째로, 201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5G, 반도체 기술을 둘러싸고 패권경쟁을 벌이더니 코로나19 확산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양국 간의 전면적인 기술전쟁, 더 나아가 글로벌 경제의 디커플링으로 번지고 있다. 당사자들은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표현으로 완화하고 있지만, 글로벌 공급망을 분리하려는 미국, 그리고 유럽까지 가세한 움직임은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가고 있고, 첨단기술을 넘어 범용기술 분야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버지니아 인터넷 허브 – SWIFT라는 핵심 금융망 - 반도체 특허와 설계 S/W, 핵심 장비라는 글로벌 상호의존성의 급소(choke point)를 쥐고 있는 미국이 이를 무기화시켜 중국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중국은 이를 만회하고자 러시아, 이란 등과 더 밀착하고 있다(Farrell Newman, 2023). 역으로 한국과 일본, 대만까지 미국으로 경도되고 있다.(주 : “"올해 대만의 대외투자, 中은 12%로 급감↓·美는 37%로 급증↑". 뉴시스 2023년 12월 29일 자.) 그 결과 사실상 WTO 체제는 소리 없이 무력화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자국 산업 보호주의가 과거와 달리 크게 득세하고 있고, '산업정책'이라는 지렛대를 통해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큰 정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확실히 국가가 산업을 의도적으로 키우고 개입하는 경향은 뚜렷하다. 

   넷째로, 기후위기 심화와 함께 2019년부터 글로벌 의제로 부상했던 그린뉴딜은,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일명 IRA법)으로, 유럽에서는 유럽 그린딜과 녹색산업계획으로 구체화하고 있고, 중국과 인도 등을 포함해서 세계는 녹색산업정책을 통해 느리지만 ‘탈-탄소 산업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 대응이 에너지체제 전환과 산업체제 전환을 통해 경제 시스템의 강력한 변수로 등장하게 된 것인데, 일부에서는 ‘탈성장’ 캠페인이 일어나는 등 앞으로는 경제와 지구생태계의 관계 자체를 문제 삼거나 성장체제에 비판적인 견해가 확산될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은 변화는 기존의 글로벌 신자유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특징과 국면을 만들어 내고 있고, 한국의 사회·경제적, 정치·외교적 향방에도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기술전쟁과 글로벌 공급망의 디커플링이 심화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생산구조에 깊게 결합한 한국경제를 뒤흔드는 중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정치·외교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한-미-일 편향을 보이면서 대중무역의 급격한 퇴조와 대미 투자와 무역 확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수출은 상당 기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더욱이 다른 나라들처럼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변화된 대외적 환경에 대처하려는 모습도 아직 없는 실정이다. 


3. 정치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기후위기

   변화하는 대외환경에서 대응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미?중 갈등이나 산업정책 부재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상당히 광범위한 전환과정에 들어섰고, 이를 위한 대대적인 녹색투자와 녹색전환을 위한 제도변화를 추진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녹색산업정책 부활과 국제적으로는 탄소국경조정, ESG 의무공시 제도화와 철강 등에 대한 상계관세 도입 등 이른바 ‘녹색무역장벽’이 공공연히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러한 변화 과정에 여전히 매우 수동적인 실정이다. 

   한편 2023년은 뚜렷하게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는 기후위기가 온도상승 한계선으로 유엔이 설정한 1.5°C에 접근하고 있음을 확인한 한 해였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와 호주국립대학교 등의 국제연구팀이 2023년 9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9개의 '행성경계' 중 6개가 무너졌다. 생물다양성 손실과 담수가 한참 전에 경계를 돌파했으며 기후변화도 경계선을 넘었다. 생지화학의 경우 과도한 비료 사용으로 토지 및 해양 내 질소와 인이 급증하여 경계를 넘었고, 화학오염은 2022년에 경계를 넘었다. 대기오염의 경우 남아시아와 중국 등 일부 지역에서는 경계치를 이미 초과하고 있으며, 바다 또한 급격히 산성화되고 있어 해양산성화 또한 조만간 경계를 넘을 전망이다. 특히 지난 1년 평균 기온이 1.3도를 넘었다는 클라이미트 센트럴(Climate Central)의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는데, 슈퍼 엘리뇨가 정점에 이를 2024년이 1.5도를 넘는 최초의 해가 될지 주목된다(Climate Central. 2023). 1.5°C 경계선 추월이 이제 5~6년 앞으로 앞당겨진 지금, 얼마나 빨리 다시 1.5°C 이하로 끌어내릴 수 있을지 그리고 1.5°C를 추월했을 때 예상했던 재난에 어떻게 대비할지 정치적 계획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그림 2] 지난 100년 동안 육지와 바다의 온도변화 편차(출처: 미국해양대기청)



   기후위기의 위험이 현실화하는 데 더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화석에너지 가격변동까지 극심해지자 한편에서는 탈-탄소 생태전환을 서두르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동시에 여기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강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2023년 11월 30일 열렸던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화석연료 퇴출과 관련된 갈등이 하나의 사례이다. 2024년에는 6월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와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이른바 ‘그린래시(Greenlash)’라고 하는, 생태전환에 대한 반발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커질지 우려되기도 한다. 

   한국은 ‘탈-탄소 생태전환’의 방향이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핵발전’으로 경도되어 글로벌 대세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문제다. 그나마 COP28에서 130국이 참여한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3배, 에너지효율 2배 향상 서약’에 한국이 참여했으므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의 방향을 틀 수 있는 정치적 모멘텀이 2024년 총선에서 이뤄질지 주목해야 한다. 특히 2024년은 역사상 처음으로 재생에너지가 석탄화력발전을 추월하는 역사적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코노미스트, 2023).

 [그림 3] 온실가스 순 제로 달성을 위한 핵심 전략(출처: IEA)


   한편, 많은 국제전문가는 미국-중국 사이의 정치?경제적 갈등의 확대,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상징되는 지구 곳곳의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해법으로 기후위기 공동대응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도 2024년에 주목해 볼 만하다. 위험천만한 국면으로 치닫는 글로벌 분쟁에서 오히려 희망의 대안으로 기후 공동대응이 작동하겠느냐는 것이다.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는 이렇게 미-중 갈등 해법을 얘기한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런 접근법이 가능하도록 분위기가 무르익은 분야는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와 세계보건과 사이버 보안이 바로 그것이다. 이 분야들은 두 나라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서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적인 쟁점이다”(스티븐 로치. 2023). 미국 정치학자 파렐과 뉴먼도 미국 등 강대국들이 국가적 힘과 규제력을 상대 국가를 압박하기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탈-탄소 경제'를 지향하는 곳에 쓰자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 다국적 기업들을 글로벌 공동으로 압박하여 탈-탄소화 방향으로 유도하고, 탈-탄소 경제를 향한 건전한 글로벌 경쟁 구도를 만들며, 탄소집약 산업에 집착하는 국가들에 탄소국경조정 등 녹색관세를 부과하여 페널티를 주는 등 유럽에서 시작한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Farrell Newman. 2023). 과연 한국에서도 기후위기가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에너지를 한 곳으로 단합시키는 계기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4. ‘사회붕괴’ 시대의 정치

   2024년 총선은 확실히 2020년 총선에 비해서 매우 다른 환경에서 치러질 것이다. 2020년 총선은 압도적으로 코로나19라는 요소가 지배하는 선거였고, 위성정당 논란 가운데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당이 비교적 안정적인 결집력을 보유하면서 치러진 선거였다. 또한 2020년 선거는 부동산 거품이 끓어오르는 가운데 치러진 선거였으며, 아직 미?중 갈등이나 글로벌 지정학이 덜 불안정하던 시기의 선거였다. 또한 2020년 선거는 주변적이나마 기후대응이 ‘그린뉴딜’이라는 단일한 정책적 대안으로 모아졌고 실제 총선 이후 정부 정책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2024년 국내외 여건은 크게 달라졌다. 코로나19처럼 특정 이슈가 지배하는 선거는 아닐 것이다. 정치세력도 주요 양당부터 분열이 시작되고 있다. 이미 2022년 후반기부터 가라앉기 시작한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추세는 ‘주요 위성도시 서울시 편입’이라는 여당 공약에도 불구하고 이어질 전망이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지정학은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경제의 전망을 매우 불확실하게 하는 상황이다. ‘핵발전 중심’으로 왜곡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현재 한국 정치에서 이미 갈 길을 잃고 있다. 뉴타운 공약이 득세했던 2008년 총선처럼 주요 위성도시 서울시 편입 공약을 핵심으로 대규모 개발 공약이 판치는 선거가 될지,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를 열어가는 새로운 정치적 국면을 열지는 여전히 알기 어렵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2020년 코로나19를 정점으로 이른바 ‘피크 코리아’를 지나 ‘사회붕괴’로 접어들 조짐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고물가·고환율·고금리라는 사회경제의 증상만 보고 복합위기를 말했지만, 한국은 이런 수준이 아닌 것이다. 하와이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고문 브래드 글로서먼(Brad Glosserman)은 지난 2010년대 아베 정부 시기가 일본 국력이 최정점에 달한 시기이며, 일본은 더 이상 미래의 도전에 적응할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본 시민들이 “국가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전면적인 변화를 감수하는 것을 기피하는 모습” 즉 무기력함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브래드 글로서먼. 2020). 하지만 정작 미끄러질 위험에 처한 것은 한국이 아닐까? 한국은 2021년에 유엔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문화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국가로 올라섰다. 하지만 최근 크게 변화된 내외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이야말로 정점에서 추락할 위험을 가장 크게 가지고 있다. 

   심지어 기후붕괴와 사회붕괴가 악순환되는 시나리오가 한국에서 벌어질 개연성도 있다. 흔히 잘못 알고 있듯이 사회붕괴나 기후붕괴는 한 번의 갑작스러운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붕괴는 당연히 잘 작동할 것이라고 간주되는 사회의 하부시스템들에서 이상이 생기고 덜컥거리기 시작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후붕괴도 마찬가지다. 팬데믹처럼 일시적인 큰 충격도 배제하지는 않지만, 안전한 영역이라고 간주되던 것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기후붕괴는 시작된다(세르비뉴 스테방스, 2022). 더욱이 사회붕괴가 시작되면 기후붕괴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 급격히 감소한다. 반대로 기후붕괴는 사회붕괴를 재촉한다. 그러면 사회에서도 자연에서도 우리의 삶을 상식적으로 뒷받침해 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믿음들이 하나둘씩 깨져나간다. 

   특히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 문제는 사회붕괴의 조짐을 알려주는 가장 강력한 지표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이었고, 2023년은 그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인류사에서 유래가 없는 수치다. 통계청은 2025년을 저점으로 다시 출산율이 상승으로 반전되리라 전망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거가 불확실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한국 수준의 초저출산은 사회가 적응하기 매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것이다. 급격한 고령인구비중 증가, 빠른 생산활동인구 감소, 지방소멸의 가속화, 세대 간 유권자 수의 급격한 불균형 등 사회가 적응하기에 너무 빠른 속도의 출산율 하락은 심각한 제도 불균형을 초래하고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

 [그림 4] 한국의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장기 추이(출처: 통계청)


   한국 정부가 뒤늦게 지난 2023년 말 “저출산 문제는 우리가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인식하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지는 알기 어렵다. 틀림없는 것은 2024년 총선에서 저출산 대책과 지방소멸 방지 대책이 맞물리면서 다양한 돌봄공약과 지방살리기 공약 등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살펴봐야 할 사실이 있다. 그동안 미디어나 공론장에서는 한국이 지난 20년 동안 “저출산 대책을 위해 300조 원가량을 투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라는 식으로, 엄청난 정책적 노력을 했는데도 마치 백약이 무효인 것처럼 정책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내러티브를 진실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행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여전히 한국의 가족 관련 정부지출이나 육아휴직 실 이용기간 전부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OECD 평균 차원의 정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말해준다. 수백조를 쏟아부었는데도 백약이 무효였던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선진국 수준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급격한 출산율 하락, 이에 동반한 지방소멸 가속화를 방치했던 것이다. 

 [그림 5] 우리나라 출산율 변화의 정책적 요인(황인도 남윤미 외. 2023)




5. 기득권 이익 집착을 넘어 큰 정치로 가는 조건

   지금까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거시적 차원에서 글로벌 사회경제, 정치적 상황의 주요 변화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부동산 거품 붕괴나 인구감소를 포함하여 한국의 내부적인 변화 요소들도 확인해 보았다. 기후위기나 글로벌 지정학의 변동, 공급망의 재편과 각국의 산업정책 부활, 사회붕괴로 이어질 급격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가속화 등 굵직한 이슈들이 정치적 해결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는 기득권 양당 사이의 좁은 이해관계의 함정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해결을 기다리는 중대한 사회적 의제들이 한국의 정치적 공론장에서는 철저히 외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처럼 유권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낳게 만들고 정치 공론장은 각 정치세력의 협소한 이해관계나 극단적 팬덤에 이끌리는 식으로 더욱 유권자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다. 위기와 붕괴의 시대에 미국과 한국에서 가장 큰 위기는 정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총선을 계기로 이런 악순환을 끊고 거대한 사회적 도전과제들이 제대로 정치적 공론장에서 다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정치의 방향을 돌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향해야 한다. 사회를 품는 ‘큰 정치’로 정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고 ‘큰 정치’로 전환하기 위해 정치가 ‘위기를 다루는 정치’ 즉 ‘위기의 정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위기를 다루는 정치로 바뀔 때 정치의 위기도 벗어날 수 있다.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정치세력이나 새롭게 정치에 뛰어들고 있는 정치 지망생들은 기존 정치에 줄서기에 앞서 세상의 변화를 먼저 읽고 사회붕괴의 위험을 체감하려는 노력부터 할 필요가 있다. ‘영구적 위기’, ‘다중위기’ 시대라고 불리는 전례 없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맞으며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는 미래를 전망하고 대비하는 지혜를 얘기했다. 첫째는 “예상치 못한 일을 예상하는 법을 배우라(learn to expect the unexpected)”라는 것이다. 통상 정치가나 정책 결정자들은 직전에 일어났던 사회정치적 위기에 너무 매달리면서 다음 대책을 세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위기는 기존 위기와는 전혀 다른 원인 때문에 다른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전 위기를 참조해 세웠던 대책은 쓸모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지자, 각 국가는 외환보유고를 쌓는데 몰두했지만, 다음에 터졌던 경제위기는 외환위기와는 원인과 양상이 다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는 것이다(Roach, Stephen. 2023).

   스테판 로치가 제안하는 두 번째 지혜는 “하나의 위기는 다음 위기를 낳는 경향(One crisis tends to beget the next)”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문제에 대한 해법이 종종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로 글로벌 자본시장이 침체되자, 미국을 포함한 각 국가의 중앙은행은 제로에 가까운 정책 금리라는 기적의 약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도한 금리인하 결과 자산 거품이 과도해져 버렸고 그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지금은 반대로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빠르게 금리인상을 했지만, 이것이 가계부채 위험 등 새로운 불안 요소를 증폭시키고 있다(Roach, Stephen. 2023). 

   어쩌면 21세기에 “위기는 이제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이 되었다(crises are now the rule, not the exception)”는 스테판 로치의 진단은 하나의 상식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2024년에도 사회?경제적, 정치적 충격은 계속될 것이며, 정치의 임무는 다음 충격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정치적으로 정해진 정책의 방향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회복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복잡한 환경변화 속에서도 불평등과 기후위기 심화 대처라는 사회의 전략적 과제 대처를 집요하게 책임지려는 정치의 태도는 더 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정치는 국민의 신뢰 위에 설 때 각종 팬덤이나 이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참고 문헌]

- 브래드 글로서먼. 『피크 재팬,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 - 팽창을 향한 야망과 예정된 결말』 김영사, 2020. 
- 스티븐 로치. 『우발적 충돌 - 미국과 중국은 왜 갈등하는가』 한국경제신문, 2023. 
- 이코노미스트. 『2024 세계대전망』 한국경제신문, 2023.
- 팀 우. 『빅니스 –거대기업에 지배당하는 세계』 소소의책, 2020.
- 파블로 세르비뉴, 라파엘 스테방스. 『붕괴의 사회정치학』 에코리브르, 2022.
- 한국은행. 「경제전망(2023.11월)」. 2023. 
- 황인도, 남윤미 외.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한국은행, 2023. 

- Archer, Matthew. “Governing through ESG and the green spirit of asset manager capitalism”. Economy and Space 1–17. 2023. 
- Bradford, Anu. Digital Empires. Oxford University Press, 2023. 
- Braun, Benjamin. “Exit, Control, and Politics: Structural Power and Corporate Governance under Asset Manager Capitalism”. Politics & Society, Vol. 50(4) 630–654. 2022.
- Buller, Adrienne. The Value of a Whale: On the Illusions of Green Capitalism.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22. 
- Climate Central. “The hottest 12-month stretch in recorded history”. 2023. 
- Farrell, Henry. Newman, Abraham. Underground Empire: How America Weaponized the World Economy. Henry Holt and Co. 2023. 
- Roach, Stephen. “The Myth of the Unprecedented”. Project Syndicat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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