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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정치개혁선거제도 개선

#II-4. 2023년 지금 여기에서 대안의 선거제도 찾기

  • 입력 2023.03.16 17:29      조회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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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4. 2023년 지금 여기에서 대안의 선거제도 찾기

 

김준우 (변호사)

- 2017년부터 지금까지 사회운동의 정치개혁네트워크인 ‘정치개혁공동행동’ 사무국에서 활동해오고 있으며, 현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정치개혁TF 간사를 맡고 있음. 2020년에는 정의당 혁신위원을 지내기도 함. 본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정치개혁공동행동’의 공식 입장은 아님을 밝혀둠. 



1. 2023년 공직선거법 개정의 가능성

  2020년 총선 이후 한국사회에 선거제도 개혁의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치권, 학계, 사회운동 모두 몇 년간 정치적 침묵의 기간이 있었다. 2020년 패스트트랙을 통한 공직선거법 개정과정과 미래한국당·더불어시민당 등 위성정당 창당사태에 대한 평가는 무수히 존재했지만, 그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토론이 진행되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여전히 2020년의 평가 이후의 전망에 관한 토론이 충분치 못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 구축이라는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음에도, 쉽사리 새로운 선거제도 개혁의 전망이 적극적으로 제출되지 못했던 점은 진영별로 2020년의 평가가 나뉜 점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향후 선거제도 개혁의 진행 방향과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일종의 비관주의에 기인한 것이었다. 
  2020년 위성정당 사태 이후 정치개혁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의 ‘재개정’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미래다. 무엇보다 거대 양당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현행 그대로 두기에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행 제도가 유지되고, 위성정당 재창당이라는 시나리오를 점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는 정치적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실제 거대 양당에게 그다지 큰 실익도 없다.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재창당할 경우 공직선거법 개정이라는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국민적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제 공천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모 정당의 지도력이 제대로 관철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정치적 위험도 적지 않다. 
  더 나아가 위성정당 재창당을 강행해서 기존의 소선거구-병립형 비례대표제 조합으로 실질적으로 회귀하는 것이 거대 양당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만도 아니라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기존의 선거제도는 불 비례성이 너무 큰 제도라서 소수정당에게 불리했지만, 사실 제2당에도 심각한 패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총선의 경우 국민의힘 계열의 보수정당은 지지율에 상응하는 의석점유율을 가져갔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율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특히 수도권 지역을 보면, 국민의힘은 정당지지율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의석을 획득했다. 21대 총선 당시 민주당은 서울 41석, 인천 11석, 경기 51석을 차지했는데 국민의힘은 서울 8석, 인천 1석, 경기 7석을 차지했을 뿐이다. 현시점에서 어느 정당도 총선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거대 양당에도 충분히 유효한 정치적 보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관건은 2023년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정은 상수로 두되, 그 개정의 실내용이 개혁적 방향으로 되도록 개입하기 위한 계획과 실천이다. 현시점에서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은 어떤 관점의 안을 낼 것인지, 그리고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이 마련한 새로운 대안에 대하여 국민적 공감대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2.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갖는 구조적 난점

  2020년 위성정당 사태에 대한 가장 손쉬운(?) 대응방안은 ‘위성정당 방지법안’을 마련하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시행하거나 더 나아가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MMP : Mixed-member proportional representation)가 진보진영에서 합의했던 최선의 안 또는 유일한 안이었는지부터 먼저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 도입이라는 정치적 구호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에서 꾸준히 제기된 안이었고 학계나 사회운동의 상당한 지지를 받은 안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이나 학계, 진보정당에서 독일식만 고집한 적은 없고,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실시 중인 다양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늘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굳이 여타의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중에서도 독일식(주: 물론 엄밀하게 진보정당 등에서 추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명부가 전국단위라는 점에서 독일식이라기보다는 뉴질랜드와 더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독일식 제도에 관한 우려는 위성정당 문제보다는 초과의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집중되었다.)이라고 불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우선적으로 제기하거나 논의한 것은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시행되어온 선거제도인 소선거구제를 근본적으로 손보기가 어렵다는 정무적 판단이 더 큰 이유였다. 
  관건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게 될 때 위성정당이라는 제도적 취약점을 타개할 방안의 실효성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열린 각종 토론회에서도 위성정당 창당의 가능성과 문제점이 전문가 그룹에서 지적된 바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설마’라는 심정으로 이에 대한 제도적 해결방안이나 방지책을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보다 앞서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가 위성정당을 통한 제도 왜곡의 사례가 발생하면서 제도를 폐기한 해외 사례로는 알바니아, 레소토, 베네수엘라가 흔히 거론된다. 2005년 총선에서 위성정당과 유사한 문제를 겪었다고 알려진 알바니아의 경우 2008년 개헌과 선거제 개편을 통해서 기존의 지역구 100석, 비례대표 40석을 폐지하고, 12개의 권역으로 나눈 전면적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전환하였다. 
  레소토도 2007년 총선에서 위성정당 문제를 겪으면서 2012년 선거제도를 바꾼 경우다. 레소토는 종전의 1인 2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1인 1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꿨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유사한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레소토의 경우 지역구 지지율에 기반을 두어 각 정당의 할당의석수를 계산하고, 지역구 당선자 숫자를 차감한 인원을 비례대표의석에서 보충한다. 즉 비례대표제가 병립형이 아니라 조정의석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레소토의 현행 선거법은 지역구 80석과 비례대표 40석을 두고 있는데, 2017년 총선의 경우 제1당(All Basotho Convention)이 40.52%의 지지율을 얻은 상황에서 지역구에서 47석이 당선되자 비례는 1석만 배분되었다. 반면에 지역구 표에서 총 8.95%의 지지율을 획득한 제3당(Lesotho Congress for Democracy)의 경우 지역구에서는 1명만 당선되어서 비례에서는 가장 많은 10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2022년 총선에서도 1당이 된 Revolution for Prosperity 당은 38.89%의 지역구 표를 얻고 57개 선거구에서 승리했는데 비례대표의석은 1석도 배당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2000년과 2005년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지역구 60%. 비례 40%)를 채택했다가, 2010년 총선부터는 중대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하였다. 다만 베네수엘라는 2010년부터 병립형을 채택하면서도 비례대표 비율이 한국보다 현저히 높았다. 베네수엘라에서는 2010년 총선과 2015년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은 2:1 수준을 유지했고, 2020년 총선에서는 지역구 133석, 비례대표 144석으로 비례대표 비율이 더욱 상향되었다. 
  결국, 알바니아와 레소토의 경우 비례성을 보장하겠다는 문제의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제도개혁을 한 경우라고 평가할 수 있고,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비록 병립형으로 전화했지만, 비례대표 의석이 전체의석의 30%~50% 선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비교해서는 훨씬 비례성이 높다. 
세 국가의 사례는 위성정당 사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도 위성정당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선거제도로 위성정당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킬 것인지를 놓고 원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는 몇 개의 위성정당 방지법안이 발의된 상태인데 해당 법안 내용으로는 실질적으로 위성정당을 방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강민정 의원안(의안번호: 2115991)과 이탄희 의원안(의안번호: 2118586)의 경우 비례대표 추천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정당의 기호와 정당명을 정당투표용지에 표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데, 이미 거대 양당이 성공적으로 위성정당 전술을 성공시킨 상황에서 이는 특별히 실효성이 있는 방안이라고 하기 어렵다. 민형배 의원안(의안번호: 2114624)의 경우 50% 이상의 지역구 후보를 추천한 정당은 의무적으로 50% 이상의 비례대표 명부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경우 그 실효성은 뒤로하더라도 위헌성 논란에서도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현재 발의된 법안보다 조금 더 실효적인 몇 가지 방안이 더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논의되고 방안으로는 1) 봉쇄조항의 조건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반드시 두도록 하는 방안(김두관 의원안 (의안번호 2117155), 2) 독일의 바이에른 주의회 선거처럼 지역구득표와 정당득표를 합산한 숫자로 정당별 배분의석을 정하여 위성정당의 출현을 제어하는 방안(김종갑, 허석재,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논의와 대안의 모색”, 입법?정책보고서 Vol. 54, 국회입법조사처), 3)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복입후보 허용 내지 석패율제를 도입하여 위성정당 창당유인을 감쇄하는 방안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들은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앞서 언급한 법안들에 비해서는 실효적이지만 여전히 약점이 존재한다. 먼저 석패율제 등을 도입하는 때도 실제 선거승리가 예상되는 거대정당의 경우 어차피 비례의석을 획득하기 어려우므로 석패율제가 무의미해질 수 있으므로 위성정당 창당유인이 완전히 봉쇄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봉쇄조항에 지역구 당선자를 두도록 하는 것은 봉쇄조항 상향의 의미를 담기 때문에 진보진영에서 동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제로 손쉬운 무력화 방안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위성정당 지역구 후보가 등록한 영남지역에 무공천을 함으로써 위성정당의 봉쇄조항 요건 충족을 도울 수 있다. 끝으로 지역구 투표와 정당투표를 합산하는 바이에른 주의회 방식의 경우 기존의 1인 1표를 위헌결정 내렸던 헌법재판소 결정취지에 비추어 보면, 위헌성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지역구에 일정 규모 이상의 후보를 공천한 정당이 비례대표 명부에 공천을 내지 않는 경우 선거보조금을 일정 비율별로 감액하는 ‘디센티브’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유효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경우도 약점이 존재한다. 모정당이 공천을 선거보조금 수령을 위해서 비례대표도 모두 공천하되, 지지층에는 위성정당에 투표하라는 정치적 시그널을 보낼 시나리오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하여, 정당들에 위성정당 창당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긴장을 확보하는 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뉴질랜드의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국민투표를 통해서 도입된 만큼, 위성정당을 창당하기 어려웠던 정치문화적 조건이 있었던 것이 누차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뉴질랜드와 같은 방안 역시 지금 당장 한국에서는 실현되기 쉽지 않은 만큼, 앞에서 서술했듯이 위성정당과 그 방지를 위한 대안들의 한계라는 문제가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주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만 고수하기보다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제도를 대안으로 채택하는 것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가치와 필요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3. 새로운 대안을 위한 모색

   1) 선거제도 개혁의 원칙
  선거제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선거구별 의석수, 의석할당방법, 선거구 획정 원리 및 크기, 당선자 결정방식, 진입장벽 등이 꼽힌다. 선거제도가 이렇게 복합적 요소로 구성되기 때문에 일견 유사해 보이는 각국의 선거제도는 실상 미묘하게 차이들이 존재하며 가장 좋은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선거제도 개혁에서 가장 큰 원칙은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고, 이에 기초하여 비례성과 대표성을 확보 및 증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표의 등가성 확보는 평등선거를 선언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 기초할 때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지만 지역선거구 간 인구편차가 2:1까지 허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한 개혁과제라고 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확보하자는 구호는 실제 정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차이가 거의 없으며, 사표가 적은 선거제도를 도입하자는 의미다. 대표성은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여 유권자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각국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지역이나 계층, 성별, 이념적 대표성 등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선거제도는 흔히 영미식 선거제도라고 할 수 있는 다수대표제와 북유럽식으로 일컬어지는 비례대표제 그리고 양자의 절충형인 혼합형, 그리고 기타 예외적인 선거제도로 분류되곤 한다. 이 가운데 비례대표제는 정당명부형 비례대표제와 단기이양식 중대선거구제로 나뉘며, 혼합형 선거제도는 지역선거구+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두 개로 나뉘는 것이 일반적이다.(주: https://aceproject.org/ace-en/topics/es/esd/esd01/default)
  
   2) 한국에서의 순수 다수대표제의 위헌성
  최근 국민의힘에는 비례대표제를 폐기하고 도시지역에는 단기비이양식 중선거구를, 농산어촌 지역에는 소선거구를 병행하는 선거제도 도입을 발의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단기비이양식 중선거구제나 소선거구제는 기본적으로 다수대표제(Plurality and majority systems)로 분류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다수대표제는 68개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데 유럽은 영국, 프랑스, 벨라루스 3개국뿐이고 북중미,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에서 많이 운용된다.(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2018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표, 2019, pp. 15-16. 참조) 그런데 순수한 다수대표제는 가장 비례성이 안 좋은 선거제도라는 점이 상식에 가까울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는 위헌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 제41조 제3항에서는 비례대표제를 두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비이양식과 달리 유권자의 선호를 반영하는 단기이양식 중선거구제는 아일랜드와 몰타 등에서 운용되는데, 다수대표제보다는 비례대표제의 하위 유형으로 분류되곤 한다. 단기이양식 중선거구제는 실제 내용에서 개방형 정당명부식 중대선거구제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3)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 
  혼합형 선거제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을 의미하는데, 크게 연동형과 병립형으로 나뉜다. 앞서 언급한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의 조사에 따르면 혼합형 선거제는 총 38개 국가인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7개국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31개국에서 운영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드문 제도인 것은 사실이고, 혼합형 중에서는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더 다수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구조적으로 연동형에 비해서 낮은 비례성을 내재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찬성하기 어려운 제도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적 약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병립형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의 비례대표 비율은 음미할 대목이 있다. 병립형 비례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들을 보면 일본은 289:176, 멕시코는 300:200, 대만은 73:40, 헝가리 106:93, 리투아니아 71:70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이 배분되어있다. 그리고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비례대표 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한국도 1988년 당시 국회의원선거법에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이 3:1로 명시적으로 조문화되어 있었으나, 이후 해당 조문은 사라지고 비례대표의 비율은 지난 몇십 년간 꾸준히 감소하여 5.4:1의 비율을 기록하게 되었다. 따라서 행여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우리 사회가 채택한다면 가까운 일본, 대만의 경우에 비추어 보더라도,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은 적어도 1.5:1~2:1 수준은 되어야 마땅하다. 
  병립형 비례제의 장점은 물론 위성정당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병립형 비례제가 연동형과 비교하면 비례성 개선의 효과가 너무 적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현행 의석수가 동일하다고 봤을 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에 10%의 지지율을 얻은 정당이 얻을 수 있는 기대의석이 15석인데 반하여, 병립형 비례제로 회귀하고 지역구 200석과 비례대표 100석인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10% 지지율 정당이 기대할 수 있는 의석은 10석에 불과하다. 

   4) 정당명부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비례성 증진을 최고의 과제로 볼 때 정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차이를 적게 만들고, 사표를 가장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방안은 기본적으로 정당에 투표하는 선거제도를 근간으로 하면서, 동시에 한 선거구에서의 당선자 숫자를 확대하고 봉쇄조항요건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거제도를 통상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라고 부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연구에 따르면 61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정당명부형 비례대표제로 평가받는 국가들에서도 지역 대표성을 반영할 정치적 필요성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전국단위로 단 하나의 전국명부로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OECD 가입국 기준으로는 이스라엘, 슬로바키아, 네덜란드 정도다. 그 외에 오스트리아, 벨기에, 칠레,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터키 등은 모두 정당명부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활용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운영형태는 국가별로 상이한데. 실제 이러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해외식민지나 섬 지역에서 일부 소선거구를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경우, 정당명부를 작성하면서 폐쇄형/개방형/준개방형으로 설정하는지 여부, 전국단위의 지지율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조정의석 제도를 두는지 여부, 봉쇄조항의 비율 등에 따라서 국가별로 세부적으로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위성정당 이슈를 현실적으로 타개하기 어렵다면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다만 최근 민주당의 일각에서 제기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구는 소선거구를 기본으로 하되, 비례대표의석을 준연동형으로 하면서도 정당명부를 권역별로 제출하는 경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는 동일한 기표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기의(記意)를 반영한 것이므로 본문에서 언급하는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는 상이한 제도라는 점을 지적해둔다. 


4.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의 필요성과 가능성

   1) 필요성 
  사실 진보진영에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장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기존에 유력한 대안으로 상정되지 않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기존 선거제도와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새로운 선거제도를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쉽지 않고, 해당 제도가 기존 소선거구제를 전면적으로 해체하는 효과가 있어서 국회에서의 수용성도 높지 않다는 점이 크게 작동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소선구제를 유지하면서 변형을 가하는 독일/뉴질랜드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력한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석수 배분 방식이 달라질 뿐, 투표용지나 방법에 있어서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이 매력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순수한 독일·뉴질랜드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전면도입이 위성정당 이슈로 어려운 시점에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정책목표를 진보정당이 채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2) 개정안 검토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국회에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김상희 의원안(의안번호: 2119107), 박주민 의원안(의안번호: 2119140), 이탄희 의원안(주: 이탄희 의원은 2022년에는 단기비이양식 중대선거구와 비례의석 증원을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2023년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다시 발의하였다.)(의안번호: 2119800)이 차례로 발의된 점은 고무적인 부분이다. 
  박주민 의원안은 지역구를 6~11인의 대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하며, 지역구의 권역은 광역단위인 시도별로 설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종(2석)과 제주(3석)는 다소 작은 선거구가 예외적으로 형성된다. 해당 안에 따르면 서울은 5~8개, 부산은 2~3개, 대구 2개, 인천 2개, 광주 1개, 대전 1개, 세종 1개, 울산 1개, 경기 6~8개, 강원 1개, 충북 1개, 충남 1개, 전북 1개, 전남 1개, 경북 2개, 경남 2개, 제주 1개의 지역선거구가 설정된다. 최소 31개에서 최대 38개의 지역선거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해당 지역선거구는 개방형 정당명부로 투표가 이뤄지는데, 유권자는 지역구에서 정당에 투표하면서도 동시에 해당 정당에 제출된 명부에 있는 후보자 개인에게 투표를 할 수 있다. 박주민 의원안은 개방형 정당명부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지역선거구에서 유권자의 선택권은 충분히 보장되는 셈이다. 
  아울러 박주민 의원안은 비례대표 47석을 조정의석으로 활용하여 전국단위 지지율에 따라서 의석수 보정을 하게 하도록 하고 있다. 별도의 비례명부는 작성하지 않고,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한 자들을 당선시키도록 하고 있으므로 실질적 석패율제로 작동한다. 이러한 박주민 의원안의 내용은 실질적으로 스웨덴 및 덴마크식 선거제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은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1인 1표인 데 비해, 박주민 의원안은 1인 2표제라는 것인데, 이는 기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위헌성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박주민 의원안에 따르면 지역선거구에서 성평등 30% 의무조항이 존재하므로 성평등 공천비율은 현재 제도보다 높아지나, 전면적 개방형 명부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국회 구성에서 있어서 성별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 지점으로 꼽힌다. 
  반면에 박주민 의원안의 가장 큰 강점은 비례의석을 조정의석 제도를 두면서도 별도 비례명부를 제출하지 않으므로 위성정당 출현이 구조적으로 제어되며, 정당의 의석배분이 전국단위 지지율에 따라 온전히 이뤄진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의석정수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위성정당 출현을 구조적으로 가로막으면서 표의 비례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측면이 있다. 
  아울러 지역구에서 분투한 후보가 조정의석을 통해서 당선되는 석패율제를 실질적으로 도입한 것이기 때문에, 진보정당 및 소수정당에서 관찰되는 비례대표 후보 선호 현상도 차단된다. 아울러 여타의 법안에 비해서도 중대선거구의 규모가 크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박주민 의원안은 기본적으로 지역선거구를 6인 이상을 원칙으로 하므로 여타의 법안에 비해서 비례성 증진의 기대효과가 높다. 아울러 비례대표의석 자체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현역 국회의원들의 저항감도 상대적으로 적다. 

  김상희 의원안은 지역구를 특별시, 광역시, 경기도는 5~10인 선거구, 도 단위는 3~5인 선거구로 하되 세종은 대전과 병합하여 총 39개의 지역선거구로 구성된다. 박주민 의원안과 같이 지역선거구는 개방형 정당명부제로 시행한다. 다만 김상희 의원안은 대구 2개, 경북 3개, 전북 2개, 전남 2개로 선거구를 예정하고 있는 등 박주민 안에 비하여 선거구당 선출의원 수가 조금 더 적기 때문에 지역주의 완화의 목적이나 비례성 개선 효과가 다소 떨어질 염려가 있다. 한편 김상희 의원안은 비례대표의 경우 병립형으로 복귀하고 폐쇄명부로 하도록 하고 있다. 
  박주민 의원안에 비해서 지역선거구 숫자가 늘어나고, 조정의석 제도가 없어서 전국단위에서의 불비례성이 박주민 의원안에 비해서는 다소 크다는 점이 아쉽다. 

  최근에 발의된 이탄희 의원안(의안번호:2119800)은 지역구 253석을 4~5인 선거구를 기본으로 하되 개방형 정당명부식을 채택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농산어촌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허용하며, 특별시와 광역시의 경우 6~7인 선거구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예외 조항 때문에 전체 선거구 수를 예측하기 어려워서 비례성 증진 효과를 예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이탄희 의원안은 지지율 격차를 보정한다는 개념(연동형 성격)은 박주민 의원안과 동일하나 별도의 명부를 제출하고, 이를 폐쇄형으로 작성하며 권역 5개(수도권, 부울경, 대경강원, 충청, 호남제주)로 나눠서 보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반적으로 이탄희 의원이 기존에 제출했던 중대선거구제+준연동형 비례대표제안(의안번호: 2118586)에 비해서는 개혁적 법안이라고 평가될 수 있으나, 선거구 규모와 숫자를 예상하기 어려워 전반적인 입법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1인 선거구까지 허용하고 있어서, 박주민·김상희 의원안에 비해서는 비례성 개선 효과가 낮을 것으로 보인다. 


5. 맺으며

  현재 시점에서 권역별 개방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정치권이나 국민에게 다소 생소하므로, 수용 및 확산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이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비해서 위성정당 문제를 제어할 수 있고, 동시에 국민적 반감이 여전히 큰 의석수 확대 없이도 비례성의 개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박주민?김상희 의원안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법안이다. 
  한편 해당 법안들을 어떻게 호명할지도 전략적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개방형 정당명부식 대선거구제라고 불러도 되고, 권역별 전면비례대표제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데 국민적 인식과 호감도, 수용성을 고려한 정명(正名)이 필요해 보인다. 필요하다면 스웨덴?덴마크식 선거제도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글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대안으로 스웨덴?덴마크식 선거제도를 새로운 진보진영의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해보자는 취지에서 작성되었다. 사실 필자도 특정한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절대선으로 규정하고 진보진영이 추진하자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향후 진보진영이 새로운 선거제도 개혁의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 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이상의 비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선거제도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아일랜드 등에서 도입된 단기이양식 중대선거구제(SNTV)에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혼합하는 선거유형도 충분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필요하다면 병립형으로 회귀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1:1로 설정하고 비례대표 명부는 준개방형으로 설정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만’을 고수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판단이라고 여겨진다. 
  최근 진보당은 스웨덴식 비례대표제를 새로운 당론으로 채택했고, 노동당은 기존부터 봉쇄조항이 없는 전국단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네덜란드 모델)를 당론으로 채택해왔다. 녹색당은 구체적 형태는 적시하지 않았지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강령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의당이 기존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당론을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새로운 당론을 형성할지에 대한 토론과 결단의 시점이 도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문헌]

김욱 · 김영태 · 서복경, 2011, 「미래지향적인 선거구제 개편방안에 관한 연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영태, 2011, “지역정당구조와 중대선거구제”, 「미래정치연구」 2011 vol. 1 no. 1. 
김종갑 · 허석재, 2020,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논의와 대안의 모색”, 「입법 · 정책보고서 Vol. 54」, 국회입법조사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2019, 「2018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표」
하상응, 2022, 「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제의 합리적 대안 연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하승수, 2020,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 한티재 

  • #민주주의와 정치#정치개혁#선거제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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