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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정의경제

#1. 위기의 시대에서 회복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 입력 2022.09.14 15:11      조회 1081
    • 오종석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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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에서 회복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오종석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산업연구원 동향분석본부에서 부연구위원으로 근무하다, 현재는 경북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포스트케인지언 거시경제학 관련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1. 위기의 일상화

  최근 15년 동안 세계경제는 세 번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이 방아쇠를 당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COVID-19) 위기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비견되어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명명될 정도로 규모가 컸고 진앙지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서 기업들이 파산하고 많은 실업자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에서 자산가격의 버블 형성, 자산가격의 폭락, 은행시스템의 위기, 실물위기로 이어지는 이전 금융위기들의 패턴과 성격을 그대로 따랐다. 정책적 대응에 있어서도 이전 위기들에서 학습한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라는 거시경제정책 처방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 코로나 위기와 현재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 위기는 공급 측면의 위기이고 정책 처방 역시 간단하지 않다. 코로나 위기의 경우 감염병 유행으로 인한 노동공급의 차질 때문에 백신 공급이라는 경제외적 변수가 중요하였고, 확진자 수가 감소하여 공장이 재가동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화된 공급사슬로 인해 부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거나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
  인플레이션 위기의 경우 호황의 끝에서 경기가 과열된 상황이라면 확장 거시경제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바꿔놓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쟁이 발발하였고 그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긴축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또 다른 경기침체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세계경제가 이미 경기침체 상황에 놓여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 중반 오일쇼크가 야기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당시에도 그랬듯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거시경제정책 처방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잠재우기 위한 금리인상이 유일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 위기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미·중 패권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경제의 블록화는 당분간 해소되기 힘들 것 같다. 이러한 보호무역주의와 지역주의는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 경제에 앞으로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위기가 빈번해지면 위기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회복력’ 개념은 원래 생태학, 공학 등에서 재난과 외부충격과 같은 교란에 대해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는 역량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후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단순히 원래 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 피해를 반복적으로 발생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위기에 대한 회복력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어떠한 시스템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현재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2. 거시경제정책의 위기진단과 처방

  1) 경기진단의 불확실성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우리나라의 국책연구기관들과 민간경제연구소들은 경제전망을 발표한다. 즉, 실질국내총생산의 성장률 그리고 그 구성요소인 소비, 투자, 순수출 등의 실적치와 전망치를 숫자로 제시하는 것이다. 
  OECD, IMF 등의 국제기구들에서도 전망치를 발표하는데 OECD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가 시작되었던 2020년에 세계경제는 –3.4% 성장에서 2021년 5.8% 성장으로 V자 회복을 기록하였지만, 올해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3.0% 성장, 내년에는 2.8%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OECD, 2022). IMF의 경우도 올해 3.2% 성장, 내년 2.9%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IMF, 2022). 
  국내기관들은 국제기구들의 전망치 값들을 참고하여 국내경기에 대한 전망을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국책연구기관들은 정권의 성과를 높이고자 하는 부처의 영향을 받아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현대경제연구원이나 LG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과 같은 민간연구기관들의 경우 성장률을 다소 낮게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표 1] 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경제성장률 전망 (%)

  2020 (실적치) 2021 (실적치) 2022 (전망치) 2023 (전망치)
OECD (전세계) -3.4 5.8 3 2.8
IMF (전세게) -3.4 5.8 3.2 2.9
IMF (선진국) -4.5 5.2 2.5 1.4
KDI (한국) -0.9 4 2.8 2.3
한국은행 (한국) -0.9 4 2.7 2.4
한국경제연구원 (한국) -0.9 4 2.4  -

 

  한국의 실질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020년에 –0.9% 그리고 2021년 4.0%로서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세계경제나 다른 선진국 국가들에 비해 크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향후 전망에 있어서는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의 경우 2022년 2.8% 성장, 2023년 2.3% 성장을 예상하고 있고, 한국은행의 경우도 2022년 2.7%, 2023년 2.4%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는데, 국제기구에서 예상하는 선진국 경제의 성장률보다 높은 수치이지만, 투자 위축과 수출증가세의 둔화 가능성이 반영된 부정적인 전망치이다(한국개발연구원, 2022; 한국은행, 2022).
  인플레이션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문제가 된 적이 없었고 오히려 너무 낮은 물가상승률이 문제였었다. 이론적으로 어느 정도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2% 정도의 물가상승이 발생하는 것이 적당한 것으로 여겨져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2%의 인플레이션 타게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대부분 그 수준에서 성공적으로 통제되었다. 물론 이는 역설적으로 양적완화를 비롯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와 전쟁으로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상승하면서 최근 물가상승률이 미국의 경우 2022년 6월 9.1%(CPI 전년동기대비)까지 상승하였고, 코로나 위기 이후 V자 회복을 보였던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로 되돌아갈지 아닐지 논쟁이 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경우 다소 낙관적(?)으로 편향된 정부기관들의 예측과는 달리 민간연구소들은 경기침체 가능성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예컨대 한국경제연구원의 경우 하반기 성장률이 2%대 초반에 머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경제학회의 설문조사(7월 시행)에 따르면 국내 경제학자 39명 중 21명(54%)이 우리나라가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진입 단계에 있다고 답하였다.(주:  http://www.kea.ne.kr/survey/read?id=38&no=N) 그렇게 된다면 1970년대 중반 경험했던 스태그플레이션, 즉,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에 한국경제가 놓이게 될 것이다.
  거시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정책당국의 수단으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다. 물가가 낮은 상황에서 경기가 침체되어 있는 상황이 명백할 경우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경험하였듯이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경제가 잠재 국내총생산 수준에 근접해 있고 인플레이션 조짐이 있을 경우, 긴축정책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책당국이 경기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처방한다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 정책 처방의 불가역성
  증가하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방향은 긴축 일관이다. 통화정책의 경우 미국 연준의 대폭적 기준금리 인상, 이른바 빅스텝으로 인한 금리역전을 막기 위해서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올리고 있다. 사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선택 폭은 그리 넓지 않다.
  문제는 재정정책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는 (1) 법인세의 경우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2) 소득세의 경우 최저 세율 6%가 적용되는 과표구간을 현행 1200만 원에서 1400만 원으로, 15%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을 현행 1200~4600만 원에서 1400~5000만원 으로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3)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주택 수에 따라 적용되는 차등 과세를 가액 기준으로 전환하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에서 60%로 낮추면서 1주택자의 경우 특별공제 3억 원을 제공하여 종부세 과세 기준선을 공시가 11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정을 통해 재정수입이 감소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한, 누진세제는 사회보장지출과 더불어 경제위기의 진폭을 줄여주는 대표적인 자동안정화 장치(automatic stabilizer)인데 이 장치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의 경우 균형재정을 강조하는 보수 정부의 성향을 감안하면 재정수입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 예상된다. 특히 정부는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하면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을 차감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관리한다는 이른바 재정준칙을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재정준칙으로 정부가 자기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묶게 되면, 앞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경우, 국민들 특히 저소득층은 정부의 부족한 지원으로 각자도생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편, 1970년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된 대부분의 경제원론 교과서들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의 거시경제정책 딜레마, 즉, 경기침체 극복을 위한 확장정책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인플레이션 극복을 위한 긴축정책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명목임금 인상 요구로 인해 임금-물가 소용돌이(wage-price spiral)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는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원론적으로 보면 임금-물가 소용돌이를 피하고 사람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댓값을 낮추는 것이 정책 처방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림 1] 선진국 경제에서 임금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반응도

출처: BIS(2022)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하더라도 1970년대의 경험이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2000년대 발생한 유가 상승 충격의 경우 실질국내총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1970년대의 유가 상승 당시와 비교하여 절반 정도로 감소하였는데, 그 원인을 설명하는 한 가지 가설은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1970년대에 비해 약화되었고 노동자들이 임금하락을 쉽게 받아들여 임금-물가 소용돌이 발생을 제한했다는 것이다(Blanchard, 2017). 미국의 전 연준의장 앨런 그린스펀이 2000년에 미국경제의 낮은 물가와 낮은 실업률에 관해서 설명하면서 경제의 변화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트라우마 입은 노동자(traumatized workers)”와 낮은 임금인상의 요구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Woodward, 2001). [그림 1]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진국 경제에서 임금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민감도는 1970년대에 비해 하락하였다.
  그렇다면 1970년대의 상황에서는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정부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에 대해 강력한 긴축 의지를 표명하고 실제로 상당한 경기침체를 낳는 것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방전이었다면, 지금과 같이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약한 상황에서는 중립적인(neutral) 재정 기조하에 통화정책의 긴축과 동시에 재정지출을 확장하는 정책 결합(Policy Mix)도 고려해볼 수 있는 선택지이다. 재정지출을 통해 물가상승으로 타격받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OECD와 IMF 전망보고서에서도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주요 위기요인으로 강조하고 있는 중국 경기둔화와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완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재정준칙 원칙으로 재정지출의 폭을 정부 스스로가 제약하게 된다면, 향후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낮아진 잠재성장률을 회복하기 위한 모멘텀을 놓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최저법인세(15%) 도입, 조세법 집행 강화, 처방약 가격책정 개혁 등을 통해 재정지출의 재원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산 자동차의 세액 공제 대상 여부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통한 에너지 자립과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라는 산업정책적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3. 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시장제도

  경제위기에서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거시경제정책은 물론 중요하지만, 경기진단에 대한 불확실성과 재정적자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거시경제정책 외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목받고 있는 것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인데, 당시 독일은 노동시간유연화를 위한 제도들을 바탕으로 경제위기에 대한 빠른 회복력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은 정점이었던 2008년 1분기에서 저점인 2009년 3분기까지 실질국내총생산이 6% 이상 하락하였는데 이는 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보다 큰 낙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실업률은 신속하게 회복되었고 오히려 위기 이전보다 더 하락하였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를 “독일의 일자리 기적”이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Krugman, 2009), 

[그림 2]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독일의 실질국내총생산(상, 2007년 1분기=100)과 실업률(하) 변화

 


출처: Federal Reserve Economic Data

  경제위기 시 해고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실업수당으로 실업자들을 보조하는 미국 노동시장제도와는 달리 독일 노동시장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고용의 안정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노동시간 유연화와 관련된 장치들이 작동된다는 것이다. 크게 4가지 종류의 장치들이 있다.
  첫째, “단시간근로(short-time work)”는 우리나라의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1920년대에 생겨 여러 차례 수정을 겪어서 현재는 정규 근로시간과 실제 근로시간이 차이가 날 경우, 정부가 순임금의 60%를 보조하게 된다. 둘째, “초과근로(overtime work)”는 말 그대로 정규근로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것으로 경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절되게 된다. 셋째, 단체협상을 통한 “정규 근로시간(regular working time)의 일시적 단축”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시간계좌제(working time account)”가 있는데, 노동자들의 정규 노동시간과 실제 노동시간의 차이에 따라 시간가치적립분이 누적되며 이는 일정 기간 내에 정산된다. 정산기간이 1년 미만인 단기시간계좌와 1년 이상인 장기시간계좌가 있는데 장기시간계좌는 상당 시간이 축적된 후 안식년, 직업교육, 조기 퇴직 등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림 3] 독일의 경기 하강국면에서 노동시간 조정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출처: Herzog-Stein et al. (2018)

  [그림 3]을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그 위기의 중대성만큼 4가지 노동시간유연화 장치가 모두 작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전 하강기들과의 차이점은 정규근로시간의 단축과 노동시간계좌제가 크게 작동하였다는 점이고, 특히 노동시간계좌제의 기여가 주목받고 있다(Herzog-Stein et al., 2018). 1973년과 1975년 사이의 하강기에도 정규근로시간 단축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1974년의 법정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것이고, 불경기에 대한 대응으로 노사합의에 의해 일시적으로 단축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노동시장에서 타격을 크게 받지 않은 모습이다. [그림 4]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실업대란을 겪었으나 독일의 실업률은 6.4% 상승하는 데 그쳤다. 노동시간유연화 장치도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차이가 있다면 [그림 5]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부가 감소한 노동시간을 보조하는 단시간근로의 역할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 코로나바이러스로 타격받기 이전에 브렉시트와 미·중무역갈등으로 인해 불황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Herzog-Stein et al.(2021)는 이를 코로나 바이러스 발발 이후인 “코로나 위기” 기간을 포함하여 “코로나 침체”로 정의하고 있다. [그림 5]에서 볼 수 있듯이 코로나 바이러스 발발 이전의 침체기간 동안에는 노동시간계좌제 역시 작동하였었다. 
  과거 위기들에서는 제조업 노동자들이 주로 혜택을 받았지만, 이번 위기에서는 락다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서비스업 노동자들도 소득감소를 보전받을 수 있었고, 보조금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욱 신속하게 그리고 재량적으로 집행되었다.

[그림 4] 코로나위기 당시 미국과 독일의 실질국내총생산(상, 2019년 1분기=100)과 실업률(하) 변화




출처: Federal Reserve Economic Data

[그림 5] 독일의 경기 하강국면에서 노동시간 조정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출처: Herzog-Stein et al. (2021)

  이러한 독일 경험의 영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연구들은 강력한 재정정책과 더불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사용하는 것을 제언하고 있다(European Commission, 2013; Hijzen et al., 2017).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 상품들에 대한 전 세계 수요가 증가하고 대중국 중간재 수출이 증가함에 따라 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으나, 현재의 코로나·인플레이션 위기에서는 중국의 경기둔화로 이러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및 경제의 블록화로 인해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경제위기에 빈번하게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을 갖추기 위해서 재정정책과 함께 노동시간유연화를 통한 고용안정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4.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유연화와 진보정당의 역할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염두에 두면서 “노동개혁을 초당적이고 초정파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정부는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노동시간을 월 단위로 바꾸어 현행 주 52시간제를 수정하는 것을 고려 중이고 이를 근로시간유연화라고 홍보하고 있다.
  물론 독일은 2002년 하르츠 개혁을 통해 정규근로시간을 주 36시간에서 28.8시간으로 단축하고 임금 또한 하향조정하였다. 그 결과 전일제 정규직 고용률이 크게 증가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부터 존재했던 ‘공동결정제도’와 1990년대 중반 경영위기의 극복과정에서 나온 ‘고용안정협정’은 독일 노동시장이 기업들에게만 유리하게끔 유연화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중요하게는 고용안정협정을 통해 경제위기 시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노동시간의 유연한 조정을 가능케 하는 제도들이 도입될 수 있었다(이상호, 2019). 즉, 독일의 노동시간유연화는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늘리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하르츠 개혁이 아닌 바로 이러한 고용안정을 위한 노동시간유연화 제도들이 현재 경제위기들과 관련하여 정책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번 코로나 위기에 고용유지지원금과 소상공인 손실보전금처럼 독일의 단시간근로에 상응하는 정부의 지원정책을 사용한 바 있다. 이는 노동시장 정책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재정정책의 영역이기도 하다. 우려되는 점은 앞으로 감세를 통해 세수를 줄이거나 재정준칙을 도입한다면 위기 시 이러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시간계좌제의 경우 지난 정부부터 공공기관과 일부 대기업에 도입되었으나 정산이 단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기변동에 대응하는 수단이 되지 않는다. 장기시간계좌는 경기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임과 동시에 노동자의 안식년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화하려 하면서 반발을 불식시키기 위해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과로노동을 일반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와 독일과의 중요한 차이점은 경제위기 시 초과근로 조정, 정규근로시간 단축, 그리고 임금에 대한 협상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노조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서 단체협상이 기업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로 ‘양보교섭’이 이루어지고 경기가 회복되었을 때의 ‘되찾기 교섭’이 부재하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는 중소·하청기업 노동자들을 특히 어렵게 하는데, 어려웠던 조선업 업황이 다시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양보교섭의 누적은 노동소득분배율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경제전체의 소비를 제약하게 되어 경기회복 국면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림 6] OECD 국가들의 2021년 대비 2022년 실질임금 하락 

출처: OECD Economic Outlook (2022.1)

  이번 인플레이션 위기로 우리나라의 실질임금은 [그림 6]에서 볼 수 있듯이 작년 대비 1.8%나 하락하였다. 하반기 경기침체가 발생하게 된다면,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양보교섭은 가뜩이나 어려운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진보정당의 역할은 정부의 반노동적 허위 노동시간유연화를 비판하고, 노동시간유연화 제도가 어떻게 고용을 안정화하면서 경기변동에 대한 회복력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으로 정착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이상호, 2019, 「독일의 일자리혁명」, 사회평론아카데미.
한국개발연구원, 2022, “KDI 경제전망: 2022년 상반기”, 2022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
한국은행, 2022, “경제전망보고서”, 2022년 5월, 한국은행.

BIS, 2022, “Inflation A Look Under the Hood”, BIS Annual Economic Report.
Blanchard, Oliver, 2017, Macroeconomics 7th edition, Pearson.
European Commission, 2013, “Employment and Social Developments in Europe 2012”, European Commission. 
Herzog-Stein, A., F. Lindner and S. Sturn, 2018, “The German employment miracle in the Great Recession: the significance and institutional foundations of temporary working-time reductions”, Oxford Economic Papers, 70(1).
Herzog-Stein, A., P. Nüß, L. Peede and U. Stein, 2021, “Germany’s Labor Market in Coronavirus Distress: New Challenges to Safeguarding Employment”, IMK Working Paper.
Hijzen, Kappeler, Pak and Schwellnus, 2017, “Labour Market Resilience: The Role of Structural and Macroeconomic Policies”, OECD Working Paper No. 1406.
IMF, 2022, “World Economic Outlook (Update)”, July, 2022,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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