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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 칼럼] 멸공과 ‘박멸의 정치’

  • 입력 2022.01.15 16:06      조회 935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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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제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평창 이승복기념관에 크게 쓰여 있는 문구다. 1968년 북한 무장부대가 내려와 가족을 인질로 잡았을 때 그가 했다는 말이다. 몇 년 전 진보적 언론들이 이 말은 보수언론의 조작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제 그 말을 했느냐가 논쟁이 됐다. 법원은 그 말을 한 것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이군이 정말 그 말을 했다면 더 문제다. 우리의 반공교육이 어느 정도였으면,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를 9살 초등학생이, 그것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같은 강남 금수저가 아니라 가난한 산골 화전민의 아들이, 죽음의 공포하에서도 북한군에게 이같이 말했느냐는 것이다.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와 ‘멸공’이 이를 SNS에 연이어 게재한 정 부회장 덕분에 다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와 ‘멸공’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해, 나는 공산당이 싫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멸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공산당이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다. 특히 그와 같은 금수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공산당이 싫다고 말하는 것도 가뜩이나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공주의를 부추긴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뭐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그 같은 대기업 책임자가 그런 말로 불매운동을 유발해 기업의 주가를 떨어트리는 것은 주주로부터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다.

문제는 멸공이다. 이를 듣는 순간, 나는 그동안 발전한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가 멸공 구호 속에 살아야 했던 1960~70년대로 돌아가는가 싶어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니 이는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대세가 되어버린 ‘증오의 정치’를 넘어, 싫은 것은 박멸해야 한다는 ‘박멸의 정치’를 선동하는 위험한 일이다. 쉽게 말해, 내가 정용진과 신세계가 싫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용진과 신세계가 싫다고 글을 쓰는 것, 한발 더 나아가 ‘정용진과 신세계를 박멸하자’고 ‘멸정용진’, ‘멸신세계’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주목할 것은 정 부회장이 지키고 싶은 자유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 부회장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반공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멸공 같은 ‘박멸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상, 자신이 틀린다고 생각하는 사상을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상도 허용하는 것이다. 오히려 ‘사상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선택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 같은 이유로 세계적인 정치학자들이 공동집필한 민주주의의 교과서는 특정 정치사상이나 정당을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제한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또 보수적이지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민주주의 연구기관인 미국의 프리덤하우스가 촛불 이후인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까지도 시민적 권리의 경우 1단계가 아니라 2단계로 평가했다. 국가보안법이 공산주의를 금지하는 등 시민적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공산당을 합법화해 허용하고 있다. 자신들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는 세계적 강국인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까지도 공산당을 합법화한 지 오래이다. 특히 중국사업이 망했다고 멸공을 외치며 중국 비판기사를 올린 것은 기업인으로 부적절하다. 정 부회장은 문제가 커지자 미사일 등 ‘북한 리스크’로 기업 활동에 문제가 있다며 멸공은 “내겐 현실”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공산주의보다는 봉건왕조에 가까운 북한 때문에 멸공을 외치는 것은 문제가 많고, 한국과 세계의 많은 기업인이 멸공을 외치지는 않는다. 북한 리스크 때문에 멸공을 외친다는 그 때문에 신세계 종업원들과 주주들은 ‘정용진 리스크’에 고통받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소동이 한 ‘관종 기업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한쪽에서는 태극기부대와 국민의힘을 박멸하자는, 다른 쪽에서는 위선의 집합체이자 ‘친북세력’인 586정치인들과 친문세력을 박멸하자는 ‘박멸의 정치’가 꿈틀대고 있다. 이 점에서 이번 논쟁에 여야가 개입해 지지세력을 선동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이고, 멸공과 박멸의 정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아무리 싫더라도 이제 누구를 박멸할 수 없다. 박멸은 바퀴벌레면 족하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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