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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계단절시대와 돌봄국가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



1. 들어가며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를 뛰어넘는 <돌봄 혁명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인간은 오랜 역사 동안 스스로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 의존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50년 숨 가쁘게 달려온 산업화, 민주화 시대의 대가는 관계의 해체이고 고립과 외로움입니다.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보호할 의지와 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태, 어려움이 닥쳐도 내 손 잡아줄 곳 하나 없는 사회, 그곳이 바로 자살률 1위의 대한민국입니다.

모든 것이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신자유주의 시대, 거기에 불어 닥친 코로나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돌봄’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만듭니다.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했던 ‘거리두기’는 필수노동이라 불린 돌봄노동 위에 가능했습니다.

필수노동자들의 감동적인 책임과 헌신에만 기대어 이 위기를 이겨 낼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 의료기관의 돌봄 인력들이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가사 육아의 돌봄이 다시 가족 안의 여성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을 설레는 삶으로 바꾸는 일, 노인과 취약계층의 생명과 안전을 살피는 돌봄이 왜 노동시장 최하위층으로 내몰려야 합니까. 돌봄 혁명을 위해서는 먼저 돌봄 부정의를 혁파해야 합니다. 모든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해야 합니다. 돌봄 혁명은 돌봄을 제공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일입니다.

평등한 상호의존의 정신이 돌봄 사회의 정의입니다.

지난 20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을 지탱해 왔던 복지국가 시스템, 그러나 차가운 숫자와 통계에 기반하고, 현금 현물 제공에 그친 복지국가는 사람과 공동체를 놓치고 있습니다. 20만 원이냐, 25만 원이냐. 현실과 동떨어진 보편 선별 복지논쟁은 코로나 위기 앞에 무기력해진 지 오래입니다.

당장 한 달 수입이 끊어져 신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앞에 공감 없는 정책은 이제 거둡시다. 관료적 시스템은 따뜻한 지역공동체와 주민자치로 보완해야 합니다. 지역사회 시민들이 이웃과 환경을 돌보는 일에 참여할 때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새로운 소득체계가 마련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근로, 사업, 이자, 배당, 퇴직, 기타 소득에 이은 제7의 소득, ‘참여 소득’이라 부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 숫자 늘리기, 먹고 살기 위해 버텨야 하는 일자리가 아닙니다. 일하는 시민들 스스로가 자기 일에 정체성과 긍지를 가지며 안정된 소득을 보장받는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지난 20대 정의당 대선 경선 출마선언문의 일부이다.
  경선은 끝났지만, 돌봄국가로의 전환은 더욱 절실하다. 바로 며칠 전 강도영씨 재판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질문을 던졌다. ‘청년 강도영은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버지를 돌볼 전적인 의무를 지녔는가. 국가와 사회는 아프거나 병들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져 왔는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어린아이도 노인도 모두 돌봄을 필요로 한다. 돌봄 없이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부자들은 많은 수의 돌봄 종사자들을 고용하며 돌봄을 돈으로 산다. 그러나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 돌봄이 요구될 때 가족이나 제도 앞에서 죄인이 된듯한 기분을 가진다. 더 심각하게는 돌봄에서 완전 배제된 채 고립생에서 고립사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돌봄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전제임에도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다. 돌봄에 대한 상상력은 매우 협소하다. 사회적으로 한계 지어진 돌봄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에 갇힘으로써 아동이나 노인 등 일부 돌봄 수혜자에 대한 복지나 노동시장 내에서 최저기준선에 놓여있는 돌봄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 정도로만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돌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고, 우리가 묵인해왔던 돌봄 부정의를 극복함으로써 복지국가에서 돌봄국가로 한발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외로움의 시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을 ‘외로움’에서 찾는다. 외로움은 특정 소수가 겪는 문제도, 개인의 단순한 감정도 아니다. 학교에서 외톨이가 된 학생,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 홀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 등, 그 삶과 배경과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현대인의 외로움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생각해야 한다.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이 원하는 만큼 충족되지 않는 상태, 그럴 때 느끼는 결핍과 상실의 감정이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로까지 환원될 위험이 크다. 영국은 이미 외로움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외로움 담당 부처를 두었다. 크라우치 외로움부 장관은 외로움을 ‘스스로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관계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이나 고통’으로 정의한다. 실제 외로움은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도 심각히 위협한다.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8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4분의 1이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것으로 답했다. 그리고 저소득층일수록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또한, 10명 중 3명이 힘들 때 의지하거나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답했는데 좌절이나 실패를 겪은 사람들이 기댈 곳이 없다고 느끼며 결국 그러한 고립이나 외로움의 끝에서 자살을 택하게 된다. 
  빈곤은 경제적 문제를 넘어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고, 관계가 공유해온 경험이 단절되는 것을 뜻한다.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엄빠 찬스’, 할아버지 찬스를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모든 사회적 연결망이 끊겨서 어려움에 처해도 도와줄 곳을 찾지 못하는 삶이 있다. 더구나 1인분의 고립된 삶에서 느닷없이 아픈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까지 떠안는 영 케어러들의 삶도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즉 ‘외로움’은 그 자체로 정치적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의 미래가 고립이나 분리, 외로움이 아니라 소통과 친절, 공동체의 미래로 갈 수 있는 전망을 찾아 나가야 한다.


3. 돌봄국가의 전제 - 양적 성장론의 폐기

  문화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지구적인 답을 찾도록 숙제를 낸 막강한 스승”이라고 했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변화가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다. 그 어떤 나라도 앞선 해법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동시대 온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를 선진국의 일원이 된 대한민국이 앞서서 답을 내놓고 함께 해결하자고 손 내밀어야 한다. 각자도생의 정글에 내던져진 시장 권력의 시대는 길을 잃었다.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을 해결하는 연대, 좀 더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투자의 확대, 한 사람도 뒤로 남겨지지 않도록 서로를 살피고 돌볼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 우리 삶을 지탱시켜준 ‘상호의존성’의 회복, 그 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우리가 가는 길에 커다란 장벽 하나를 부숴야 한다. 바로 ‘성장론’이다. 더이상 성장과 GDP 지표는 국정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GDP의 평균값 속에는 극심한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숨어 있다. GDP는 한 국가가 생산할 수 있는 평균적인 능력을 보는 지표일 뿐, 국민들의 행복과는 무관하다. 더구나 우리의 삶을 지탱시키는 일상적인 돌봄노동은 GDP 수치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아동 돌봄이나 장기 돌봄이 필요한 성인 돌봄, 그리고 가사노동이라 불리는 간접 돌봄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는 2019년 기준 전체 GDP 대비 4%가 넘어서고 있다. 이것은 보건, 교육, 사회보호 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의 20~24%에 육박한다. 한마디로 지금의 GDP 수치 안에는 모든 돌봄노동이 유령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치의 목표는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양적 성장이라는 목표, 평균적인 수치와 통계를 걷어내야 한다. 삶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는 허울뿐인 성장의 가짜 정치를 멈추어야 한다. 국민들의 건강, 고용, 교육, 환경, 주거, 안전, 여가 등 ‘삶의 질 개선지표’를 체계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국민의 행복증진을 위해 국정운영 목표와 예산을 편성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4. 기존 복지국가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기

  ‘우리의 복지제도는 우리가 쓰러질 때 우리를 일으켜 줄 수 있지만, 다시 날아오르게 도와주지는 못한다.’
  복지제도를 엄정하게 진단한 영국의 사회 활동가 힐러리 코텀의 말이다. 그녀는 전후 체제의 서비스와 기관들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고, 복지체제는 오늘날의 산적한 문제, 현대의 삶과는 어긋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서로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관계적 복지’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실상 지금의 복지시스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재건을 꿈꾼 큰 상상력에서 나왔다. 그러나 당시 복지제도는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짜여진 시스템이며, 따라서 그로부터 낙오된 이들을 보호하는 관점에서 설계돼 있다. 즉, 신자유주의 국가는 구매력이 있는 시민만을 인정한다면, 복지국가는 노동하는 시민에 대한 전제 위에 구축되어 있다. 이제 돌봄이 배제된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는 재설계되어야 한다. 
  현대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고 세밀해진 사회적 양상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단선적인 처방으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현대사회 질병을 보면 그 복잡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질병은 일회적 처방이나 외과수술로 해결할 수 없다. 우울증, 비만, 당뇨 등은 약물처방과 함께, 식이요법, 운동, 생활습관의 개선 등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다수’로 대표되었던 민주주의 원리는 ‘단순다수’로 해결하기 어려운 소수자, 약자의 권리라는 새로움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최근의 급속한 고령화, 1인가구의 급증, 맞벌이 가구의 증가 등은 노동하는 시민을 뒷받침하는 가족 돌봄이 더이상 불가능한 사회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소위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되는 부양자모델에 기초한 복지시스템은 현실에 부합될 수 없는 한계에 놓인 것이다. 고정된 작업장에서 고정된 사용주의 지시에 따라 일정시간 일하고 일정한 임금을 지급받던 노동의 형태는 사라져가고 플랫폼 노동시장이 전체 노동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또한 20세기 복지시스템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낼 것이다.
  따라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1941년 베버리지 보고서의 복지국가 상상력에서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의 복지정책이 하나의 방법론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었다면, 이제 각각의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아픔이 마주하는 세계에서’를 쓴 왕진의사 양창모 선생님은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는 질병으로 대하게 되지만, 왕진에서 만나는 환자는 인간 그 자체로 마주 대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가 살고 있는 환경과 관계를 이해하면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복지제도는 돌보는 사람들을 ‘실패자’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즉 한 인간의 평생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창조되어야 한다. 어떤 한 사람도 삶의 존엄으로부터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철학으로부터 기존복지체제의 전환이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코로나는 돌봄의 참 의미를 다시 깨닫게 했다. 그리고 코로나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있다. 시민들은 ‘다른 방식으로의 재건’을 원합니다. 불평등과 격차가 극심했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사회와 직장, 거리와 모임, 그리고 일상에서 만연한 차별로 모멸을 감수하는 과거로 되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기후위기라는 시한폭탄을 모른 체하며 에너지를 낭비했던 과거의 일상은 우리가 되돌아갈 곳이 아니다.
  우리의 시야는 ‘사람이 사는 기본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공공 영역에서 간과되었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보편적인 돌봄이 일상적인 나라, 가정, 이웃, 공동체, 지역사회, 국가를 포함한 모든 삶의 공간에서 돌봄과 관계가 우선되는 나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돌봄과 연대의식의 가치를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공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돌봄을 하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아이를 돌보고, 지역공동체를 돌보고, 환경을 돌보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시장 만능 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되었던 투명인간들, 코로나 19를 겪으며 사람들은 이들을 ‘필수노동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일상이 회복되면 ‘영웅’이라 칭송했던 이들의 얼굴은 이내 또다시 지워질 것이다. 시장 만능 사회는 시장 바깥에 남겨진 가치를 폄하하고, 시장 외에 다른 부문을 가정, 또는 공동체에 위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시장이 더해져 개인 참여, 정서적 연결, 헌신, 공감의 가치는 금전적 보수가 지급되는 계약으로 환원시키고, 그 보수가 지불되지 않는 참여, 연결, 헌신, 공감은 인정하지 않는다. 


5. 돌봄국가로 가기 위한 두 가지 수단, 지방분권과 참여소득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단위로 구체적으로 들어가고 관계망을 형성해서 촘촘하게 지원할 수 있는 돌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 부처부터 각각의 칸막이가 따로 작동하면서 광역과 자치단체로 내려오는 지금의 복지시스템을 철저한 지방분권에 근거한 통합 돌봄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사는 동네마다의 특성을 살피고, 주민자치역량이 결합하여, 동네마다 골목마다 안전망이 깊숙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필수적인 일상생활 단위이며 사회관계망의 유지는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수혜자의 삶의 단위에 기초한 통합 돌봄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통합 돌봄 체계는 기초단체별로 단일한 서비스 원을 제공하여 어디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찾아 헤매고,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수치와 모멸 등을 해소해 나갈 것이다. 당연주의에 근거해서 권리로서의 돌봄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즉 그 지역의 모든 주민이 잠재적 수혜자이며 이용자가 된다는 전제가 형성되게 된다. 수혜자가 복지체계 안에서 발굴되는 것이 아니라 항시 연결된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국가와 시장이라는 정치경제학의 이분법에 갇혀서 한 번도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겨져 본 적이 없는 ‘사회’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경제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시장과 기업의 이윤을 남기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의 대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를 위해 그동안 무급노동으로 착취해 왔던 돌봄 노동의 가치를 다시 인정하거나 우리 사회 필요한 영역에서의 돌봄 노동을 창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노동에 대해 국가가 정당한 보상을 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 그것을 임금으로 지급하는 체계를 제7의 소득, 참여소득이라고 하겠다.
  코로나 이전 우리나라에 자원봉사자로 불리면서 무급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대략 700만 명에 이른다. 이외에도 학부모 학교 참여자 등을 포함하면 무급으로 사회를 유지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것이다. 환경문제 역시 지역 단위에서 해결해나가야 할 무수한 일들을 발굴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미 지역과 마을 단위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비롯한 환경사업에 참여하는 마을 활동가 그룹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일들은 지역과 환경을 위해 지속가능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역에서 발굴하고 함께 찾는다면 더 다양한 돌봄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일차적으로 관계 공간 30만 개, 환경 돌봄 35만 개, 찾아가는 돌봄 20만 개와 자기 돌봄과 돌봄 시민으로의 전환을 위한 돌봄 운동과 돌봄 복무제 도입 등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의당이 주장하는 국가 일자리보장제도 역시, 국가 돌봄의 계획으로 정의될 수 있다. 돌봄국가가 창출하는 과정에서 사람 돌봄, 환경 돌봄, 지역공동체 돌봄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통합된 체계 속에서 예산을 더욱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6. 돌봄국가로 가기 위한 몇 가지 제언
 
   1) 돌봄의 가치가 우선되는 ‘함께 돌봄 사회’
  돌봄이 공적 가치이자 시민과 사회, 국가 모두가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가치임을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 초중등 의무교육 과정에서도 돌봄의 교육과정을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돌봄 노동에 대해서도 그 가치를 재평가하고 인정하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넘어 돌봄과 노동의 양립이 가능한 돌봄 혁명이 필요하다.

   2) 외로움 없는 따뜻한 돌봄국가 체계
  국가 체계 안에 돌봄 사회 부총리제도를 신설하고 돌봄과 보건, 교육, 아동가족 업무를 총괄하게 한다. 부처 간의 협업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부총리와 관계 장관, 민간단위의 돌봄 국가 실행그룹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돌봄 체계는 지역 단위가 중요한 만큼 시도지사협의회, 시도교육감협의회와의 협력체계도 마련되어야 한다. 실행그룹 안에서는 단기, 중기별 돌봄 국가 조성 전략 수립과 우선순위를 확정하고 평가한다.

   3) 지역사회 통합돌봄 실현
  통합 돌봄 대상을 확대하고 필수 서비스 영역을 넘어 여가와 문화, 사회관계망까지 돌봄을 확장시켜 나간다. 
  통합 돌봄 포괄보조금 제도를 운영하고 지자체 통합기금을 설치해서 예산 운영의 칸막이를 해소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재량권보장과 기초 지자체 서비스 제도도 통합해야 할 것이다. 시도별 통합 돌봄 본부, 시군구 지역 돌봄 센터, 동 단위 돌봄 협의체를 운영해야 한다.

   4) 공동체와 환경을 돌보는 관계 읍면동 3개, 전국 1만 개 공유 공간
  주민이 기획하고, 주민 운영으로 주민자치역량을 강화한다. 농촌을 중심으로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노인들의 의료문제이다. 읍면동 단위에 커뮤니티케어센터를 만들고 지방 공공의료 시스템을 확충하고, 지방공무원 체계 안에 왕진방문의사 체계를 만들어 커뮤니티케어센터와 연계한다면 일상적인 의료 걱정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는 일은 막고, 새로운 참여형 일자리는 창출하면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다. 농촌형, 청년밀집지역, 아파트 밀집지역 등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공유공간을 창출하고 그 공동체를 관리는 참여형 일자리를 확보하여 촘촘한 돌봄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5) 돌봄을 받는 이도, 돌보는 이도 존중받는 돌봄사회
  영유아, 노인 국공립 시설 30% 확충 등 공공 인프라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초등 돌봄 교실을 확대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지역아동센터와 다함께 돌봄 센터를 통합하고 확대 재편하여 학교 돌봄에서 ‘방과 후 학교’를 온종일 돌봄 체계 안으로 포괄해 나간다. 장애인 이용시설 역시 확대해 나가야 한다.

   6) 돌봄 유급 노동자들은 생활임금 보장
  임금 결정과 의사결정 과정에 돌봄 노동자 참여를 보장한다. 시설의 경우 근무인력의 인력기준 강화, 재가방문의 경우 2인 1조 파견을 시행하여 안전하고 건강한 근무환경을 조성하도록 한다. 시도별 돌봄 노동자 지원센터와 기초 지자체별 돌봄 노동자 쉼터를 운영하여 노동자들을 지원토록 해야 한다. 

   7) 돌봄 플랫폼 구축
  한국사회의 복지제도는 360가지가 넘는 지원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혜자의 신청주의에 의거한다. 내가 지원받을 제도를 알면 수혜를 받을 수 있지만, 모르면 그조차 지원에서 배제된다. 
  “근데 왜 할머니를 네가 모셔? 요양원에서 안 모시고? 손녀는 부양 의무자가 아니야, 자식 없고 장애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요양원에서 쫓겨나? 아, 혹시 할머니랑 주소 같이 되어 있나? 주소지 분리해. 같이 사는 데다가 네가 소득이 잡히니까 혜택을 못 받는 거 아니야, 주소지 분리하고 장기요양 등급 신청해.”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지안은 쌓여가는 요양원 비용과 사채 독촉을 피해 장애가 있는 할머니를 마트 카트에 옮겨 싣고 탈출을 한다. 그 후에야 해결 방법이 있다는 조언을 듣게 되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신청주의의 폐해이다. 
  돌봄 시스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돌봄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이다. 돌봄이 필요한 시민들에게 어떤 돌봄 제도가 있는지 안내하고 돌봄 노동을 연결하는 공공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한다. 

   8) 돌봄의 성별화를 극복해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공사의 영역이 분리되고 돌봄의 영역이 사적활동으로 취급되었다. 즉 남성은 경제활동의 주체, 여성은 가사와 양육 돌봄의 전담자가 되면서 가족 내 돌봄 노동은 비가시화되고 평가절하된다. 이제 여성에게 무급으로 전담되었던 돌봄에 대한 적절한 가치평가는 젠더 정의와도 직결된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더 케어 컬렉티브 저, 정소영 역, 2021,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니케북스.
조안 C. 토론토 저, 나상원 역, 2021, 『돌봄 민주주의』, 박영사.
파블리나 R. 체르네바 저, 전용복 역, 2021, 『일자리보장: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제안』, 진인진.
힐러리 코텀 저, 박경현 역, 2020, 『래디컬 헬프: 돌봄과 복지제도의 근본적 전환』, 착한책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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