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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장석준 칼럼] 젊은 대중운동이 아옌데의 뜻을 되살리다

파죽지세 35살 칠레 대권주자..."신자유주의 고향을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 입력 2021.09.16 15:53      조회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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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9월 11일이 되면, 많은 이들이 2001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무너뜨린 테러 참사를 떠올린다. 올해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탓에 지난 20여 년 동안 이어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시대를 연 이 사건을 되새기는 언론 기사들이 유독 많았다.

그러나 9월 11일이라고 하면, 또 다른 비극, 미국이 악랄한 가해자가 된 비극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바로 1973년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이끄는 칠레 좌파 정부를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다. 이후 라틴아메리카 군부독재의 상징이 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육군참모총장이 지휘하고 미국이 배후 조종한 이 쿠데타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던 칠레 민중의 노력을 압살해버렸다.

이 실험 대신 들어선 것은 세계 최초의 신자유주의 실험이었다. 쿠데타 성공 이후 경제 위기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던 피노체트 정권은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론을 따르는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들을 기용해 영국, 미국보다 더 먼저 시장지상주의 경제 체제를 수립했다.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전 지구를 지배한 반동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이 나라, 칠레가 11월 21일 대통령 선거를 맞이해 들썩이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선만이 아니다. 칠레는 대선과 하원의원 전원의 선거, 상원의원 절반 가량의 선거를 동시에 치른다. 그리고 지금 대선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기록하는 후보는 출마 일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신자유주의의 고향인 이 나라를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만들겠다." 이 외침의 주인공은 '존엄을 인준하라'라는 이름의 선거연합에 속한 가브리엘 보리치다.

신자유주의의 고향을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만들겠다

이번 선거를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그 전사(前史)를 짚어봐야겠다.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선 뒤에 칠레에서는 치열한 민주화운동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1987년 6월 항쟁이 폭발한 그때에 칠레에서도 시위가 절정에 이르렀고, 1989년에 20여 년만에 다시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게 됐다. 한국에서 제6공화국이 시작될 무렵, 칠레에서도 민주화가 시작된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상황도 우리와 비슷한 데가 많다. 본래 아옌데 정부를 이루던 정당연합 '인민연합'의 양대 축은 사회당과 공산당이었다. 그런데 아옌데 대통령이 속했던 사회당은 군부독재 시기에 공산당 대신 기독교민주당과 손을 잡았다. 기독교민주당은 아옌데 정부의 개혁 정책을 계속 방해하다 끝내는 쿠데타에 동조한 정당이었다. 그럼에도 군부정권이 기독교민주당마저 탄압 대상으로 삼자 사회당은 기독교민주당과 정당연합을 결성했다. 오랫동안 '콘세르타시온(합작)'이라 불려온 이 연합은 (비록 명칭은 바뀌었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1989년 선거의 승자는 콘세르타시온이었다. 이후 칠레에서는 군부독재 계승 세력과 콘세르타시온이 양대 정치 세력이 되어 권력을 주고받았다. 반면에 공산당은 의회에 진출하기도 힘든 처지가 됐다. 구리 광산 국유화와 농지개혁을 단행하던 과거 사회당-공산당 연합의 기억은 역사책 속 한 장면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기독교민주당-사회당 연합은 피노체트 정권이 수립한 시장지상주의 체제를 고스란히 이어갔다. 민주화가 신자유주의화와 동의어가 되어버린 지구 반대편 나라와 너무나 닮은 궤적이었다.

한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부터 칠레 사회와 한국 사회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칠레는 2000년대에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처럼 '분홍색 물결'이 덮친 나라로 분류됐다. 콘세르타시온 안에서도 기독교민주당이 아니라 사회당에 속한데다 아옌데 정부 시절에 열혈 청년 운동가였던 미첼 바첼레트가 2006년에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그리 불릴 만도 했다. 그러나 1기 바첼레트 정부에서도 피노체트 이후 칠레 사회의 골격은 수술대에 오르지 못했다.

진정한 변화의 조짐은 2010년대에 나타났다. 칠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는 교육제도다. 1973년 쿠데타 이후 신설된 교육기관은 대부분 사립학교이고, 대학은 오래된 일부 국공립대학을 빼면 모두 사립대학이다. 정부의 교육 투자는 미미한 반면 가계의 등록금 부담은 해가 갈수록 늘기만 했다. 이 때문에 이미 몇 차례 중고등학생 시위가 있었고, 2011년에는 바로 그 세대가 대학생이 되어 당시의 우파 정부(이때 대통령이 현 대통령 세바스찬 피녜라다)에 맞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시위는 고등학생까지 결합하며 거의 2년간이나 계속됐다. 한국의 반값 등록금 운동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2013년까지 이어진 이 운동을 통해 칠레의 현 20-30대가 민주화 이후 가장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집단으로 떠올랐다. 또한 카밀라 바예호, 조르조 잭슨 같은 학생운동가들이 젊은 세대의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고, 보리치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업고 바첼레트가 2013년 대선을 통해 두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때 들어선 2기 바첼레트 정부는 2000년대의 1기 때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이는 듯했다. 색깔로 따지면, 이번이 더 '분홍색 물결'이란 말에 어울렸다. 콘세르타시온은 명칭을 '새로운 다수파'로 바꾸면서 30여 년만에 처음으로 공산당을 연합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공산당은 오랜만에 원내정당으로 돌아왔고, 바예호 같은 20대 학생운동가가 공산당 소속으로 하원에 입성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의 2016-17년 촛불항쟁이나 이후 문재인 정부 초기에 '촛불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협력하던 모습과 비슷한 데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면이 더 많았다.

우선 우파뿐만 아니라 '새로운 다수파'까지 포함해 양대 정치 세력 모두를 비판하며 제3의 대안이 되고자 하는 흐름이 대두했다. 잭슨처럼 공산당에 속하지 않은 학생운동가들은 시위가 한창이던 2012년에 벌써 '민주혁명'이라는 독자정당을 결성했다. 여기에 여러 좌익 정파들이 결집한, 보리치가 속한 또 다른 조직 '사회적 결집' 등이 함께 하며 새로운 정당연합 '확대전선'이 출범했다.

젊은 좌파 세대를 오롯이 대표하는 확대전선은 2017년 대선에 베아트리스 산체스를 후보로 내세우며 바람을 일으켜 20.27%를 득표했다. 동시에 실시된 하원 선거에서도 16.49%를 얻었고, 한국과 달리 비례성이 강한 선거제도 덕분에 원내 제3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더 인상적인 신진 좌파의 돌풍이었다. 나는 4년 전에 이 지면에서 이러한 확대전선 바람을 소개한 바 있다("70년생 여성 대선 후보의 돌풍, 이유는?: 칠레판 포데모스, '확대전선' 바람이 불다", <프레시안> 2017. 12. 5).

이후, 확대전선이 진출한 의회에서 공산당도 점차 기독교민주당-사회당 연합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대선에서 피노체트 노선의 적자인 피녜라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 것은 2기 바첼레트 정부도 애초에 공약한 사회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회경제정책에 관한 한 똑같이 신자유주의 정책 합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대 정치 세력에 맞설 대안의 자리를 놓고 공산당과 확대전선이 서로 경쟁했다.

이 상황에서 2019년 가을,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계기로 격렬한 대중투쟁이 폭발했다. 처음에는 중고등학생이 거리에 나섰지만, 경찰이 폭력 진압을 벌이자 다수 시민이 시위에 합류했다. 시위는 다음해 봄까지 이어지며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피녜라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헌법 개정 카드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기존 의회에서 헌법안을 논의해보자는 수준이었지만, 원내에서 확대전선과 공산당이 압력을 넣고 국민투표에서 민심이 명확히 확인됨에 따라 헌법제정시민회의를 따로 선출해 새 헌법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연말로 예정된 대선에 반년 앞서 열린 헌법제정시민회의 선거 결과는 칠레를 넘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집권 우파는 20.6% 득표에 그쳤고, 확대전선과 공산당이 함께 결성한 선거연합 '존엄을 인준하라'가 기독교민주당-사회당 연합을 제치고 제2의 정치세력으로 부상했으며, 무소속 당선자들까지 합치면 급진좌파와 사회운동의 대표자들이 의석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이런 헌법제정시민회의 선거의 여진 속에서 지금 '존엄을 인준하라' 소속 보리치 후보가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칠레 대선 정국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35세의 유력 대선 주자

실은 보리치가 '존엄을 인준하라'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도 이변이었다. '존엄을 인준하라'에 속한 공산당, 확대연합 등이 공동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다들 공산당 소속인 레콜레타 시장이자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가 출신 다니엘 하두에가 후보가 되리라 여겼다. 헌법제정시민회의 선거가 있기 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미 하두에는 우파나 기독교민주당-사회당 연합 쪽 후보군을 제치며 1위를 달렸다.

그러나 7월에 실시된 '존엄을 인정하라' 예비선거에서 확대전선 소속 하원의원 보리치가 거의 60%를 받으며 후보로 선출됐다. 보리치는 피녜라 정부의 헌법 개정 카드를 받아들인 것 때문에 확대전선 안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게 시위를 중단시키려는 정부 측 의도에 넘어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헌법제정시민회의 소집이 오히려 체제 변혁파의 기회임이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예비선거에 참여한 대중은 1967년생인 하두에보다 훨씬 더 젊은, 대한민국에서는 아예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는 1986년생 보리치를 선택했다.

이는 또한 보리치가 내건 비전의 선택이기도 했다. 하두에도 물론 신자유주의를 끝장낼 급진적 구조개혁 비전을 제시했지만, 보리치는 특히 '여성권 확대'와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했다. 보리치의 공약 가운데 한 축은 여성 일자리와 여성 노동권 확대이고, 다른 한 축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태 전환(물론 핵심은 에너지 체제 전환이다)을 경제 구조 개혁과 새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아옌데가 약속했던 인민연합 강령과는 많이 달라 보이지만, 시대 변화에 맞게 갱신된 급진적 개혁 비전이라 할만하다.

보리치가 후보로 선출되는 이변에도 불구하고 하두에와 공산당은 보리치 선거운동을 중심으로 굳건히 단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적은 각기 다르지만 '존엄을 인준하라'에 함께 모인 2010년대 학생운동 지도자들, 바예호, 잭슨 등이 보리치와 한 팀을 이루며 단결을 과시했다. 인민연합 정부를 낳았던 나라에서 그 시절 연합의 성취를 되살릴 뿐만 아니라 한계까지 정확히 기억하며 명쾌히 극복하려는 새 실험이 시작되는 광경이다.

기세가 이미 이러하다. 그렇기에 우파조차 이번에는 달리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피노체트주의자 피녜라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던 우파 연합은 기독교민주당에서 당적을 옮긴 1977년생 세바스찬 시켈을 후보로 선출했다. 기독교민주당-사회당 연합도 원주민 후손인 1969년생 여성 야스나 프로보스테를 후보로 내며 변화의 분위기에 나름 대응하려 하고 있다. 2019-20년의 대중투쟁, 헌법 개정 정국, '존엄을 인정하라' 연합의 바람 등을 통해 칠레 정치의 왼쪽 중심이 강화되자 칠레 정치의 오른쪽 경계마저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의 고향을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만들겠다"는 보리치의 일성은 결코 허언은 아닐 것이다. 아니, 긴 혁명이 이미 진행 중이며 그 제2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한때 스페인의 포데모스가 전 세계 대표 주자로서 상징하던 변화의 방향이,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하지만 아직 이 땅에서 살려내지 못한 정치적 가능성이 지금 칠레에서 가장 앞선 모습으로 전진하고 있다.

그래서 11월 칠레 선거는, 인민연합 정부가 그랬듯이, 칠레인들만의 사건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가 다시 새로운 시대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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