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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자본과 이데올로기 노트> 두번째: 역사적으로 세 계급이 있었고, 지금 다시 부활하고 있다?

  • 입력 2020.06.02 08:46      조회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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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이데올로기> 내용 가운데, 범주 구분차원에서 진정 파격이라고 할 만한 것은, '삼원사회(Ternary Societies)'라는 범주인데, 이게 프랑스 국경을 넘어 인류 역사 전체로 일반화시킨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찌기 혁명 직전의 앙시앙레짐에서 프랑스가 귀족과 사제계급, 그리고 (평민을 중심으로 하는) 제3신분으로 크게 사회적 계급구도가 나눠져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 당시 국민의회도 삼부회가 아닌가?

그런데 나같은 사람도 프랑스에 국한된 사회구조 특성인줄만 알았던 사제-귀족-평민의 삼원적 계급구성을, 피케티는 근대 자본주의사회(피케티식 표현으로는 소유자사회:Ownership Societies)이전의 모든 사회에 대해서 보편적인 유형으로 대거 확장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정말 깜짝놀랄 대범한 비약이다.

(1)
라구람 라잔같은 학자는 이대목을 논리적 비약이라고 비판했지만, 피케티의 과감한 시도는 목적이 있었다. 바로 21세기 현대사회가 두 계층의 엘리트 집단, 지식엘리트 좌파(브라만 좌파)와 부자엘리트 우파(상인 우파)라는 다중 엘리트 지배체제로 수렴되고 있다는 것이 피케티의 분석인데, 이것이 전근대의 삼원사회와 닮았다는 점을 비유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전근대시기의 삼원사회에서는 모두 합쳐서 5~10%내외의 사제(지식)엘리트와 귀족(전사) 엘리트가 지배그룹을 형성하여 나머지 90%의 제3신분(평민)을 지배했는데, 20세기 후반기부터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어느새 사회구조가 그 비슷한 고학력 지식엘리트 집단(좌파 정당)과 자산가 부자엘리트 집단(우파정당)으로 수렴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
사실 혁명적 프랑스에서 전형적이라고 알려진 삼원사회를 '무력을 갖춘 전사지배계급과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지식/사제 지배계급으로 양대축으로 해서 평민을 지배했던 구조'라고 일반화하면 꽤 다양하게 세계 곳곳에서 적용하는 것이 꼭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체로 유럽의 스페인, 영국, 독일, 러시아 등은 유사한 패턴이었다고 판단되고, 인도의 카스트 제도도 비슷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며, 중국이나 한국, 일본의 문반-무반으로 구성된 양반 계급이 또한 아주 엇나간 것도 아닐 수 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전사회를 '삼원사회'로 일반화하는 것은 두고두고 이야기거리가 될 듯하며, 더욱이 21세기로 점프하여 지식엘리트 좌파(브라만 좌파)와 부자엘리트 우파(상인 우파)로 연결한 것은, 좋게 말해서 기가막힌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정말 많이 토론해보고 싶은 대목은 18세기 '삼원사회'로 시작해서 21세기 '삼원사회'로 마감하는 거대 기획에 관한 주제다. ( 어쨌든 2016년 미국대선, 2017년 프랑스 대선 등에서 전형적인 변곡점을 읽었다고 하는 <브라만 좌파-상인우파>의 유형화는 이 책의 가장 많은 논쟁점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나중에 다시 한번 노트를 해볼 것이다. )

***
가지 요즘 얘기와 연관해서 덧붙이면, 브라만 좌파와 상인우파는 이미 상인 우파의 한쪽에서 트럼프같은 우익 포퓰리즘(피케티는 이를 사회 토착주의:Social Nativism, 또는 정체성주의:Identitarian이라고 표현)의 등장으로 흔들리는 판에, 코로나19가 던져줄 충격이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충격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불평등 체제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훨씬 넘는 파괴적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 충격은 정말 상상하기도 어려운데, 2008년 이후 말로만 불평등, 두리뭉실 포용성장을 말해왔던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과제를 던지게 될 것 같다.

만약 피케티의 <브라만 좌파-상인우파>구도가 실제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 구도는 코로나19로 심화된 불평등 체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것이고, 정치의 대 분열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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