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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민주주의와 정치

[그래도 진보정치] 기후 문제는 계급 문제다

  • 입력 2021.08.19 12:00      조회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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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9일, 기후변화 속도가 기후과학자들의 기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라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제6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곳곳의 산불, 매년 최고 기록을 깨는 여름 더위, 마치 공습과도 같은 호우가 보여주는 묵시록적 광경에, 인류에게 더는 시간이 없다는 냉정한 과학적 진단까지 더해진 셈이다.

이런 인류사적 문서가 나오면, 마땅히 정치인들의 발언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예상외로 조용했다. 무책임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각국의 주류 정치세력에서는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노동당 전 대표인 제러미 코빈 하원의원은 14일, 온라인 매체 <자코뱅>에 ‘기후 문제는 계급 문제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아이피시시의 새 보고서를 계기로 생태적 전환의 착수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목이다. 기후 문제가 계급 문제라고 한다. 왜 지구 시스템 변화가 인간 사회의 계급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것인가? 게다가 기후변화는 인류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제 아닌가?

이런 물음에는 여러 각도로 답할 수 있다. 우선 기후재난은 인류 전체에게 ‘공평히’ 나타나지 않는다. 온도 조절이 잘되는 건물 안에서 24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들과, 한여름 무더위에도 야외 노동을 해야 하는 이들의 처지가 확연히 다르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충격이 대기업과 영세 자영업, 부유층과 불안정 노동자에게 전혀 다르게 나타나듯이, 기후재난의 고통 역시 불평등하다.

당장의 재난만이 아니다. 앞으로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계급에 따른 고통의 격차가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다. 자본 소유자에게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 전환이란 단지 기존 투자 대상에서 이윤을 더 뽑아낼 수 있는데도 이를 단념하고 모험적인 새 투자에 나서야 함을 뜻할 뿐이다. 그러나 수많은 노동자에게 이는 익숙한 일자리와 직업, 즉 생계 수단이 영영 사라지는 재앙을 뜻한다. 이렇듯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빈곤을 더욱 부추긴다. 거대한 반전의 시도가 없다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정 역시 계급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들은 정작 기후 문제가 계급 문제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후위기의 책임 문제다.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렇게 배출함으로써 부와 권력을 누려온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기후재난 시대가 이미 시작된 지금도 이를 마구 배출하는 이들의 책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악순환 속에서 계급 사다리의 맨 위에 군림하는 이들에게 따질 수밖에 없다.

지금 인류가 기후위기에 맞서 단 한 걸음도 앞으로 시원하게 내딛지 못하는 까닭은 딴 데 있지 않다. 플라스틱 빨대를 못 버려서도 아니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지금 삶이 만족스러워서도 아니다.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할 세력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낳은 바로 그 계급에게 회개나 퇴장, 아니 최소한 양보조차 요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후위기 해결의 최대 장애물은 특정 계급의 구조적 권력이다. 헌법 문구가 어떠한지, 주류 정당 중 어느 쪽이 집권했는지와는 상관없이 늘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계급이 문제다. 대항 세력이 성장해 이들의 구조적 권력을 누그러뜨리지 않는 한, 기후위기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기후 문제는 계급 문제다.

그러고 보면 아이피시시 보고서가 나온 뒤에 가장 즉각적이고 진지한 응답이 코빈 같은 이에게서 나온 것은 필연이다. 그가 주창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란 한마디로 구조적인 계급 권력을 해체하자는 이념이다. 복지국가의 재건도, 민주주의의 회생도 이 구조적 권력과 대결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한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도 이 권력에 절박하게 도전해야만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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