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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대 대선 정의당의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과 과제
- 입력 2023.09.15 14:27 조회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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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정의정책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평화#신국제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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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대 대선 정의당의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과 과제-김수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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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평화군축운동본부 등에서 비상임정책위원으로 활동하다 2009년부터 십여 년간 진보정당에서 평화·통일 관련 정책연구위원 등으로 상근 활동을 하고 있다. 구조적 폭력이 부재한 평화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진보정당 발전이 필수적이고, 평화주의를 발전시키고 실현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과제이자 발전의 바탕이라고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
1.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의 제시 배경
1) 외교·안보·남북관계의 복합적 위기 상황
외교·안보·남북관계가 여러모로 위기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이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는 높지만, 대일 정책 외에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에 새로운 진로와 정책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미약하다. 상황이 더 악화되긴 했으나, 북의 핵무장 가속화-남북관계 단절 및 국제질서 변화 속 중국과 냉랭한 관계-한미동맹 강화라는 큰 흐름은 20대 대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양대 정당은 당시 외교·안보·통일 정책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만약, 대선에서 외교·안보·남북관계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책에 대해 대통령 후보들 및 전 사회적으로 진지한 토론과 지켜야 할 금도, 대안 등에 대한 일정한 합의가 이뤄졌다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상황을 제대로 타개하기 위해서도 대선 당시의 우를 재연하지 말고, 주요 정당 등이 외교·안보·남북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대안을 내놓고 생산적 경쟁을 해야 한다. 특히 정부의 폭주를 견제해야 할 야당이 그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이 글은 그 일환이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정의당은 외교·안보·남북관계 정책으로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이라는 제목하에 12개의 공약을 냈다.(주 : 정의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후보가 직접 발표한 공약은 국방 부문의 “한국형 모병제 도입”과 “군 장병이 행복한 병영 실현”의 두 가지였다. 나머지 부분을 포함한 외교·안보·남북관계를 포괄하는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은 심 후보의 입으로 직접 발표되지 않고, 『주4일제 복지국가: 제20대 대통령선거 정의당 정책공약집』에만 실리고 말았다. 해당 공약집은 정의당 혹은 정의정책연구소 홈페이지에 가면 PDF 파일이 업로드되어 있다. 정의당 홈페이지는 정책-선거공약 카테고리 https://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html?bbs_code=JS56 ; 정의정책연구소는 발간물-정의당 공약 카테고리의 정의당 20대 대선공약집 http://www.justice-platform.org/home/post_view.php?nd=347로 들어가면 된다.) 공약집에 나와 있는 12개의 공약을 그대로 복사해 소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참고로 20 대선 정의당의 공약집에는 지면상의 한계와 전체 공약 서술의 통일성 등의 이유로 12개 공약 각각의 내용만 소개되어 있다. 공약집에는 싣지 못한,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의 개념, 동 정책을 제시한 배경과 문제의식, 이 글을 쓰고 읽는 현재 고민할 바 등을 나누는 것이 글의 목적에도 부합하고 훨씬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이란 ‘외교·안보·남북관계의 다차원적·복합적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의 실질적 진전 및 제도화, 평화·공생의 남북관계 제도화, 동아시아공동체·국제질서 기반 형성 등 다차원에서 평화를 안정화·구조화하며 기후위기 대응 협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외교·안보·남북관계(통일) 전략’이다. 이 정책을 제시한 문제의식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난 수십 년간의 국제질서가 변화하고 있으며 한반도도 비핵화와 평화의 항구화는커녕 핵무장과 강경대결, 대화의 완전 단절이라는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인식과 해법으로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우며 보다 적극적이며 포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차원적·복합적 위기라는 상황 인식을 좀 더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은 대선 당시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중단된 한반도평화 프로세스가 좌초될 수 있는 상황이다. 둘째, 과거에는 북핵을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악화되어도 남북관계가 지렛대가 되어 문제를 풀기도 했으나,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고 서로 군비증강으로 치닫고 있다. 셋째, 미·중 관계가 과거에는 갈등 속에서도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했으나 전방위적으로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넷째, 기후위기, 양극화 심화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 코로나19 팬데믹 등 국제사회 공통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강대국들은 다들 자국의 근시안적 국익 확대를 우선해 관련국들의 반발을 사는 등 이른바 ‘패권국가’(주 : 패권안정이론에서는 패권국을 ‘자국 중심의 안정적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압도적 군사력과 경제를 바탕으로 공공재를 제공하는 국가’로 규정한다. 지배를 부정하지 않지만, 공공재를 제공하는 리더십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패권안정이론에서도 쇠퇴하는 패권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 타국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자원을 추출하는 악의적·추출적 패권이 된다고 한다. Robert Gilpin, 1981, War and Change in World Politic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국은 이러한 쇠퇴하는 패권국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줬다. 바이든 행정부는 근본적으로 다른지 반추해 볼 일이다.)가 보여준 국제적 리더십이 실종 상황이다.(주 : 유라시아그룹 대표인 브레머(Ian Bremmer)는 국제관계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국가나 국가들의 연합이 존재하지 않는 리더십의 부재라는 의미로 오늘날의 세상을 G-Zero(G-0) 시대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수형, 2020, 「‘G-Zero’ 시대의 도래와 한국의 대응전략 모색」,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재인용.) 이런 상황이 2차대전 이후 냉전과 병행한 얄타체제, 그리고 ‘자유주의 국제질서’ 자체의 위기인지, 양대 진영 간 신냉전 체제의 도래인지 아니면 다극질서의 신시대 형성인지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주 : 2022년 대선 전만 하더라도 국제정세에 대해 서세동점의 시대가 가고 다극화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등 상대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꽤 있었다. 필자는 그런 견해에 관해 비판적으로 보며, 갈등적 성격이 커지고 있되 아직 확실히 결정된 바가 없는 전환의 시대로 보았다. 김수현, 2022, “갈등과 전환의 시대, 평화·공생 선도 중견·평화국가”, 『보다 정의』 제2호, pp. 75-79 등을 참조 바람. http://www.justice-platform.org/home/post_view.php?nd=257) 그러나 탈냉전 이후 미국 일극 패권과 세계화-워싱턴 컨센서스가 쇠퇴하고, 기존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대 다극화된 질서를 선호하는 중국 등의 대결 구도가 강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기를 기대했던 북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그 기대를 점차 접고, 남북 및 미북 간 일체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고 있는 데는 이런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주 : 이와 관련해서는 정욱식, 2023,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미국에 미련을 버린 북한과 공포의 균형에 대하여』, 서해문집. ; 김진하 등, 2022, 『동북아 정세와 북한의 전략적 선택: 미중 경쟁구도의 전개와 북한의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통일연구원. 등을 참조 바람.)
현재 미·중 간 대결은 비단 전통적인 군사안보나 이념의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반도체, 2차 전지, 5G 등 차세대 통신 등 첨단 산업과 기술 표준을 둘러싼 경쟁도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등 탈냉전과 한중수교 이후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대북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제정세 및 북한 내 경제 사정, 그동안의 북미·남북 관계 전개과정 혹은 한·미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 등을 반영해 북의 목표 및 정책이 변화한 상황에서 기존의 접근법을 고수하는 것으로는 일체의 대화와 접촉 자체도 전면 단절된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2) 위기 대처에는 걸맞지 않거나 오히려 부추길 양대 정당
(주 :대선 때 양당의 한계, 오류 등을 다루는 것은 단지 당시 모습에 대해 비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당시의 문제점이 현재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며, 이제라도 그로부터 교훈을 얻자는 취지다.)
그러나 양대 정당의 정책, 특히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의 인식과 발언에서 현 상황에 걸맞은 전향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대안을 찾기는 힘들었다. 관성적인 접근에 머물러 위기를 타개하기에는 무능하거나, 편향되고 갈등을 유발해 위기를 오히려 부추길 수 있었다. 위기가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사실, 객관적 정세가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 사회가 생산적인 논쟁과 합의에 이른다면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 비추어보면 다소 의아하다 할 정도로 20대 대선과정에서 외교·안보·남북관계 분야는 대중의 관심도 높지 않았다. 집값 폭등에 대한 대중적 불만과 각종 소확행과 한 줄짜리 공약이 난무한 20대 대선에서 외교·안보 이슈가 대중의 큰 관심을 끌거나 후보 선택의 기준이 되지는 못했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보 선택에 가장 영향을 미칠 정책 이슈를 두 개만 골라달라는 질문에 ▼미·중 갈등 등 외교·안보 이슈는 1순위 5.7% 1+2순위 12.2%,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 실현 방안은 1순위 3.7% 1+2순위 8.6%로 ▼부동산 대책 및 주거안정 대책 1순위 26.3% 1+2순위 45.4%, ▼일자리 창출 및 고용 정책 1순위 11.5% 1+2순위 22.0%, ▼경제성장 방안 1순위 11.1% 1+2순위 25.5%에 크게 못 미쳤다.(주 : 한국일보가 의뢰해 한국리서치가 2022년 2월 18일부터 19일 2일간 실시한 여론조사다.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3.1%p다. 그 결과표는 다음을 보면 된다. https://www.nesdc.go.kr/files/result/202308/FILE_202202200153575671.pdf.htm, 본문 인용 부분은 pp. 51-56을 참조 바람.)
윤석열 정부가 시행하는, 역대 정부의 견해와 노선에서 완전히 벗어난 대일 외교 및 이것을 바탕으로 한 한미일 군사협력의 가속화·제도화와 친미반중 편향외교를 생각해 보면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과 대응 전략이 대선과정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여야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후 전개한, ‘제3자 변제안’에 입각한 강제징용 해법 추진과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방류 방조 등 대일 굴욕 외교, 노골적인 친미반중 편향외교 등이 대선과정에서 솔직하게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윤석열 후보의 “한일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시대 실현”, “상호존중의 새로운 한중 협력시대 구현” 등의 다분히 원론적인 공약들 속에서 대중들이 그 본질과 귀결, 정당 간 차이를 제대로 간파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주 : 참고로 이에 해당하는 민주당의 공약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추진하겠습니다’는 제목 하의 “투 트랙 기조의 실용적 한일관계 구축-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발전시킨 새로운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 모델 추진”, “한중 간 실질협력 증진 및 한반도에서 중국의 긍정적 역할 유도”이다. 얼핏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다.) 윤석열 후보나 국민의힘이 대선과정에서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별성에 대한 부각 및 생산적 논쟁이 제대로 전개되지 않은 것은 결국 양대 정당과 그 후보 등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반추해보자. 윤석열 후보가 사드 배치에 대해 “명백히 주권적 영역”이라며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한중국대사가 공개 반발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사드’ 및 그와 연관된 중국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쟁점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도 사드 배치를 철회할 생각은 없다고 했으며 “영해 침범 중국 어선 ‘격침’” 등 반중 여론을 의식한듯한 발언을 해 여야 간 큰 차별성을 보이거나 주요 쟁점이 되지는 못했다. 후보 간 TV 토론회에서 한미일 3각 동맹화에 대한 심상정 후보의 우려와 지적에 대해 윤석열 후보는 일견 부정하는듯하면서도 그걸 절대로 하지 말자는 것이냐며 반문을 해 토론회 후 이재명 후보가 반박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친일 본색’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문재인 정부에서 이어져 온 ‘토착왜구’ 대 ‘죽창가’의 식상한 논쟁의 재탕으로 보였다. “국제정세의 변화 속 미국, 중국과 다 잘 지낼 수는 없으며, 한쪽 편을 들 수밖에 없다”라는 윤석열 후보 진영 주요 인사들의 인식과 ‘자유민주주의 가치’ 동맹을 강조하고 다분히 반중적인 후보 자신의 발언들을 종합해 외교·안보 정책의 현격한 차이와 윤 후보 진영 인식·정책의 문제점 등을 제대로 부각하지 못했다.
남북관계 혹은 대북정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분야는 2000년대 이후에도 민주당 정부와 보수 정부 정책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그런데 20대 대선 당시에는 윤석열 후보 진영도 “정치적 조건이나 비핵화 여부와 관계없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시행하겠다”라고 천명하는 등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가 엉뚱하게 선제타격을 포함한 3축체계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해 논점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북이 각종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도 “도발에는 단호한 조치” 등을 천명한 바 있고,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위원장 등 북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부를 능가하는 군비증강을 시행했으며 이재명 후보도 ‘튼튼한 안보가 대화를 뒷받침한다’라는 역대 민주당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대대적 군비증강이, 북한이 교류협력 등 일체의 대화 자체도 거부하며 핵 증강 및 각종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속하는 등의 강경책과 악순환 상황을 빚고 있으며, 코로나19 등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적극적 재정지원 필요와 상충할 가능성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과 선제적 군비동결-상호군축 선도 등 전향적 정책은 부재했다. 양대 정당 간에 현 남북관계-대북정책의 핵심적 문제 중, 군비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별다른 차별성이 없었다 할 수 있다.
전작권 환수 추진 대 사실상 포기를 제외하고는 국방정책에서 양당이 사실상 같으며, 과거에는 양당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듯했던 대북정책에서도 이제는 별다른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희석시킨 것을 좋은 의미의 정책 수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이 튼튼한 군비 전제-각종 교류협력 제안을 재탕하는 것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중단된 상황을 전혀 타개할 수 없음은 물론, 북이 강력히 비판하거나 전혀 호응하지 않는 상황에 비추어 단지 답보가 아니라 퇴보라고 할 수 있다.(주 : 이런 인식과 정책의 답보와 현실 타개에 무능함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이 양대 정당과 그 정부 모두 탈냉전 시대에도 대북 인식과 접근법 등에서 일정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북 정책을 포함한 안보정책이 힘에 의한 억지, 군사력 중심 국가안보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 즉 안보 혹은 평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확보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인식과 접근법에서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양대 정당 등의 기존 외교·안보 정책 한계의 원인 진단에 대해서는 김수현, 2022, “갈등과 전환의 시대, 평화·공생 선도 중견·평화국가”, 『보다 정의』 제2호, 특히 pp. 82-84를 참조 바람.)
2.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의 기조와 주요 내용
1)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의 목표와 달성 원칙 등 기조
지난 수십 년과는 다른 외교·안보·남북관계의 복합적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편향되거나 관성적인 접근법에 머물고, 특히 파편적 논쟁에 그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합리적 대안에 대한 생산적 논쟁과 그에 입각한 합의를 끌어낼 수 없다. 이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20대 대선과정과 윤석열 집권 이후의 상황이 딱 그렇다. 그 때문에 현 상황에 맞는 정책의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원칙, 방법 등의 기조가 분명히 정립될 필요가 있다. 정의당의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의 기조는 다음과 같다.
먼저, 목표는 다음과 같이 짧게 요약할 수 있다. ▼다차원적 평화의 제도화 : 남북기본협정-한반도평화협정-동아시아안보협력체-국제사회연대회의(PSCS),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복원, 실질적 진전 통한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형성, ▼남북 상호체제 인정 및 평화·공생의 제도화·역진 불가능한 안정화, ▼남북 군비대결 중단과 전작권 조기 환수, 국방개혁으로 진짜 안보 달성, ▼평화·공생·기후위기 공동대응 동아시아-국제질서의 기반 조성 등이다.
다음, 위 목표의 달성을 위한 정책의 추진 원칙이다. 첫째,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그 달성 원칙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은 안 된다,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책임한 강경책도 안 된다, 평화적 수단을 통해 평화를 달성해야 한다.
둘째, 공생의 원칙이다. 나만 안보 걱정 없이 살겠다고 서로 군비증강 대결하고, 나만 잘 살겠다고 다른 나라를 배제하고 제재하며 봉쇄하는 것은 ‘공도동망(共倒同亡)’할 수 있다. 지구적 차원의 갈등과 불안의 근본 원인은 빈곤과 저발전, 격차 때문인데, 이것을 외면하는 국가에 국격이 있을 수 없다. 공생해야 공영한다.
셋째, 기후위기 등 인류공동체가 직면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사활적 과제이자 의무다. 이미 선진국이 된 한국이 지구촌에 한 약속과 의무를 소홀히 해 ‘기후악당국가’의 오명을 쓰고 살 수는 없다. 선진국과 개도국, 미국과 중국 등이 기후위기 대처를 둘러싸고 대립하지 않고 모두가 동참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가교국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를 앞세운 대미 편향외교, 대일 굴욕외교 등 때문에 흔히들 ‘국익에 입각한 실용 외교’를 주장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도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 국익을 지키고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패권 경쟁의 최후의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미국 편에 확실히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 등 전 세계 국가들도 모두 자기들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정책을 전개한다. 그것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고, 결국 힘이 더 센 국가의 국익이 관철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두, 혹은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선전하거나 수용하게 할 수 있을 때 영향력도 이익도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한다. 결국, 현재의 국제질서를 어떻게 진단하며, 우리의 국익은 무엇이며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논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당은 앞에서 이야기한 ‘평화와 공생, 기후위기 대응 협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익이고, 미국과 중국 등 누구도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외교·안보 정책의 보편적 가치이자 원칙이라고 보았다.
2)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의 주요 내용
이러한 기본적 목표와 목표 달성·추진 원칙에 바탕을 두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사회 등 다차원에서 평화와 공생의 질서, 지구 문명의 지속을 위한 다음과 같은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을 제시했다.
첫째, 모라토리엄 파기가 아니라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재개될 수 있도록 하고, 본 궤도에 올리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제질서 전환기에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우리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흔들리는 한반도 평화의 안정화, 나아가 구조화·항구화가 필수이다. 그런데 ‘하노이 노딜’과 그 이후의 상황에서 보듯 비핵화와 대북제재의 우선순위, 각각의 폭 등 방법론을 둘러싼 이견으로 갈등이 지속되었다. (대선 당시까지만 해도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능성 자체가 봉쇄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 그 정체 상태도 지속되지 못하고 자칫하면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전체가 좌초될 기로에 놓여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여전히 ‘종전선언’을 주장하고 있었다. 종전선언은 이제 전쟁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가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등 보수진영은 ‘종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유엔사나 주한미군의 주둔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한사코 반대했다. 이에 정의당은 평화의 시대를 열겠다는 정치적 선언으로는 논란이 되는 ‘종전선언’ 대신 ‘평화선언’이 더 어울린다며, 평화선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합의를 담아 단지 일회적 정치행사로 그치지 않고, 이후의 기초를 놓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북의 핵 활동 동결과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초기 행동 합의’, ‘단계적-병행적 방법론에 대한 명시적 합의’, ‘비핵화-평화협정을 논의·체결할 4자 평화회담 개시’를 천명해 이후 지속할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문을 제대로 열어젖히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4자 평화회담은 북미 관계에 목을 매는 수동적 정책에서 벗어나 한반도 문제의 주도자는 바로 우리 자신임을 확고히 견지하며, 그것을 구조적으로 보장할 대안이라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둘째, 전쟁 불사의 강경책, 어느 일방에 대한 배제가 아닌 평화와 공생의 원칙에 기반을 둔 ‘균형외교’, 동 원칙들 및 기후위기 대응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연대의 추진, 특히 ‘가교국가’로서의 적극적 역할을 공약했다. 미국 대 중국·러시아의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면서 자칫 대만해협 등에서 분쟁이 발생하며 이에 연루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강대국 간 갈등으로 세계가 다시 진영 간 대결에 빠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진 상황이다. “어느 일방에 경도되어 편향외교를 전개할 경우 이런 우려가 단지 우려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국제사회 누구나 공감할 원칙을 제시하며 그에 공감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통해 전쟁 방지, 최소한 연루될 가능성 차단, 기후위기와 불평등 등 지구촌의 문제 해결에 ‘선진국’답게 책임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하자”라는 취지였다.
셋째, ‘그린 데탕트’를 통해 군비증강 대결을 중지하고, 기후위기 대응 협력을 증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미국과 중국 등 세계 각국이 지구촌 공동의 과제로 기후위기 대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탄소 배출에 군사활동은 예외로 하고, 군비증강 등 대결적 정책 때문에 기후위기 협력은 소홀하다. 미국과 중국 간에도 그렇고, 남북 간에도 그렇다. 이것을 뒤집어 누구나 공감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전쟁의 절대 반대는 물론, 대규모 군사훈련도 중지하고, 군사 분야 탄소 배출 보고 의무화 등을 추진하는 ‘동아시아 그린 데탕트’를 제안했다. 한반도 차원에서도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북한 핵·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한반도에 대화의 창이 열릴 것이고, 중단된 산림협력과 재생에너지협력 등 기후위기 협력을 성사시키고 군비증강 대결도 중지되는 ‘한반도 그린 데탕트’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넷째, 국가안보 명목의 희생 강요, 나만의 절대안보를 추구하는 구태의연한 안보정책을 인간안보, 공동안보 정책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심상정 후보는 “‘한국형 모병제’ 도입-30만 명 정예강군 달성”, “‘군 장병이 행복한 병영’ 실현” 공약을 통해 청년 남성과 그 부모, 하급 간부 등의 희생을 강요하며 구성원을 수단으로 하는 국가안보에서 벗어나 청년에게 기회가 되고, ‘제복 입은 시민’ 등 시민이 주역과 목적이 되는 ‘인간안보’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군을 현대화, 과학화, 지능화된 정예강군으로 변모시켜 기술혁명 시대에 우리의 안보를 담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강력한 힘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구태의연한 안보관에 따른 경항모·핵잠수함 사업 등 ‘안보 사치’, 북의 맞대응에 따라 안보가 오히려 위태로워지는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군비증강 대결 중지, 상호군축 선도, ‘30-50 플랜’ 추진” 등은 후보의 입으로 직접 발표되지는 않고, 공약집에만 게재되었다. 어찌 됐든 상대의 안보에 대한 우려를 인정하고 협력을 통해 너와 나 모두의 안보를 이룰 수 있는 ‘공동안보’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 공약이었다. 이미 한국의 국방비는 북한 총 GDP의 1.5배에 달한다. 그렇다고 우리 안보가 튼튼해지기는커녕 더 불안해지고, 대화마저 끊겨버렸다. ‘튼튼한 안보가 대화를 뒷받침한다’라는 낡은 교리와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군사적 능력의 확충이 필수’라는 잘못된 전제에 매달려 판문점선언 이후에도 군비증강에 일로매진하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와는 모순과 갈등을 빚는 엇박자에서 벗어나, 평화를 만들어가는 정책을 국방정책에서도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다섯째, 상대 체재 부정과 흡수통일을 배격하고, ‘평화적 공존’, ‘과정으로서의 통일’의 원칙을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평화를 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 주창되고 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정책이 추진될 때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다. 민주당 정부는 흡수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을 누차 밝혔다. 하지만, 헌법의 영토조항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의 통일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 그것을 근거로 한 국가보안법 등의 폐지 혹은 전면 개정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남한 내 일관된 정책 추진 및 사회적 합의를 모아내는 데도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았을 때 궁극적으로는 헌법 3조의 영토조항을 폐지하고,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을 ‘기존 남북 합의의 정신에 기초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추진’으로 개정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헌법개정은 국회의원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국민적 공감대 확보가 필수적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은 흡수통일, 비평화적이고 급격한 통일 추진을 배격하고 평화적 공존과 협력을 최우선으로 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발언의 바탕에 깔린 체제의 통일이 통일의 완성이라는 경직된 관점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이뤄나가겠다는 정신과 내용을 기조로 하는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하고, 국회에서 비준 동의받는 것을 남북관계에서는 우선적 과제로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실행 방침으로 외교·국방·남북관계 정책을 유기적·통합적으로 평화(안보)의 기조하에 추진하기 위해 통일부를 평화부(또는 남북관계부)로 개칭, 역할을 전환·강화하며, 평화부장관을 평화부총리로 삼아 NSC 상임부의장으로서 대통령을 보좌해 남북관계·외교·국방 정책을 총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현행 정부 체계에서는 안보실장이 국방부장관·외교부장관·통일부장관보다 위에서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나, 국회 특히 야당에 대한 설득과 협치가 필요한 해당 분야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역할이 강화된 평화부의 수장이 부총리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문제의식이었다.
12개 공약에는 위의 5+1의 설명에는 담지 못한 부분도 있다. 국방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민간인 국방장관 임명, 국방개혁 달성, 전작권 조기 환수”, 남북관계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대북제재 완화-경협 재개, 남북경제사회협력강화협정 체결” 등이 그것이다. 이런 공약들도 앞에서 밝힌 기본 기조에 입각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을 요약하자면 다음 그림 및 표와 같다.
[그림] [표]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의 개요
차원 | 평화-공생 제도화 | 군비대결↓+기후협력↑ |
남북 | 남북기본협정, 경제사회협력강화협정 | (신)한반도 그린 데탕트 |
남·북·미·중 | 한반도평화협정-한반도비핵화(지대) | |
동아시아 | 동아시아안보협력기구, 경제공동체 | 동아시아 그린 데탕트 |
전 세계 | 국제사회연대회의(PSCS) | 그린 데탕트, ‘가교국가’ |
3. 보다 악화된 외교·안보·남북관계의 위기
(주 : 이 단원은 김수현, 2023, “‘윤석열 정부 1년 외교·안보 정책 평가와 대안’ 토론문: 대안 모색을 중심으로”, 정의당 주최 윤석열 정부 1년, 민생부터 민주주의까지 ‘거대한 퇴행’ 연속 토론회 ⑥ 『윤석열 정부 1년, 외교·안보 정책 평가와 대안』 자료집, 특히 pp. 49-51을 수정·보완한 것임.)
20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에 비해서 외교·안보·남북관계의 위기는 더 심화하였다. 먼저, 국제정세가 더 악화되었다.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의 천명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더 좋아지지는 않았다. 대선 직전에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1년이 훨씬 넘게 진행되고 있다. 전쟁의 출구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피침 국가 민중이 가장 힘들겠지만, 국제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 첫째, 주권의 절대성과 탈식민주의 원칙에 금이 갔다. 2차대전 종전 후 엄연한 주권국가를 침공해 영토를 병합하려는 사례는 없었다. 주권평등의 원칙이 현실에서는 잘 구현되지 않고, 탈냉전 이후 주권국가에 대한 무력개입 금지의 원칙은 해당 정부의 인권 침해 시 갈등을 빚는 데 비해 이 사항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원칙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러시아에 의해 그것이 깨졌다.(주 : 냉전 시대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은 괴뢰정부를 축출하고 제대로 된 하나의 주권국가를 형성하겠다는 명분으로 진행된 통일전쟁, 즉 내전이었다. 나중에 국제전으로 비화한 한국전쟁도 초기에는 그러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탈냉전 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자기 뜻에 맞는 일종의 친소,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목적이었겠으나, 그 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부인하며 소련과 미국의 영토로 만들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문화적 독립성, 자주성을 부정하며 사실상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둘째, 강대국 간 갈등이 더 심화되었으며, 그것을 중재하거나 제어할 세력과 의지는 약화되었다. 러시아 등은 NATO 동진이 러시아의 불만과 위기의식을 고양시켰고 자국의 안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친화적인 위성국가로 만들거나 현재처럼 남동부 지역을 병탄하는 게 불가피하거나 필연적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스웨덴, 핀란드의 NATO 가입으로 NATO는 더욱 동진했으며, 중립지대 혹은 중립 정책은 약화하고, 러시아와 친러시아 대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고 공고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기존 국제질서와는 다른 대안적 국제질서를 모색하는 국가들이나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은 고민을 던져준다. 중국은 세계가 다극화되고 있다거나, 다극질서(다자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주 : 이러한 중국의 생각과 전략에 대해서는 예쯔청 저, 이우재 역, 2005, 『중국의 세계전략 (원제, 中國大戰略 (2005))』, 21세기북스. ; 한석희, 2007, “중국의 다극화전략, 다자주의외교, 그리고 동북아시아 안보”, 『국제지역연구』 제11권 제1호, pp. 349-374. ; 이재영, 2023, 「중국의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를 통해 본 세계전략과 한반도」, 통일연구원. 등을 참조 바람.) 중국이 다극의 하나로 생각하고 그 역할을 높여주길 기대하던 유럽과 그 주요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안보적 차원에서는 미국 편에 더욱 경도되었다. 나토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역외로 역할 확대를 꾀해 중국에 전략적 부담이 되고 있다. 정의당이 대선 당시 ‘평화와 공생, 기후위기 대응 협력’이라는 외교·안보정책의 원칙 혹은 기조로 협력과 연대를 할 중견국 중 주요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독일 등 서유럽 국가, 캐나다 등은 안보 부문에서는 뚜렷한 한계를 보이거나 더 후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반대하며 ‘디리스킹’을 주창했던 독일, 프랑스 및 그들을 포함한 EU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면에서는 그들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고 통상정책 및 기후위기 대응에서는 우리와 공명하고 공조할 여지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나토와의 연대를 추진하고, EU와의 공조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정세도 훨씬 악화되었다. 북한은 북한대로 모라토리엄을 깨며 화성 17형과 18형 등 ICBM을 잇달아 발사하고, 전술핵무기를 이용한 선제공격도 불사하는 강경한 핵정책을 입법화했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은 문재인 정부 시절 그나마 로우키(low key)로 진행하던 한미연합훈련을 대대적·공세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워싱턴 선언 등을 통해 전략핵자산 전개 등 확장억제를 더욱 강화시키고 ‘핵 사용 시 절멸’ 등을 위협한다. 대선 당시만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종전선언 추진’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었고, 그 찬반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정책적 차원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6월 28일 공식적인 자리에서 “반국가세력이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라며 일방적으로 매도할 만큼 상황은 후퇴했다. 만약 상황이 당시보다 악화되지 않고 ‘종전선언’ 등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선언 등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높다면, 그런 말을 내뱉으며 정치적 이득을 취할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는 동아시아 정세도 악화일로다. 2023년 8월 18일 미국 워싱턴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3국은 반북·반중국 지역동맹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한미일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원칙’, ‘캠프 데이비드 정신: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 등 세 가지 문서를 공식 발표했다.(주 : 세 가지 문서는 대통령실 홈페이지의 ‘대통령실 뉴스룸-보도자료’ 카테고리에서 그 전문을 볼 수 있다. 그 중 ‘캠프 데이비드 정신: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https://www.president.go.kr/newsroom/press/yeE9qWlT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https://www.president.go.kr/newsroom/press/NtwVwRMc 양자는 동 홈페이지에는 혼합되어 업로드되어 있어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각각의 문서는 함께 업로드된 문서를 참조하면 볼 수 있다.) 그중 공동성명에서 “역내 평화와 번영을 약화시키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 최근 우리가 목격한 남중국해서의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한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이라고 적시해 사실상 중국을 국제질서를 어기는 불법적 행동을 하는 국가로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공약’에서는 “우리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가 3자 차원에서 신속히 협의하도록 할 것을 공약한다”라고 해 한미일 3각 동맹으로 가기 위한 기본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 문구는 나토 헌장 제4조의 ‘회원국의 영토 보전, 정치적 독립 또는 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상호 협의한다’라는 문구와 유사하다. 물론 나토는 제5조에서 ‘회원국 중 하나 이상에 대한 무력 공격이 회원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는 데 동의하며, 그러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는 경우 ~ 무력의 사용을 포함한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행동을 개별적으로 혹은 다른 당사국들과 협력하여 실행함으로써 당사국을 지원할 것에 합의한다’라고 함으로써 집단방위를 명시하고 있는 데 비해, 한미일은 아직 그런 집단방위동맹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지 공동의 협의에만 그치지 않고, ‘정신’에서 3자 훈련을 연 단위로, 다 영역에서 정례적으로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공동 협의’ 조항을 통해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연루된 분쟁이 발생할 경우는 물론, 일본이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에서 중국과 분쟁을 벌일 경우에도 미국은 물론 한국에게도 공동 협의와 협조를 요구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남북 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기존에는 후방기지 역할만 했던 일본이 3자 협의를 통해 군사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할 수 있다.
미·중 간 전략적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 간 대결이 필연은 아니었다. 냉전 시대에도 한·미·일 3각 동맹은 형성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미국과 동맹을 통해 안보를 유지하는 데 만족했고, 미국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군사 분야의 협력은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이전까지는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일본의 평화헌법, 한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 개입의 경계와 군사협력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 한일 간 과거사 갈등 등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평화헌법을 형해화하는 내용으로 안보 전략 관련 3대 문서가 지난해 말 개정되었고, 한국에서도 윤석열 집권 후 북한 위협 증대와 ‘자유’ 가치의 공유를 빌미로 일본의 군사력을 앞세운 침략과 식민화, 강압 통치의 역사를 묻어버리는 행태가 전개되었다. 동아시아에서 대중국 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한국과 일본 당국의 적극적 협력으로 달성되고 있다. 그것이 미국을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 등과 수교를 하고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외교·안보·경제적 이익을 크게 확장했던 한국에는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21년까지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다가 2022년 이후 적자로 돌아선 대중 무역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항구화를 위한 중국, 러시아의 협조는 완전히 물 건너가고, 북·중·러 간 군사협력을 통해 한국의 안보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4. 마무리하며
여러모로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대한 부정에서 보듯 냉전과 같은 모든 부문에서의 전면적 대립과 단절의 관계가 다시 도래한 것은 아니다. 연루의 위험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나, 아직은 나토와 같은 지역동맹의 제도적 틀에 완전히 포섭된 것도 아니다.(주 :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정신, 공약은 정상들의 선언과 약속일뿐, 국회가 비준 동의를 하게 되어 있는 조약이 아니므로 국제법적 의무를 갖는다고 할 수도 없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나토와 같은 공동방위의 의무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 당시 발표했던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의 목표와 관련 공약 등 일부는 상황에 맞게 수정되어야겠으나,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접근법·원칙 정립 등과 관련한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존 인식과 접근법의 한계를 벗어나는 적극적 평화-공동안보의 개념 및 기후위기 등 지구촌 차원의 문제에 대한 책임과 연대 등의 원칙에 입각한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을 전개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생각한다.
국제정세에 대한 지나친 비관과 힘이 없어 대세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소극적·비주체적 태도는 한국을 국제정치의 졸로 만들고, 강대국 간 갈등과 야합의 희생양으로 만들 수 있다. 어리석은 위정자의 퇴행적 행태를 막지 못하면, 가장 큰 희생양은 민초인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편향외교를 지양하고 우리와 이해를 같이 할 수 있는 중견국 및 아세안, 남반구 주요 국가들과의 국제연대를 확대하는 한편, ‘그린 데탕트’ 등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등을 매개로 한 미국과 중국, 남과 북(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협력을 부르짖고 선도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의 발발은 핵전쟁이고, 그것은 승자가 없는 모두가 망하는 결과밖에 없다. 우선,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강 대 강 대결의 악순환을 막고 대화의 재개를 현실화할 적극적 타개책을 모색·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미연합훈련-북의 핵과 미사일 실험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특사 파견 등을 제언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일 3각 동맹화가 아닌 남·북·미·중 4자 평화회담도 제안할 수 있다.
물론, 윤석열 정부가 이런 제안들을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솔직히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하지만, 정의당이 먼저 정치권 및 시민사회에 제안하고, 이에 공명을 하는 정당 및 단체와 협력하며 여론의 분위기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정세에 영향을 받는 반중·반북 여론, 협력의 가능성에 부정적인 여론의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편향외교를 우려하고 전쟁위협을 걱정하는 여론에 호소하고 공명을 확대해 전반적 여론을 전변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전변시킨 여론을 바탕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정당과 정치인의 몫이다. 그 몫을 다하는 책임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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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html?bbs_code=JS56
- 정의정책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justice-platfor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