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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 칼럼] 짐이 헌법이다?

  • 입력 2022.12.06 12:58      조회 440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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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한 나라의 가치와 규범을 규정한 최고의 법률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헌법을 위정자들이 필요에 따라 헌신짝처럼 짓밟아 왔다. 이 때문에 헌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과 달리 헌법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이승만은 재선이 어렵게 되자 1952년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는 등 부산정치파동이라는 공포정치를 통해 개헌을 했고 2년 뒤에는 헌법이 금지한 3선을 위해 사사오입개헌을 했다. 박정희도 1969년 3선 개헌을 했고 1972년에는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개헌을 했다.

예외적으로, 최고위정자가 ‘헌법을 수호한다’고 나선 것은 두 번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첫 번째는 1974년 1월8일 박정희 정권이 발표한 악명 높은 긴급조치 1호로, 유신헌법 수호에 나선 것이다. “나는 현재의 헌법을 수호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1987년 4월13일 전두환이 발표한 ‘호헌선언’이다.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에 대해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는 ‘체육관헌법’을 수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한국현대사가 최고위정자에 의한 ‘헌법유린의 역사’에 다름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최고위정자가 헌법수호를 외치고 나선 두 사례 역시 반민주헌법을 지키겠다는 ‘독재수호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우리 현대사에서 최고위정자에 의한 헌법수호선언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헌법수호 문제를 꺼낸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전용기에 MBC를 배제한 것에 대해 MBC가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리 국가안보에 핵심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그런 행태를 보였다”며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이를 듣자 떠오른 것이 바로 ‘헌법수호’의 비극적 역사였다. 현 헌법은 여러 문제가 있어 개헌이 필요하지만, 두 차례의 호헌선언 헌법처럼 ‘독재헌법’은 아니다. 따라서 두 경우와 달리 수호할 가치가 있다. 또 “언론도 입법, 사법, 행정과 함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4개의 기둥”이며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책임이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기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맞다. 나아가 대통령실이 MBC와 관련해 발표한 10개의 반박문 중 상당부분은 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MBC가 음성전문가들도 확실하게 단정하지 못하는 대통령 발언을 자신 있게 자막을 달고 맥락의 이해를 돕는다며 추정에 기초해 없는 발언까지 괄호를 쳐서 자막을 단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통령실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보도정정을 요구할 일이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제재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도 아니고 MBC의 보도가 헌법을 침해하는 것이며, 따라서 MBC를 대통령전용기에 태우지 않는 등 정상적 취재로부터 배제하는 것이 헌법수호를 위해 부득이한 일이라니,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헌법을 위협하는 행동인지를 대통령이 제멋대로 판단하겠다는 것인가? 자신이 평생을 검사로 일했으니 무엇이 반헌법행위인지 잘 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게다가 이 문제로 대통령실이 MBC 기자와 설전을 벌이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는가 하면 여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MBC를 사영화(privatization, ‘민영화’라고 번역하지만 사기업의 사유재산이 된다는 점에서 ‘사영화’가 정확한 번역임에도 여론을 긍정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의도적 오역이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 안 나온다. 특히 걱정인 것은 ‘내가 헌법이고 법’이라는 발상은 이에 그치지 않고 화물연대파업에 대해 국제협약이 금지한 ‘강제노동’ 강제 등 ‘준법주의’를 내세운 국정에 대한 일방적인 강경대응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 헌법은 1973년 긴급조치 당시 유신헌법, 1987년 호헌선언 당시 헌법과 달리, 지킬 가치가 있는 ‘민주헌법’이지만 윤 대통령의 헌법수호발언은 무엇이 헌법을 해치는 것인지를 자신이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내용적으로는 1973년 긴급조치와 1987년 호헌선언과 마찬가지로 ‘독재수호선언’에 다름 아니다. 최근 들어 이를 부정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절대왕정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 다름 아니다. “짐이 헌법이다.”

* 이 글은 2022년 12월 6일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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