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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의 응시] 김오랑, 강경대, 노태우, 이재명

  • 입력 2021.11.02 13:10      조회 869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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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느냐고 묻지 마라. 너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노태우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에 존 던의 시가 생각났다. 그의 역사적 죄와는 별개로, 이 시처럼 그의 죽음에 같은 인간으로서 애도를 표하고 나자, 떠오른 것이 김오랑, 강경대, 이재명이다.

사법적 심판까지 받은 12·12군사반란 등에도 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른다는 발표에 착잡한 심정으로 나는 김해의 한 초등학교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공수특전단 베레모를 쓴 군인의 흉상이 있다. 그는 이 학교 출신으로 12·12 당시 반란군에 저항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 불법체포에 저항하다 사살당한 김오랑 중령이다. 충격에 실명한 부인이 비극적 죽음을 맞은 뒤 그는 명예회복도 되고 훈장도 받았다. 하지만 참군인의 상징으로 그의 동상을 모교인 육사에 세우려는 노력은 기득권세력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반란군의 핵심은 자칭 ‘촛불정부’에 의해 국가장의 예우를 받은 것이다.

주목할 것은 노태우에 대한 잘못된 평가이다. 그가 전두환과 달리 ‘부드러운 2인자’로 12·12와 5·18 등 신군부의 반역사적 폭거에 책임이 덜 하다는 평가는 틀렸다. 그는 12·12 당시 전방부대 사령관으로 쿠데타세력이 열세에 놓여 있을 때, 북한이 쳐들어오든 말든, 전방부대를 빼내 서울로 끌고 와 전세를 역전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안보 공백을 야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야심을 위해 신성한 군을 사병화해 우리 군을 공격하게 한 것이다. 최소한 전두환은 전방부대를 빼오지는 않았다. 노태우가 전방부대를 빼오지 않았다면, 12·12쿠데타는 실패했을 것이고, 따라서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달려 나와 이룬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영삼·김대중 양김의 분열 덕분에 올라서는 안 되는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에도 1991년 공안정국으로 강경대 열사 등 1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군사반란 등에 대한 그의 역사적 죄가 과소평가받고 있다면, 역설적으로 대통령으로서 그의 업적 역시 과소평가받는 부분이 있다. 이는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경제정책인 토지공개념, 구체적으로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이다. 이 정책은 김영삼·이명박·박근혜 등 그의 뒤를 이은 보수정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를 자처해온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자유주의적 개혁정권’들, 나아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성남시장·경기도 지사 시절 부동산정책보다 100배는 진보적이다. 보수정권인 노태우 정부 근처도 못 가는 ‘보수적’ 정책으로 투기세력의 배만 불린 정권이 무슨 진보인가? 이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것은 ‘진보에 대한 모독’이다. 쟁점인 대장동게이트도 마찬가지다. 한심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를 볼 때, 특검이 아닌 이상 진실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보수정권에 의한 구조적 제약을 고려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권한 내에서도 이 후보가 한심한 측근에 대장동을 맡겨 초과이익환수조항을 삭제하는 등 투기세력에 엄청난 수익을 안기고 국민들을 절망에 빠트린 무능과 낙하산인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노태우의 부동산법은 보수적 헌법재판소의 위헌판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토지공개념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고 판정한 만큼, 이후 정부들이 “토지는 모두의 것”이라는 그의 철학을 이어받아 ‘합헌적 토지공개념 정책’들을 펴나갔다면, 지금 같은 부동산투기와 불로소득의 왕국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소위 ‘진보성남시장’ 밑에서 대장동게이트 같은 몰상식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토지공개념이 불로소득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는 ‘혁명예방적 개혁’이라는 설명에 대해 여당인 민정당이 “오히려 혁명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며 반기를 들고 김대중·김영삼이 이끌던 ‘개혁적 민주야당’들이 ‘반자본주의적인 빨갱이 법’이라며 반대했지만, 노태우 정권은 국회에서의 점호식 공개투표를 주장하는 등 여론을 움직여 이를 통과시켰다는 사실이다. 말만 급진적일 뿐 내용은 보수적이어서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만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개혁정치인’들의 ‘스타일의 급진주의’, 민생과 거리가 먼 엉뚱한 문제에서나 급진적인 ‘헛다리 급진주의’와 달리, 그는 스타일은 부드러웠지만 토지공개념 같은 혁명적 민생정책을 만들었다. 자극적 선동이 난무하는 인터넷정치 시대에 모두가, 특히 개혁세력과 정의당 같은 진보세력이 배워야 할 덕목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깊은 강은 조용히 흐른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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