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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정책과서평1] 그린뉴딜-‘정의로운 전환', 어디서부터 고민해볼까?

  • 입력 2021.01.01 08:36      조회 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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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정의로운 전환의 내용이 부실한거냐?"

지난해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그린뉴딜 정책을 만들고 공유하는데 참여하면서 꽤 많이 들었던 문제제기다. "일단 전환하자는데 동의가 되어야 정의로운 길이든 아니든 논쟁을 해볼 수 있을 것 아닌가?" 라고 대답했지만 결론적으로 잘못된 대답이다. 정의롭지 않게 전환이 기획될 것이라는 의심이 들면, 많은 시민들은 처음부터 전환에 동의하지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연초부터 이 주제를 좀 다뤄보고 싶었다.

(2) 일자리와 환경, 둘 다 이거나 또는 전부 아니거나.

1998년 캐나다 노동조합 활동가 브라이언 콜러(Brian Kohler)가 환경악화에 대응하기위한 석탄산업 축소과정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원칙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조합 입장에서 환경이나 일자리냐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둘 다인가 아닌가(“The real choice is not jobs or environment. It is both or neither.”)하는 프레임으로 환경정의와 노동정의를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면서 노동조합의 참여방식을 제안한 것 같다.

지금 기후위기 대처 정책으로 부상하는 그린뉴딜도 '일자리 정책'에 상당한 무게를 두면서 정의로운 전환의 기초를 포함하려 노력하는데, 비슷한 궤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많이 많이 부족하다. 좀 더 확장을 할 필요가 있다.

(3) 정의롭지 않으면, 전환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기반 경제사회를 버리고 통상적인 경로로 대대적인 탈-탄소사회로 가는 전환을 한번 상상해보자. 그럼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금새 떠오른다. 첫째, 자본은 경쟁때문에 출혈을 감수하고 탈탄소 산업으로 갈아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통상 노동자를 함께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는 개별적으로 여기에 대처하기 어렵다. 이걸 예상하면 해당 노동자들은 한사코 전환을 반대할 것이다.

둘째, 화석연료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탄소세를 매기면, 저소득층은 규모가 적더라도 감당하기 힘들수 있다. 전기세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그럼 저소득층은 탄소세를 매겨 전환을 서두르자는 정책에 반대할 것이다.

세째, 저소득층이 보유한 전자제품은 에너지 효율이 낮을 수 있고, 거주하는 주택도 단열수준이 낮을 수 있다. 혼자로는 효율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면 저소득층은 전환을 위한 그린 리모델링에 소극적일 것이다.

네째, 전환을 위해서는 내연기관차로 뒤덮인 현재의 교통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저소득 지역의 교통체계를 보행중심,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이들은 전환에 소극적일 것이다.

다섯째, 종합적으로 볼 때, 전력산업-교통체계-주택리모델링이라는 핵심 전환사업은 모두 사회적 인프라 성격을 갖거나, 시민들의 필수재 성격을 갖는다. 이를 시장 메카니즘으로 유도하면 독점화되면서 비용을 사회로 전가시킬 우려가 있고 이럴때 저소득층이 손해를 본다.이렇게 저소득층이 차별적으로 손해를 보는데, 이걸 ‘교육’으로만 설득시키려 하는것은 넌센스다.

즉, 현재 심각한 불평등이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시장메커니즘을 통해 기업주도로 탈-탄소사회로 전환하자고 하면, 불평등 구조의 하위 80%는 감당할 능력이 안되어 전환을 반대할 수 있다.

(4) 경제불평등과 기후불평등은 함께 엮여있다.

이 대목에서 학자들이 발견한 확고한 상관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크게 보아서 환경적 불평등을 결정한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것이 인간인 것은 맞지만 모든 인간이 고르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안에서 보면, 대체로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사람은, 환경의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사는 지역이나 개인 선호도 아니고 그냥 '소득차이가 탄소배출 차이'를 만든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프랑스 기준으로 상위 20%부유층이 탄소배출의 3/4의 책임이 있고, 하위 2/3는 고작 20%밖에 책임이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부자들은 더 많은 자연자원을 사용하고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서도, 공기청정기나 고급 냉난방 장치등을 통해 기후위기를 피할 수단도 제일 많다.

그러나 하위 80%는 탄소배출을 가장 적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가장 많이 보고 있고, 기후위기 피해에 대처할 능력은 가장 떨어진다. 더욱이 탈-탄소전환과정에서의 피해도 가장 많이 볼 가능성이 있고, 전환과정에 대처할 자원과 역량도 가장 부족하다.

이렇게 경제적 불평등은 환경적 불평등을 낳는다. 이것은 '부정의'한 것이다. 덧붙이면, "환경적 불평등은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킨다.(Environmental inequalities aggravate existing economic and social inequalities)" 에너지 접근 능력이 떨어지면 교육기회뿐 아니라 정신적 물리적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저소득층이 공해나 환경적으로 나쁜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고 이것이 능력개발 등에 나쁜 영향을 주게된다.

(5) 탈-탄소사회로의 전환과 사회적 전환

'더 배출한 사람이 더 책임져야 정의로우며, ', '탈-탄소전환과정이 역으로 불평등을 줄이는 계기로' 삼아야 다수 시민이 참여하는 전환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탈-탄소사회로의 전환과 사회적 전환(불평등 해소)는 함께 가야만 둘 다 성공할 수 있다것이 결론이다. 어떻게?

짧게만 짚어두면, 공공의 이니셔티브가 중요하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전환을 하기도 쉽지 않고, 시간도 너무 오래걸리겠으나.... 그 이상으로 기업 주도의 전환은 시장경제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공공정책이 전환과정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특히 에너지/교통/주거 등은 기본적으로 인프라성격을 갖고 필수재 성격을 갖기 때문에 그렇다. 공공 이니셔티브가 지켜져야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가 충격을 덜 받는다. 이런 대목에서 보면 우리정부의 금융/기업 이니셔티브는 위험하다.
(또한 지금까지 정부는, 심각한 불평등을 모면하기 위해 더 큰 규모의 성장으로 대처해왔다. 그러나 이는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불평등이 심하고, 이를 감추는 식으로는 기후위기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생태적 전환과 사회적 전환은 함께 가야만 갈 수 있다.>

(6) 위 내용이 실려있는 책은, 뤼카 상셸(Lucas Chancel). 2020. Unsustainable Inequalities: Social Justice and the Evironment.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파리경제대학 세계불평등연구소와 세계불평등데이터 베이스를 피케티와 함께 운영하는 뤼카 상셀의 약 150쪽 짜리 책이다. 상셸정도가 아니라면 쓰기 어려운 경제적 불평등과 환경적 불평등을 '길지 않게' 엮어낸 책이다. 이 책의 공식 주제는 '정의로운 전환'이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이 책만큼 정의로운 전환에 실질적인 통찰을 주는 책은 없을 것 같다. 얼렁 누군가 번역해 달라는 취지로 소개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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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틈나는 대로 공유하고 싶은 책을 시리즈로 소개해보고 싶다. 온라인으로 나마 좋은 코멘트를 해주시면 배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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