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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10/11 합본호 4.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위하여

  • 입력 2024.01.25 13:49      조회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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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위하여-김진석.pdf

 

김진석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서 사회사업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2009년 초까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일했고, 2009년 귀국하여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문제와 사회정책, 복지국가 전반에 걸쳐 연구하지만, 현재의 주요한 관심 분야는 돌봄 중심의 복지국가 재편 방안, 기후위기 시대 복지국가 고쳐쓰기이다.




1. 들어가며: 왜 돌봄사회인가?

   돌봄은 새롭지 않다. 인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미시적 수준에서 개인에게도 돌봄은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생존의 조건으로서 항상 개인과 인류 곁에 함께 해왔다. 돌봄사회는 오래된 돌봄을 새롭게 들여다보려는 시도이다. 돌봄의 사회화를 통해 탈가족화를 시도한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 사회적 돌봄의 비중과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돌봄과 개인, 가족 사이에 거리를 유지하려는 개념이다. 기존의 돌봄이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면, 돌봄사회의 돌봄은 사회적 돌봄을 바탕으로, 돌봄에 있어서 개인과 가족의 역할과 책임을 재규정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왜 돌봄사회인가?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복지국가의 전성기를 꽃피운 사회경제적 조건이었던 안정적 고용관계에 기반한 남성생계부양자 모형과 가정 내 여성의 부불(不拂)노동에 의해 전담되던 재생산 노동의 구조가 사실상 자본의 요구 때문에 해체되어 온 과정에서부터 그 답은 시작된다. 테일러 구비(Peter Taylor-Gooby)가 신사회위험의 하나라고 규정한 돌봄공백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응의 필요성은 돌봄사회를 제기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전반적인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마주한 자본은 이에 대한 대응 가운데 하나의 수단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남성일인생계부양자 모형(single breadwinner model)에 균열이 오게 되었다. 이와 같은 남성일인생계부양자 모형의 균열은 결과적으로 여성을 임금노동시장에 호출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기존에 여성이 전담하던 돌봄을 포함하는 가족 내 재생산노동은 결과적으로 심각한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신사회위험에 대해 복지국가는 돌봄의 탈상품화 등을 통해 대응해 왔는데, 프레이저(Nancy Fraser)가 언급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은 복지국가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고 여성 인력을 유급노동화함으로써, 즉 맞벌이 가구를 규범화하면서 돌봄의 공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돌봄은 미시적 차원에서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지속해서 공급되는 노동에 기대고 있는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신사회위험이 제기한 돌봄의 공백이 되었든, 신자유주의에 의해 가중된 돌봄의 공백이 되었든, 돌봄의 공백은 개인과 인류의 생존에 심각한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개인의 생존을 위해, 체제의 재생산을 위해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기획이 필수적이다. 돌봄사회는 이와 같은 기획의 하나로서 제기된다.


2. 한국의 위기와 돌봄, 어디까지 왔는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징후들은 다면적이다. 기후위기나 디지털 전환과 같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대부분의 선진산업국이 경험하고 있는 보편적인 위기, 혹은 변화가 있는가 하면, 인구구조와 가족구조의 급속한 변화와 같이 우리 사회가 특히 심각하게 경험하는 특수한 위기가 있다. 

   한국의 인구구조와 가족구조의 급속한 변화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수준이다. 우선, 고령화 현상을 살펴보면 2022년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을 의미하는 고령화율 수치는 OECD 평균(18.0%)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수준(17.5%)으로 그 자체로 특별히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없다. 문제는 고령화의 속도에 있다. [그림 1]에 보인 바와 같이 지난 2000년을 기준으로 2022년까지 노인인구 비율의 증가를 살펴보면 절대적인 노인인구 비율의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2000년 7.2%이던 노인인구의 비율이 2022년 17.5%로 10.3%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OECD 평균 증가 수준인 5.1%P의 두 배에 이르는 증가를 보이고 있으며, OECD 국가들 가운데 일본(11.6%P)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2000년의 노인인구 비율 대비 2022년까지의 노인인구 비율의 변화율은 지난 20여 년 동안 고령화의 속도를 보여주는 지표의 의미가 있는데, 그 값을 보면 우리나라는 노인인구의 비율이 2000년 대비 2.4배 수준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OECD 평균인 1.4배보다 매우 높은 수준일 뿐만 아니라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그림 1] 참조). 

   오랫동안에 걸쳐 진행되는 고령화를 예측하고 그에 대해 사회 정책적으로 대응해 온 주요 국가들의 경우와 우리나라와 같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에 직면한 경우는 사회 정책적 대응의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동반한다. 무엇보다도 고령화에 동반되는 요양과 의료적 지원에 대한 욕구의 급속한 증가의 문제이다. 점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경우 돌봄과 의료 영역에서 돌봄노동자의 양성과 관련 시설 및 제도적 인프라의 구축 등 사회적 욕구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가 용이하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이루어지는 경우 돌봄과 보건의료 등의 영역에서 충분한 인적, 물적, 제도적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채 이미 공급을 초과하는 수요를 마주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욕구에 대응하기 위한 막대한 공적 자원의 투자에 대한 사회적 동의도 구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림 1]. 2000-2022 고령화율 추세 국제비교

 (출처: OECD population statistics 이용 저자 재가공)

   다음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낮은 저출산의 문제이다. 저출산의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지표로 주로 활용되는 합계출산율(주 : 합계출산율은 해당 국가의 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평균적으로 몇 명의 아이를 낳을 것인가를 나타내는 수치로 15-49세의 연령별 출산율의 총합으로 나타낸다.) 기준으로 2022년 현재 0.78명으로 OECD를 포함한 주요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지난 1983년 한 국가의 인구수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인 대체출산율, 즉 합계출산율 기준으로 2.1명 이하인 2.06명을 기록한 이래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 2002년 초저출산율 기준에 해당하는 합계출산율 1.3명 미만을 기록한 이래 20년 동안 장기적으로 초저출산율 국가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지속되는 초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는 장기적으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인구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 노인 인구에 대한 한 사회의 부양 부담 정도를 나타내는 노년부양인구비(old-age dependency ratio)의 급격한 증가를 초래한다. 실제로 현재의 조건을 기준으로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노년부양비는 생산인구(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78.8명으로 OECD 평균(52.7명)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며,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부담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2] 참조)

 [그림 2]. 노년부양인구비(old-age dependency ratio) 추세 국제비교

 (출처: OECD population statistics)

  가족과 가구구조의 변화도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1인 가구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1년 현재 전체 가구의 33.4%가 1인 가구로서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다. 성인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가구 형태는 더 이상 규범적인 가구 형태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비친족동거가구의 증가도 눈에 띈다. [그림 3]에 보인 바와 같이 비친족동거가구의 규모는 1인 가구나 친족가구의 규모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최근의 증가 추세를 놓고 보면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인다. 비친족동거가구의 증가는 주거비용의 합리적 소비를 위한 룸메이트에서부터 결혼을 하지 않은, 혹은 할 수 없는 이성이나 동성 커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전통적인 가족 및 가구 형태로부터 벗어났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외에도 맞벌이 가구의 비율이 전체 유배우 가구의 대략 45% 수준에서 크게 변동이 없으며, 이와 같은 수치는 주요 복지국가들에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10%P 이상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그림 4] 참조). 

 [그림 3]. 가구 구조의 변화 추이 

 (출처: 국가지표체계 누리집 자료 이용 저자 작성)

 [그림 4]. OECD 국가의 맞벌이가구 분포 현황

 (출처: OECD family database)

   지금까지 논의한 우리 사회 인구구조와 가족구조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이 글의 주제인 돌봄의 맥락에서는 일관된 함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전통적인 가족 내 돌봄 전담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노령부양비가 증가하고 있지만, 노노 부부로 구성되는 가구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앞서 언급한 증가하는 1인 가구의 상당 부분이 노인 1인 가구인 점을 고려하면 전통적인 가족 구성원에 의한 일상적인 노인 돌봄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프레이저가 강조했듯이 맞벌이 가구의 형태로 여성을 임금노동시장으로 호출하는 자본주의의 확대 강화는 노인돌봄 뿐만 아니라 영유아나 아동의 돌봄, 혹은 가족 내 장애인에 대한 일상적 활동지원의 과제를 가족이 전담하기 어려운 환경과 조건을 확대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인구구조와 가족구조의 변화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우리나라만 경험하는 특수한 조건과 환경은 더더욱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령화 현상은 서구 복지국가를 포함하여 많은 국가가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현상이고, 1인 가구와 비친족동거가구의 증가, 그리고 맞벌이 가구의 비율 등도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거나 훨씬 더 강한 강도로 경험해 온 바 있다. 대부분의 현대 복지국가도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심각한 수준의 인구위기와 가족구조의 변화를 앞서 경험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통적인 여성이 선두에 서는 가족 내 돌봄전담 모형을 폐기하고 보육, 방과후돌봄, 요양, 장애인 활동지원 등 주요 영역을 공공이 선두에 서는 사회적 돌봄으로 대체하는 제도화의 과정을 빠르게 진행해 왔다. 앞서 언급한 돌봄사회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인구구조와 가족구조의 변화 국면에서 서구 복지국가들이 활용한 대응 수단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 어떤 돌봄사회로 전환할 것인가?

   자본주의 신사회위험의 도래, 자본의 요구에 따른 ‘맞벌이 가족'의 정상가족화, 그리고 이에 따른 광범위한 돌봄공백 등의 위기는 우리나라가 피해 가기 어려운 보편적 조건으로 수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인구구조와 가족구조의 급격한 변화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조건까지 고려한다면 돌봄사회는 더 이상 선택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제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왜 돌봄사회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했다면, 그다음으로 고민해야 하는 진짜 어려운 숙제는 어떤 돌봄사회로 전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1) 가족이 아닌 개인 중심의 돌봄사회

   돌봄사회에서 돌봄을 포함한 사회서비스는 모든 주민을 잠재적 이용자로 규정하고 사회서비스와 돌봄에 대한 주민의 권리를 기본권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와 같은 돌봄사회를 구현하는 복지국가는 개인 중심의 복지국가에서 온전히 구현될 수 있다. 개인 중심의 복지국가는 개인이 가족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편입 여부와 무관하게, 혹은 최대한 독립적으로 자신의 제도적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해방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의 완성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취약한 조건에 있는 개인이라 할지라도 가족, 친지, 친구 등 사적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가족 중심 복지국가는 가족 내 돌봄이라는 가족 기능을 전제하고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아예 돌봄 능력이 없는 때에만 국가가 보충적으로 지원한다는 접근을 취한다. 이와 같이 가족 중심의 복지국가 제도 운영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은 사각지대의 문제뿐만 아니라, 취약한 개인일수록 가족이나 친지 등 타인에 의존적이게 되어 결과적으로 개인간 권력관계의 불균형성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돌봄사회의 운영을 국가-개인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은 젠더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개인 중심 복지국가의 운영은 일상적인 돌봄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 영유아, 노인, 장애인에게 있어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등 타인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가족 내에서 보이지 않게 돌봄 노동을 전담해 온 여성이 가족 내 돌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반이 된다. 돌봄과 일상생활 지원을 위한 서비스 제공에 있어 가족을 전제하지 않고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직접적인 ‘거래(transaction)’가 이루어질 때만 비로소 여성은 기존 성역할 구분과 가족 내 돌봄 책임으로부터 해방되는 기반을 갖출 수 있다. 

    2) 지역사회 기반 돌봄사회

   사회적 돌봄은 지역사회 중심이어야 한다. 여기서 지역사회는 각자의 주민에게 익숙한 공간으로서의 지역사회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의 맥락에서 지역사회이기도 하다. 집단 거주시설 방식의 돌봄시설에서 발생하는 비인권적 상황이나 사건, 사고의 문제는 지난 코로나19 시기에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다. 지역사회 기반 돌봄, 즉 커뮤니티 케어는 탈시설화를 주요한 내용으로 포함하며, 이를 넘어 지역사회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 지역사회에서 돌봄 받기(caring in place)로 그 개념을 확장한다. 임종 장소 관련 통계는 우리 사회 지역사회 기반 돌봄사회 구현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노인이 선호하는 임종 장소 1위는 자택이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사망자 100명 중 76명은 집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의 의도나 선호와 다르게 노인들이 집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살면서 필요한 돌봄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의 못 갖춤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기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자기에게 익숙한 환경을 느끼며, 자기에게 익숙한 관계를 마주하면서 하루하루의 소중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노인이나 장애인과 같이 일상의 유지를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자기에게 익숙한 공간과 환경, 관계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이유는 없으며, 그들의 존엄한 삶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나이 들기와 돌봄 받기는 필수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와 같은 지역사회에서 나이 들기와 돌봄 받기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역사회 곳곳에서 양과 질, 뿐만 아니라 그 종류에 있어서까지 충분한 지역사회 서비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3) 공공 중심의 돌봄사회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사회적돌봄 제도는 제도의 운영에 필요한 서비스 공급을 민간에 의존해온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결국 국가는 제도의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데 그 역할을 제한해 왔고, 이에 더해 민간 공급자에 대한 관리감독자의 역할을 자임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제한적이었다. 많은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민간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전달체계와 이로 인한 서비스 제공구조의 파편화와 비효율성은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정책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문제이다. 돌봄사회를 구성하는 제도의 운용을 위해 적지 않은 사회적 자원을 투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연결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돌봄노동에 대한 저열한 사회적 인정의 문제이다. 공급비용과 돌봄서비스 이용자의 자격이 정부에 의해 규제되는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상황에서 민간 및 시장의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적정화된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주어진 비용체계 안에서 ‘최소한으로 적정화된 질’을 추구하기 위해 서비스 제공 주체(개인, 영리, 비영리 등)가 취하는 전술은 매우 제한적이며,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취한다. 돌봄을 포함한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인건비 절감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서비스 제공자의 노동조건 악화를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양질의 돌봄노동자를 유인하기 어려우며, 이는 다시 서비스 질의 악화로 이어진다. 민간 주도의 돌봄서비스 제공 구조에서 그나마 돌봄노동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인정을 확보하고, 공급구조에서의 파편성과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공공이 직접 돌봄서비스 제공의 주도자로 나서는 것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사회서비스원은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제도적 시도로서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4) 지자체 책임 돌봄사회
   돌봄의 욕구는 이용자인 주민의 일상적인 삶이 진행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포착되며, 이에 대한 대응 역시 지역 차원에서 기획되고 실행되는 것이 적절하다. 앞서 언급한 돌봄사회의 주요 요소들, 특히 ‘지역에서’, ‘공공이 책임지고’, 제도화된 사회적 돌봄을 ‘주민 모두에게 권리로서 보장’하기 위해서는 주민 삶과의 밀착도가 가장 높은 공공 행정단위로서 기초지자체가 책임지는 것이 적절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 복지국가는 보육, 요양, 활동지원, 주거지원 등의 돌봄 및 사회서비스 제공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우리나라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는 분권적 접근을 취해왔다. 우리나라의 헌법도 제117조 제1항에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가 책임지고 돌봄사회와 이에 수반되는 제도적 장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행정, 재정 세 요소에 대한 포괄적인 권한과 책임이 지방자치단체에 명확하게 위임되어야 한다. 현재 중앙정부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세제도와 재정체계를 고려했을 때 지자체와 지역 차원에서 돌봄사회를 책임지고 운용하는 데에 필요한 재정 자원의 조달과 관련해서는 중앙정부가 책임지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자원의 운용에서부터 돌봄사회 실현을 위한 제도적 수단의 기획 및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일체의 행정적,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필요한 권한을 행사하도록 한다. 


4.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과제들

   앞서 언급한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 주목해야 하는 구체적인 과제들에 대해 아래에 논의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1) 기초지자체 역할 돌봄 전담 전면 전환

   지자체 책임 돌봄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돌봄사회 관련 제도 운용에 있어 분권의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전환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돌봄제도 및 서비스 제공을 위한 지자체 차원의 인력 규모, 자격 요건, 조직의 구성 등에 대해 지자체가 재정적 책임성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포괄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기존 중앙정부 중심의 제도설계와 표준화된 운영지침은 실체 제도를 운용하는 지자체 차원에서 책임지고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며, 특히 중앙정부 중심으로 기획된 제도의 경직성을 보완하면서, 주민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지자체 차원의 제도적 수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역의 인구 규모, 돌봄서비스 이용자 규모, 지역의 제도적 환경 및 인프라 측면에서의 특성에 따른 최소 인력기준과 뒤에 언급한 기본공공공급률 등의 기본적인 규정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지자체의 책임과 권한을 보완하도록 한다. 특히 중앙정부는 지역사회 주민의 돌봄권 실현과 주민 삶의 질 제고 등 성과 관리 및 지원에 집중하여 책임성을 구현하도록 한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돌봄권 보장을 통해 돌봄사회 실현을 위한 포괄적인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기능을 돌봄과 사회서비스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에 지방자치법과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관련 법의 전면 개정을 통해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돌봄과 사회복지 관련 사무를 책임지고 전담하도록 규정하고, 기타 위임사무 및 고유사무는 광역지방자치단체나 국가사무로 재조직화하는 방향으로의 법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기초지자체는 기존 다양한 사무별로 구분되어 있던 조직을 돌봄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고, 지자체 책임의 공공 중심 지역사회 돌봄을 구현하는 데 핵심적인 조직으로서 주민의 돌봄 욕구와 환경에 대한 사정부터, 서비스 제공 계획, 계획의 실행과정과 성과관리를 포함하는 사례관리, 그리고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관리까지 총괄하는 (가칭)공공통합돌봄본부를 지역 규모에 맞게 설치하고 운영하도록 한다. 돌봄과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공공 인력이 주민의 편에서 주민의 돌봄 욕구를 통합적으로 판정하고, 돌봄 욕구 해소와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사례계획과 사례관리를 책임지고 진행함으로써 기존 공급자 중심의 파편적인 서비스 공급체계를 이용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재정과 관련해서도 기존 중앙정부의 부처별, 개별 제도와 사업별로 구분하여 집행하는 방식을 전면 개정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돌봄과 삶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데 필요한 예산의 규모를 산정하고 불가피한 사업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괄보조금 방식으로 지원하거나, 사회보험과 재정의 통합적 운영을 위한 지방돌봄기금을 조성하여 지자체의 책임 아래 운용하도록 하는 방식으로의 개정이 필요하다.

    2) 사회서비스원을 통한 기본공공공급률제 운영

   앞서 언급한 공공중심의 돌봄사회 구축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자체의 기능을 돌봄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고 조직과 운영체계의 측면에서도 공공의 돌봄 전문가가 주민을 직접 만나고 돌봄계획과 사례관리까지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작업이 관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지난 30년 가까운 사회서비스 제도를 민간의 제공자에 의존하여 운영해온 역사와 경로를 공공 중심의 서비스 제공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별 기본공공공급률제의 운영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본공공공급률제는 요양, 보육, 활동지원 등 주요한 돌봄 영역에서 지역별로 예를 들어 이용자 기준 30%는 공공시설에서 해당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돌봄서비스 제공 시설과 인적 인프라를 구축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선거 국면에 정책 공약과 같은 방식으로 예를 들어 공공 어린이집 30% 등의 공약이 등장한 바 있으나, 이는 전국적 차원에서 공급자 중심으로 제기된 공약일 뿐 지역별 편차에 대한 고려가 없어 사실상 의지가 있는 지자체에 집중되고, 여건이나 지자체의 의지가 부족한 지자체의 경우 사실상 공공인프라의 확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개별 지자체 차원에서 기본공공 공급률을 정하고 이를 지자체 책임 공공 돌봄 운영의 전제조건으로 세우는 것은 돌봄의 공공성을 구비한 돌봄사회 구축의 맥락에서 의미 있는 정책적 시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 문헌]

- 낸시 프레이저, 임옥희 역. 『전진하는 페미니즘』 돌베개, 2017. 
- 이태수, 이창곤, 윤홍식, 김진석, 남기철, 신진운, 반가운.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헤이북스, 2022.
- 김진석. 지역사회통합돌봄 전달체계 개선방안 연구. 국회사무처. 2021. 

- Taylor-Gooby, P. New risks, new welfare: the transformation of the European welfare stat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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