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리보장제복지와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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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경제] 집권여당의 기본소득 논쟁에 부쳐
'기본소득' 대신 '일자리 보장제'로 난국을 돌파하자
이재명 지사, ‘기본소득 제1공약 아니다’, 그러면?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가 온통 ‘기본소득’ 논쟁이 되었다. 기본소득 내용논쟁이 아니다. 유력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를 상징하는 대표 정책 브랜드는 누가 뭐래도 ‘기본소득’이었다. 심지어는 이를 확장해서 ‘기본대출’ ‘기본주택’으로 이른바 기본 정책 시리즈를 낼 정도였다.
그런데 이 지사가 지난 7월 1일 대선 출마를 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획기적인 정책이고 재원부담 문제도 있어 일시에 전면 도입하기보다는 소규모 집행을 통해 효율성이 증명되면 점점 늘려야 한다”는 단서를 달면서, “우려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제1공약으로 할 일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집권여당의 다른 경선후보들 거의 대부분이 이 지사가 말을 바꿨다며 집중적인 비판을 하고 이 지사가 다소 수세적으로 방어하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불과 한 달 전에 이 지사가 오세훈 서울시장 등 보수진영의 안심소득과 날을 세우면서 기본소득을 방어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이 지사가 ‘말을 바꾼 것’을 문제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처음부터 통신비 수준도 안 되는 월 4만원 정도의 소액 기본소득 정책이 지금 코로나19재난이라는 엄혹한 민생위기를 돌파할 대안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이재명 지사도 이런 상황을 감안하고 자신의 정책적 약점의 위험을 미리 해결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기본소득 대신 성장이라고?
문제는 기본소득을 제1공약의 자리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다. 그를 대신한 공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제1공약으로 ‘성장’을 제기했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제1과제인 성장회복, 제2과제인 공정사회 수행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로 격하시켰다. 기본소득을 대신할 제1공약이 경제성장이라고?
알다시피 한국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평균적으로 2.5퍼센트 내외의 저성장 기조를 유지해왔다. 올해 숫자가 다소 높아지게 되겠지만 이는 작년의 기저효과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내수와 수출, 투자가 모두 낮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경제의 고성장을 주도했던 수출이 더 이상 대규모로 팽창하기 어려운 경제여건 탓이 크다. 경제성장이 불평등을 줄이기보다는 더 심화시키고, 다시 불평등은 경제를 억압하는 구조 역시 큰 문제다. 아울러 경제성장률이 설령 조금 높아져도 고용이 동반되지 않거나 기껏해야 나쁜 일자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이슈다.
그림1.
불평등을 확대시키지 않는 경제성장 방안으로 문재인 정부가 채택한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이었지만, 제대로 실행해보지도 못한 채 중도에 좌절된 상태다. 이처럼 수출주도형 한국경제 패턴의 종결, 불평등의 심화, 불평등 구조에 의해 억압된 경제구조, 경제성장과 분리된 일자리 불안정 등의 난제들에 대한 정책적 대책 없이, 기본소득이 아니라 성장을 제1공약으로 하겠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이 아닌 일자리 보장제를
지금은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면 고용도 복지도 상당 부분 해결되는 적하효과(trickle-down)가 작동하는 때가 아니다.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으로 무엇을 해결하려고 했든 성장이 그것을 대신하기는 쉽지 않다. 집권여당의 다른 경쟁자들에게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기본소득에 대해 말을 바꾸었다는 비판은 난무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무엇으로 대신할지에 대한 얘기가 빠져있다. 그럼 기본소득 대신 어떤 대안이 있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너무 소득보장에 관한 고민에 치우쳐 있었다. 기본소득이든 안심소득이든 국민에게 직접 지급하는 소득으로 국민의 사회경제적 삶의 어려움을 덜어보자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전 사회적인 고용불안과 소득단절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때 공식실업자는 157만을 넘기기도 했으며 여전히 1년 반째 110만을 웃돌고 있다. 단시간 알바나 반실업자, 구직 포기자까지 합친 체감실업자는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3월 이후 줄곧 400만명 넘게 지속되는 중이다. 약간의 소득지원으로 무너진 생활기반을 뒷받침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최근 기술변화로 인한 불안정 노동 확산과 고용 없는 회복을 감안할 때, 다시 고용문제로 초점을 되돌려야 한다. 임시방편적인 공공근로를 넘어서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상시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새롭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일자리 보장제’라는 ‘고용 안전망’ 대안은 그래서 지금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혁신정책은 위기의 시대에 출현한다
원칙적으로 일자리 보장제는, 현재 노동시장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국민들 누구가 일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면,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사회보험 보장 수준에서 조건없이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제도다. 일자리 보장제는 중앙정부가 재정을 뒷받침하지만, 일자리를 만들고 지원을 책임지는 것은 주로 지방정부다. 정부가 기획하여 직접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지만, 주로는 지역 공동체나 사회적 경제, 비영리조직 등이 참여하고 협력하면서 지역경제도 돕는 방향을 추구한다.
새로운 혁신정책은 통상 위기의 시대에 태어난다. 노동자들의 소득을 밑에서 지탱해주기 위해 도입된 가장 기본적인 제도인 최저임금제도는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재난 속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정책이다. 그 정책이 지금 노동자의 강력한 ‘소득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빈곤과 전쟁을 벌였던 1960년대 소득보장이냐 고용보장이냐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미국에서 최종 귀결로 탄생한 것이 닉슨 대통령의 근로장려세제(EITC)다.
그림2.
지금 우리는 AI시대 기술변화와 코로나19국면이라는 전대 미문의 재난을 겪고 있다. 위기에 맞는 위기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1930년대 대공황의 위기에서 탄생한 최저임금제가 강력한 소득안전망이었다면, 지금의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력한 ‘고용안전망’이 새롭게 필요하다. 중요한 진보적 정책대안으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일자리 보장제’는 지금 재난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또 하나의 획기적인 안전망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