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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서평37] 초연결사회는 왜 연결이 아니라 '외로움'을 증폭시키는가?
민주주의는 연습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외로움은 사회학이나 복지정책의 차원에서 접근했다. 그러나 경제학자가 외로움에 대해 접근하면서 최신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 노동, 돌봄 로봇,공유경제 영역까지를 포괄해 나가면서 외로움 문제를 파고들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매우 유익한 책이 번역되었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가 코로나19 한복판인 2020년에 쓴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가 그것이다.
저자는 돈주고 친구를 빌리는 앱 <렌트 어 프렌드(Rent A Friend)>를 사례로 들면서, 외로운 사람들을 외롭지 않도록 지원하는 경제를 '외로움 경제'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특히 코로나19로 사회적 교류가 끊기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행복감이 떨어지게 되는 현상을 '사회적 불황'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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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자가 정의하는 외로움이란 뭘까? 좀 넓다.
"외로움을 애정, 동반자, 친밀감을 상실한 느낌으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외로움은 파트너, 가족, 친구, 이웃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건나 보지 못하거나 보살피지 않는 것 같은 기분만이 아니다. 외로움은 우리의 동료 시민, 고용주, 마을 공동체, 정부로부터 지지와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외로움은 우리가 친밀하게 느껴야 하는 사람들과 단절된 기분이면서, 우리 자신과 단절된 느낌이기도 하다. 외로움은 사회와 가족이라는 맥락에서 제대로 지지받지 못하는 느낌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이다."
저자는 조 콕스보고서에서도 나와 있는것처럼,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이렇게 평가한다. "외로움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우리 몸에 더 해를 끼쳤다. 또한 알코올의존증과는 비슷한 수준으로, 비만보다는 2배나 더 우리 몸에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은 담배를 매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이나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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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외로움을 발생시키는 구조적인 원인이 국가의 행동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행동 둘 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울러 21세기 기술의 발전 양상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선 신자유주의 이념과 국가가 문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오늘날 위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다소 뻔한것 같지만 재차 강조한다. 그는 신자유주의에서 "국가가 시장에 속박되어 국민을 돌보지도, 국민의 요구를 살피지도" 않는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때, 아무도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고 느낄때, 우리에게 아무 힘도 없다고 느낄때 우리는 외롭다."
저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난 40년간 우리의 관계를 거래로 변질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라는 배역을 맡기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갈 수록 심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연대/공동체/더불어 살기/친절 등의 가치를" 말살켰다고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포용은 시장의 관심사가 아니'라면서 우리는 시장에만 사회를 맡겨둘 수 없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저자는 외로움이 포퓰리즘의 자양분이라는 특별한 주장을 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덜 연결되어 있을 수록,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차이를 적절히 조율하고 서로를 시민답게 협력적으로 대하는 연습이 부족해지며, 동료 시민을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고, 그 결과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배타적이고 분열하적인 형태의 공동체에 매력을 느낀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외로움이 전체주의의 기원이 되었다고 하는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기도한다. 이럴때 외로움은 '버림받은 느낌'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된다.
이 책의 독특한 압권은 '초연결을 지향'한다고 약속해온 디지털 혁신이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우선 스마트폰이 외로움을 증폭시켰다.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과 직접 나누는 대화의 저급한 대체물로서, 우리가 집단적으로 겪는 단절 상태의 주요 원인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중요한 정책 제안을 한다. "쇼셜 미디어의 중독성이 담배와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쇼셜 미디어 플랫폼폼의 위험성 역시 의무적으로 경고해야 하지 않을까? 앱이 열릴때마다 메시지 창을 띄우거나 웹사이트에 배너를 달거나 스마트폰 포장에, 이를 테면 뒤죽박죽된 뇌 그림 같은 걸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거대 기술 기업들이 기업 성장과 확장에 쏟는 에너지의 10%만 독창적인 콘텐츠 관리 방안에 쏟아도 이 세계는 온라인 유해 환경 양극화, 소외와 단절 문제에 대처하는 여정에서 크게 진일보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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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또한 첨단 사무실이라고 실리콘에서 유행했던, 칸막이 없는 오픈플랜식 사무실이나, 정해진 자리가 없는 핫데스킹 사무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오픈 플랜식 사무실은 활기찬 면대면 협력과 심도있는 관계를 촉진하기 보다 오히려 사교적으로 위축되는 반응을 촉발하는 듯 하다는 것이다. 사무실을 옮긴 후에는 대화보다 이메일이나 메신저가 더 많이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저자는 인공지능의 면접이 주는 문제, 소셜로봇이 주는 장점과 단점을 차례로 짚어나간다. "로봇 덕분에 서로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 시민에게 전만큼 정성을 쏟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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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시중에 유행했던 커먼그라운드, 세컨드 홈, 위워크같은 '상품화 된 공동체'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공동체 자체를 상품으로, 그러니까 공동체를 포장해 팔 수 있는 하나의 제품으로 보고 상업화"하는 경향 말이다.
"공유주거 또는 공유작업 공간 업체들은 남들과 가까이 살고 일하는 것이 지닌 이점을 팔고자 하지만 사회적 양보, 즉 공동체가 요구하는 힘든 일은 전혀 하게 하지 않는다. 진정한 우정이 그렇듯 진정한 공동체를 세우려면 일부 불편함을 참아내야 할 것이다."
특히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상업화 된 공동체"가 "대개의 경우 충분한 비용을 내지 않으면 초대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워크 등 대부분 상업화 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소득 화이트칼라 전문직 종사자들뿐"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 "공동체라는 것이 자칫 특권층만 접근 가능한 것이 될 위험성이 있다. 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어야만 '당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외로움은 오로지 부자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된다. 외로운 사람은 이미 금전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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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자가 외로움 극복의 대안으로 강조하는 것은?
저자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주주의는 연습되어야 한다'는 것일테다. 저자에 따르면 "공동체는 사람들이 시간을 들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해야만 번성할 수 있다"고 확인한다.
"사람들이 서로 진정한 유대감을 느끼기까지는 역시나 시간이 필요하다. 연대와 상호 지지를 반복해서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동체 내의 관계는 언제나 결혼 생활보다는 휴일의 로맨스 비슷한 것으로 머물 것이고 신뢰는 언제나 부족할 것이다."
.......
*올해 읽었던 미누쉬 샤피크(Minouche Shafik), 크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에 이어 돌봄을 다차원적으로 포착하려는 여성경제학자들의 주장이나 저서들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이번 대선 국면이 다소 마초적 분위기로 흐르면서 도대체 '외로움'같은 이야기는 정의당 경선과정 말고는 주제가 될 틈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외로움은 이번 대선의 중요 의제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저자는 돈주고 친구를 빌리는 앱 <렌트 어 프렌드(Rent A Friend)>를 사례로 들면서, 외로운 사람들을 외롭지 않도록 지원하는 경제를 '외로움 경제'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특히 코로나19로 사회적 교류가 끊기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행복감이 떨어지게 되는 현상을 '사회적 불황'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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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자가 정의하는 외로움이란 뭘까? 좀 넓다.
"외로움을 애정, 동반자, 친밀감을 상실한 느낌으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외로움은 파트너, 가족, 친구, 이웃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건나 보지 못하거나 보살피지 않는 것 같은 기분만이 아니다. 외로움은 우리의 동료 시민, 고용주, 마을 공동체, 정부로부터 지지와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외로움은 우리가 친밀하게 느껴야 하는 사람들과 단절된 기분이면서, 우리 자신과 단절된 느낌이기도 하다. 외로움은 사회와 가족이라는 맥락에서 제대로 지지받지 못하는 느낌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이다."
저자는 조 콕스보고서에서도 나와 있는것처럼,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이렇게 평가한다. "외로움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우리 몸에 더 해를 끼쳤다. 또한 알코올의존증과는 비슷한 수준으로, 비만보다는 2배나 더 우리 몸에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은 담배를 매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이나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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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외로움을 발생시키는 구조적인 원인이 국가의 행동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행동 둘 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울러 21세기 기술의 발전 양상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선 신자유주의 이념과 국가가 문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오늘날 위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다소 뻔한것 같지만 재차 강조한다. 그는 신자유주의에서 "국가가 시장에 속박되어 국민을 돌보지도, 국민의 요구를 살피지도" 않는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때, 아무도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고 느낄때, 우리에게 아무 힘도 없다고 느낄때 우리는 외롭다."
저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난 40년간 우리의 관계를 거래로 변질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라는 배역을 맡기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갈 수록 심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연대/공동체/더불어 살기/친절 등의 가치를" 말살켰다고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포용은 시장의 관심사가 아니'라면서 우리는 시장에만 사회를 맡겨둘 수 없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저자는 외로움이 포퓰리즘의 자양분이라는 특별한 주장을 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덜 연결되어 있을 수록,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차이를 적절히 조율하고 서로를 시민답게 협력적으로 대하는 연습이 부족해지며, 동료 시민을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고, 그 결과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배타적이고 분열하적인 형태의 공동체에 매력을 느낀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외로움이 전체주의의 기원이 되었다고 하는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기도한다. 이럴때 외로움은 '버림받은 느낌'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된다.
이 책의 독특한 압권은 '초연결을 지향'한다고 약속해온 디지털 혁신이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우선 스마트폰이 외로움을 증폭시켰다.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과 직접 나누는 대화의 저급한 대체물로서, 우리가 집단적으로 겪는 단절 상태의 주요 원인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중요한 정책 제안을 한다. "쇼셜 미디어의 중독성이 담배와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쇼셜 미디어 플랫폼폼의 위험성 역시 의무적으로 경고해야 하지 않을까? 앱이 열릴때마다 메시지 창을 띄우거나 웹사이트에 배너를 달거나 스마트폰 포장에, 이를 테면 뒤죽박죽된 뇌 그림 같은 걸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거대 기술 기업들이 기업 성장과 확장에 쏟는 에너지의 10%만 독창적인 콘텐츠 관리 방안에 쏟아도 이 세계는 온라인 유해 환경 양극화, 소외와 단절 문제에 대처하는 여정에서 크게 진일보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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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또한 첨단 사무실이라고 실리콘에서 유행했던, 칸막이 없는 오픈플랜식 사무실이나, 정해진 자리가 없는 핫데스킹 사무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오픈 플랜식 사무실은 활기찬 면대면 협력과 심도있는 관계를 촉진하기 보다 오히려 사교적으로 위축되는 반응을 촉발하는 듯 하다는 것이다. 사무실을 옮긴 후에는 대화보다 이메일이나 메신저가 더 많이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저자는 인공지능의 면접이 주는 문제, 소셜로봇이 주는 장점과 단점을 차례로 짚어나간다. "로봇 덕분에 서로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 시민에게 전만큼 정성을 쏟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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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시중에 유행했던 커먼그라운드, 세컨드 홈, 위워크같은 '상품화 된 공동체'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공동체 자체를 상품으로, 그러니까 공동체를 포장해 팔 수 있는 하나의 제품으로 보고 상업화"하는 경향 말이다.
"공유주거 또는 공유작업 공간 업체들은 남들과 가까이 살고 일하는 것이 지닌 이점을 팔고자 하지만 사회적 양보, 즉 공동체가 요구하는 힘든 일은 전혀 하게 하지 않는다. 진정한 우정이 그렇듯 진정한 공동체를 세우려면 일부 불편함을 참아내야 할 것이다."
특히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상업화 된 공동체"가 "대개의 경우 충분한 비용을 내지 않으면 초대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워크 등 대부분 상업화 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소득 화이트칼라 전문직 종사자들뿐"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 "공동체라는 것이 자칫 특권층만 접근 가능한 것이 될 위험성이 있다. 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어야만 '당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외로움은 오로지 부자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된다. 외로운 사람은 이미 금전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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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자가 외로움 극복의 대안으로 강조하는 것은?
저자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주주의는 연습되어야 한다'는 것일테다. 저자에 따르면 "공동체는 사람들이 시간을 들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해야만 번성할 수 있다"고 확인한다.
"사람들이 서로 진정한 유대감을 느끼기까지는 역시나 시간이 필요하다. 연대와 상호 지지를 반복해서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동체 내의 관계는 언제나 결혼 생활보다는 휴일의 로맨스 비슷한 것으로 머물 것이고 신뢰는 언제나 부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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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었던 미누쉬 샤피크(Minouche Shafik), 크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에 이어 돌봄을 다차원적으로 포착하려는 여성경제학자들의 주장이나 저서들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이번 대선 국면이 다소 마초적 분위기로 흐르면서 도대체 '외로움'같은 이야기는 정의당 경선과정 말고는 주제가 될 틈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외로움은 이번 대선의 중요 의제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