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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국민 고용보험, 소득기반 혁신복지체제의 첫 관문
- 입력 2020.12.01 15:11 조회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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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 전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
- #복지#기본소득#참여소득#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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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_ 창간준비1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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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 재난을 맞아 한국사회에서 정책 논의가 만발하다. 코로나로 타격을 받은 시민들에게 긴급히 소득을 지원하려다 직면한 장벽이 계기가 되었다. 정부가 소득지원정책을 추진하려해도 대상을 정확하게 설정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세계 경제대국이라 뽐내왔건만 사회정책 기반이 이리 허약했다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었다. 애초 맞춤형으로 지원하려 했으나 대상을 꼼꼼하게 선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내린 불가피한 방식이었다. 당연히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코로나 재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혹 종식된다 해도 오랫동안 고착화된 한국사회 불평등구조를 감안하면 경제적으로 힘겨운 사람을 적절하게 선정하는 작업은 더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었다.
먼저 기본소득이 힘을 얻었다. 더 이상 대상을 선별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전부터 새로운 분배 제도로 주목을 받던 기본소득은 재난지원금 논란을 계기로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재난지원금은 비록 1회성이지만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제공되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을 체험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새로운 대안으로 전국민 고용보험도 등장했다. 코로나 재난으로 불안정 취업자들이 소득 단절 혹은 감소를 겪고 있건만 정작 이들을 도와야 할 고용보험은 무기력했다. 이에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한 취업자들을 사각지대로 방치하는 고용보험이 도마에 올랐다.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도 거리로 나섰다. 우리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라, 전국민 고용보험을 시행하라고.
기본소득과 전국민 고용보험이 모두 ‘사각지대’에 대응한다. 사각지대는 20세기에 선보인 복지국가가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과제이다. 특히 복지국가의 핵심 기둥인 사회보험에서 사각지대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보험은 애초 노동시장에서 안정적 지위에 있는 취업자를 주요 모델로 삼아 출발했다. 다양한 불안정 고용이 확대되는 현행 노동시장과 갈수록 부정합하는 한계를 드러내는 이유이다. 이번 코로나 재난에서 사각지대의 심각성은 더욱 확연하게 인식되었다. 이제 불안정, 저소득 취업자가 상존하는 현행 노동시장 구조에서 ‘사각지대 없는 소득보장체제’를 찾는 대장정이 시작된 셈이다.
과연 그 길을 열어갈 수 있을까? 우선 기본소득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른다.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 일정액을 지급하기에 사각지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많은 청년, 불안정 취업자들이 기본소득에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역시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기 위해선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엄청난 재정을 조달할 수 있을까?, 시민들에게 ‘기본 생활’을 보장할 수준으로 금액을 책정할 수 있을까?
전국민 고용보험은 어떨까? 무조건 지원보다는 개인이 처한 경제 상황에 맞추어 소득을 지원하자는 제안이다. 그래야 금액 수준을 높여 실질적으로 기본 생활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숙제는 제기된다. 예산효율성은 높겠지만 기존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여전히 ‘사각지대 있는 소득보장’ 아닌가?
이제 우리에게 적합한 대안을 찾아 나서자. 사각지대를 해소하면서 적절한 소득보장까지 구현할 수 있는 대안을 말이다. 비록 시작 단계에 서 있지만 무척이나 소중한 출발이다. 오랫동안 노동시장의 불안정, 소득과 자산 격차, 고착화된 불평등구조 등 ‘헬조선’이라 자조하면서도 마땅한 대안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이 논의는 정말 반가운 일이다. 1980년대 이후 득세한 시장만능주의로부터 ‘너희들에게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조롱까지 받아 왔으니 얼마나 귀한 기회인가.
나는 최근 소득보장 논의를 접하면서 20세기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21세기 혁신복지체제를 그려본다. 기존 사각지대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그 첫 관문은 어디일까? 이 글은 전국민 고용보험을 주목한다. 이는 모든 시민에게 소득보장을 제공하는 혁신복지체제로 가는 첫 관문이다. 나아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사회정책 르네상스를 촉발하는 첫 의제이기도 하다.
2. 왜 기본소득은 지금 대안이 아닌가?
이제 소득보장의 대안으로 기본소득과 전국민 고용보험을 각각 살펴보자. 여기서 평가의 기준은 ‘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수준의 적절성’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2장의 주제는 기본소득이다. 전통적 복지국가의 한계를 넘어서자며 등장한 기본소득, 코로나 재난을 맞아 정책 테이블 위로 올라온 기본소득, 우리에게 지금 대안일 수 있을까?
1) 기본소득이 주창하는 다섯 가지 강점
기본소득은 기존 소득보장과는 완전히 다른 원리에 서 있다. 인류사회에서 사회정책의 토대는 ‘필요(needs)’였다. 시민이 빈곤, 질병, 은퇴 등으로 소득을 얻지 못할 때, 즉 사회적 지원의 ‘필요’가 발생했을 때 사회보장제도가 작동한다. 근대사회 초기에는 필요가 인정되는 대상이 빈곤계층으로 제한적이었으나 20세기 들어 고용보험, 공적연금 등 사회보험이 도입되며 전체 취업자로 확대되었고, 나아가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인구집단별 사회수당도 시행되었다. 마침내 ‘필요’를 충족하는 복지가 ‘시혜’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자리잡으면서 ‘필요와 권리’가 결합된 새로운 국가체제, 복지국가가 인류사에 등장하였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필요’를 따지지 않는다.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원한다. 즉 노동시장에서 소득을 얻든 얻지 못하든, 그 사람이 부자이든 빈자이든 묻지 않고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시민배당’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재 자체가 현금 배당의 근거가 되는 소득보장제도이다.
특히 기본소득은 현재의 불평등체제를 고발하고 미래 인공지능시대를 향한 기대를 품고 있다. 현체제를 고발하고 미래를 열망하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기에, 특히 청년, 불안정계층에게 매력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기본소득이 주창하는 강점을 정리하면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기본소득은 소득지원에서 사각지대를 남기지 않는다. 모든 시민에게 일정 금액을 무조건 지급한 결과이다. 사각지대 문제를 풀지 못하는 전통적 복지국가와 비교하면 기본소득의 효과는 더욱 부각된다.
둘째, 기본소득은 재분배를 증진한다. 다수 시민들이 낸 세금보다 기본소득으로 받는 금액이 많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심각한 현대사회에서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일정 급여를 지급하면서 재분배까지 도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지닌다.
셋째, 기본소득은 복지행정비용을 최소화하고 낙인 효과도 낳지 않는다. 모두에게 지급하므로 심사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절감한 행정비용은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예산운용도 합리적이다.
넷째, 기본소득은 현대사회의 주요 생산자원인 공유부를 분배한다. 인류사회의 모든 생산물은 사회적 노동의 결과물이다. 특히 자연이 부여한 토지, 과거 인류 노동의 산물인 지식과 정보, 최근 디지털 기술과 결합된 빅데이터 등은 대표적 공유부이다. 이는 특정 주체의 사적 소유일 수 없기에 기본소득 방식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는게 정당 하다.
다섯째, 기본소득은 증세에 유리한 지형을 조성한다. 특히 중간계층도 낸 것보다 많은 기본소득을 받기에 증세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가 늘지만 세입 확충 벽에 부딪혀 있는 대한민국에서 증세정치를 가능하게 해준다.
2) 기본소득의 네 가지 유형
위와 같은 강점이 주창되는 기본소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선 기본소득의 유형을 정리해 구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기본소득이 정치적 에너지를 지니면서 현금이 지급되기만 하면 ‘기본소득’ 상표가 붙는 경우가 많아 논의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보통 기본소득으로 불리는 여러 현금급여를 유형화하면 다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완전 기본소득’이다. 이는 모든 시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만큼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는 모델이다. 대표적 사례로 1996년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 운동단체가 제시한 약 월 300만원이 여기에 속한다. 이 금액은 스위스 상시노동자 평균소득의 3분의 1 수준으로 한국의 평균소득에 적용하면 월 100만원을 상회한다. 이러면 1인가구 연 1200만원, 3인가구라면 3600만원을 받게되므로 시민들이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유형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재정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5천만명에게 월 100만원을 지급한다면 한해 약 600조원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년 중앙정부 총지출안 556조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결국 이 유형은 당분간 현실적으로 시행할 수 없는 정책으로서 지금 소득보장 대안의 논의 대상은 아니다.
둘째는 ‘부분 기본소득’ 혹은 ‘소액 기본소득’이다. 완전 기본소득이 현실적으로 시행하기 어렵기에 현재 예산에서 설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금액을 낮춘 유형이다.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매년 부동산 보유세로 15조원을 더 걷어 이를 국민 모두에게 월 2만5천원씩 지급하겠다고 제시한 토지배당 기본소득이 대표적 사례이다. 근래 기본소득 옹호단체들이 대략 월 30만원을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월 3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도 매년 약 180조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는 2020년 중앙정부 복지분야 전체 예산 181조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그래서 부분 기본소득에서는 예산 효율성이 논점으로 등장한다. 과연 개인당 월 3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이만큼의 재정을 사용하는게 타당한지를 둘러싼 논란이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시민들에게 의미있는 경험을 주리라 기대하고 비판자들은 그만큼의 재정이라면 소득지원 필요가 분명한 대상에게 훨씬 많은 소득을 보장하는게 낫다고 주장한다.
셋째는 ‘사회수당형 기본소득’이다. 이는 특정 연령대, 혹은 역할집단에 지원하는 현금급여이다. 기본소득에서 제안하는 대표적 정책으로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는 복지국가에서 노동시장 밖에 있는 연령집단에게 제공하는 아동수당, 기초연금을 지칭하는 사회수당과 같은 위상을 지닌다. 과거에는 청년이 학업을 마치고 바로 취업자가 되었으므로 사회정책의 시야에서 별도의 청년복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래 학교를 졸업하고도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는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청년이 소득지원 정책 대상으로 등장했다. 농민 역시 사회적으로 중요한 생산을 담당하지만 시장가격 보상이 낮아 사회가 이를 보충해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사회적 지원 필요성이 인정된 특정 연령 혹은 역할 집단에게 제공되는 현금급여라는 점에서 복지국가의 사회수당과 같은 흐름의 프로그램이다.
네 번째는 ‘사회부조형 기본소득’이다. 사회부조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선별복지이다. 기본소득이 보편주의를 지향해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삼지만, 근래에는 취약계층 대상이라도 조건없이 지급하는 현금급여에 대해서 기본소득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선 아프리카나 인도 등 빈곤국가의 극빈 마을 주민에게 일정한 현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나 실험이 기본소득의 맹아적 형태로 소개된다. 핀란드 정부가 2년 동안 시행한 기본소득 실험도 현재 실업부조를 받는 사람이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사회부조형 기본소득에 속한다. 기존 실업부조는 보충성 원리가 적용돼 실업부조 수급기간에 다른 소득이 발생할 경우 그만큼 금액이 실업부조에서 공제되었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기존 지급하던 월 70만원의 실업부조를 기본소득 이름으로 지급하면서 다른 소득이 생기면 이전과 달리 별도로 인정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소득이 생겨도 기존의 현금급여를 무조건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원리를 지녔다고 본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현금급여를 기본소득으로 부르는 실험을 시행했다. 기존 생계급여를 받으면서 시장소득이 생기더라도 절반은 별도로 인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역시 소득이 있어도 기존 현금급여를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라 부른 것이다. 핀란드와 캐나다 기본소득 모두 사회부조 수급자들이 새로운 지급방식을 통해 취업동기와 삶의 만족도를 증진시키려는 실험이다.
그런데 빈곤마을 주민을 위한 빈곤구제 정책은 오래전부터 제3세계 국가에서 진행된 사업들이고, 실업부조와 생계급여 수급자들에게 근로동기를 독려하기 위한 시도들로 기존 사회부조에서 선보이는 정책들이다. 한국도 2020년부터 생계급여 수급자에게 근로소득의 30%는 생계급여와 별도로 인정해 근로동기를 유도하고 있다. 결국 사회부조형 기본소득은 별도 소득에 대한 공제율이 다를 뿐 기존 복지국가 사회부조 혁신 방안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위 네 가지 유형에서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기본소득은 무엇일까? 완전 기본소득은 기본소득 옹호단체들도 지금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소득보장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 대상이 아니다.
사회수당형 기본소득 역시 복지국가의 사회수당 원리에 서 있다는 점에서 대립적 주제는 아니다. 취업준비생으로서 청년기의 등장, 자유무역체제에서 농업 생산의 과소보상, 돌봄과 참여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등에 따라 부상하는 21세기 사회수당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된다면 수당이든 기본소득이든 이름은 논점이 아니다.
사회부조형 기본소득도 기존 사회부조의 혁신 시도들과 맥을 같이 한다. 보통 사회부조 급여를 산정할 때 보충성 원리를 적용해 수급기간에 다른 소득이 생기면 그만큼 급여액을 삭감한다. 이에 수급자가 근로동기를 잃는 ‘사회부조 덫’에 빠지지 않도록 근로소득의 일부를 지급하는(공제율 적용) 정책이 추진돼 왔다. 핀란드와 캐나다의 실험은 기존 정책과 비교해 공제율이 높은 고강도 혁신 방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완전기본소득은 미래의 일이고, 사회수당형과 사회부조형은 기존 현금제도들과 근본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미래 상상으로 완전기본소득을 상정하고, 사회적 역할 집단에 합당한 수당을 지원하며, 빈곤층의 근로동기 독려를 위해 사회부조를 혁신하는 노력은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결국 현재 소득보장의 대안을 두고 논쟁의 대상은 부분기본소득 유형이다.
3) 다섯 가지 기대는 얼마나 타당한가?
이제 기본소득을 평가해 보자. 평가의 대상은 최대 30만원 정도의 부분기본소득이다. 앞에서 정리한 다섯 가지 기대의 타당성을 각각 따져 보자.
첫째, 사각지대 해소.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기에 사각지대가 없다. 문제는 보장 수준이다. 금액이 충분치 않으면 형식적으로는 사각지대가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기본적 생활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 기본소득이 가난한 예술가와 청년, 불안정 노동자를 호명하지만 과연 월 10~30만원을 지급한다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지급했다는 ‘명분’을 얻어갈뿐 실제로는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것 아닌가? 결국 기본소득을 도입해도 기존 현금복지는 계속 시행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재정을 사용하지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둘째, 재분배 증진.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고 이를 위한 재정은 상위계층에게 더 많이 부과할 것이다. 단일세율로 소득세를 걷더라도 상위계층일수록 납부하는 세금이 많고 다수 시민들은 낸 것보다 더 많이 받기에 재분배가 증진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기본소득의 본질은 ‘동일액 배분’이다. 모두가 기본소득만큼 소득이 늘었기에 계층별 가처분소득에서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재분배는 상위계층일수록 많이 내는 ‘세입’에서 비롯된다. 이 세입을 꼭 기본소득에 사용해야 할까? 다른 방식으로 배분되었으면 기본소득이 주로 호명하는 집단에게 훨씬 많은 금액을 지급할 수 있다. 결국 기본소득은 공공재정으로 시행하는 현금 프로그램 중 가장 최소의 재분배를 달성할뿐이다.
셋째, 행정비용 절감과 낙인 효과 방지. 기존 현금급여에서 행정비용과 낙인이 발생하는 대표적 제도는 생계급여, 실업급여, 실업부조 등이다. 여기서 비용과 낙인을 줄이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기본소득을 시행해도 존재하는 과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부분기본소득에서는 금액이 현행 생계급여액(1인가구 53만원), 실업급여액(4주 기준 하한 약 168만원)을 상당히 넘지 않는 한 기존 현금 제도들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혹 기본소득 53만원을 책정해 생계급여를 통합할 경우 생계급여 수급자만 가처분소득이 그대로여서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결국 현행 생계급여를 상당히 상회하는 수준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생계급여 통합이 가능하다. 이보다 훨씬 급여액이 높은 실업급여는 더욱 더 그러하다.
결국 기본소득은 아주 오랫동안 기존 맞춤형 현금급여들과 공존해야 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현행 복지체제 행정을 근원적으로 불신임하는 건 생산적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정의 혁신은 모든 사회정책에서 중요한 과제로서 추진해야하는 일이지만, 이것이 지금 기본소득을 시행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림 1> 부분기본소득과 현금급여들
넷째, 공유부의 실현. 최근 토지, 지식, 빅데이터 등 공유부가 새로운 과세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공유부는 다수 시민의 자산/지식/정보가 누적된 생산자원이기에 여기서 창출된 부가가치(이익)는 이를 구성하는 시민에게 기본소득 방식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여기서 논점은 과연 공유부가 자본주의의 다른 생산자원과 얼마나 성격이 다른 자산일까에 있다. 인류사회에서 모든 생산자원은 과거 노동이 축적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공유부가 자연적 존재물이거나 시민 네트워크의 축적으로 형성되듯이, 반도체 공장의 기계 역시 수많은 노동과 지식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통해 얻은 이윤 역시 시민들이 ‘소비자’로 구매해야 실현된다는 점에서 ‘생산자/소비자’ 네트워크의 결과이다.
결국 자본주의체제에서 모든 생산자원은 사적으로 소유되지만 인간 노동의 축적물로서 ‘공유’되어야 할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공유부는 시장경제체제 생산자원의 특정 형태로서 근래 확대되는 유형이다. 이 역시 현재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며 시장이윤 창출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기존 생산자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이윤 기반이 초기에는 공작기계였다면 지금은 디지털산업 발전에 따른 정보와 네트워크 형식도 등장하고 있다. 공유부든, 공작기계든,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사회적 노동의 결과라면 여기서 과세된 공공재원이 꼭 1/n로 분배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부가 어떻게 생산되든,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든, 분배는 별도의 ‘정치’ 영역이다.
다섯째, 증세정치의 가능성. 기본소득은 다수 시민이 ‘내 것보다 더 받는’ 경제적 이익을 얻으므로 증세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물론 그러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증세정치는 경제적 이해를 뛰어넘는 복합적 정치과정임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에서 2010년 이후 중간계층 중심 복지가 확대되어도 여전히 증세정치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이다. 증세를 가능케하는 핵심 원동력은 사회에 대한 신뢰, 동료 시민을 향한 연대이다. 서구 나라들은 기본소득 없이도 필요기반 복지체제를 운영하기 위해 높은 국민부담률 달성했다. 우리나라 증세정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과세형평성을 도모해 조세정의를 세우고, 재정투명성을 통해 국가행정의 신뢰를 높이며, 모두의 공존을 위해 서로의 책임을 인식하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4) 정리: 고발과 열망, 그리고 한계
기본소득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우선 현재 체제에 강력히 고발한다.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체제, 그리고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지닌 전통적 복지체제를 고발한다. 또한 새로운 미래를 열망한다. 다가오는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가 시민배당을 받으며 살고 싶다는 열망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지금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지는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현재 생산연령인구 중 취업에 나선 사람의 비율, 즉 고용률이 약 65% 수준이다. 여전히 다수가 일하고 있고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상당한 소득 격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에게 동일액을 지급하는 방식은 공공재정이 얻을 수 있는 효과로선 최소에 그친다. 특히 논의 대상인 부분기본소득은 기존 소득보장에 비해 엄청난 재정을 사용하지만 소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금액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호명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기본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더 적합한 대안은 없을까? 사각지대를 해소하면서도 현금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소득을 보장하는 대안은 없을까? 기본소득을 잠시 괄호 안에 보류시켜 놓자. 모두가 노동에서 벗어나는 시대가 도래하면 자연스럽게 모두를 위한 소득보장으로 기본소득이 인류사회에 자리잡을 것이다. 지금이 그 때는 아니다. 더 적합한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3. ‘소득기반’ 전국민 고용보험의 등장
코로나 재난을 계기로 전국민 고용보험이 등장했다. 이름이 ‘전국민’이지만, 엄격히 표현하면, 사각지대 없는 ‘전취업자 고용보험’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현행 고용보험망에 포괄하기 어려운 불안정 취업자가 계속 늘어나는 현실에서 과연 전국민 고용보험이 가능할까?
1) 고용보험 가입 자격: 고용 지위에서 소득으로
현재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경제활동인구 중 절반 가까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다. 경제활동인구 2,736만명 중 1,236만명, 무려 45.2%가 고용보험 밖에 존재한다. 이들은 고용보험이 정한 가입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 즉 특수고용취업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일반 자영업자 등이다.
<표 1> 고용보험 사각지대 현황 (2019년 8월)
비임금근로자 |
임금근로자 |
계 |
|||
고용보험 적용제외1) |
고용보험 미가입 |
공무원 등2) |
고용보험 가입 |
||
680만명 |
178만명 |
378만명 |
147만명 |
1,353만명 |
2,736만명 |
24.9% |
6.5% |
13.8% |
5.4% |
49.4% |
100% |
1,236만명 (45.2%) |
1500만명 (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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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5인 미만 농림어업, 가사서비스업, 65세 이상, 평소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으로 3개월 미만 일하고 일용직이 아닌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에 종사하는 근로자. 2)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별정우체국 직원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 |
어떻게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대응할까? 문재인 정부는 단계적 방안을 제안했다. 2025년까지 ‘모든 일하는 국민(2,100만명, 특수직역 제외)’을 포괄하겠다는 구상이다. 아래 <그림 2>처럼, 고용보험 가입자를 2019년 1,367만명에서 2020년 1,700만명으로 약 330만명을 확대하고, 2025년에 2,100만명으로 확대한다. 이러면 고용보험이 특수직역 종사자(공무원 등)와 초단시간 노동자 등을 제외한 취업자 대부분을 포괄할 것이다.
<그림 2> 정부의 고용보험 단계적 확대 방안
- 출처: 고용노동부(2020), “일하는 행복을 위한 ?안전망 강화? 계획 발표” (별첨, “안전망 강화계획”), 3쪽. (2020.7.20.).
하지만 정부의 방안에는 우려가 남는다. 여전히 고용보험의 가입 기준이 노동시장의 고용 지위이다. 노동시장에서 개별화된 고용, 계약형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고용 지위 혹은 계약 형태를 기준으로 삼는 방안이 유효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단기적으로 우선 적용할 수 있는 취업자들을 포괄하는 작업은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고용 지위와 무관하게 전체 취업자가 고용보험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행 사회보험은 개별 공단별로 ‘적용, 부과, 징수’ 업부가 분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근로복지공단은 어느 취업자가 고용보험 ‘적용’ 대상인지를 판단한다. 노동자성을 지닌 임금소득자여야 하고 월 60시간 이상 일해야 고용보험을 적용한다. 이 요건에 해당되면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주와 국세청의 소득자료를 참고해 보험료를 ‘부과’하고 건강보험공단에 ‘징수’를 의뢰한다. 건강보험공단은 4대 사회보험료를 통합징수하고 보험료 수입별로 개별 공단에 재정을 이전한다. 이렇게 고용 지위를 기준으로 사회보험 적용 여부를 따지기에 상당수 불안정 취업자들은 출입구에서 막혀 사회보험 밖에 머물러야 한다.
아예 고용보험의 원리를 바꾸자. 앞으로는 취업자의 고용 지위, 계약 형태를 묻지 말자. 어디선가 소득을 얻고 있으면 자동으로 고용보험에 보험료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전국민 고용보험 앞에 붙은 ‘소득기반’ 단어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사회보험공단과 국세청의 역할도 달라진다. 취업자의 소득이 발생하는 순간 동시에 사회보험료 부과가 이루어지기에 국세청이 소득발생자의 가입 업무를 맡는다. 사회보험 적용과 보험료 징수가 공단의 매개 없이 바로 가입자와 국세청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러면 현행 사회보험공단의 적용/부과/징수 업무가 불필요하고 사회보험의 가입 사각지대는 원천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
<그림 3> 전국민 고용보험: 고용 지위 -> 소득 기반
2) 실시간 소득체계 구축
결국 전국민 고용보험에서 핵심은 ‘소득기반’이다. 일하는 사람의 고용 지위, 계약 형태를 따지지 않고, 노동시장에서 취업활동을 통해 소득을 얻고 있다면 모두를 고용보험에 가입시키는 구조이다. 여기서 관건은 실시간 소득파악이다. 매월 발생하는 소득을 알아야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시간 소득파악이 가능할까? 과거에는 어려웠으나 앞으로는 가능하다. 근래 소득관계의 전산화(신용카드 사용, 현금영수증 등), 디지털화(플랫폼 네트워크 등)가 진행되면서 소득파악을 위한 토대가 획기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개인의 소득, 매출 활동의 기록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기에, 이를 한 곳으로 모아 종합 관리하는 일이 남은 과제이다.
우선 임금노동자, 일용노동자 등 임금소득자의 소득파악은 지금도 거의 이루어지고 있다. 과제는 특수고용취업자, 일반자영업자 등 비임금소득자의 소득파악이다. 여기서는 매출 파악이 중요하다. 매월 매출을 알면 여기에 업종/지역별 표준경비율을 적용해 임시사업소득을 산출할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우선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원천부과하고, 다음해 종합소득신고에서 정확히 경비를 반영해 정산 과정을 밟으면 된다.
한국은 신용카드, 현금영수증 등이 일반화된 나라이다. 비임금 소득자 중 일반 자영업자의 매출이 대부분 전자거래를 통해 확인된다. 일부 남아 있는 재래시장 등의 현금거래도 앞으로 간이신고방식 도입, 인세티브 적용 등을 통해 전자거래로 포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특수고용 취업자의 경우도 현재 대부분 원천징수되어 소득자료가 존재하고, 원천징수하지 않는 사업장은 사업주가 원천소득 혹은 매출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면 된다. 플랫폼 노동 역시 소득활동 자료가 존재하기에 국세청이 공유하는 절차를 마련하면 소득파악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실시간 소득체계(Real Time Information)’이다. 2013년부터 영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영국은 아직 자영업자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으나 한국은 이 한계까지 넘어설 수 있다. 한국은 신용카드 사용으로 어느 나라보다도 자영업자 매출 파악에서 선진적이다. 단지 소득, 매출 자료가 흩어져 있고 복지제도와 연계되어 있지 못할 뿐이다. 앞으로 이 자료들을 국세청에서 통합관리하면 된다. 그러면 실시간 소득,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자동으로 보험료가 납부되어 고용보험의 가입 사각지대는 사실상 해소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세청의 역할이 확장돼야 한다. 지금은 저소득층 소득파악에 소극적이다. 이들이 납부할 수 있는 세금 규모가 크지 않은데 굳이 행정비용을 들이면서 과세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저소득계층 소득파악이 명확하지 않아 복지제도 운영에서 형평성을 둘러싼 민원도 초래한다. 또한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건강보험 등에서 소득파악의 부족을 이유로 재산에 과도한 소득환산을 적용하는 문제도 초래한다.
앞으로 실시간 소득체계가 구축되면 세금 과세와 보험료 징수가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현행 사회보험공단의 가입자 적용/부과/징수 업무가 국세청과 별도로 진행될 이유가 없다. 국세청이 징수한 보험료 수입을 개별 공단에 전달하면 이를 재원으로 개별 공단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재편될 것이다.
4. 전국민 고용보험을 둘러싼 논점: 급여구조와 재정구조
실시간 소득체계에서는 소득이 발생할 때 동시에 사회보험료가 부과되므로 고용보험 가입의 사각지대가 해소된다. 그러면 급여구조와 재정구조는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이 대거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실업급여를 받을텐데, 실업급여는 어떠한 방식으로 지급하고, 필요한 재정은 어떻게 마련할까? 쉬운 과제가 아니다. 기존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1) 급여구조: 어떻게 급여를 지급할 것인가?
전국민 고용보험에서 모든 취업자가 가입하므로 모두가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 게 효과적일까? 급여구조에서 검토할 몇 가지 논점을 살펴보자.
첫째, 부분실업급여를 인정할 것인가? 현재는 실업을 당했을 경우만, 즉 소득이 중단되었을 때에만 실업급여를 제공한다. 반면 소득기반 고용보험에서는 소득 단절뿐만 아니라 소득 감소도 지원 대상이다. 새로 고용보험에 들어온 특수고용, 프리랜서, 일반 자영업자가의 경우 완전 소득 중단(폐업)보다는 일시적 매출 감소가 실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득기반 고용보험은 일정 기준 이상 소득이 감소할 때 부분실업급여를 제공한다. 실시간 소득체계 덕분에 소득파악이 명확하므로 급여 판정도 공평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소득 단절 여부만을 따졌던 방식에서 훨씬 진일보한 소득보장체제이다.
둘째, 자발적 실업자에게도 급여를 제공할 것인가? 현재 고용보험에서는 비자발적 실업에 대해서만 실업급여를 제공한다. 소득기반 고용보험은 취업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따지기에 자발적 실업에도 급여를 제공하는 게 이치에 맞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일하지 않아도 실업급여가 제공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실업급여 신청은 자신이 가입한 기간의 수급권을 소진하는 일이고, 실업급여 금액이 시장에서 벌던 소득보다 작으며,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보험이 정한 취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남용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최소 기준을 정할 것인가? 소득기반 고용보험에서는 모든 소득에 보험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소득이 적은 사람도 고용보험 가입자가 된다. 과연 이러한 사람에게 실업급여는 어떻게 제공해야 할까? 두 가지 방안이 가능하다.
하나는 일정기간 월평균 소득 기준에 해당되는 사람에게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면, 월평균소득 80만원을 최소 기준으로 삼고 소득대체율 90%를 적용하면 72만원의 실업급여가 지급될 것이다.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실업급여 대신 실업부조로 편입되어 지원받는다.
또 하나는 최소기준을 두지 않는 방안이다. 실업을 당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월 평균소득에 연동된 실업급여를 받게 된다. 그러면 소액의 실업급여자도 생길 것이다. 이 경우에는 금액이 충분치 않으므로 부족분은 실업부조 혹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보완될 수 있다. 나아가 취약계층 소득보장제도들을 통합한다는 취지에서 실업부조, 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장려금을 통합한 마이너스 소득보장(negative income tax)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2) 재정구조: 어떻게 재정을 확충할 것인가?
전국민 고용보험에서는 재정방안도 핵심 논점이다. 고용보험 밖에 있던 경제활동인구 절반의 취업자들이 대거 제도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로서 납부하는 보험료는 적고 실업급여를 받을 개연성은 큰 사람들이다. 즉 전국민 고용보험이 시행하려면 재정을 대폭 확충하는 사회적 책임 분담이 요구된다. 여기서는 누구보다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첫째. 전국민 고용보험에서 국가의 재정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 전국민 고용보험에서는 급여 지출이 늘어나기에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경제적 이해관계만 따지면 기존 가입자들이 반기지 않을 일이다. 새로이 가입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취업자의 파트너(사업주) 역시 새로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니 저항할 수 있다. 심지어 전국민 고용보험이 수혜자인 불안정, 저소득 취업자 역시 일단 보험료를 내야하니 경제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이에 전국민 고용보험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책임이 필수적이다. 우선 정부가 자영업자의 사업주 역할을 맡아 건강보험처럼 일정한 재정을 고용보험에 지원해야 한다. 또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사회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을 특수고용, 프리랜서, 일반 자영업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이처럼 정부가 책임을 자임하면서 기존 가입자 노사, 신규 가입자와 사업주, 일반 자영업자에게 재정 분담을 제안해야 각 주체들도 자신의 역할을 수용하는 사회적 계약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기업의 재정 기여에서 고용회피를 억제하고 사회연대를 증진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 지금은 기업의 고용보험이 노동자의 임금에 연동해 부과된다. 이는 다른 사회보험에도 적용되는 원리이며 다른 나라 역시 같은 방식이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에 대응한 목표를 지닌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면 전통적인 기여방식과 다른 방식을 모색하자는 문제의식이다.
현재 사업주는 임금노동자 사회보험료의 절반을 납부하기에 직접 고용을 회피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이에 진보진영에서는 사업주의 고용보험료 부담을 이윤 혹은 매출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윤 방식은 기업의 경영성과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니 사회연대 가치에 부합하는 장점을 지닌다. 다만 상당수 기업이 사회보험료 납부에서 면제되어 해당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방치되는 단점을 지닌다. 매출 방식은 전체 기업을 포괄하면서 기업의 사업규모를 반영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장점을 지닌다. 다만 매출이 반드시 고용 인원이나 이윤 규모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이에 우선 임금 기준으로 보험료를 적용하고 이윤이 많은 기업에는 추가 책임을 부과하는 ‘혼합 방식’도 제안된다. 물론 전국민 고용보험에서 현행대로 임금 기반 방식을 유지할 수도 있다. 사업주 기여방식의 변화는 기업 간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므로 사각지대 해소에 집중하고 이후 논의 주제로 삼으면 된다.
5. 제안: 소득·필요 기반의 혁신복지체제
코로나 재난을 계기로 기존 소득보장체제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사각지대 해소와 적절한 소득보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다. 첫 번째 대안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조건없이 지급하기에 사각지대가 없다는 강점을 지닌다. 또한 시민배당의 형식을 지니기에 누구든 떳떳하게 받을 수 있어 낙인도 생기지 않는다. 반면 부분기본소득의 경우 적절한 수준의 금액을 제공하기 어렵고 이마저도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는 한계를 지닌다.
물론 인구 대다수가 노동에서 해방(혹은 배제)되는 인공지능 시대라면, 소득보장은 자연스럽게 기본소득 방식으로 전화할 것이다. 대다수 시민이 무소득자이므로 기존의 다양한 현금급여들이 기본소득 하나로 통합되는 구조이다. 결국 기본소득의 현실화 여부는 노동시장의 동질성에 달려 있다. 지금은 여전히 성인 다수가 일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불평등과 격차가 일어나는 시대이다. 사람마다 ‘필요’가 다르다면 소득보장도 이에 부합해야 한다.
이에 사각지대에 대응하면서 적절한 급여 수준을 보장하는 대안으로 전국민 고용보험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경제활동인구 절반만 가입해 있는 고용보험을 전체 취업자를 포괄하는 제도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시도이다. 관건은 실시간 소득체계이다. 한국의 전자거래 발전 토대에서 국세청이 여러 소득, 매출 자료를 종합하면 가능하리라 판단한다.
소득보장의 대안을 찾는 길에서 고용보험은 첫 관문일뿐이다. 당연히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 모든 사회보험을 ‘소득’ 기반으로 전환하고, 취약계층 복지도 실시간 소득정보에 따라 촘촘히 보완될 것이다. 모든 국민이 기본 생활을 누리는 전국민 소득보장이다. 이는 ‘필요’ 기반의 사회정책 원리를 견지하면서 ‘소득’ 기반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점에서 20세기 전통적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21세기 혁신복지체제이다. 이를 위해 소득보장 영역에서는 3개의 안전망이 요구된다.
첫째는 사회보험 안전망이다. 사회보험은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복지지출의 64%를 차지하고, 인구 고령화로 연금, 의료 지출이 증가해 2060년에는 83%에 달할 예정이다. 전국민 소득보장에서 사회보험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실시간 소득체계가 구축되면 취업자들이 모두 사회보험에 가입하므로 사각지대가 해소된다. 소득이 발생하는 순간 가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급여가 제공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수당 안전망이다. 전통적으로 복지국가에서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연령집단별 사회수당이 시행되었고 근래 다양한 방식으로 청년수당, 농민수당(보조금) 등이 선보이고 있다. 사회수당은 노동시장의 보상체계와 독립적으로 사회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집단에게 제공하는 현금급여이다. 점차 시장이 보상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활동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청년수당, 농민수당에 이어 돌봄수당, 참여수당(공익수당) 등 다층의 사회수당을 발전시켜야 한다.
세 번째는 최종 안전망으로 최저소득 안전망이다. 현재 취약계층 소득지원제도로서 기초생활보장, 근로장려금, 한국형 실업부조(전국민취업지원제도. 2021년 시행) 등이 존재한다. 각 제도마다 급여 수준, 적용 범위를 두고 보완 과제를 지니지만, 소득기반의 혁신복지체제에서는 저소득자를 위한 소득보장제도를 최저소득보장(혹은 마이너스 소득보장)으로 통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만 하다.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인류가 오래전부터 가져온 꿈이다. 역사적으로 여러 실험과 성과를 경험하였고 가장 비교우위를 지닌 모델이 서구 복지국가라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모델이 사각지대를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시장 불안정이 큰 한국에서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근래 무상보육,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여러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있건만 소득보장에서 커다란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2010년 이후 복지 바람이 불었지만 시민들이 복지국가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다행히 코로나 재난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미 기본소득, 전국민 고용보험이 논쟁을 이끌고 있다. 시장불평등을 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진보진영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의제들이다. 물론 아직 실현되지 않은, 우리가 완성해가야 할 소득보장의 대안들이다. 진보정당이 이를 주도하는 사회정책 르네상스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