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리보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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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경제] ‘일자리 보장제’ 도입 적극 검토하자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 말고 노동시장을 보라
관심이 집중된 자산시장, 외면 받은 노동시장
올해 연초에 경제와 민생의 쟁점은 두 가지로 모아졌다. 첫째는 단연 주식과 주택가격의 초고공 행진을 중심으로 한 자산시장이었다. 코스피 지수가 3천을 넘어가면서 여당 대표라는 분이 ‘재산증식’의 기회로 삼자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증권시장 호황을 경제활황의 예고탄 정도로 반기기도 했다. 심지어 투자자들의 압력과 주식시장 활황에 찬물을 끼얹을 것을 걱정한 정부가 공매도 부활을 연기하기도 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가격 상승세는 주택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입법화된 다주택 종부세 인상도 소용없이 주택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이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대책이라고 할 25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다. 지금까지 기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칭 ‘공급쇼크’라고 할 83만호 대규모 공급정책을 쏟아낸 것이다. 하지만 가격 안정화와 서민의 주거접근을 돕기보다는, 건설산업계와 일부 투기세력에게 이용될 여지를 넓혀주었다는 비판이 많은 상황이다. 발표 직후인 2월 5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일단 53.1%가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코로나19 겨울 대유행이 불러온 집합제한이나 집합금지 탓으로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된 중소상공인에 대한 손실보상 문제였다. 이미 지난해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임대료 감면’ 등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제대로 의제화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까지 참고 견디던 자영업인들이 3차 대유행 국면에서 다시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강력히 반발하게 되자, 정치권이 뒤늦게 영업손실 보상을 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더해 보궐선거를 앞두고 4차 재난지원금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상태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론장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는 의제가 바로 ‘고용’이다. 불확실한 장세에 배팅하면서 자산가격 상승을 즐기고 있는 일군의 자산가들이나, 반대로 영업손실로 임대료 내기도 빠듯한 중소상공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일자리 잃고, 일감 사라지고, 취업 안되고, 일시 휴직하는 무수한 노동자와 시민들은 그냥 고용노동부의 의례적 행정 아래 각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고용쇼크에 준하는 겨울 고용쇼크
정치와 미디어가 고용문제를 시야에서 없애버린 사이에, 코로나19 겨울 대유행으로 인한 고용쇼크는 지난해 3월 대유행 수준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1월 고용상황이 다음 주에나 발표될 것인데, 지난해 12월 데이터까지만 봐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실업률 먼저 보자. 통상적 실업률 말고 공식 실업자에 더해 추가취업 가능자, 잠재 취업가능자, 잠재 구직자까지를 포괄하는 확장 실업자를 보면 지난 12월, 4백 33만명을 넘고 있어 코로나 1차 유행이 한창이었던 2020년 4월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실업률로 봐도 14.6%로서 다시 급격히 상승했다(그림 1 참조). 2020년 3월 당시 사상 최고 수준이었던 160만명으로 폭증했던 일시 휴직자들은 일단 47만 명까지 줄어들었다가, 지난해 12월에 다시 74만명 수준으로 급증하기 시작하고 있어 올해 1월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림1. 확장 실업자 수와 실업률 추이 (출처 : 통계청)
그런데 여기에는 감춰진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래도 일자리가 예상보다 덜 줄어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취업자들을 연령대별로 분해해서 보면, 지난해 연말까지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연령대는 오직 60대 이상밖에 없다. 60대 이상 일자리를 제외하면 전 연령대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특히 가장 경제활동이 왕성할 30대 후반과 40대 후반 일자리 감소가 특히 두드러진다(그림2 참조).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취업자 수는 공공일자리 등으로 만들어진 60대 이상의 임시직 일자리를 제외하면, 전체 연령대에서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고,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 3차 유행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올해 1~2월에 상황은 계속 악화될 개연성이 크다. 이는 올해 1월 구직급여 신청자 수가 21만 2천 명으로서, 2015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것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또한 고용보험 가입자 기준으로 숙박과 음식업, 운수업, 사업서비스업, 예술 스포츠 분야의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올해 1월에 들어오면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이처럼 고용상황이 코로나 겨울 재유행으로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정치권은 자산시장에 대한 관심의 일부만큼도 노동시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림2. 연령대별 취업자수 증감 추이 (단위 : 천명, 전년대비 / 출처 : 통계청)
‘일자리 보장제’ 대안 논의를 시작할 때
소득손실 등에 대해서는 소득보장제의 한 방식으로 ‘기본소득’ 대안이나 ‘전국민소득보험’ 대안이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고, 아울러 그를 변형시킨 다양한 논의들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일회적인 재난수당이나 소액의 기본소득, 또는 단계적인 소득보험만으로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경기충격, 즉 공급과 수요에서의 동시 충격으로 발생하는 급격한 경기위축, 소득과 일자리 대량 손실을 대처하기는 절대적으로 역부족이다. 소득손실 보장정책 등과 함께 병행적으로 고용정책이 나와줘야 한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급격한 고용시장 붕괴에 대응하는 정책적 대안은 무엇일까?
최근 포스트케인지언 일부에서 제기하는 ‘일자리 보장제’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Tcherneva) 등이 주장하는 일자리 보장제는 어떤 대목에서는 기본소득만큼 단순 명쾌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체르네바는 실업을 없애는 문제를 문맹 퇴치에 비견한다. 일정 수준의 문맹률을 유지하는 정책이 문명국가에서 말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극히 해로운 실업에 대해서도 적정한 ‘자연 실업률’ 따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맹을 제로 수준으로 퇴치하기 위해서 국가가 사립학교들 외에 국 공립학교를 세우고 일정 수준까지 의무교육제도를 두어서 공공재원으로 ‘한 사람의 국민도 남김없이 모두’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것처럼, 고용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민간 노동시장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일하기를 원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정부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제안이다. 일을 하겠다는 모든 실업자들에게 사전에 정한 임금에 따라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왜 기업이 아니고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가? 체르네바는 이렇게 대답한다. 기업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 고용을 수반시키는 것이지 기업의 제1목적이 고용은 아니므로, 사기업들이 노동시장을 통해서 완전고용에 안정적으로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미래 상황이 극도로 불확실해진 지금 상황에서 ‘기업을 통한 고용’의 한계를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재정적인 뒷받침 아래 최후의 고용주로서 실업의 완전 해소를 책임지고, 수익보다는 사회적 필요를 감안해서 공공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고용보장에 대해서 한 가지 선입견이 존재한다. 예들 들어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만들어졌던 공공일자리나 최근 한국형 뉴딜로 만들려고 하는 공공일자리 등이, ‘경력에는 그다지 도움 되지도 않고, 꼭 필요한 일도 아닌 일’을 고용을 위해 자의적으로 만들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자리 보장제는 하향식으로 억지 일자리를 만들자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상향식으로 지역 현장에서 노동의 수요를 발견하고 이를 모아나가는 방식을 취하자는 것이다. 즉, 지역 차원에서 공동체들과 시민사회 사이의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이 당장 필요로 되지만,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이 높아 사기업들이 떠안으려고 하지 않는 일거리를 공공일자리로 발굴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역에 적절한 일자리가 있을 수 있을까? 체르네바는 지역의 곳곳에서 돌봄 일손이 ‘부족’하다고 단언한다. 지역의 부족한 일손을 그는 ‘돌봄’ 일자리라는 개념으로 통합하는데 거기에는 사람돌봄, 지역사회(공동체) 돌봄, 그리고 환경돌봄이 포함된다.
요약해보자.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심각하게 증폭된 실업과 반실업, 휴직, 그리고 불안정 노동의 엄중한 현실에서, 자영업 손실보상이나 재난지원금 논의에만 정책논의가 집중되고 있는 상황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보인다. 이제 별도의 고용정책 대안을 정책 공론장에서 논의해야 한다. 일자리보장제가 그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 기본소득 논쟁으로 너무 좁혀진 노동/사회정책의 영역을 일자리 보장제로 넓혀보자.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