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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응시] 강경화와 양경수

  • 입력 2021.10.05 16:23      조회 1094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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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거품이었다. 처가의 각종 의혹과 준비되지 않은 국정능력으로 그의 거품이 꺼질 만하자, 여권 선두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측근들이 연루된 대장동사건이 터졌다. 이어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의 아들 퇴직금 50억원이 터져 곽 의원이 사퇴하는 등 게이트는 국민의힘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한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강경화 전 외무부 장관이 유엔의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이다. 대장동과 대선은 많이 다루고 있고 나 역시 앞으로 쓸 기회가 있기 때문에 주제를 바꿨다.

강 전 장관의 출마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또 한 명의 국제기구 책임자가 한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기쁘기보다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다. 우리 노동현실이 낙후해 ILO수장은 상상도 못해 봤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자 강 전 장관 얼굴에 한 얼굴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일반인들은 잘 모를 양경수로, 최근 구속된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위원장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노동조합 사무실로 쳐들어가 잡아다 가두어 놓고, 노동의 ‘노’ 자 근처도 안 가본 외교관 출신을 출마시킨다는 발상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혹시 ILO를 ‘국제노동탄압기구(International Labor Oppression)’로 착각한 것인가? 정부는 양 위원장을 코로나19에도 불법옥외집회를 열었다고 구속했지만, 정작 더불어민주당은 경선과 관련해 옥외보다 훨씬 위험한 옥내집회를 연달아 열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국내 2000여 시민사회종교단체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75개국 670여명의 노동인권변호사로 구성된 국제노동변호사네트워크(ILAW Network)는 그의 구속이 유엔 자유권조약과 ILO협약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는 항의서한을 보내왔다.

양경수뿐인가? 태안발전소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김용균으로부터 물류센터에서 타죽은 38명의 노동자 등 현 정부에서도 여전히 죽어나가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동법 등도 문제다. 우리는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협약 87호와 98호 등 ILO핵심협약의 비준을 30년이나 미루다가 올 4월 비준했다. 하지만 현 노동법이 노동자의 범위를 너무 좁게 정의하는 등 핵심협약과 충돌하는 것이 많이 남아 있어 유럽연합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새로 만든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너무 예외조항이 많아 경영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강 전 장관이 ‘최초의 여성 ILO 사무총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열악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찬성 투표한 ILO의 가사노동자협약(189호)을 이번에 비준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여성 ILO 사무총장을 원한다면, 노동 문외한인 강 전 장관보다는 해고노동자의 상징인 노동운동가 김진숙을 추천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물론 현 정부는 이미 반기문 전 외무부 장관을 유엔사무총장에 당선시킨 노하우가 있고 유엔직책에 대한 대륙 간 안배도 있으니 충분히 해볼 만한 게임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국제노동기구의 수장을 맡기에는 너무 뒤떨어져 있다. 아직도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고의 산재사망률을 ‘자랑’하고 있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강 전 장관의 출마는, 지난 총선 위성정당 설립이 보여주었듯이 정치와 국정을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선거에서 이기면 되는 게임’으로 생각하는 현 집권세력의 생각을 국제무대로 넓혀 놓은 것이라는 우려를 갖게 한다. 또 노동의 문외한을 ‘세계노동대통령’에 출마시키는 것은 현 정권이 노동문제를 얼마나 전문성이 필요 없는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ILO 사무총장국’이라는 명성이 우리의 노동현실을 은폐하는 데 이용당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ILO 수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출마를 한다니,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최소한 몇 가지 조치만이라도 해야 한다. 양 위원장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 그를 가두어 놓고 어떻게 국제노동기구를 잘 이끌고 세계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겠으니 표를 달라고 선거운동을 하고 다닐 것인가? 최고의 산재율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갑자기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비준선언을 한 핵심협약과 충돌하는 노동법의 독소조항들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 노동환경을 국제기준으로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해야 한다. 우리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ILO 사무총장을 맡을 자격이 있는가?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