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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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서평19] 행운을 인정하는 것이 정의?
능력주의는 불가피하게 '운'을 얼마나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운은 도박할 때 확률같은거 말고, 내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지, 어느 집에서 태어날지, 어느 성별로 태어날지, 어느 시기에 태어날지에서 부터 심지어, 어떤 계기로 좋아하는 것을 결정할지, 어느 계기로 전공을 선택할지, 어떤 계기로 특정한 학교, 기업에 들어갈지, 어떤 계기로 특정한 친구나 상사를 만나게 될지 등등.
(1)
대중적으로도 인기있는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이미 5년전에 쓴 책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Success and Luck)>에는 요즘 꽤 나와 있는 능력주의에 대한 스토리의 하나이지만, 특별히 '운'에 대해 꽤 많은 내용을 할애했다.
그의 얘기에서 흥미있었던 것은 첫째로, 개인에게 '운'인 것은 '사회적으로는' 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평균보다 20배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서 다른 아이들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운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공공정책을 통해서 그 사회의 소득 격차수준을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또 개별적으로도 소득수준이 낮아도 공교육 등을 통해 굉장히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즉 개인에게 운인 것이 사회적으로는 정책의 결과일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을 선택할 수 없지만, 개인이 속한 사회 전체적으로는 여러 중대한 방법을 활용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그러러면 집중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2)
둘째로, 얼마 안되는 좁은 기회로 들어가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면, 그 경쟁이 아무리 '공정'한 룰로 세팅되어 있다고 해도, 상당한 정도 능력이 아니라 점점 더 운에 따라 진입이 결정되리라는 것이다.
"행운이 업무 성과에 극히 작은 영향을 미칠 때조차, 경쟁자 중 재능이 뛰어나고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도, 비슷한 재능으로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행운이 훨씬 더 많이 따르는 사람에게 지게 마련이다."
즉, 기회가 좁으면 수많은 경쟁자들이 몰리는데, 물론 그들은 대부분 능력이 뛰어나겠지만, 그 뛰어난 능력을 비슷비슷하게 가진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닌데, 그중 결국은 행운이 따라준 소수가 기회의 문을 통과하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경쟁자 수가 많으면 재능 수준이 최고에 가까운 사람 또한 많기 마련이고, 그들 가운데 적어도 누군가는 운마저 굉장히 좋을 수 있다." "사소한 우연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냐고? 일단 자신이 상위 특별한 위치를 갖게된 것이 생각보다 능력의 격차때문은 아니라는 것이고, 또 그렇게 들어간 사람과 운이 따르지 못해 거기서 탈락한 사람의 엄청난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 용납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업무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차이가 수익에 있어서 수천 배의 차이로 귀결된다면, 행운의 중대한 영향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란다. "사소해 보이는 우연적 사건들이 보상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더 잦은 빈도로." 따라서 개인간의 성과격차가 무한히 벌어지는 것을 능력주의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
언젠가 워런 버핏이 얘기했다는 "오늘 누군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오래전에 그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쫌 그놈의 능력주의나 공정경쟁이라는 말로 온갖 격차와 용납할 수 없는 불평등을 뭉게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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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도 인기있는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이미 5년전에 쓴 책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Success and Luck)>에는 요즘 꽤 나와 있는 능력주의에 대한 스토리의 하나이지만, 특별히 '운'에 대해 꽤 많은 내용을 할애했다.
그의 얘기에서 흥미있었던 것은 첫째로, 개인에게 '운'인 것은 '사회적으로는' 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평균보다 20배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서 다른 아이들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운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공공정책을 통해서 그 사회의 소득 격차수준을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또 개별적으로도 소득수준이 낮아도 공교육 등을 통해 굉장히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즉 개인에게 운인 것이 사회적으로는 정책의 결과일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을 선택할 수 없지만, 개인이 속한 사회 전체적으로는 여러 중대한 방법을 활용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그러러면 집중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2)
둘째로, 얼마 안되는 좁은 기회로 들어가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면, 그 경쟁이 아무리 '공정'한 룰로 세팅되어 있다고 해도, 상당한 정도 능력이 아니라 점점 더 운에 따라 진입이 결정되리라는 것이다.
"행운이 업무 성과에 극히 작은 영향을 미칠 때조차, 경쟁자 중 재능이 뛰어나고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도, 비슷한 재능으로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행운이 훨씬 더 많이 따르는 사람에게 지게 마련이다."
즉, 기회가 좁으면 수많은 경쟁자들이 몰리는데, 물론 그들은 대부분 능력이 뛰어나겠지만, 그 뛰어난 능력을 비슷비슷하게 가진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닌데, 그중 결국은 행운이 따라준 소수가 기회의 문을 통과하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경쟁자 수가 많으면 재능 수준이 최고에 가까운 사람 또한 많기 마련이고, 그들 가운데 적어도 누군가는 운마저 굉장히 좋을 수 있다." "사소한 우연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냐고? 일단 자신이 상위 특별한 위치를 갖게된 것이 생각보다 능력의 격차때문은 아니라는 것이고, 또 그렇게 들어간 사람과 운이 따르지 못해 거기서 탈락한 사람의 엄청난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 용납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업무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차이가 수익에 있어서 수천 배의 차이로 귀결된다면, 행운의 중대한 영향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란다. "사소해 보이는 우연적 사건들이 보상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더 잦은 빈도로." 따라서 개인간의 성과격차가 무한히 벌어지는 것을 능력주의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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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워런 버핏이 얘기했다는 "오늘 누군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오래전에 그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쫌 그놈의 능력주의나 공정경쟁이라는 말로 온갖 격차와 용납할 수 없는 불평등을 뭉게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