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와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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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응시] 멍청하긴, 해답은 토지공개념이야!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중략)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가슴을 뜨겁게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다. 충격적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는 촛불에도 불구하고 이 땅이 여전히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며,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며, 상식대로 하면 손해를 보는 세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기이하게도 취임사와 달리 공정은 문재인 정부의 취약점이 되어왔다. 평창 동계올림픽 공정시비로부터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투기 의혹, 조국 사태, LH 사태까지 주기적으로 ‘불공정한’ 일들이 터져 정권을 위기로 몰고 갔다.
여야는 LH 관계자와 공직자들에 대한 엄정한 조사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조사도 조사이지만, 문제는 재발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충돌 규제법, 부당이득몰수법 제정이 시급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도 문제지만, 문재인 정부가 가장 실패한 것은 부동산정책이다. 보수야당은 말할 것 없고 현 정부도 지금까지 내놓은 해법들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클린턴의 유명한 선거구호 ‘멍청하긴, 문제는 경제야!’가 떠오른다. ‘멍청하긴, 해답은 토지공개념이야!’다. 이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진짜 해법은 토지공개념이다. 토지공개념 하면 대개 ‘좌파’를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분 조상 중에 하나님에게 땅 받은 사람, 손들어 봐.” 이홍구 전 총리가 교수시절 토지공개념을 소개하며 한 질문을 잊을 수 없다.
미국의 헨리 조지가 19세기 말 주장한 토지공개념은 토지국유화와 달리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되 사용과 처분에 따른 이익은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길을 내 생긴 이익을 왜 개인이 가져야 하는가? 독일과 스페인, 이탈리아, 대만 등이 헌법으로 이를 규정하고 있고 미국도 피츠버그의 토지 고세율 정책 등을 통해 지역에 따라 이를 실시하고 있다. 토지는 다른 재화와 달리 확대재생산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의 소유는 불가피하게 독점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를 국유화해야 ‘진정한 자본주의적인 경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도 이를 실시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 때다. 노 전 대통령이라니, 보수세력이 ‘좌파’라고 생각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겠지만, 전두환과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민의힘의 뿌리인 민주정의당을 만든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이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는 김대중·김영삼이 이끌던 두 ‘민주야당’과 내부의 반대에, 투기는 망국의 길이기에 토지공개념은 ‘망국과 혁명 예방적 개혁’이라고 반박했다. “우리가 중진국이 됐다고 거들먹거리는 사이 주사파라는 친북세력이 생긴 것은 불로소득 때문이다.” 운동권이 아니라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이다.
부동산투기로 피땀 흘려 일한 돈의 수백배의 이익을 취하는데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노동자만이 아니라 기업도 매한가지다. 생산 활동보다 투기로 수배의 이익을 내는데, 누가 열심히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적인 기업을 하겠는가? 노태우 정부는 여론의 힘으로 반대세력을 설득해 신도시건설 등 개발이익의 반을 국가가 환수하는 개발이익환수법,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매각하는 법 등 토지공개념 3법을 제정했다.
불행한 것은 ‘기득권의 최후보루’인 헌법재판소가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 등을 이유로 이를 위헌 판정했고, 1997년 경제위기와 관련해 경제를 살린다며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제일 먼저 이를 무효화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헌법재판소가 토지공개념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결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평소 토지공개념의 운을 떼온 거대여당, 이 법안을 주도한 민정당의 적자이자 이 법안의 주역 중 한 명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이 힘을 합쳐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본적으로 봉쇄하고 토지이익을 국가가 환수해 주택 등 복지국가 건설에 사용하는 토지공개념법들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특히 부동산광풍과 LH 사태로 정치적으로도 이를 도입하기 적합한 타이밍이다. 그것이야말로 노태우 정권이 잘 지적했듯이, 망국과 혁명을 예방하는 길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