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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경제] 부동산 하락에 대비할 때, 대선후보는 자산투자 조장
차기정부는 주택가격의 '갑작스런 반전(Sudden Reversal)' 준비하고 있나?
시민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옥죄었던 코로나19 재난이 3년차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가 실물경제와 일상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동안 정반대의 호황을 구가했던 분야가 있다. 자산시장이다. 특히 20년만에 처음으로 수도권 아파트가 무려 38퍼센트까지 치솟을 만큼 부동산 거품이 심했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해서 번 소득과 주택가격 사이의 간격은 계속 벌어졌다.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에 중산층 기준 서울 집값은 연간 소득의 14배쯤 되었다. 이것조차 엄청난 것이지만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지난 9월까지 이 숫자는 무려 17.6배로 올랐다. 웬만해서는 생애 동안 부모 도움을 받거나 빚을 얻지 않고서는 서울과 수도권에 내집 마련을 한다는 것이 서민들에게 꿈꿀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다른 이상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가상자산까지를 포함한 자산시장의 무한 폭등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아파트값 전월대비 상승률이 팬데믹 발발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고 거래량도 급감하고 있다. 2014년 이후 8년 동안 과도하게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어졌기 때문에, 사실 언제 그 기세가 꺾여도 이상할 것은 없다. 최근 세계적으로 중앙은행들이 이례적인 물가상승 추세에 긴장하면서 사실상 제로 금리상태를 마감하려고 서두르자 그 조짐이 확연해졌다.
이미 한국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해서 0.5%였던 기준금리가 현재 1.25%로 올라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역시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올해 4차례 이상 금리를 올리고 양적완화도 중단할 의지를 강력히 표시하고 있어 우리나라 금리의 추가적 인상은 불가피하다. 자산투자에 더 이상 레버리지를 동원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미 투입된 자금에 대한 이자상환 부담도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20년 말 기준으로 자금 순환표상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이미 경제규모를 넘어서 GDP 대비 106%까지 올랐다. 지난해 3분기까지 가계부채가 2,211조원까지 계속 급팽창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올해 110%를 초과할 개연성도 높다. 더 이상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대출로 투자)’로 주택가격을 밀어올리기 쉽지 않게 되었다.
부동산 거품붕괴 우려는 국제기관들이 이미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IMF가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는 폭등한 주택가격이 ‘갑작스런 반전(Sudden Reversal)’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IMF는 주택가격 하락 위험이 상당하다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주택가격은 앞으로 3년 동안 선진국에서는 14% 정도 하락할 것이고 신흥국가는 22%까지 폭락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할 때, 차기 정부의 중요한 정책적 리스크에는 ‘자산시장 거품 붕괴’에 대한 대비가 포함되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올라야만 성립하는 정책 남발하는 대선 후보들
팬데믹 와중에 정점에 오른 부동산 거품은 특히 자산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문재인 정부가 다양한 소득정책으로 다소간의 소득불평등을 완화시켰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그 성과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산불평등은 커졌다. 그 결과 자산지니계수는 처음으로 0.6을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유력 대선 후보들은 자산시장 하락의 위험에 대비하고 자산불평등을 줄일 생각을 하기는커녕, 반대로 갈수록 위험해지고 손실가능성이 높아가는 자산투자를 조장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량 공급정책에 갖가지 금융규제 풀기, 세금 깎아주기 경쟁이 그것이다.
특히 거대양당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금융대출 완화를 공약하고 있는 중이다. 311만호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공약한 이재명 후보는 LTV를 최대 90%까지 인정하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250만호 이상 공급하겠다는 윤석열 후보도 비슷하게 LTV를 80%까지 인정해주겠다는 공약을 쏟아냈다. 만약에 집값이 10% 이상 하락하면 집값의 90%까지 융자로 산 주택은 즉각 집값보다 은행빚이 많은 깡통 주택으로 돌변할 것이다.
심지어 거대양당 후보들은 LTV를 풀려고 해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라는 규제에 막혀버리니까 이것마저 풀겠다고 공약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월 23일, DSR 조정 없이 LTV만 완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을 받자, DSR 추가 조정도 당연히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DSR 제도는 차입을 하는 시민들이 소득으로 감당 가능한 만큼만 빚을 지도록 유도하는 핵심정책이다. 물론 여기에도 전세대출이 빠지는 등 여전히 허점이 많은데 그마저도 풀겠다는 것이다. 주택가격은 하락하고 금리는 올라서 이자 부담이 늘어날 경우, DSR완화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특히 최근 주택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던 갭투자와 이를 가능하게 한 전세자금 대출 부실화 위험을 주의해야 한다. 2016~2020년까지 전세자금 대출이 113조원으로 280% 증가했는데, 전세 세입자의 2/3 이상이 전세자금 대출을 이용했다고 한다. 무리하게 갭투자에 뛰어들었던 상황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깡통전세, 역전세 상황으로 반전될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을 대비한 정책수단 준비해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0년대 중후반에 주택가격 거품이 지금과 유사한 수준으로 심각했다. 그 정점은 2008년 총선에서 경쟁적으로 쏟아져나온 뉴타운 공약들이었다. 그 결과는 어땠나? 어쩌면 충분히 예견 가능했던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라 하우스 푸어가 양산되고 뉴타운 공약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던 것이다. 거품과 거품붕괴는 늘 반복되어왔다. 8년을 지속해왔던 부동산 호황이 언제까지 갈 수는 없다.
최근 강남의 주요 아파트 값이 미국 맨하탄 아파트 가격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이제는 집값 상승만이 아니라, 하락에 대비한 정책들이 동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도 자산투자자들의 욕망에 편승해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뒷감당할 수 없는 부동산 규제완화를 약속하는 공약 경쟁을 멈추어야 한다. 특히 무리하게 집을 사기 위해 동원했던 부채관리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이 대목에서 은행의 역할도 중요하다. 은행들은 지난 팬데믹 시기 동안 자산시장 거품에 편승해서 대출을 늘린 결과 엄청난 수익을 올렸지만, 역으로 차입자들의 상환능력을 충분히 감안하고 책임있는 대출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약탈적 대출’이라고 한다. 이제라도 은행들은 차입자들의 모든 부채를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상환능력을 갖췄는지를 판단하고 대출해야 한다. 그러면 서민들이 어떻게 대출을 받냐고? 그건 별도의 정책금융이 해결할 일이지 무분별한 대출 남용을 허용할 이유가 안 된다.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