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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경제] 일회용·불평등·그린뉴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갑작스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록다운을 선언하고 경제 붕괴가 시작된 지 벌써 2년을 넘어간다. 까마득한 오래전 얘기 같다. 이제 코로나19 변이들의 치명률이 낮아지고, 감염 확산도 정점을 지나가면서 차츰 계절 독감 수준으로 내려앉으려 하고 있다.
인구대국 중국이 상하이 봉쇄 등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변수가 있지만, 우리를 포함한 세계 대부분 나라들에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나 집합금지, 영업제한들이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외형적으로는 시민들의 일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다. 2년 전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시민들의 삶을 통째로 바꿨던 코로나19가 터지자, 너나없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식자들의 장담으로 넘쳐났었다. 일상회복을 눈앞에 둔 지금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회복되는 일상은 과연 2년 전 코로나 이전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딱 1년 전인 2021년 4월경 <셧다운>이라는 두꺼운 책을 초고속으로 집필하고 출판하여 미리 답을 냈던 식자가 있다. 최근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경제사학자 아담 투즈(Adam Tooze)다. 그의 대답은 ‘아니오’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근본적으로 코로나19 재난에 대한 경제사회적 대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쟁점들은 잠시 접어두고, 그의 이야기 중에서 코로나19가 과연 사회경제 지형과 우리 삶을 근원적으로 바꾸었는지 세 가지 점에서 살펴보자.
전례 없이 파격적이었지만, 일회용 처방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전염병을 세계적인 대유행, 즉 팬데믹으로 선언했던 2020년 3월 11일 전후에서 약 한 달 동안, 세계 경제와 사회는 전쟁 상황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충격의 연속을 경험했다. 증권시장,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이 무너져 내리고 실업자들이 전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폭증하는가 하면, 파리, 런던, 뉴욕과 같은 글로벌 메가시티들이 봉쇄되었고, 학교에는 휴교령이 떨어졌으며 하늘을 누비던 여객기 거의 전부가 운항을 멈췄다.
특히 사건에 민감한 금융시장이 무너지면서 심지어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 국채까지 버리고 현금만 찾는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2008년 금융위기 이상의 위험에 직면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008년을 이미 겪었던 서구의 중앙은행들은 과거처럼 물가안정에만 소극적으로 집착하지 않았다. “금리를 낮추고, 양적완화를 하고, 금융시장을 지원하고, 통화스와프 라인을 확대”하는 등 2008년 위기에서 써먹었던 레퍼토리를 총동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유럽중앙은행을 포함해서 선진국 대부분, 심지어 한국은행과 중진국 중앙은행들도 동시적으로 이 대열에 참여했다고 아담 투즈는 분석한다. “2008년에는 중앙은행들이 여전히 개입에 주저하는 기색이 있었다. 2020년에는 주저하는 기색 따위는 없었다” 어쨌든 그 결과 놀랍게도 유동성 위기는 진정되었고 글로벌 자본 급변동도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는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대규모 조치였을 뿐이었고, 뒤에 설명할 자산시장의 거품이라는 원치 않았지만 예견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기민하게 움직인 중앙은행에 뒤이어, 곧바로 각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이 뒤따랐다. 고용유지와 소득보전, 각종 정책대출 조치들 역시 유례없이 대규모로 시행되었는데, 압권은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지원, 구제 및 경제 안보법(일명 CARES 법)’이었다. 이 법으로 2008년 당시 재정지출의 3배에 가까운 2조 7천억 달러가 지출되었다. “CARES법은 1960년대 이후로 미국이 부유한 국가에 걸맞은 규모의 제도를 실험한 첫 번째 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것이 투즈의 진단이다. 재정건전성에 유난히 집착했던 유럽도 이번에는 과감한 재정지출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도 상당 규모의 긴급재난지원금을 포함해서 재정지출을 감행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아담 투즈는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코로나19로 드러난 복지제도의 결함을 고치려는 시도 없이 그저 일회용 처방이 대규모적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혁신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재정개입의 근본 논리가 보수적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막대한 재정지출에 찬성표를 던진 정치인들 가운데 사회변화를 위한 연간 계획을 짠 이는 사실상 아무도 없었다” 투즈는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수많은 돈이 현금으로 간단하게 전달되었다. 이것은 바로 복지제도 없는 복지였다.”
이는 수차례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선별적 보조금이 지급되었던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 의제가 국민적으로 확산되고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된 점이 변화라면 변화였다. 보편기본소득, 안심소득, 전국민고용보험 등의 대안들이 한때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계적인 고용보험 확대 말고 이후 제도적인 소득안전망이나 고용안전망에 대한 개혁으로 이어지는 데 실패했다. 코로나19가 복지를 뒤바꾸지는 못한 것이다.
코로나19도 불평등을 어쩌지는 못했다
전쟁이나 재난이 닥치면 재난자본주의라고 불리는, 가진 자들의 횡포가 더욱 거세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민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의 여건이 조성되기도 한다. 2차대전의 참상을 경험한 이후 복지국가의 탄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이번 코로나19 재난 역시 전 세계가 ‘생명’의 위협 앞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완화시키려는 연대의 기운보다는 승자독식의 냉정한 세계를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코로나19로 무너져내리는 금융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 결과는 부동산, 주식, 가상자산 시장의 거품을 촉발시켰다. 투즈는 이렇게 예언했다. “대규모 통화정책 개입은 주식시장을 부풀리고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소수에게 혜택을 주었다. 만약 2021년의 통화정책이 재분배를 위한 재정정책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평등을 점진적으로 증가하게 하는 확실한 방안이 될 것이다. 2021년의 시작과 함께 주가가 급등하면서 주식시장은 진짜 버블 시나리오에 들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증권과 부동산, 가상자산시장은 폭등했고, 자산보유자들의 부를 크게 늘렸다. 반면 통화정책과 동시에 실시된 대규모 재정정책은 대체로 일회적이어서 자산 없는 서민들에게 손실된 소득의 일부를 겨우 보충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특히 한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2% 금리보다 훨씬 낮은 0.5% 금리라는 역사상 최저금리로 낮추면서 자산거품의 환경을 조성한 결과 그 어느 나라보다 자산거품이 심했다. 최근 2년 동안 유례없는 부동산 폭등의 주된 책임은 정부 정책 실패이지만 얼마간은 코로나19에게도 있다. 주식시장 거품 역시 기업의 실적을 반영한 것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완화적 통화정책에 의존해왔다.
특히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전염병 확산과정에서 승자독식의 불평등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는 ‘백신’의 불평등한 분배에 있었다. 백신 개발 대부분이 공적자금 투입의 산물인 점을 감안하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기업 모더나는 직원이 800명에 불과하고 한 번도 3상 임상시험을 해본 적인 없는 제약회사였다. 미국 정부는 이 회사에 25억달러 현금지원뿐 아니라 경영지원까지 해준다.
아담 투즈에 따르면 미국은 2020년 5월 15일 ‘워프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를 시작했는데, 이는 “생명공학, 대형 제약회사, 그리고 2개의 대형 정부기관들, 즉 펜타곤과 보건복지부가 협력해서 진행하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모더나 지원금은 여기서 지원했던 124억 달러의 일부다.
미국과 독일 협력이었던 화이자-바이오엔테크 역시 미국 정부가 1억 도스를 9억 5천만 달러에 선구매했고, 독일과 유럽투자은행이 바이오엔테크에 5억 6천만 달러를 투자한 혜택을 입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제너연구소가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당초 제너연구소가 백신을 전 세계와 공유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후원을 한 빌 게이츠재단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처럼 “공적 자금이 제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세 백신에 대한 지적 재산권은 민간백신 제조사들에 남아”있게 되었는데, “백신 개발 시작 단계에서 노하우 이전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거대한 지구적 정책 실패”라는 것이 투즈의 진단이다.
그 결과 초기 백신 배급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게 한정되는 지극히 불평등한 백신 분배양상으로 그대로 드러났다. 그나마 중국에서 개발한 시노백과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V가 비서구 지역의 백신 보급에서 보완 역할을 했다는 것이 투즈의 결론이다. 그 외에 글로벌 차원에서 백신 관련 기구인 COVAX 등의 역할은 실로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묻혀버린 그린뉴딜?
한 가지가 더 있다. 기후위기 대응 프로그램에 코로나19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사실 코로나19가 세계를 급습하기 전인 2019년 세계는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인 ‘그린뉴딜’ 정책 의제로 활발한 논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오카시오 코르테스와 에드워드 마키 의원이 ‘그린뉴딜 결의안’을 내고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이를 수용하면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아예 ‘그린 딜’ 계획을 확정하여 추진준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기후재난의 예고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세계는 온통 방역대책으로 정신없이 빨려들어갔다. OECD 등 국제기구들에서 섣부르게 코로나19 이후 회복 프로그램으로 ‘녹색회복’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암스테르담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의미있게 녹색 회복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뉴딜안에 ‘그린뉴딜’을 포함시켰지만 과거의 환경 연계 산업부흥책 이상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글로벌 차원에서 야심차게 시작할 수도 있었던 그린뉴딜 프로젝트들이 갑작스런 코로나19 재난으로 뒤로 밀려났다는 것이 투즈의 진단이다. 다만 코로나19를 조기에 방어한 중국의 기후 관련 행보를 아담 투즈는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고는 있다. 그에 따르면 시진핑은 2020년 9월 22일 유엔연설에서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인류가 녹색혁명을 일으키고, 녹색발전과 녹색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더욱 빨리 움직여야”한다면서 칭화대 엘리트 과학자팀의 조언을 받아서 “2030년 이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정점에 달하게 하고, 206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분석한다.
투즈는 이를 “30년 동안의 기후협상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의 주요 탄소 배출국들이 근본적인 행동에 나서는 데” 성공했고, 몇 주 만에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선례를 따라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고 높이 평가한다. 물론 유럽연합도 이후 그린딜을 더 진화시켜왔고 미국 역시 바이든 정부가 다소 진전을 시키기는 했다.
지금까지 복지제도 개혁, 불평등 개선, 기후위기 대처라는 큰 주제에 대해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과연 바뀐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아담 투즈의 진단을 빌어와서 평가해보았다. 잠정적 결론은 그의 평가대로 부정적이다. 코로나19 재난의 기억을 아주 잊어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거대한 역사적 위기를 경험하고도 여전히 과거의 문제점을 고치지 못하고 반복하는가?
아담 투즈는 기후위기 등 미래에 발생할 사회적 문제들을 놓고 이렇게 전망한다.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그때 우리는 현상유지를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든 작든 점점 더 바꾸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