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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정책과 서평33] 기후위기의 경제학에 대한 단 한권의 책을 선택한다면?

  • 입력 2021.10.05 19:19      조회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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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번역된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의 저서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

이 책은 어쩌면 통상적인 '탈성장(degrowth)' 주장을,  통상적이지 않게 매우 '논리적'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설명하고 논증한 책이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한 책이면서 생태경제학에 관한 책이고,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기술한 책이다. 특히 왜 '성장주의(growthism)'가 잘못되었는지를 굉장히 다양한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비판한 책이다.  '성장의 폭정(the tyranny of growth)'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 전 '능력주의 폭정(the tyranny of meritocracy)'을 비판한 샌델이 연상되기도 한다. 

  1년전에 영어판으로 읽고, 이번에 한글판으로 다시 읽는데 또 다른 느낌이어서 다시 몇가지만 강조해 보고싶다. 일단 현재까지 기후경제학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이 책의 입장에 가장 공감이 된다.



다른 탈성장론 주장들과 달리 이 책의 최대 강점은 , 생태 친화적인 사회와 그 안의 삶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얼마나 가능한 삶인가를 홍보형식으로 주장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보다는, 기존의 주류경제학자들, 심지어 녹색성장을 주장하는 이들의 관점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논박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즉 히켈은 '탈성장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보다는, '성장주의가 왜 문제인가?'라는 식으로 경제성장의 논리와 효율성의 논리, 기술혁신의 논리를 짚어보는데 책의 대부분을 할애한다(탈성장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는 맨 마지막 장에서만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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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입각점에서 흔히들 착각하는 것처럼, 히켈은 탈성장이 '불황'이나 '긴축'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히켈 버전의 '탈성장론'을 그의 용어법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탈성장은 GDP를 줄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의 물질과 에너지 처리량을 줄여 생명세계와 균형을 이루도록 되돌리는 것, 그러면서 소득과 자원을 더 공정하게 배분하고, 사람들을 불필요한 노동에서 해방시키며, 사람들이 번영하는데 필요한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이는 보다 생태적인 문명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GDP가 천천히 성장하거나, 또는 성장을 멈추거나, 어쩌면 하락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GDP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단촐하게 요약한다면 "커먼즈의 인클로저 해체, 공공재의 탈상품화, 노동과 삶의 탈집약화"등을 포함한다. 다소 철학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탈성장은 자발적으로 비참한 삶을 살거나 인간의 잠재력에 가혹한 제한을 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것을 의미한다. 번영에 관한,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에 관한 보다 수준높은 의식에 도달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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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히켈은 어떻게 성장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가? 그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자본주의의 무한축적 엔진을 멈춰세울 힘은, 노동자의 자각과 조직된 저항쪽 보다는, 자연의 압력일지 모른다(물론 자연의 압력을 누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지만).  어쨌든 앞으로 자연의 강제적 힘(기후위기)만이 어쩌면 파괴적으로 자본주의 축적행진을 중단시킬지 모른다.  이는 히켈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정확히 담겨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보다 GDP를 상승시키고 그 중 일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들어가기를 희망하는 게 정치적으로 더 쉽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관점을 바꾼다. 우리에게 세계경제의 잔인한 불평등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우리를 정치투쟁의 영역에 밀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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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장주의가 자본주의에 고유한 '무한축적논리'에 기초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장주의 굴레로부터 빠져나오는 것, 즉 탈성장은 '포스트 자본주의'라는 방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포스트 자본주의 경제는 결코 무시무시하지 않다. 소비에트 연방의 명령과 통제 체제같은 재앙도, 자발적 가난이 가져오는 동굴 속 원시인의 생활도, 히피 복장을 연상시키는 모습도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는 자본주의 주요 목표인 축적을 중심으로 조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의 경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 자본주의경제를 말하면서 히켈은 섣불리  '사회주의' 같은  추상화된 선험적 대안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일상의 언어로 대안경제를 표현한다. 즉 "사람들이 유용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경제,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정보에 기반하여 상품을 선택, 구입하는 경제, 사람들이 노동력에 대해 공정하게 보상받는 경제, 인간이 필요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경제, 화폐가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사이를 순환하는 경제, 혁신적으로 더 좋고 오래가는 제품을 만들고 생태적 압력을 줄이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인간 복지를 향상시키는 경제, 경제가 의지하는 생태계의 건강을 무시하지 않고 응답하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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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성장이 멈추면 인간의 복지나 웰빙을 더 강력한 분배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는 굉장히 과격한 분배주의자다. 그는 부자에게 과세하고, 일자리보장제를 실시하며, 주4일제 노동을 도입하며, 부채를 탕감하고, 상업은행의 신용화폐를 없애버리는 것이 기후위기에도 좋고 불평등 해소에도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그의 탈성장 주장과 생태경제학, 그리고 포스트케인지언의 해법이 서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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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영문판 책소개를 하고 다시 한글판 소개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기후위기의 경제학'의 많은 내용을 알려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히켈은 당연하게도 기술혁신이 꼭 필요하고,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대와 이를위한 투자도 꼭필요하다고 다른 탈성장론자들보다 훨씬 힘주어 강조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녹색기술혁신이나 재생에너지 확대가 당연히 필요하고 가능하다고만 말하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그냥 생략해버린다. 그래서 이대목에서 나는 탈성장론자들이 경멸하는 로버트 폴린 등의 녹색투자 주창자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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