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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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서평26] '주의깊은 낙관주의자'의 치열한 '기후 전쟁’
최근 1만 1천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기후위기가 실재하는 것을 넘어서 질적으로 위험한 고비, 즉 티핑 포인트에 근접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고 한다. 그 많은 과학자들 중에서 한국사람은 몇명도 안된다니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지만. 암튼 전 세계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대처방안을 위해 노력해왔던 것 같다.
많은 과학자들 중에 펜실베니아 주립대 대기과학 교수 마이클 만(Michael Mann)은, 정말 한편으로는 신중한 과학자이면서 오바마 정부나 IPCC등에서 정책권고를 하는 정책지원자이고, 다른 면에서는 대중지 기고 등을 통해 기후위기 부인론자, 지연론자, 체념론자 등과 정말 치열하게 맞서서 그의 표현대로 '전투'를 벌이는 기후위기 전사라고 해야 할까?
올해 2월에 마이클 만의 새 책 <새로운 기후전쟁(The New Climate War: The Fight to take back our planet)>이라는 책이 빌게이츠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Avoid a Climate Disaster: The Solutions We Have and the Breakthroughs)>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가디언등에서는 비교서평을 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빌게이츠 책만 번역되었다. 마이클 만의 책도 번역되기를 정말 희망한다. 그의 전작는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책은 그야말로 그의 20여년 기후운동의 종합판으로 훨씬 중요한 책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특히 기후운동가들에게는 빌게이츠 책에 비해서 마이클 만의 책이 압도적으로 참고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빌게이츠는 주변 전문가들에게 들은 것을 요약한 책이지만, 마이클 만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판단을 종합하고 있고, 여러모로 입각점도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3월부터 읽다가 매듭짓지 못했는데 이번 여름휴가로 마저 읽었다).
(1)
"기후위기는 실재한다. 그러나 해결할 수 있다(The climate crisis is very real. But it is not unsolvable)"
마이클 만의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한 결론이다. 그는 스스로 '주의깊은 낙관주의(cautious optimism)' 포지션에 서겠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종합적으로 그는 온건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경우에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일부 이견이 있는데, 아마 읽는분에 따라서 그 지점이 다르겠지만, 매우매우 논쟁적인 저서이고, 본인의 20여년 기후투쟁을 결산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1000년 동안 지구의 온도 흐름이 최근에 와서 급격히 높아져서 마치 '하키 스틱'모양으로 끝쪽이 급격히 올라간 '하키스틱 커브'를 1998발표한 후, 20여년 넘게 본인과 가족들이 기후부인론자들에게 공격당했던 경험까지를 풀어놓는다. 그 처절한 싸움들이 눈에 그려질 정도인데, 그 후 그는 대기과학자로서 물러났을법도 한데, 그러지 않고, 집요하게 전선에서 기후부인론자들과 치열하게 맞선다. 1965년생이니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는데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특별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2)
그는 내가 아는 웬만한 기후관련 명사들과 전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맞서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회피하지 않는다. 온건한 진보주의자로 표현했던 것처럼 그는 우선 탄소세 도입을 옹호한다. 그리고 여기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던 나오미 클라인이나 버니 샌더스를 비판한다. 나는 여기에 동의한다.
그의 탄소세에 대한 반박논리는 이렇다. 우선 탄소가격제도가 역진적이다? 이는 배당제도(A fee-and-dividend method)로 해결가능하다. 캐나다의 좋은 사례가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냥 탄소세를 과세하고 끝나면 프랑스 노란조끼운동같은 반발을 초래하는, 정의롭지 못한 전환이 될 수 있다.
둘째, 탄소가격제가 탄소배출기업들을 면책시켜준다? 탄소가격을 지불했다고 해서 화석연료기업들의 법적 책무가 면책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업이 탄소세를 지불하는 것은 원래 지불해야 할 계산가능한 범위내의 사회적 최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일 뿐, 탄소배출로 인한 다른 사회적 문제점이 불거지면 여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째, 탄소가격제가 효과가 없다? 효과 여부는 가격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호주의 사례등 효과가 있었던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역설적으로 이는 소비자의 행동에 유의미한 효과가 미칠 수준까지 충분한 규모의 탄소세가 부과되지 않으면 면피용이 될 수 있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연히 탄소세라는 시장기제 하나만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기제의 이용을 배제하고서 탄소배출을 빠르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적어도 시장경제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면. 시장을 경제의 중심 메커니즘으로 인정하면서도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나는 그의 다음과 같은 표현이 맘에 든다. "탄소세는 기후행동을 위한 도구상자 안에 있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포괄적인 기후위기 대책들과 결합되어서 실행되어야 한다"
(3)
탄소세 논쟁에서 더 나아가, 그는 코르테스 의원의 그린뉴딜 결의안이 지나치게 많은 사회개혁까지 담고 있어 중도층에게 호소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비평하기도 한다. 또한 나오미 클라인처럼 기후위기와 불평등, 차별, 심지어 자본주의 문제점까지 엮어서 기후위기운동이 반자본주의적으로 보이는 것에도 마이클 만은 비판적이다(물론 나는 이 대목에서 마이클 만의 의견에 반대한다).
자연과학자로서, 기후위기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숱하게 공격받은 경험에서 나온 그의 태도라고 나는 옹호해주고 싶기는 하다. 물론 그가 일정하게 온건한 스텐스를 가지는 이유는 이해가 된다. 그는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우리편을 최대한 넓혀서 정치적으로 기후위기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너무 적을 많이 만드는 포지션은 기후위기 대처에 도움이 안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어설픈 타협책으로는 기후위기 해결이 안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정확한 포지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
때문에 온건하지만, 흐리멍텅하지는 절대 않는 진보주의로서 면모는, 그가 '해법일수 없는 해법'에 대해 논박하는데서 드러난다. 그는 가스발전과 같은 '브릿지 연료', CCUS, 각종 지구공학해법, 심지어 나무심기에 대한 과도한 의존, 핵발전, 더 나아가 '적응(adaptation)과 회복(resilience)'라는 이름아래, 공격적인 탈-탄소전환 행동을 지연시키는 모든 행동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날을 세운다. 이 대목에서 정말 빌게이츠와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그가 구 기후전쟁(Old Climate War)과 대비되는 신 기후전쟁(New Climate)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 과거에는 대놓고 기후위기를 부인하는 기후 부인론자와의 싸움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워낙 기후위기가 명확해서 반대파들이 다른 수법들을 쓴다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기후위기 운동가의 위선을 공격하기, 기후위기 대응을 지연시키기 등이 그 사례란다.
여기에 대한 싸움이 바로 '신기후전쟁'이라고 그가 표현하는 것인데,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망해버렸다고 포기하는 체념주의자(doomsayers)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 중에서 기후위기를 진정 걱정하면서도 이미 인간멸종을 돌이킬 수 없고,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다면서 적극적 행동을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그는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꽤 알려진 <2050년 거주불능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가 바로 그런 유형의 사람중의 하나라면서 그를 상당히 쎄게 비판한다.
(5)
이 책의 압권은 그가 기후위기를 '개인책임'으로 돌리는 문제를 매우매우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는 점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담배회사들, 총기회사들, 음료수 회사들이 정부가 환경규제나 탄소배출 규제를 위한 입법을 방해하기 위해서 주로 써먹던 수법이, '개인적 활동' '개인책임'으로 돌리는 캠페인이었음을 사례를 들어 길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총기판매기업들은 '총기가 무슨 죄냐, 총을 쏜 인간이 죄지' 그러면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기후위기에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개인적 실천은 안하면서 기후위기를 주장하는 자들을 '위선자' 딱지를 씌웠다. 전 미국 대통령 후보이자 기후 운동가 알 고어부통령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그는 플라스틱 안쓰고, 자동차/비행기 안타고, 고기 안먹고 이런식으로 개인적 희생(personal sacrifice)을 강요하는 식으로 기후정의운동을 하면 위험하다고 강력히 권고한다.
담배피는 걸 창피하게 만들어서 금연을 하게 한다고 세계적으로 흡연히 급격히 줄었던 것이 아닌것처럼. 이 대목은 우리도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실천으로 돌리는 경향이 환경운동 등에서 꽤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와 같은 개인적 실천과 (기업의 행동을 바꾸게 만들)제도 변화와 같은 시스템 변화는 둘 다 중요하다면서도, 결정적으로 전자가 후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없는 개인적 실천은 거의 의미가 없다(Personal action means little without systemic change)" 이 대목은 우리나라 기후운동가들이 충분히 숙독해보면 좋겠다.
(6)
마지막으로 학자로서의 그의 결론은 이렇다. 혹자는 코로나19와 달리 기후위기는 백신이 없다고 말하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백신은 '올바른 지식'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실'과 여전히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고 그 막을 방법에 관한 지식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백신을 맞는것과 같다고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덧붙인다면, 투표 잘해서 기후위기 막을 정치인을 뽑자라고 그의 주장을 마무리 짓는다.
******
* 영문으로 340쪽 가량 되니 번역되면 분량이 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기후운동가들은 그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기가 쉽지 않더라도 꼭 한번 보면 좋을 것이다. 정보 자체가 워낙 많다.
많은 과학자들 중에 펜실베니아 주립대 대기과학 교수 마이클 만(Michael Mann)은, 정말 한편으로는 신중한 과학자이면서 오바마 정부나 IPCC등에서 정책권고를 하는 정책지원자이고, 다른 면에서는 대중지 기고 등을 통해 기후위기 부인론자, 지연론자, 체념론자 등과 정말 치열하게 맞서서 그의 표현대로 '전투'를 벌이는 기후위기 전사라고 해야 할까?
올해 2월에 마이클 만의 새 책 <새로운 기후전쟁(The New Climate War: The Fight to take back our planet)>이라는 책이 빌게이츠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Avoid a Climate Disaster: The Solutions We Have and the Breakthroughs)>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가디언등에서는 비교서평을 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빌게이츠 책만 번역되었다. 마이클 만의 책도 번역되기를 정말 희망한다. 그의 전작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특히 기후운동가들에게는 빌게이츠 책에 비해서 마이클 만의 책이 압도적으로 참고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빌게이츠는 주변 전문가들에게 들은 것을 요약한 책이지만, 마이클 만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판단을 종합하고 있고, 여러모로 입각점도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3월부터 읽다가 매듭짓지 못했는데 이번 여름휴가로 마저 읽었다).
(1)
"기후위기는 실재한다. 그러나 해결할 수 있다(The climate crisis is very real. But it is not unsolvable)"
마이클 만의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한 결론이다. 그는 스스로 '주의깊은 낙관주의(cautious optimism)' 포지션에 서겠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종합적으로 그는 온건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경우에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일부 이견이 있는데, 아마 읽는분에 따라서 그 지점이 다르겠지만, 매우매우 논쟁적인 저서이고, 본인의 20여년 기후투쟁을 결산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1000년 동안 지구의 온도 흐름이 최근에 와서 급격히 높아져서 마치 '하키 스틱'모양으로 끝쪽이 급격히 올라간 '하키스틱 커브'를 1998발표한 후, 20여년 넘게 본인과 가족들이 기후부인론자들에게 공격당했던 경험까지를 풀어놓는다. 그 처절한 싸움들이 눈에 그려질 정도인데, 그 후 그는 대기과학자로서 물러났을법도 한데, 그러지 않고, 집요하게 전선에서 기후부인론자들과 치열하게 맞선다. 1965년생이니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는데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특별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2)
그는 내가 아는 웬만한 기후관련 명사들과 전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맞서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회피하지 않는다. 온건한 진보주의자로 표현했던 것처럼 그는 우선 탄소세 도입을 옹호한다. 그리고 여기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던 나오미 클라인이나 버니 샌더스를 비판한다. 나는 여기에 동의한다.
그의 탄소세에 대한 반박논리는 이렇다. 우선 탄소가격제도가 역진적이다? 이는 배당제도(A fee-and-dividend method)로 해결가능하다. 캐나다의 좋은 사례가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냥 탄소세를 과세하고 끝나면 프랑스 노란조끼운동같은 반발을 초래하는, 정의롭지 못한 전환이 될 수 있다.
둘째, 탄소가격제가 탄소배출기업들을 면책시켜준다? 탄소가격을 지불했다고 해서 화석연료기업들의 법적 책무가 면책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업이 탄소세를 지불하는 것은 원래 지불해야 할 계산가능한 범위내의 사회적 최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일 뿐, 탄소배출로 인한 다른 사회적 문제점이 불거지면 여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째, 탄소가격제가 효과가 없다? 효과 여부는 가격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호주의 사례등 효과가 있었던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역설적으로 이는 소비자의 행동에 유의미한 효과가 미칠 수준까지 충분한 규모의 탄소세가 부과되지 않으면 면피용이 될 수 있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연히 탄소세라는 시장기제 하나만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기제의 이용을 배제하고서 탄소배출을 빠르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적어도 시장경제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면. 시장을 경제의 중심 메커니즘으로 인정하면서도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나는 그의 다음과 같은 표현이 맘에 든다. "탄소세는 기후행동을 위한 도구상자 안에 있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포괄적인 기후위기 대책들과 결합되어서 실행되어야 한다"
(3)
탄소세 논쟁에서 더 나아가, 그는 코르테스 의원의 그린뉴딜 결의안이 지나치게 많은 사회개혁까지 담고 있어 중도층에게 호소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비평하기도 한다. 또한 나오미 클라인처럼 기후위기와 불평등, 차별, 심지어 자본주의 문제점까지 엮어서 기후위기운동이 반자본주의적으로 보이는 것에도 마이클 만은 비판적이다(물론 나는 이 대목에서 마이클 만의 의견에 반대한다).
자연과학자로서, 기후위기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숱하게 공격받은 경험에서 나온 그의 태도라고 나는 옹호해주고 싶기는 하다. 물론 그가 일정하게 온건한 스텐스를 가지는 이유는 이해가 된다. 그는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우리편을 최대한 넓혀서 정치적으로 기후위기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너무 적을 많이 만드는 포지션은 기후위기 대처에 도움이 안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어설픈 타협책으로는 기후위기 해결이 안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정확한 포지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
때문에 온건하지만, 흐리멍텅하지는 절대 않는 진보주의로서 면모는, 그가 '해법일수 없는 해법'에 대해 논박하는데서 드러난다. 그는 가스발전과 같은 '브릿지 연료', CCUS, 각종 지구공학해법, 심지어 나무심기에 대한 과도한 의존, 핵발전, 더 나아가 '적응(adaptation)과 회복(resilience)'라는 이름아래, 공격적인 탈-탄소전환 행동을 지연시키는 모든 행동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날을 세운다. 이 대목에서 정말 빌게이츠와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그가 구 기후전쟁(Old Climate War)과 대비되는 신 기후전쟁(New Climate)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 과거에는 대놓고 기후위기를 부인하는 기후 부인론자와의 싸움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워낙 기후위기가 명확해서 반대파들이 다른 수법들을 쓴다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기후위기 운동가의 위선을 공격하기, 기후위기 대응을 지연시키기 등이 그 사례란다.
여기에 대한 싸움이 바로 '신기후전쟁'이라고 그가 표현하는 것인데,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망해버렸다고 포기하는 체념주의자(doomsayers)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 중에서 기후위기를 진정 걱정하면서도 이미 인간멸종을 돌이킬 수 없고,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다면서 적극적 행동을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그는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꽤 알려진 <2050년 거주불능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가 바로 그런 유형의 사람중의 하나라면서 그를 상당히 쎄게 비판한다.
(5)
이 책의 압권은 그가 기후위기를 '개인책임'으로 돌리는 문제를 매우매우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는 점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담배회사들, 총기회사들, 음료수 회사들이 정부가 환경규제나 탄소배출 규제를 위한 입법을 방해하기 위해서 주로 써먹던 수법이, '개인적 활동' '개인책임'으로 돌리는 캠페인이었음을 사례를 들어 길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총기판매기업들은 '총기가 무슨 죄냐, 총을 쏜 인간이 죄지' 그러면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기후위기에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개인적 실천은 안하면서 기후위기를 주장하는 자들을 '위선자' 딱지를 씌웠다. 전 미국 대통령 후보이자 기후 운동가 알 고어부통령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그는 플라스틱 안쓰고, 자동차/비행기 안타고, 고기 안먹고 이런식으로 개인적 희생(personal sacrifice)을 강요하는 식으로 기후정의운동을 하면 위험하다고 강력히 권고한다.
담배피는 걸 창피하게 만들어서 금연을 하게 한다고 세계적으로 흡연히 급격히 줄었던 것이 아닌것처럼. 이 대목은 우리도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실천으로 돌리는 경향이 환경운동 등에서 꽤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와 같은 개인적 실천과 (기업의 행동을 바꾸게 만들)제도 변화와 같은 시스템 변화는 둘 다 중요하다면서도, 결정적으로 전자가 후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없는 개인적 실천은 거의 의미가 없다(Personal action means little without systemic change)" 이 대목은 우리나라 기후운동가들이 충분히 숙독해보면 좋겠다.
(6)
마지막으로 학자로서의 그의 결론은 이렇다. 혹자는 코로나19와 달리 기후위기는 백신이 없다고 말하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백신은 '올바른 지식'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실'과 여전히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고 그 막을 방법에 관한 지식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백신을 맞는것과 같다고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덧붙인다면, 투표 잘해서 기후위기 막을 정치인을 뽑자라고 그의 주장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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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으로 340쪽 가량 되니 번역되면 분량이 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기후운동가들은 그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기가 쉽지 않더라도 꼭 한번 보면 좋을 것이다. 정보 자체가 워낙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