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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서평21] 재생에너지 100%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과제, 그리드
"우리는 전기의 바다에서 살아간다"
앞으로 화석연료를 버리는 탈-탄소사회에서는 더욱 더 전기에너지에 의존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로 가면 갈수록 컴퓨터도 하다못해 화폐도 전기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전기의 혁명적 전환없이 디지털 미래는 없다.
인터넷 시스템은 문자 그대로 '네트워크'다. 근거리 망(LAN)과 원거리망(WAN)이 혼합되어 있고, 곳곳에 허브가 있으며, 사이사이에 제법 큰 노드들, 분산된 서버들(라우팅 해주고, 게이트웨이 역할을 해주고, 계산과 정보서비스를 해주고, 저장을 해주는 서버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유선과 무선망이 교차한다. 여기에 연관된 기업과 기관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전력망은 그렇지 않다. 매우 단순하다. 한국을 기준으로 보면 100여개도 안되는 전력생산시스템이 있고, 여기서부터 거대한 송전망이 전국으로 뻗어나온 다음, 특정지역에 오면 각 가정으로 들어가는 배전망이 만들어지고, 최종적으로 전원플러그가 전기소비장치와 연결된다. 아주 단조로운 일방향 시스템이다. 그게 끝이고 중심에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이 달랑 한개 있고, 전력생산부문에 몇개의 회사가 연계되어 있을 뿐이다.
(1)
그런데 여기에 태양광과 풍력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개인적으로 늘 그것이 궁금했다. 절대로 기존 전력망/그리드의 생산부문을 그저 기존 화석연료(또는 원전) 발전을 들어내고 태양과 풍력발전으로 대체하는 것은 절대 아닐텐데, 이 전력망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그레천 바크가 2016년에 쓴 <그리드>라는 책이 이러한 궁금증을 큰 그림으로 풀어준다. 에너지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도전해볼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2)
저자는 20세기의 단조로운 전력망 그리드가 재생에너지가 들어오면서 어떻게 변할지 이렇게 정리한다.
"21세기 처음 10년 동안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은 전력산업현장에서 그저 듣기 좋은 아이디어이자 업계의 비주류일 뿐이었지만, 이 시기가 끝날 때쯤에는 업계의 주류로 등극했다. 단지 가능성에 불과했던 이런 변화가 현실로 실현되는 속도와 규모는 매우 이례적이다."
"재생에너지는 지난 한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절묘한 균형이 깨질 만큼 강력한 충격을 그리드에 가한다" "그리드는 붕괴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절박한 현실이다."
"지금 우리는 가변성 발전과 분산성 발전의 혁명 그 시작점에 와 있다. 전기는 이제 어디서나 만들어지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양이 그 유형과 규모도 다양해 통제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려운 발전기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리드를 바꾸지 않고서는 우리의 에너지 시스템을 개혁할 수 없다."
(3)
저자는 19세기말부터 최근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력망의 변천과정을 통해서 미래를 유추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면 되는데,
내 소감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력을 태양과 풍력이라는 산재되고 변덕스런(?)방식으로 생산하게 되면, 전력생산만 바뀌는게 아니라 모든 것이 바뀐다. 아니 그렇게 재구조화해야 한다.
우선 전력망이 단방향으로 단순히 가지 않고, (나의 상상력으로는) 마치 인터넷 망처럼 지역망과 원거리망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중간중간에 저장장치도 탑재되고, 생산과 소비의 양방향성도 보이는 방식으로 변할 수 있다. 각 요소를 그리드, 마이크로 그리드, 나노 그리드,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이 대목에서 저자는 특히 저장장치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한다. "오늘날의 성배는 전력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저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특별히 차량의 전력망 연동(V2G)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치만 희한하게 수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 심지어는 전력망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소비하는 제품들의 성격도 변한다. 각 제품들이 충전되고 사용되는 방식과 시간들도 전기의 변동성 있는 생산에 맞춰 재조직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산과 수요의 변동성, 분산성을 조율하기 위해 IT기술이 동원된다. 컴퓨터시스템으로 정밀하게 생산과 수요를 조율하는 시스템, 스마트 미터와 수천개의 분산 마이크로센서, 적절한 소프트웨어를 저자는 말미에 언급한다.
즉, 가상발전소와 에너지 클라우드 개념이 동원되면 "이제 그리드에 하나의 심장만 있을 필요는 없다. 100만개 또는 1억개의 심장이 사방으로 흩어져 바람과 태양을 수용하고, 더불어 민첩하고 민감하며 그리도 전체에 걸쳐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력 공급과 소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리드는 단지 기술 시스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리드는 법적 시스템이면서 산업시스템이고, 정치적 시스템이자 문화적 시스템"이라는 의미있는 암시를 던진다.
아마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리드가 기술시스템을 넘어 산업시스템이 되는 이유는 뭔가? 전력의 변덕스런 생산과 소비를 조율하는 것은 컴퓨터 시스템만이 아니다. 전력량은 컴퓨터가 할 수 있지만, 전력량 배분에 수반하는 전력 가격은 누가 하는가? 이는 전력시장이 하게 될 것이다. 시장은 수익이 나지 않으면 작동을 안하니 기술문제가 아니라 산업 문제가 된다.
법적 시스템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그리드 운영과 참여자들의 역할과 한계를 어떻게 재규정할지 제도화되어야 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식이다. 에너지 전환의 진정한 도전이 '그리드'에 있는 것 같아, 숨이 차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앞으로 화석연료를 버리는 탈-탄소사회에서는 더욱 더 전기에너지에 의존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로 가면 갈수록 컴퓨터도 하다못해 화폐도 전기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전기의 혁명적 전환없이 디지털 미래는 없다.
인터넷 시스템은 문자 그대로 '네트워크'다. 근거리 망(LAN)과 원거리망(WAN)이 혼합되어 있고, 곳곳에 허브가 있으며, 사이사이에 제법 큰 노드들, 분산된 서버들(라우팅 해주고, 게이트웨이 역할을 해주고, 계산과 정보서비스를 해주고, 저장을 해주는 서버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유선과 무선망이 교차한다. 여기에 연관된 기업과 기관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전력망은 그렇지 않다. 매우 단순하다. 한국을 기준으로 보면 100여개도 안되는 전력생산시스템이 있고, 여기서부터 거대한 송전망이 전국으로 뻗어나온 다음, 특정지역에 오면 각 가정으로 들어가는 배전망이 만들어지고, 최종적으로 전원플러그가 전기소비장치와 연결된다. 아주 단조로운 일방향 시스템이다. 그게 끝이고 중심에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이 달랑 한개 있고, 전력생산부문에 몇개의 회사가 연계되어 있을 뿐이다.
(1)
그런데 여기에 태양광과 풍력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개인적으로 늘 그것이 궁금했다. 절대로 기존 전력망/그리드의 생산부문을 그저 기존 화석연료(또는 원전) 발전을 들어내고 태양과 풍력발전으로 대체하는 것은 절대 아닐텐데, 이 전력망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그레천 바크가 2016년에 쓴 <그리드>라는 책이 이러한 궁금증을 큰 그림으로 풀어준다. 에너지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도전해볼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2)
저자는 20세기의 단조로운 전력망 그리드가 재생에너지가 들어오면서 어떻게 변할지 이렇게 정리한다.
"21세기 처음 10년 동안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은 전력산업현장에서 그저 듣기 좋은 아이디어이자 업계의 비주류일 뿐이었지만, 이 시기가 끝날 때쯤에는 업계의 주류로 등극했다. 단지 가능성에 불과했던 이런 변화가 현실로 실현되는 속도와 규모는 매우 이례적이다."
"재생에너지는 지난 한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절묘한 균형이 깨질 만큼 강력한 충격을 그리드에 가한다" "그리드는 붕괴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절박한 현실이다."
"지금 우리는 가변성 발전과 분산성 발전의 혁명 그 시작점에 와 있다. 전기는 이제 어디서나 만들어지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양이 그 유형과 규모도 다양해 통제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려운 발전기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리드를 바꾸지 않고서는 우리의 에너지 시스템을 개혁할 수 없다."
(3)
저자는 19세기말부터 최근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력망의 변천과정을 통해서 미래를 유추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면 되는데,
내 소감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력을 태양과 풍력이라는 산재되고 변덕스런(?)방식으로 생산하게 되면, 전력생산만 바뀌는게 아니라 모든 것이 바뀐다. 아니 그렇게 재구조화해야 한다.
우선 전력망이 단방향으로 단순히 가지 않고, (나의 상상력으로는) 마치 인터넷 망처럼 지역망과 원거리망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중간중간에 저장장치도 탑재되고, 생산과 소비의 양방향성도 보이는 방식으로 변할 수 있다. 각 요소를 그리드, 마이크로 그리드, 나노 그리드,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이 대목에서 저자는 특히 저장장치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한다. "오늘날의 성배는 전력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저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특별히 차량의 전력망 연동(V2G)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치만 희한하게 수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 심지어는 전력망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소비하는 제품들의 성격도 변한다. 각 제품들이 충전되고 사용되는 방식과 시간들도 전기의 변동성 있는 생산에 맞춰 재조직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산과 수요의 변동성, 분산성을 조율하기 위해 IT기술이 동원된다. 컴퓨터시스템으로 정밀하게 생산과 수요를 조율하는 시스템, 스마트 미터와 수천개의 분산 마이크로센서, 적절한 소프트웨어를 저자는 말미에 언급한다.
즉, 가상발전소와 에너지 클라우드 개념이 동원되면 "이제 그리드에 하나의 심장만 있을 필요는 없다. 100만개 또는 1억개의 심장이 사방으로 흩어져 바람과 태양을 수용하고, 더불어 민첩하고 민감하며 그리도 전체에 걸쳐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력 공급과 소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리드는 단지 기술 시스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리드는 법적 시스템이면서 산업시스템이고, 정치적 시스템이자 문화적 시스템"이라는 의미있는 암시를 던진다.
아마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리드가 기술시스템을 넘어 산업시스템이 되는 이유는 뭔가? 전력의 변덕스런 생산과 소비를 조율하는 것은 컴퓨터 시스템만이 아니다. 전력량은 컴퓨터가 할 수 있지만, 전력량 배분에 수반하는 전력 가격은 누가 하는가? 이는 전력시장이 하게 될 것이다. 시장은 수익이 나지 않으면 작동을 안하니 기술문제가 아니라 산업 문제가 된다.
법적 시스템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그리드 운영과 참여자들의 역할과 한계를 어떻게 재규정할지 제도화되어야 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식이다. 에너지 전환의 진정한 도전이 '그리드'에 있는 것 같아, 숨이 차면서도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