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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경제] 낡은 GDP성장 대신할 새 국가목표
'성장주의 경쟁' 없는 대선을 보고 싶다
- 입력 2021.05.18 11:00 조회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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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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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 성장담론이 여전히 건재할 것인가?
성장이 돌아오고 있다! 당초 3.2%로 예상했던 올해 경제성장률이 3%대 후반~4%대 초반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한국경제가 코로나19재난에서 벗어나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회복이 되고 있다면서 정부의 실적 홍보에 나서는 모양새다. 코로나19시대에는 경기회복조차 극히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K자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음에도, 여전히 정부는 성장률 회복이 곧 시민들 삶의 회복인 것처럼 간주하는 양상이다.
심지어 대선국면에서도 성장이 다시 소환될 것 같다. 집권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5월 12일, 지지모임인 ‘민주평화광장’ 정책토크쇼에 참여해서, 최근 성장률이 거의 제로 수준에 멈춘 탓에 “기회의 총량은 늘어나지 않다 보니까 기성세대들이 비켜주지 않는 한 새로운 세대들은 기회를 갖기 어려운 암담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저출생, 청년, 온갖 세대 갈등 등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이 문제의 원천이 저성장에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 대목만 보면 성장을 끌어올려 기회의 총량을 확대해야 청년들을 포함한 중대 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성장주의 관점을 다시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연장선에서 이재명 지사에 대한 의원들의 지지모임 ‘(가칭)대한민국 성장과 공정’ 포럼의 이름도 해석될 수도 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GDP 성장
그러면 10개월 정도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통령선거에서 다시금 치열한 ‘경제성장 공약’ 경쟁이 부각될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으례 대통령 선거때마다 재연되었던 GDP 성장 공약의 부활 말고, 코로나19재난까지 겪은 마당에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정책 제시와 대안경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잘 알려진 것처럼 GDP 창안자의 한 사람인 사이먼 쿠츠네츠(Simon Kuznets) 자신은, 막상 GDP로부터는 국가복지를 거의 유추해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GDP가 원래는 2차대전이라는 전쟁국면에서 한 국가의 전시생산 능력을 보자는 것이었지, 평화적인 시기에 국민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줄지 알려주는 지표가 아니었던 탓이다. 경제학자 제임스 보이스(James Boyce)도 GDP성장에는 복지를 증진해주는 유익한 생산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지만, 부모들의 아이돌봄과 같은 또 다른 유익한 복지는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공해와 같은 해로운 것이나 사치품과 같은 쓸데없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GDP규모가 복지를 말해주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다.
특히 지금 GDP지표가 문제인 것은, GDP가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크고 중요한 난제인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다루는 데 매우 무력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우선 GDP는 불평등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 한때는 ‘쿠츠네츠 불평등 곡선’이라고 불렸던 경향, 즉, 경제발전 초기에는 불평등이 악화되지만 이후 경제성장이 중진국을 넘어 더욱 이뤄지면서 불평등이 해소되는 경향이 있다는 가설을 가지고 경제성장과 불평등을 설명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런 가설은 기껏해야 1960년대까지의 서구 상황에만 비슷하게 들어맞았던 얘기라는 것이 판명났다. 잘 알려진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주요 선진국에서 예외없이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다시 악화되어온 추이를 보여줌으로써, 경제성장 수준 그 자체가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는 가정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GDP성장이 말해주는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은 쿠츠네츠 불평등 커브를 응용해서 1970년대 이후 ‘쿠츠네츠 환경 커브’라는 것을 만들었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고도성장을 위해 환경악화를 감수하게 되지만, 경제성장이 일정 단계 이후를 넘어가면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 지금 현실을 보더라도 전 세계가 더 높은 성장을 추구하면서 기후위기라는 초유의 글로벌 위기를 맞게 되었지만, 이후 성장의 추이가 기후위기를 해소시켜줄 것이라는 어떤 암시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이슨 히켈(Jason Hickel)같은 탈-성장을 주장하는 일군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경제정책의 목표를 GDP 성장률에만 두는 ‘성장주의(growthism)’ 중독 때문에 기후위기가 악화되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국민삶을 위한 새로운 목표가 제시되어야
21세기는 더 이상 GDP성장이 정부가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추구해야 할 성배도 아니고, 성장률을 올린다고 고용이 그만큼 따라오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로 심지어 친기업적인 다보스 포럼 창시사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도 ‘GDP성장목표’에 집착하지 말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변화된 분위기 탓인지 그 동안 “달리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서 소극적이었던 관계자들도, “이제 더 이상에 GDP만을 고집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돌아서는 것 같다. 정부 통계개발원의 박영실 SDG데이터연구센터장은 GDP를 보완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표를 만들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다.
“국내총생산(GDP) 경제 통계의 한계가 많습니다. GDP가 높다고 해서 삶의 질이 항상 높은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GDP 통계가 보여줄 수 없는 코로나19 불평등, 기후위기 등 사회·환경 통계가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한 한국은행 통계국도 지난 4월 22일, ‘삶의 질 관련 우리나라 국민계정통계 개선 방안 도출’에 관한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내면서, 삶의 질 지표를 국민계정의 보조계정인 ‘위성계정(satellite account)’ 형태로 새로 산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다. 기존 삶의 질을 더 오롯이 반영하기 위해 국민계정 통계를 손질하는 방안도 병행한다고 알려졌다(한국경제 2021년 4월 22일자). 모두 긍정적인 움직임이며,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볼만 하다.
새로운 국가지표는 이미 실천되고 있다야
우리는 이제 연구개발을 시작한 단계이지만 이미 아이슬란드나 뉴질랜드의 경우 국가 예산편성의 기준으로 2018년부터 GDP가 아니라 복수의 목표를 기준으로 삼은 ‘웰빙 예산제’ 등 실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웰빙의 ’지속성‘을 측정하는 네 가지 지표로서 자연자본-인적자본-사회자본-금융 및 물적자본을 제시했다. 그리고 ’당면‘의 웰빙지표로서 12개 지표를 제시하고 이를 예산 편성의 기준으로 잡고 있단다. 만약 우리가 위기와 불평등 해결을 국가목표의 최상위에 놓는다면, 뉴질랜드와 같이 자연자본-인적자본-사회자본-물질자본(GDP)이라는 네 가지 차원의 복합적인 목표를 내걸고 국가발전과 국민복지를 추구하는 것을 충분히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2년 대선은 누가 뭐래도 기후위기와 불평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단지 구호 상으로만 ’지속가능 성장‘, ’포용적 성장‘이라는 용어를 반복하는데 그치면 안된다. 실제로 지속 가능성이 핵심지표로 측정되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포용성이 가장 중요한 목표와 측정 가능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정부 성과가 그 기준에 따라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대선은 누가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대선 공약을 내놓을지 특별히 주목해보자.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