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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평등 해결 방안을 갖고 있다
We Have the Tools to Reverse the Rise in Inequality
- 입력 2022.08.03 20:42 조회 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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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ivier Blanchard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경제학 교수이며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PIIE)의 선임연구위원이다.
- Dani Rodrik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사회과학연구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가 제정한 앨버트 허시먼(Albert Hirschman) 상의 첫 번째 수상자이다. 저서로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자본주의 새판짜기>, <그래도 경제학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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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Have the Tools to Reverse the Rise in Inequality*
우리는 불평등 문제 해결 방안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불평등 문제 해결 방안을 갖고 있다
* 이글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불평등을 주제로 2019년에 개최한 컨퍼런스의 내용을 블량샤(Olivier Blanchard) 와 로드릭(Dani Rodrik)이 정리 소개한 글이다. 또한 이 컨퍼런스의 내용은 <Combating Inequality: Rethinking Policies to Reduce Inequality in Advanced Economies>
Reflections on the conference on Combating Inequality: Rethinking Policies to Reduce Inequality in Advanced Economies,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October 17–18, 2019.
©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November 20, 2019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어, 주요한 도덕적·사회적·정치적 과제로 부상했으며 정책담당자들의 대응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 신기술, 제도적 변화의 상호 작용은 선진국 경제에 강한 원심효과를 일으켰다. 기존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새로운 격차도 발생했다. 이러한 변화를 이용할 수 있는 자산, 기술, 재능, 그리고 (때로는) 정치적 인맥을 가진 집단은 창출된 경제적 기회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동일한 내재적 추세가 그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고용 전망을 악화시키고 소득을 억제시키며 경제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2019년 10월 이러한 현실 증거에 대한 대응으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불평등에 관한 대규모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컨퍼런스의 주제는 불평등과 싸우기 위해 정책담당자들이 이미 가지고 있거나 혹은 채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이 컨퍼런스는 분배 양상의 변화를 통계적으로 검토하는 루카스 챈슬(Lucas Chancel)의 주장으로 시작했다. 이 컨퍼런스에서 중요하다고 느낀 핵심 사항은 이렇다. 서유럽과 미국에서 수십 년간 감소세를 보였던, 가장 부유한 1%의 소득 점유율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8% 안팎이던 것이 오늘날 각각 11%, 20%로 증가했다. 1980년 하위 50%의 소득점유율은 두 지역 모두 20%에 그쳤다. 이후 30년 반 동안 이 수치는 미국에서 12.5%, 유럽에서 18%로 떨어졌다.
세계화와 기술발전에서 미국과 유럽이 대체로 비슷한 추세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불평등은 상위 1%의 재산 점유율이 1970년대 후반 25%에서 오늘날 40% 내외로 매우 급격한 상승을 보였다. 또한, 미국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 증가는 사회적 이동성과 관련된 주요 지표의 감소와 함께 나타났다. 미국에서 부모보다 더 많이 버는 자녀들의 비율은 1940년대에 90%였지만, 오늘날엔 약 50%로 떨어졌다(부분적으로는 잠재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원인도 하다). 긍정적인 측면은 성별과 인종별 불평등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는 것이다(그러나 여전히 높다).
챈슬(Chancel)이 지적했듯이, 이러한 격차는 각 나라가 세계적 경제력과 기술력이 부와 소득의 분배에 상이하게 영향을 미치도록 취급했기 때문이다. 소득과 부의 격차 폭은 보다 누진적인 조세체계, 강력한 노동 시장 제도(노조와 최저임금법 등),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및 보건 서비스 제공, 대규모 사회적 이전 등을 시행하는 국가일수록 더욱 적었다.
일부 수치들은 충격적이지만 최상위 소득분배율과 전통적인 불평등 측정치만으로는 선진국 내에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 격차의 전말을 설명할 수 없다. 지리적, 문화적 격차가, 소도시, 농촌, 외곽도시를 한편으로 그리고 대도시와 수도권을 다른 편으로 해서 이 둘 사이에서 크게 발생했다. 이러한 격차는 경제적 기회와 문화적 지향에서의 견해 차이를 드러냈으며. 사회적 보수주의 대 사회적 자유주의의 견해 차이는 서로를 강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신뢰 감소, 사회적 불만, 극우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 대부분 (전적으로는 아니고) 지리적 경계를 따라 형성된 이러한 사회적 양극화는 상위 소득 점유율이 크게 오르지 않은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과연 기존의 방법으로 고칠 수 있을까? 이 컨퍼런스는 그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래에 제시되는 발표와 토론은 다양한 방식의 치료법에 초점을 맞췄다. 답변에 대해 일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다. 일부 제안들, 특히 부유세(wealth taxes)는 의미심장하고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이 컨퍼런스는 다양한 방안들을 포괄하며, 불평등에 대한 다방면의 공격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의견 수렴이 이뤄졌다.
증가하는 컨센서스
중요한 것은, 불평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간혹 암묵적이긴 해도) 광범위한 동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몇 년 전이었다면 상당한 논쟁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를 거론하자면, 컨퍼런스에서 불평등이 중요한 정책적 관심을 필요로 하는 1차적 문제라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불평등을 연구하는 연구원들과 정책입안자들을 초대하면,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평등이 시급한 사안이며 정치가의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크게 느꼈다.)
정책은 빈곤 퇴치를 넘어서는데 더 큰 무게를 둬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공정성과 효율성 사이의 절충(equity-efficiency tradeoff, 즉 소득 평등과 경제적 성과 사이의 절충)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어쨌든, 대부분의 발표에서 암묵적인 가정은 불평등이 경제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경제적 기회를 줄이고 매우 부유한 계층의 독점적 지대를 육성(또는 반영)함으로써 말이다.
아무도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거나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삭감함으로써 시장세력의 고삐를 더 자유롭게 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논의 과정에서 이런 제안들은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그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10년 전에 우리 컨퍼런스가 열렸더라면, 참가자들은 아마도 소득분위 하위 계층의 소득이 더욱 악화되는 원인으로 정부의 개입, 노동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의 약화, 경직된 노동 시장을 지적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도 사회보장 프로그램 확대에 대해 "우리가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까(Can we pay for it)?"라고 묻지 않았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세금이 인상되어야 한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있었다. 여기서 유일한 논쟁은 누진성이 세수 확보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아니면 지출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일부는 징수하기 쉬운 부가가치세(VAT)와 같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세금을 통해 소득분배의 하위 및 중간 계층을 위한 공공지출에 자금을 대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부유세와 더 누진적인 소득세를 최상층에 부과하여 불평등을 바로잡기를 선호한다. 결국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둘 모두를 부분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이 컨퍼런스가 밝힌 사실은, 우리가 불평등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과 정부의 개입을 제거하거나 경제 성장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생각에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정책보다, 우리는 정부가 생활수준의 격차를 줄이는데 좀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들의 대화는 정말로 바뀌었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우리의 컨퍼런스는 매우 광범위하게 불평등과 싸우기 위한 정책들을 다루었다.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면 그 정책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째, 정책은 그들이 어떤 경제적 단계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세 가지 유형의 정책을 중심으로 컨퍼런스 패널을 구성했으며 그 정책들은 이 세 가지 차원에 따라 달라지는데 표 1에서 생산 이전, 생산 단계, 생산 이후라는 열의 제목으로 표시되어 있다.
표 1 불평등 정책 분류 | ||||
경제의 어느 단계에서 정책이 개입하는가? | ||||
생산 이전 | 생산 단계 | 생산 이후 | ||
어떤 계층의 불평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나? | 하층 | 자금지원 정책(건강관리, 교육), 보편적 기본소득, 시민평생소득 | 최저임금, 일자리보장제 | 사회적 이전(예: 근로장려세제, EITC), 완전고용 거시경제정책 |
중산층 |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지출 | "좋은 일자리" 정책, 노동자 발언권 강화를 위한 노동법 개정, 노동자기업소유, 부문별 임금 위원회, 단체교섭, 혁신 정책 | 사회안전망, 사회보험제도 | |
상속세, 재산세 | 규제, 독점금지법 | 부유세 | ||
상층 | ||||
일부 정책은 생산 이전 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해당하는 정책들은 교육, 건강, 그리고 금융 접근성과 같이 사람들의 노동력 형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데이비드 데밍(David Deming), 로렌스 캣츠(Lawrence Katz), 타르만 샨무가라남(Tharman Shanmugaratnam),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에마누엘 사에즈(Emmanuel Saez) 등이 이러한 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일부 정책은 생산 단계에서 직접 개입한다. 생산의 구성과 조직에 영향을 줌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정책은 고용, 투자, 혁신 결정에서 상대적 가격과 인센티브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생산물의 분배에 대한 이견을 가진 사람들(노동자, 주주, 관리자, 공급자)의 협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정책 예로는 최저임금, 무역 협정, 투자 및 연구개발 보조금, 사업장별 정책, 기타 유형의 "산업 정책" 등이 있다. 데이비드 아우토어(David Autor), 크리스티안 더스트만(Christian Dustmann), 캐롤라인 프룬트(Caroline Freund), 다론 에스모글루(Daron Acemoglu),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 로라 타이슨(Laura Tyson), 마리안 베르트랑(Marianne Bertrand), 산드라 블랙(Sandra Black), 리차드 프리먼(Richard Freeman), 윌리엄 다리티 주니어(William Darity Jr.), 데이비드 엘우드(David Ellwood), 하이디 시어홀츠(Heidi Shierholz)이 이런 종류의 정책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일부 정책은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는 생산 이후 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누진적 소득세, 부유세, 마이너스 소득세(미국 근로장려세제, EITC), 푸드 스탬프 등의 소득지원 정책이 이 범주에 속한다. 제이슨 퍼먼(Jason Furman), 힐러리 호인스(Hilary Hoynes), 제시 로스테인(Jesse Rothstein), 워이첵 카프척(Wojciech Kopczuk), 스테파니 스탄체바(Stefanie Stantcheva), 가브리엘 저크먼(Gabriel Zucman)이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는 다른 차원의 두 번째 정책들은 그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소득 분배의 대상이다. 여기에서 선택할 사항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어떤 계층의 불평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나? 일부 정책은 소득 분포의 하층을 대상으로 한다. 빈곤 감소 정책이 이런 유형의 정책의 핵심 사례다. 다른 이들은 중간계급을 지원하기 위해 중산층의 소득을 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상층의 소득을 낮추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세 가지 유형의 정책은 표1에서 하층, 중산층, 상층의 행으로 표시된다.
두 차원을 결합하면 제시할 수 있는 9가지 정책 세트를 포함하는 3×3 매트릭스가 생성된다. 불평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위 표에서 어느 칸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경제학은 여기서 약간의 지침을 제공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제 분석은 적어도 암묵적으로라도 가치와 규범적 판단(또는 정치철학)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견해와도 결합되어야 한다.
철학과 정치
정치철학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컨퍼런스에서 정의를 다루는 첫 번째 토론에는 세 명의 학자들(Danielle Allen, Thomas Scanlon, and Philippe van Parijs)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들은 우리가 불평등에 대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평등이 왜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불평등을 줄여야 하는 이유가 불평등으로 인해 나쁜 결과가 생기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서 나쁘기 때문인가? 그 자체로서 나쁜 불평등이 있다면, 나쁜 불평등과 나쁘지 않은 불평등을 구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표 1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면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스캔런(Scanlon)이 강조하듯이, 단지 가난한 사람의 소득 증가를 넘어 평등(equity)을 장려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불평등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의 부정적인 결과나 그것을 발생시키는 제도의 부당성(unjustifiability of the institutions) 때문이기도 하다. 후자의 경우, 즉 심각한 불평등이 불공정한 제도로 인한 것이라면, 경제 성장이라는 경제적 결과와 상관없이 상위 1%에 세금을 부과하고 싶을 것이다. 불공정한 제도 때문이 아니라면, 그러한 세금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자금 지원을 위해 세수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스캔론 및 판 파리지스(Scanlon and van Parijs) 모두가 지지하는 롤스적(Rawlsian) 관점에 따르면, 불평등이 증가하면 우리가 반드시 극빈곤층의 복지를 개선하도록 요구하도록 만들 것이다. 알렌(Allen)이 지지하는 것처럼 정치적 평등을 강조하면, 서로 다른 집단들이 벌이는 경쟁 영역의 기울기를 평탄화하고 (노동시장, 기업지배구조, 규제 등에서) 동등하게 규칙 제정에 접근할 기회를 보장하는 시장을 위해, 급진적인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달성하는가를 이해하는 것 또한 정치경제에 대한 관점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불평등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는 데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치학자(Ben Ansell, Sheri Berman, and Nolan McCarty)가 우리 두 번째 토론에 패널로 참석해 발표한 내용은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적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일부 국가는 다른 국가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현 정책과 제도적 합의는 지배적인 특정 이익집단의 힘을 반영하고 또 그 힘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정책 아이디어를 거부하거나 와해시키지 못하도록 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보다 평등한 균형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암묵적인 변화 이론(implicit theory of change)은 무엇인가? 정책이 불평등의 가장 나쁜 증상 해결을 목표로 한다면 충분한가? 아니면 정치체제의 근본원인에 대처하는 보다 포괄적인 정비가 필요한가? 그리고 후자라면 표1에 제시된 구체적인 일련의 정책들과 정치체제 운영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보다 효과적이고 실현 가능한 전략은 무엇인가? (Saez and Zucman의 주장처럼)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부의 축적을 막거나, 아니면 승자독식과 슈퍼스타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기업 지배구조, 독점 금지, 노동 시장의 개혁(서머스가 지적한 것)이 필요한가?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선거권을 박탈당해서 그들이 영향받을 경제 정책 결정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경제 상황을 충분히 개선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투표를 쉽게 하거나 선거 자금을 제한하는 등 정치 제도의 변화도 고려해야 하는가? 우리의 컨퍼런스가 정치 개혁 방안들을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이 토론회가 제시하는 함축적 의미 하나는 정치와 경제의 균형을 좀 더 평등한(equitable) 방향으로 전환하려면 우리는 당연히 그것들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이다.
긴급성, 목표, 및 증거
또 다른 질문은 목표의 범위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타당한 증거가 있는 정책만 추구하는가, 아니면 더 과감하게 실험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가? 우리는 정책의 점진적인 진화를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보다 전면적인 혁명을 추구하고 있는가? 이것은 적어도 경제적 성향만큼이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데이비드 데밍(David Deming)은 발표에서 우리에게 "보수주의자"가 되라고 촉구했는데, 그 말은 타당한 증거가 있는 개혁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사례를 통해, 대학 진학률 증가가 높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경험적 발견을 언급하고 있었다.) 물론 정책은 언제나 증거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매우 타당한 증거의 문턱은 또한 우리를 제한해 기존 정책을 조금만 변경하도록 만든다. 타당한 증거는 필연적으로 이미 실행한 정책에서만 나올 수 있다. 혁신적인 정책은 본질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뉴딜(New Deal)을 추진하는 동안 "대담하고 지속적인 실험(bold, persistent experimentation)"을 요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은 당시로선 혁명적인 아이디어였고, 이를 처음 생각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조차 루즈벨트의 보다 구조적인 정책—예를 들어 1933년 국가산업회복법(NIRA)을 통해 노조를 강화하고 교섭력을 높이는 것, 또는 대규모 기업규제를 도입(이후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이라고 선언된 조치)하는 것—이 "몰상식적이고 괴상하다(crack-brained and queer)"고 여겼다(1933년 말 그가 루즈벨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썼듯이). 이 새로운 법들이 어떻게 작동될지에 대한 선험적 증거는 거의 없었다. 뉴딜정책이 '증거 기반(evidence-based)' 테스트의 대상이었다면, 아마도 그 중에서 실행된 정책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아니지만, 많은 정책들은 결국 현대 경제에서 일상적인 요소들이 되었고 자본주의를 그 난폭함으로부터 구해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책이 어느 정도로 실험적이어야 하는지는 표1의 가운데 칸 즉 생산 단계 그리고 중산층에 해당하는 정책들의 경우 특히 더 민감한 문제가 된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키는 요인들에 대한 문헌을 보면 좋은 일자리의 부족과 그에 수반되는 경제적 불안이 극우파가 부상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몇몇 학자들이 강조했듯이, 적절한 경제 대응은 기술 변화의 방향과 기업의 고용 관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을 필요로 할 것이다. 잠재적 치료법들 중 많은 것들이 검증되지 않았고 그 효과가 불분명하다. 자본(및 자동화)에 대한 보조금을 없애고 노동력 사용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기 위해 조세체계를 수정해야 한다는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의 제안은 직관적으로 타당하다. 즉 혁신가들과 사용자들은 아마도 가격 인센티브에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가 기술 변화의 방향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것인가? 아니면 로라 타이슨(Laura Tyson)이 요구하듯이 혁신 정책과 일자리 창출 정책을 통합하고 기업과 정부의 협력이 필요한 더 야심찬 정부 프로그램도 필요한가? 후자의 경우, 우리는 다양한 새로운 정책수단과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대부분은 미지의 영역에 있다.
소득분배의 다른 분야를 다루는 정책에서도 유사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EITC와 같은 기존 (그리고 잘 선별된)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실업과 저소득이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아니면 노동법을 보다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것과 연방일자리보장제가 필요한가(윌리엄 대러티 주니어(William Darity Jr.)가 주창하고 있음)? 최상층으로의 부의 집중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미국에서 시행된 적이 없고 심지어 헌법에 불합치할 수도 있는 부유세를 도입해야 하는가(사에즈와 저크먼이 서머스와 벌인 논쟁, Saez and Zucman versus Summers)?
우리가 생각하는 불평등 요인의 뿌리가 깊다면 더욱더 급진적인 수술이 필요해진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우리의 시장경제가 빈곤층과 중산층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기업과 부자들은 너무 많은 권력을 행사하고 게임의 규칙을 결정하는 데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은 만찬 연설에서 기업의 권력이 고통을 줄이는 합리적인 규제를 약화시키고 미국 심장부에 "절망적인 죽음(deaths of despair)"을 재촉한다는 끔찍한 결과를 발표했다.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은 프레젠테이션에서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기술 플랫폼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혁신과 생산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지 설명했다. 데이비드 아우토(David Autor)의 프레젠테이션은 미국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허용한 협정 조건은 많은 지역 노동 시장에서 노동자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중국의 가입이 수출 부문의 미국 노동자와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은 중위 임금이 정체된 주요 원인으로 노동조합의 쇠퇴와 국내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소수의 기업의 "수요독점력(monopsony power)"을 언급했다. 고용주의 수요자 독점력은 실제로 토론 발제에서 반복되는 주제였다.
모든 안정된 사회질서는 내재적인 사회계약을 반영한다. 피터 다이아몬드(Peter Diamond)가 챈슬(Chancel)의 논문을 코멘트하면서 밝혔듯이, "기업이 유한 책임을 갖는 것은 정부가 그것을 그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법인격(legal personhood)이라는 특권을 갖는다는 것은 즉,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사회와의 거래다. 과거 군주는 자신과 측근들의 금고를 채우기 위해 기업에게 면허를 부여했다. 아마도 오늘날엔 그 목표가 더 클 것이며, 사회복지를 요구할 것이다. 사회계약(이 용어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이 어떻게 약화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 토론회 이후 크게 부각되었다.
가야 할 길
우리는 논의를 통해 많은 정책 제안들을 도출했고 표1에 빈 칸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다양한 입장을 가질 수도 있고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을 수도 있다(We either are all over the map or have a lot of good ideas)! 우리는 후자라고 믿는다. 이 컨퍼런스는 불평등과 싸우기 위한 아이디어와 정책수단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구체적인 제안도 그 일을 저절로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작용할 수 있는 여분의 정책들 또한 갖고 있다. 그리고 EITC 유형의 프로그램 확대, 유치원 및 제3차 교육을 위한 공적 지원 증가, 고용 친화적 혁신을 위한 보조금 재조정, 전반적으로 누진성을 높이는 조세체계, 그리고 새로운 생산 양식(new production modes)을 접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재조직할 수 있는 정책 등 많은 분야에서 손쉽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번 컨퍼런스는 경제학자들이 습관적인 반대론자들("그럴 형편이 안 된다" "증거가 충분치 않다" "인기가 왜곡될 것" 등)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정책 개혁의 선봉에 서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우리 둘(블량샤와 로드릭) 모두는 경제전문가들의 불평등 해결 능력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채로 이 컨퍼런스를 마무리했다.
올리버 블랑샤(Olivier Blanchard)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텐 선임연구원이다.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하버드 대학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의 포드 재단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