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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경제] 영끌, 빚투를 오히려 부추기는 정부
부동산 투기하느니 차라리 주식투자가 낫다고?
- 입력 2021.01.19 11:00 조회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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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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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의 주식투자 열풍
새해 벽두부터 치솟기 시작한 주가는 1월 6일 코스피가 3천을 돌파하면서 드디어 거품 논란에 휩싸였다. 작년부터 동학개미, 서학개미 등으로 지칭되는 개인투자자들이 새해에도 여전히 공격적인 주식투자 대열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개인이 사들인 국내외 주식 규모가 지난 1년 동안 해외주식 약 30조를 포함해서 100조원이 넘었다고 한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주식투자인구가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준인 29퍼센트까지 올라갔다.(그림1 참조) 코로나19 국면에서 불과 1년 만에 추가로 10퍼센트 정도가 주식투자 대열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개인투자자의 규모가 대략 1,300만 명 이상이다. 공식적으로 주식투자자 인구를 집계하던 2013년까지 500만 명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폭발적 증가다. 역사상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주식투자대열에 뛰어든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림1. 주식투자 응답자의 비중 변화 (출처 : 갤럽 여론조사)
같은 조사에 따르면 가장 유리한 재테크 방법으로 41퍼센트가 여전히 부동산을 꼽았지만, 1/4에 해당하는 25퍼센트가 주식을 꼽을 정도로 주식투자 역시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자금 동원 능력이 있는 30대 남성이 43퍼센트, 40대 남성과 여성이 각각 38퍼센트, 39퍼센트로 평균을 훌쩍 넘어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재테크로 12퍼센트나 은행적금이라고 대답한 것이 신기할 정도다.
영끌, 빚투는 그저 상징적 표현만은 아니다
경제가 마이너스 추락할 정도로 나쁜 상황에서 어디서 그 많은 자금을 동원했을까? 요즘처럼 불평등이 심해지면 경기가 나쁘더라도 소득 상위층엔 소비여력을 뛰어넘는 여유자금이 몰리기 때문에 자금 동원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을 지목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것이 정말로 갈 곳 없는 자금이 넘쳐난다는 얘기가 아니다. 소유자 없는 돈은 없다. 다만 초저금리와 은행대출 여력이 높아졌다는 얘기고 그래서 대출이 용이하다는 얘기일 뿐이다. 문제는 대출이 쉽다고 정말 대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산시장의 투기수익 가능성이 있어야 실제 대출이 일어난다. 유동성이 넘쳐나서 자산거품이 생겼다는 말은 인과관계가 뒤집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어쨌든 지난 1년 동안 주식투자 수익을 기대하면서 개인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끌어오기 시작한 결과,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지난 1년 동안 100조가 늘었고, 주식투자를 하려고 증권사에서 빌린 신용융자 잔액도 최근 22조까지 불어났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규모가 10조도 안 되었다. 이른바 빚을 내서 투자하는 ‘빚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30세 미만 청년들이 ‘영끌’과 ‘빚투’에 가세하고 있는 추세가 무섭다. 이들의 신용융자 비중은 2.5퍼센트로 얼마 안되지만, 증가율이 무려 전년대비 162.5%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2020년 9월 기준).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경우 주가하락으로 반대매매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깡통계좌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대출 등을 이용한 투자는 개인의 상환능력 및 다른 지출 계획을 고려하여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신중히 결정”하라고 경고 신호를 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투기적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한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같다
부동산 투기열풍에 좌절한 일부에서는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면서 주식투자 광풍을 옹호하기도 한다. 주식투자를 하면 산업으로 자금이 흘러들어서 실물경제를 뒷받침할 것이 아니냐는 게 주요 근거다. 그런데 여기에는 주식투자를 하면 그 금액이 기업으로 간다는 착각이 자리잡고 있다.
새로 공모시장에 진입(IPO)하거나 유상증자를 하는 경우, 즉 발행시장에서는 틀림없이 자금이 기업으로 투입되고, 기업은 이렇게 조성된 투자금으로 실물경제를 확장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주식을 거래하는 순수한 유통시장에서는 단지 주주들의 손바꿈만 일어날 뿐 거대한 주식투자 금액이 전혀 기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주식가격 변동이 심하면 올라간 주식가격을 뒷받침하라는 주주의 요청 때문에 기업이 자신의 자금을 동원해 거꾸로 주식시장에 투입하는 자사주 매입이 일부에서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심각한 실물경제 후퇴기와 대조적으로 주식시장만 나 홀로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주식투자는 실제 기업들의 성과를 기대하면서 배당이익을 기대하는 장기투자라기보다는,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단기투자자들의 잦은 거래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막대한 주식거래와 주가 급등은 기업에게 마냥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실 한국의 주식시장은 코로나19가 있기 이전인 2018~2019년 기간 동안에 실물경제가 약해진 것에 동반해서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실물경제가 더욱 크게 후퇴했으니 당연히 주가가 하락하고 있어야 자연스럽다. 주가가 경기 선행지수라는 특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 경기가 기저효과를 뛰어넘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어디에도 없으니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뚫어야 할 실물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실제 기업의 수익률 대비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가를 보면, 코스피 주가수익률(PER)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31.17로서 전년 동기의 14.27의 두 배에 해당할 뿐 아니라, 지난 15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실물경제에서 주식시장이 상당히 벗어났다는 얘기다. 현재 급등하는 주가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금융시장의 ‘초저금리’밖에 없는데, 주식가격을 예금이자나 채권수익률과만 비교하고 말 일은 아니다.
결국 연초에 한국은행 총재마저 “너무 과속하게 되면 작은 충격에도 흔들릴 수 있다”면서 주식시장 과열을 경고할 정도가 되었다. 이 정도면 부동산 시장보다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리는 것이 더 낫다면서 ‘재산증식 수단’ 운운할 때가 아니다. 차익실현 목적의 투기이고 더욱이 빚을 끌어서 투자하는 레버리지 투자라면 그것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채권이든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부동산투자도 요즘은 ‘부동산 펀드’라는 이름으로 사모펀드 등에서 대규모로 투자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금융의 옷을 입고 투자 상품화되는 추세다. 따라서 부동산이냐 금융이냐의 구분도 현실에서는 거의 무의미하다.
지금 공매도 규제를 풀어야 하는가?
주식투자가 과열되자, 지난해 3월 주가폭락 시기에 일시적으로 중지시켰던 공매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실제로 정부는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주가하락을 염려한 개인투자자들이 극심히 반대하고 있는 모양이고, 일부 전문가들은 주가하락의 동력을 만들어서 과열을 방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공매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실 지금처럼 주식거품이 정신없이 올라갈 때에는 주식시장에서 가격 하락의 힘이 작동하지 않는다. 통상 민스키 모먼트로 알려진 거품의 정점에서 급작스런 반전이 일어나 거품이 꺼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부동산을 포함해서 자산시장이 일반 상품시장과 달리, 스스로의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균형점으로 되돌아가려는 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 때문에 자산시장 상승장 국면에서, 의도적으로 하락할 때 이익을 보는 시장 거래자를 만들자는 것이 공매도(short selling)제도다. 다시 말해서 주식이 떨어질 때 이익을 보게 만들어주는 제도 세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열된 주식거품을 억제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견 합리적이다.
하지만 공매도는 주식거품 이상으로 투기적이다. 공매도는 기대와 달리 주가가 계속 상승할 경우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때문에 한창 주가가 상승세인 시장에서 주가 하락에 배팅을 하는 것은, 실제로 주가를 끌어내릴 만큼 정보와 자금력을 보유한 집단이다. 그래서 공매도를 칠 수 있는 세력은 개인이 아니라 외국인과 기관투자자 등 큰 손들이다.
또한 공매도는 부드러운 하락을 유도하기보다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큰손들이 하락장에 배팅하여 주식이 폭락하면 거대한 수익을 얻지만, 대체로 개미들은 주식폭락으로 깡통계좌를 손에 쥘 가능성이 높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명확히 드러났고, 그래서 당시에도 일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다. 결국 균형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자산시장의 치명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 안에 다른 투기적인 작용을 허용한다는 논리는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공매도 규제를 풀기 이전에 빚을 얻어서 레버리지 투자를 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 불평등을 부추기는 정부
지금 정책적 입장에서 정작 필요한 일은 유동성을 부동산 시장으로 가게 할 것인지, 아니면 증권시장으로 유도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실물시장이 아니라 자산시장 전체에 거품이 커지는 상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과열된 주식시장의 피해를 수많은 소액 개인투자자들이 입지 않도록 예방적 대처를 해야 한다. 끝없이 오르고 있는 주식시장에 자산 증식이 되었다는 만족으로 지금은 환호하지만, 장부가치가 올랐다고 실제 최종 수익을 실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금융시장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대부분 급격한 변동성과 롤러코스트 장세에서는, 정보나 자금력이 약한 개미들이 주식을 살 때보다 파는 시점에서 주가가 떨어진 사례가 많다. 상승장을 보고 개인 투자자들이 정신없이 투자에 뛰어들 때, 외국인이나 기관들은 이를 ‘차익실현’의 호기로 생각해서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시장을 빠져나간다. 결국 상승장 끝에 하락 국면에서 주식을 손에 쥔 것은 대부분 개미들일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빚을 엊어서 투자를 한 경우에 깡통계좌가 속출하는 일이 과거에 드물지 않았다.
이 때 힘있는 부자들은 다시 한번 차익실현으로 부를 손에 쥐지만,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은 자산손실을 입게 되고, 다시 한번 자산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주식투기 열풍이 이미 심화된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 2. 참조)
일부에서는 부동산 시장보다 주식시장이 그나마 재산증식의 기회가 평등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나라 전체 자산의 1/4에 해당하는 25퍼센트를 최상위 부자 1퍼센트가 쥐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윤관석 의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단지 0.36퍼센트가 전체 개인투자자 주식의 절반이 훌쩍 넘는 58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이른바 개미투자자들은 숫자만 많지 전체 주식보유 규모는 일반의 상상보다 훨씬 작다. 한국도 예외없이 부동산 자산보다 금융자산이 압도적으로 불평등하다.
이토록 주식열풍이 최종적으로 자산시장 불평등만 가속시킬 개연성이 높은 상황에서, 현재 코로나로 붕괴된 실물시장과 다르게 왜 자산시장만 거품이 계속되는 것일까? 실물시장과 동떨어져 자산시장만 나 홀로 올라가는 것은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로 시중은행을 통해 자금을 풀었지만, 사적인 수익을 목표로 하는 시중은행들이 자금을 자산시장 쪽으로 풀었던 탓이다. 그 사이 중앙은행은 자산가격 변동이 아니라, 오르지도 않는 실물 소비자가격 목표제만 열심히 붙들고 있었으니 자산가격 폭등은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리스크가 높을수록 폭등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자산거품만 초래하고 실물에 큰 도움이 안되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대신에, 정부가 확대재정을 통해 직접 실물에 타깃팅을 해서 재정지출이나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비로소 실물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해왔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국채매입 등을 통해 정부의 확대재정을 뒷받침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이는 중앙은행의 근본적인 역할전환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2. 문재인 정부의 자산 불평등 심화 추이 (출처 :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금융투기 연구로 이름난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많은 경우 정책 결정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정부 관리들이 경제원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수 개인투자자들이 주식거품에 들떠 있는 상황에 정치가 편승할 때가 아니다. 더욱이 주식을 전혀 하지 않고 노동소득에 기대어 코로나19 재난 속의 일상을 살고 있을 70퍼센트 국민이 주식시장 거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정치가 성찰해볼 때다.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을 오가며 자산거품이 끝없이 커지는 상황이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는 만큼, 언젠가는 춤을 멈춰야 하고 잔치를 끝내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 경제는 다시 한번 큰 변동을 받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