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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경제] 경제규모 팽창 지상주의의 퇴행과 무지

3명의 대선후보 경제정책에 드리워진 이명박 747 공약의 그림자
  • 입력 2022.01.19 14:13      조회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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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경제의 향방을 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저성장의 늪을 헤매던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 전례없는 동시침체에 빠졌다가 겨우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활력은 없다. 실물시장의 약화 속에서 자산시장 거품이 최근 곳곳에서 우려할 수준을 넘고 있다.

코로나19는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시키면서 물가를 밀어올리기 시작했고,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중앙은행들은 오랜 양적완화 기조에서 예상보다 빨리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 한편 점점 더 심화되는 기후위기는 기존 탄소집약적 산업들과 대량소비 중심의 문명 패턴을 바꿔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이 와중에 미래 경제기조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전망하고 판단하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숙제다.

대통령선거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대선 후보들이 속속 발표하는 경제공약 속에는 이들이 숙제를 풀고 있는지 그 단서가 담겨 있다. 그런데 대선후보들이 야심차게 발표하는 우리의 미래경제 비전은 놀랍게도 13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내걸었던 최악의 양적 성장론인 ’747성장론(연간 7%성장–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세계 7위 경제규모)‘과 너무 닮았다. 우리 경제사에서 최후의 양적성장 공약일 것 같았던 이명박 경제정책이, 지금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세 명의 장년 남성후보들의 공약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아직 이렇다 할 경제성장 비전을 제시한 것은 없으니, 가장 먼저 양적성장을 도식화한 안철수 후보의 ’5-5-5공약‘부터 살펴보자. 그는 5개의 초격차 기술을 개발해서 삼성과 같은 기업 5개를 만들면 경제규모 5위로 갈 수 있다고 약속한다. 대선공약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엉성한 얼개라는 점은 일단 무시하자. 그가 말한 5대 기술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차세대 원전(SMR), 수소 에너지산업, 바이오 산업이다. 왜 이렇게 뽑았는지 기준도 없다. 게다가 이차전지 등은 특정 기술제품 분야이고 바이오는 아예 산업 분야여서 서로 차원과 수준이 무원칙하게 섞여 있다.

더 한심한 것은 삼성이 3대에 걸쳐 온갖 정부의 특혜를 받아 쌓은 기업의 포지션을, 정부가 5년 또는 10년 안에 한 개도 아니고 5개를 만든다는 약속이다. 더욱이 삼성이 5개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까지 제치고 세계 5위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우습다.

이재명 후보도 자신만의 ’5-5-5공약‘을 통해 유사한 약속을 한다. 공식적으로는 ’전환적 공정성장‘이라고 딱지를 붙였지만 내용은 ’성장‘이고 전환과 공정은 다른 후보들처럼 그저 수식어에 불과하다. 그 역시 경제력과 국방력 등 하드파워를 앞세우며 ’가슴이 벅차오를‘ 세계 5강의 경제대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그래서 5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자본시장을 활성화시켜 주가지수 5천 포인트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심지어 ’수출 1조달러‘ 시대를 고창하는 것을 보면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수출 100억 달러‘를 연상케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5대 경제강국‘과 같은 양적 경제규모 팽창을 국가 목표로 내거는 퇴행을 개탄하기에 앞서, 이들이 내건 목표가 실현 가능하기나 한지 우선 살펴보자.

현재 한국 경제규모는 1조 8천억 달러 정도로 세계 10위 주변을 맴돈다. 미국 경제규모가 약 23조 달러이고 중국이 17조 달러여서 상당히 오랜 기간 이 두 나라가 1, 2위 자리를 다른 나라에 내줄 가능성은 없다. 여기에 13억 인구대국 인도가 이미 3조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경제규모를 키웠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인도를 추월할 가능성 역시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캐나다와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영국까지 제친 후에 적어도 일본과 독일 가운데 한 나라를 추월해 줘야 5위권에 안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는 저출생으로 인구감소라는, 경제규모 확대에는 결정적인 장애물을 앞에 놓고 있다. 그런데 저출생을 반전시킬 대책도 없이 인구 1억이 넘는 일본이나 인구 8천만이 넘는 독일을 추월하겠다는 공약은 기본적인 산수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헛된 약속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후보들이 우리의 미래 희망을 얘기하는데 굳이 산술적 잣대를 들이대서 비관론을 설파할 필요가 있겠냐고 타박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경제규모가 커지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인가?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여서 국민이 불행하고 4만 달러, 5만 달러면 행복해지나? 우리가 따라가고 싶었던 나라는 얼마전까지 미국, 중국, 인도 같은 경제대국이 아니라, 스웨덴이나 핀란드, 덴마크처럼, 경제규모만 보면 대단치 않지만 복지대국들이 아니었나? 5대 경제대국론은 실현가능성도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잘못된 희망인 것이다.

다시 등장한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이명박의 747공약의 이면에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어온 ‘줄푸세 공약(정부재정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세금은 깎는 공약)’이 있다. 경제를 시장에 맡기자는 시장지상주의다. 이 대목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가장 앞섰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이미 “시장의 거래 비용을 낮춰주는 규제나 안전 관련 규제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하게 해야 한다”면서 그의 경제관을 피력했다. 그는 특히 노동시간이나 최저임금 등 노동시장에서 작동해야 할 아주 기본적인 규칙이나 제도들도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 반복하면서 국민을 경악시켰다. 안철수 후보도 큰 틀에서 이런 궤도 위에 있다.

이 주장의 바탕에는 잘 알려진,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신화가 깔려있다. 그 동안 국가의 역할을 그나마 상대적으로 강조해온 이재명 후보도 ‘실용’으로 선회하면서 여기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월 6일 기업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경제활동은 기본적으로 기업과 시장이 한다. 정부는 토대를 만들어주고 기업이 할 수 없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어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도 지금 혼란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시장과 대결하려”했기 때문이라면서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레토릭을 상기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거듭 강조했던 것처럼, 시장은 국가가 제도로 만든 경제 공간이다. 국가 없는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장에서 참여자들이 자유로이 가격협상을 해서 교환을 하려면, 국가가 각자의 사유재산을 강력히 보호하고, 법정화폐를 제공해서 교환을 도우며 자유로운 계약이 이행되도록 보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장이 우리 경제에서 필수적인 경제공간이므로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주장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동안 ‘작은 정부–규제완화–감세’ 등의 논리에 따라 기업은 시장규율을 어기고 독과점과 갑질 횡포를 일삼아 왔는데도 정부는 시장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던 사례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자산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 거대 금융자본의 시장교란 행위들이나, 노동시장에서 기업들이 자행하는 노동권 유린행위들은 절대로 ‘자율규제’라는 이름으로 방치해서는 안되는 사안들이다. 그런데 시장 자율을 주장하는 후보들이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에서 자신들이 주창하는 ‘공정한 규칙’이 통하도록 만들지 매우 회의적이다.

사회혁신 없는 기술혁신 지상주의 부활

이번 20대 대선 후보들이 내걸고 있는 경제공약의 또 다른 특징은 이들이 ‘기술강국’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의 양적규모 팽창을 전면에 내걸면서 예고되어 있던 것이지만, 이 대목은 이명박보다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닮았다.

기업 마케팅 용어에나 나오는 ‘5대 초격차 기술’을 트레이드 마크로 강조해온 안철수 후보는, 과학기술 대통령을 자처하면서 ‘과학기술중심국가’ 비전을 내세우는가 하면 ‘과학기술 부총리’제도 신설과 과학기술 연구개발비 ‘5%’로 증액을 약속한다.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과학기술 혁신부총리’를 도입하겠다면서 디지털, 에너지기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사실 과학기술 대국론은 5년 전에 ‘4차산업혁명’을 강조하면서 유행했던 디지털 혁신이라는 다소 낡은 비전이다. 문재인 정부역시 ‘디지털혁신’을 국가 역점사업으로 집중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추세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독과점과 갑질, 알고리즘을 과도하게 남발하면서 발생하는 편향과 감시, 그리고 기업의 비용을 사회로 전가하면서 나타나게 되었던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 등 ‘기술의 부정적 측면’을 사회가 어떻게 바로잡을지에 대해서 정부가 주목을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가 갑작스럽게 빨라지면서 디지털 플랫폼기업들의 급격한 팽창은, 한국에서도 쿠팡 물류센터 사고, 카카오의 택시업계 교란, 배달앱의 동네상권 잠식 등 사회적 충돌을 빚어내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들은 이런 대목들은 눈감은 채 ‘과학기술이 만들어줄 환상적 미래’만 홍보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불평등에 신음하고 있는 것은 과연 과학기술이 부족해서일까? 아닐 것이다. 지금도 불행한 우리 삶 주변에 과학기술은 차고 넘친다. 민간시장에서 과학기술의 산업화에 매진하는 동안,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올바는 사회규칙을 만드는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플랫폼경제 민주화 플러스 그린노믹스가 미래다

이처럼 온통 저급하고 구태의연한 5만달러 성장론, 수출 1조달러론, 5대 초격차 기술론 같은 공약들이 유력 대선후보들에게서 차고 넘치고 있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자산시장에 편승해서 노동이 아니라 자산투자를 격려하는 경쟁도 치열하다.

그 와중에 소수정당의 심상정 후보는 ‘그린노믹스’라는 이름으로 전혀 다른 버전의 경제공약을 선보였다. 양적규모 팽창이 아니라 기술과 노동이 공존하고, 시장과 사회가 공존하며, 인간과 지구가 공존하는 그린경제를 비전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명 후보도 ‘에너지전환’을 얘기하고 있고 안철수 후보도 ‘이차전지’ 등에 투자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린도 그저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심상정 후보는 단지 몇몇 유니콘 기업들을 키우자고 녹색산업혁명을 말할 생각이 없다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 기후위기에 안전한 산업을 만들자고 말한다. 또한 산업전환의 과정에서 기간산업의 공공성을 탄탄히 보강하는 한편 새로운 녹색혁신벤처, 녹색사회적경제, 공동체기반 경제를 키우자고 주장하며. 지역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한 산업전환으로 나가자고 제안한다. 공약의 타당성을 떠나서 올바른 논의 공간에 들어온 것 같다. 남은 선거기간 동안 다른 후보들의 경제공약 논쟁도 이런 영역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