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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경제] 누군가에겐 최악, 누군가에겐 최고
? 코로나19 재난 그 이후 "2021년 성장률은 잊어라···K자 회복"
이미 시작된 K자 회복
새해가 되면 늘 그렇듯이 경제성장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더 이상 GDP 성장률에 목매지 말자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는 있지만, 예외 없이 연말, 연초가 되면 새해 성장률이 얼마나 높을지 서로 궁금해한다. 특히 지난해처럼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해 경제가 –1.1퍼센트 역성장하는 등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경기추락을 겪은 뒤라면, 당연히 올해는 얼마나 빠르고 크게 반전될 것인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된다.
지난해 말에 발표한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올해 한국경제는 3.2퍼센트 성장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OECD는 2.8퍼센트로 좀 더 낮춰 잡았는데, 아마도 정부는 재정적 역할과 의지를 더 실었겠지만 그래도 좀 과하게 0.4퍼센트를 더했다. 어쨌든 그래 봐야 2019년(2.0퍼센트 성장)에서 2021년까지 3년 평균은 1.5퍼센트도 안된다. 산업화 이후 일찍이 없었던 추락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그래도 선진국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선방했다고 위안이다. 그런데 평균적인 경제성장률이 선방했던 것 가운데 반도체 시설투자가 2020년부터 크게 늘어난 요인이 컸다. 올해까지도 그 덕을 볼 것이다. 때문에 체감경기에 좀 더 가까운 민간소비는 2020년 –4.4퍼센트나 추락했지만 설비투자에 가려진 측면이 있다.
여기서 GDP 성장률이라는 총계치로 보면 정작 잘 안 보이는 지점이 있다. 작년의 경기침체나 올해 회복 모두 영역별로 편차가 크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 이후의 회복 경로가 V자인지 L자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K자 회복양상이 뚜렷하다. 일부 영역은 코로나19 재난을 비웃으며 성장과 활황을 구가했지만, 다른 영역은 비참하게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2020년부터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해가 되고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해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운명이 갈라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자산가들에게는 2020년이 최고의 해
코로나19 충격으로 전체적으로 경제가 역성장하고 소비지출이 무려 –4.4퍼센트로 크게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부동산 자산가와 금융 자산가들에게는 최고의 해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자산가격 폭등이 있었고 그들 입장에서 호황이었다. 지난해 가장 논란이 많았던 부동산을 먼저 살펴보자.
국민은행 통계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을 보면, 2006년에 24퍼센트가 상승한 이래 10년 넘게 극심한 변동은 없다가 문재인 정부 2년차였던 2018년에 13.56퍼센트가 폭등했고, 다시 지난해 13.06퍼센트가 오르는 등 15년만에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폭등세를 기록했다(아래 그림 참조). 심지어 작년 한 해 동안 세종시는 44.97퍼센트나 오르는 이상폭등 현상까지 발생했다. 그 결과 중위가격 기준으로 서울시 아파트는 코로나19 한폭판이었던 3월에 평당 2,600만원까지 잠깐 추락했지만, 곧 반등해서 반년 남짓한 지난해 10월에는 거의 1천만원 정도 오른 3,500만원까지 급등했다. 서울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 자산가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2017~2019년 기간 동안 적어도 자산불평등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는데 통계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20년도 불평등 폭이 커졌을 것이 확실하다.
그림1. 서울시 아파트가격 증가추이 (출처: 국민은행 부동산 통계)
부동산 자산가들만 최고의 해가 아니었다. 주식자산가들에게도 더할 수 없이 행운의 한 해였다. 한국의 코스피 시장은 코로나 대유행이 한참이었던 3월 19일 시가총액이 1천조 밑으로까지 추락했다. 과연 코로나19 재난은 주가폭락을 동반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 연말 기준으로 두 배가 오른 1,981조원으로 마감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실물경제 총규모를 뛰어넘게 커졌다. 지수 기준으로 보면 3월 19일 1500선 밑으로 추락했지만, 연말에 2,873라고 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 것이다. 지수연계 펀드 상품들도 덩달아 폭등해서 연 1.5퍼센트 금리밖에 적용 안되는 1년짜리 은행 정기예금의 십 수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다고 한다.
가장 기가 막힌 것은, 비트코인으로 대표된 암호화 화폐시장이다. 암호화 화폐는 이미 말로만 화폐이지 실체가 불분명한 ‘자산’이 된 지 오래지만, 어쨌든 국제보건기구가 팬더믹을 선언하던 2020년 3월 12일에 4,800달러 수준으로 가라앉았던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2만 8900달러를 넘어섰다. 10개월만에 무려 6배가 오를 정도로 코로나19의 해는 비트코인에게 저주는 고사하고 축복을 해가 될 터인데, 어떤 자산가격도 이렇게 폭등하면서 거품이라고 하지 않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청년들까지 죄다 나서서 ‘영끌’을 해서라도 부동산 사고 주식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게 되어버렸다. 오히려 땀 흘려 일하려는 사람이 바보가 되고,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다시 온 것이다. 정말 실물경제가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가운데에서도 자산시장만 이렇게 영원히 번영을 구가하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인가? 여전히 전문가들은 실물경제 동향과 관계없이 상당기간 초저금리를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상황이고, 부동산 투매가 이어지면서 자산가격이 담보인정비율 이하로 추락하지 않는 한 부동산 거품 폭락사태는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주가 동향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그렇게 성장할 것 같으면, 왜 같은 기간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4조와 25조씩 주식을 팔았고 오직 개인들만 45조를 사들였을까? 한 가지 더 생각해볼 것이 있다. ‘동학개미’니 ‘서학개미’ 하면서 마치 주가 폭등으로 적어도 수백만 ‘평범한 시민’이 돈을 버는 것처럼 착시 현상이 생기지만, 통상적으로 금융자산 불평등은 부동산 자산 불평등보다 훨씬 극단적이다. 수백만의 소소한 개미들이 주가를 떠받쳤는지는 모르지만, 막상 거대한 수익을 올린 것은 수만명도 안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부동산에 이어 다시 한번 자산불평등이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노동시장
부동산과 금융 등 자산시장이 코로나19 재난 뒤에서 웃고 있는 사이, 실물경제는 모두 추락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실물경제에서도 디지털/플랫폼 기업 일부 업종은 전에 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고 금융회사 등도 안정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 12조를 넘기는 대기록을 달성하는 등 반도체 특수를 누리는 대기업들의 실적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2020년은 물론, 2021년까지 호황을 누릴 것으로 예약되어 있다. 특히 비대면 온라인이 부상하면서 거대 플랫폼 기업들인 카카오와 네이버 등 역시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면서 2020년에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2021년도 마찬가지로 전망된다.
이와 정반대 쪽의 운명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불안정 노동자들과 중소상공인들이다. 특히 특히 필수 노동자라고 불리는 대면 업무에 종사하는 불안정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실업이나 휴업 또는 과로와 위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충격으로 실업자와 일시휴직자가 각각 약 100만명씩 늘어나면서 200만명의 직접적인 고용충격이 있었던 게 그 단적인 사례다. 지난해 하반기로 오면서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겨울 코로나 재유행이 장기화되면서 2021년 1/4분기까지 다시 매우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코로나는 실체적이고 강력한 생계위협인 것이다.
그림2. 코로나19재난으로 인한 고용영향과 이전 위기 당시의 비교 (출처: 기획재정부)
그 결과,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2020년 전체 고용은 전년대비 약 25만명 가량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고, 올해에는 정부가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서 고용 방어를 함에도 불구하고 약 15만명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올해 말까지 가더라도 전체 고용규모가 2019년 말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고용이 가장 늦게 회복되었는데, 이번에는 더 큰 강도로 고용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길 것 같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코로나 졸업반’이 되는 청년들은 첫 진출하는 사회진입에서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재난이 더 벌린 불평등, 정부가 해야 할 일
이렇듯 코로나19 재난은 비정하게도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갖게 되고, 겨우 불안정한 일자리와 가계에 의지해서 사던 서민들은 그나마도 더 잃게 만들었다.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미 IMF는 지난해 과거의 전염병 사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한 결과,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 모든 전염병이 발생한 이후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것이 슬픈 결론이라고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재난을 스스로 교정하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에 대처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불평등을 좁히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정부는 시종 자산가들에게 ‘크게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수단들을 동원해왔다. 디지털 뉴딜을 발표할 때에는 비대면 비즈니스 지원을 크게 띄우면서도 플랫폼 노동자들의 상황 악화를 방지할 전국민고용보험개혁은 매우 점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형 뉴딜을 추진할 금융펀드 모집에는 적극적이었지만, 국민경제 규모를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는 현재까지도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종부세 등 조세 인상을 끝까지 미적거리다가 지난해 겨우 통과시켰다. 코로나 2년차로 들어서면서 K자 회복의 아래쪽에 있는 국민들의 삶은 점점 더 바닥으로 내려갈 것이고 그에 따라 그들의 인내도 바닥날 것이다. 정부는 자산 가진 국민과 자산 없는 국민의 간격이 얼마나 더 벌어지게 방치할 것인가? 양적인 평균 규모만 보여주는 성장률 관리보다 중요한 것이 이 대목이다.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