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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서평38] 케인즈사상을 경제정책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케인즈 경제사상과 2차대전후 경제사
경제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방식에는 두 극단이 있다고 한다. "상황이 너무 나빠서 폭력적인 변화밖에 해법이 없다는 혁명가들의 비관론과, 우리 경제와 사회생활의 균형이 너무나 위태로워서 실험을 감행해서는 안된다는 수구론자들의 비관론"이 그것이란다.
전자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실업이나 불황, 패닉이 발생했을때, 정치권력으로 경제제도를 폐기하고 인위적으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누가' 뭘 어떻게 만들지는 아직도 안개속이다. 후자는, 혹시 공황이나 패닉에 빠지더라도, 이 세상이 바닥을 치고 빠져나오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을 사실상 부추기는 주장에 해당했다.
그런데 케인즈는 이 두 가지 극단과 다른 길을 택한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매우 불안정하고 실업과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적절한 경제정책으로 이를 제어할 방법이 있고, 그래서 번영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 극복과 2차대전이후 서구사회의 특별한 '황금기'를 만드는데 기여한 케인즈 경제관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득세로 완전히 현실정치에서 사라진듯 했다. 그러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케인즈를 다시 불러냈지만, 사실은 온전히 불러내지 못하고 일부 정책을 흉내만 내고 있다는 비판을 한 책이 번역되었다.
제커리 카터(Zachary Carter)라는 저널리스트가 용감하게도 불과 5년여 동안의 집중적 작업을 통해 <존 메이너드 케인즈: 돈, 민주주의, 그리고 케인즈의 삶>이라는 단행본을 2020년에 출간했다. 한마디로 미국 저널리스트가 현재 시점에서 기술한, 본문만 780여쪽의 결코 작지 않은 분량의 케인즈 전기이다. 최근에 번역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한달만에 4쇄가 인쇄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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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볼때, 로버트 스키텔스키 전기가 정말 촘촘하게 케인즈의 일대기를 기술했다면, 카터의 전기는 본인의 관심사에 초점을 두면서 일부 케인즈 개인사들을 과감히 건너뛰기 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는 주요 저서들에 관심을 두는데, <평화의 경제적 결과> , <확률론>과 <화폐론>, <일반이론>, <전비조달론> 그리고 1920년대 써낸 짧은 에세이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전기는 케인즈의 출생으로 시작하지도 않고, 그의 사망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일반이론의 핵심을 쉽게 풀어낸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요약한 핵심의 첫째는, 일반이론이 이전 고전경제학의 '희소성'이론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대공황의 경험으로 분명해진 것은 문제가 희소성을 야기하는 "생산부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들판의 농작물은 썩어가는데 거리의 아이들은 굶주려갔다."
둘째는 경제가 저절로 안정된 균형점을 찾아가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조절능력이 없다는 것인데, "경제에는 자기정화 능력이 없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비록 정치인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상황을 엉망으로 만든다 할지라도 경제 시스템 스스로 1919년부터 1936년 사이 어느 시점에 상황을 정리했을 것이다."
세번째는 경제가 나쁜 균형에 빠지면 비자발적 실업은 계속될 수 있으며, 이는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요구하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네째, 저축과 투자는 금리에 따라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금리는 다만 현금의 편리성이나 확실성을 기꺼이 포기하는 가격 수준을 측정할 뿐이다." 즉 경기가 나쁘게 되면 저축을 하지만 그만큼 투자는 일어나지 않으며, 이른바 유동성 확보 현상이 만연할 수도 있다.
"저축한 돈이 투자금으로 자동으로전환되는 과정은 없다. 게다가 저축을 하려는 동기와 공장을 지으려는 동기는 다르다"
다섯째, 민스키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강조한 불확실성에 기반한 경제학이 케인즈 경제학이다. "불확실성은 통계적으로 측정할 수 없었다. 어떤 사건들이 과거에 특정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아고 해서 미래에도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우리는 나쁜 마음이나 혼란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 때문에 물질적 만족을 당장 실현하는 대신 돈을 계속 보유할 것이다."
여섯째, 돈은 다양한 재화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는 촉진제나 윤활류로 여겼던 고전경제학을 부인한다. "케인즈는 돈이 경제적 가능성에 대한 서사를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영화나 소설에 더가 까운 것으로 보았다. 돈의 중요성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에서 비롯된다." "돈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매기는 수동적인 힘이 아니었다. 돈에는 그 자체로 능동적인 힘이 있었다."
특히 돈에 대해서 돈이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수단이어서 "국가는 돈을 만들었고 그 가치를 항상 규제해왔다"고 케인즈는 생각했다는 것이다. "돈은 지역상인들이 편의성을 높이기 이해 개발한 관습이 아니라, 문자, 도량형 등 국가가 만든 다른 발명품과 함께 등장한 정교한 통치 도구였다."
일곱째, 주식시장의 주가가 어려 투자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저자는 케인즈가 예로 든 '미인대회'를 이렇게 해석했다. 주식시장에서 수익률을 높이려면,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미인을 고르거나 객관적으로 미인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식시장에 참여한 사람중 가장 많은 이들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풀어서 말하면 "경혐상 사회적으로 유리한 투자 정책이 반드시 가장 수익성 높은 정책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여덟째, 케인즈가 가장 강조한 정책은 통화정책이나 적자재정운영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의 공공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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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러웠던 것은 케인즈는 (본인 의도야 어쨌든 간에) 현실적으로는 '전시경제' 전문가로 불릴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1차대전 내내 영국 재무부에서 일을 봤고, 전후 유럽질서에 대해서 그 유명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정말 탁월한 문제의식을 펼친다. 특히 부채문제를 채권자 각도가 아니라 각 국민경제 관점에서 보는 시야는 다시 봐도 놀랍다.
아울러 2차대전을 앞두고 <전비조달론>을 기술하면서 산업생산 동원과 인플레이션 통제 방안에 대한 고려, 그리고 2차대전이후 국제청산동맹의 구상 역시 다시봐도 놀랍다. 케인즈의 아이디어들은 사실 기후위기라는 또다른 유형의 세계전쟁에서도 적절히 활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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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이 책의 차별성은 다른 곳에 있다.
'케인주의의 미국화' 즉 케인주의가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식 버전의 케인주의가 만들어졌는지를 이 책이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본인도 이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이 과연 <전기>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무려 200쪽이 넘는 분량을 할애해서 케인츠 사후 1945년부터 최근 오바마 정부에 이르기까지 케인즈의 정책들이 미국 각 정부들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으며 그것이 현실경제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리한다.
일단 시작은 케인즈를 따르는 케임브리지 스터디 그룹인 '케임브리지 서커스'와 그 쟁쟁한 멤버들인 리처드 칸, 피에로 스라파, 제임스 미드, 로빈슨 부부 등 차후 포스트 케인지언을 이끌 이들의 얘기가 짧게 소개되고, 이들과 교분한 제임스 갤브레이스, 스위지 등 미국 학자들의 얘기로 연결한다.(조앤 로빈슨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많이 기술하지는 않는다. 캐임브리지 자본논쟁도 일단 빠져 있다).
특히 저자는 2차대전이후 혹독한 매카시 선풍과 캐네디-존슨정부, 닉슨정부시대까지 케인즈 정책의 미국화 과정을 주로 갤브레이스 중심으로, 그리고 약간은 사무엘슨을 섞어서 상당한 분량으로 엮어나간다. 매카시 반동기에 미국에서 '케인주의'가 곧 공산주의로 몰렸다는 사실이 새삼 허망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또한 저 유명한 1948년 몽펠레린 소사이어트를 조직한 하이에크와 미제스, 그리고 당시는 주니어인 프리드먼의 역사뿐 아니라, 하이에크를 중심으로 그들의 주장도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들이 1970년대말 이후 신자유주의를 대세로 만드는 과정도 짧지 않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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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특히 케인주의로부터 완전한 일탈은 레이건 정부가 아니라 클린턴 정부라고 못박는다. 적자재정 축소는 물론이고 경제를 월가라는 금융자본의 시장논리에 맡겨버리고 글래스 스티글법을 무너뜨린 클린턴 정부를 가장 시장자유주의라고 비판한다.
또한 저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간단한 기술을 하는 가운데 여기에 대한 오마바의 대응이, 은행은 구제하면서 집잃은 가계는 구제하지 않았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케인즈 정신의 복귀를 말할 수 없다고 비평한다. 긴축을 주장했던 유럽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래서 다시 케인즈의 경제관점과 정신이 어떻게 부활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웬지 맥이 없이 끝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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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논점과 무관하게 역시 '정책'을 고민할 때 케인즈 경제학은 여전히 막강한 힘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이 다시 실감하게 해 준다. 코로나19이후 시대의 경제정책과 경제관을 다시 성찰하기 위해 읽어볼만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의 대선과정에서 나오는 경제정책이나 경제비전이라는 것들이 정말 허무할 정도로 과거주장들을 단어만 살짝 바꾸거나 기업가들의 주장을 그대로 베껴서 적는 현실에서 케인즈 경제사상은 다시 생각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전자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실업이나 불황, 패닉이 발생했을때, 정치권력으로 경제제도를 폐기하고 인위적으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누가' 뭘 어떻게 만들지는 아직도 안개속이다. 후자는, 혹시 공황이나 패닉에 빠지더라도, 이 세상이 바닥을 치고 빠져나오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을 사실상 부추기는 주장에 해당했다.
그런데 케인즈는 이 두 가지 극단과 다른 길을 택한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매우 불안정하고 실업과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적절한 경제정책으로 이를 제어할 방법이 있고, 그래서 번영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 극복과 2차대전이후 서구사회의 특별한 '황금기'를 만드는데 기여한 케인즈 경제관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득세로 완전히 현실정치에서 사라진듯 했다. 그러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케인즈를 다시 불러냈지만, 사실은 온전히 불러내지 못하고 일부 정책을 흉내만 내고 있다는 비판을 한 책이 번역되었다.
제커리 카터(Zachary Carter)라는 저널리스트가 용감하게도 불과 5년여 동안의 집중적 작업을 통해 <존 메이너드 케인즈: 돈, 민주주의, 그리고 케인즈의 삶>이라는 단행본을 2020년에 출간했다. 한마디로 미국 저널리스트가 현재 시점에서 기술한, 본문만 780여쪽의 결코 작지 않은 분량의 케인즈 전기이다. 최근에 번역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한달만에 4쇄가 인쇄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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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볼때, 로버트 스키텔스키 전기가 정말 촘촘하게 케인즈의 일대기를 기술했다면, 카터의 전기는 본인의 관심사에 초점을 두면서 일부 케인즈 개인사들을 과감히 건너뛰기 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는 주요 저서들에 관심을 두는데, <평화의 경제적 결과> , <확률론>과 <화폐론>, <일반이론>, <전비조달론> 그리고 1920년대 써낸 짧은 에세이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전기는 케인즈의 출생으로 시작하지도 않고, 그의 사망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일반이론의 핵심을 쉽게 풀어낸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요약한 핵심의 첫째는, 일반이론이 이전 고전경제학의 '희소성'이론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대공황의 경험으로 분명해진 것은 문제가 희소성을 야기하는 "생산부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들판의 농작물은 썩어가는데 거리의 아이들은 굶주려갔다."
둘째는 경제가 저절로 안정된 균형점을 찾아가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조절능력이 없다는 것인데, "경제에는 자기정화 능력이 없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비록 정치인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상황을 엉망으로 만든다 할지라도 경제 시스템 스스로 1919년부터 1936년 사이 어느 시점에 상황을 정리했을 것이다."
세번째는 경제가 나쁜 균형에 빠지면 비자발적 실업은 계속될 수 있으며, 이는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요구하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네째, 저축과 투자는 금리에 따라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금리는 다만 현금의 편리성이나 확실성을 기꺼이 포기하는 가격 수준을 측정할 뿐이다." 즉 경기가 나쁘게 되면 저축을 하지만 그만큼 투자는 일어나지 않으며, 이른바 유동성 확보 현상이 만연할 수도 있다.
"저축한 돈이 투자금으로 자동으로전환되는 과정은 없다. 게다가 저축을 하려는 동기와 공장을 지으려는 동기는 다르다"
다섯째, 민스키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강조한 불확실성에 기반한 경제학이 케인즈 경제학이다. "불확실성은 통계적으로 측정할 수 없었다. 어떤 사건들이 과거에 특정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아고 해서 미래에도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우리는 나쁜 마음이나 혼란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 때문에 물질적 만족을 당장 실현하는 대신 돈을 계속 보유할 것이다."
여섯째, 돈은 다양한 재화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는 촉진제나 윤활류로 여겼던 고전경제학을 부인한다. "케인즈는 돈이 경제적 가능성에 대한 서사를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영화나 소설에 더가 까운 것으로 보았다. 돈의 중요성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에서 비롯된다." "돈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매기는 수동적인 힘이 아니었다. 돈에는 그 자체로 능동적인 힘이 있었다."
특히 돈에 대해서 돈이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수단이어서 "국가는 돈을 만들었고 그 가치를 항상 규제해왔다"고 케인즈는 생각했다는 것이다. "돈은 지역상인들이 편의성을 높이기 이해 개발한 관습이 아니라, 문자, 도량형 등 국가가 만든 다른 발명품과 함께 등장한 정교한 통치 도구였다."
일곱째, 주식시장의 주가가 어려 투자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저자는 케인즈가 예로 든 '미인대회'를 이렇게 해석했다. 주식시장에서 수익률을 높이려면,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미인을 고르거나 객관적으로 미인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식시장에 참여한 사람중 가장 많은 이들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풀어서 말하면 "경혐상 사회적으로 유리한 투자 정책이 반드시 가장 수익성 높은 정책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여덟째, 케인즈가 가장 강조한 정책은 통화정책이나 적자재정운영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의 공공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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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러웠던 것은 케인즈는 (본인 의도야 어쨌든 간에) 현실적으로는 '전시경제' 전문가로 불릴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1차대전 내내 영국 재무부에서 일을 봤고, 전후 유럽질서에 대해서 그 유명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정말 탁월한 문제의식을 펼친다. 특히 부채문제를 채권자 각도가 아니라 각 국민경제 관점에서 보는 시야는 다시 봐도 놀랍다.
아울러 2차대전을 앞두고 <전비조달론>을 기술하면서 산업생산 동원과 인플레이션 통제 방안에 대한 고려, 그리고 2차대전이후 국제청산동맹의 구상 역시 다시봐도 놀랍다. 케인즈의 아이디어들은 사실 기후위기라는 또다른 유형의 세계전쟁에서도 적절히 활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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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이 책의 차별성은 다른 곳에 있다.
'케인주의의 미국화' 즉 케인주의가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식 버전의 케인주의가 만들어졌는지를 이 책이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본인도 이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이 과연 <전기>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무려 200쪽이 넘는 분량을 할애해서 케인츠 사후 1945년부터 최근 오바마 정부에 이르기까지 케인즈의 정책들이 미국 각 정부들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으며 그것이 현실경제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리한다.
일단 시작은 케인즈를 따르는 케임브리지 스터디 그룹인 '케임브리지 서커스'와 그 쟁쟁한 멤버들인 리처드 칸, 피에로 스라파, 제임스 미드, 로빈슨 부부 등 차후 포스트 케인지언을 이끌 이들의 얘기가 짧게 소개되고, 이들과 교분한 제임스 갤브레이스, 스위지 등 미국 학자들의 얘기로 연결한다.(조앤 로빈슨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많이 기술하지는 않는다. 캐임브리지 자본논쟁도 일단 빠져 있다).
특히 저자는 2차대전이후 혹독한 매카시 선풍과 캐네디-존슨정부, 닉슨정부시대까지 케인즈 정책의 미국화 과정을 주로 갤브레이스 중심으로, 그리고 약간은 사무엘슨을 섞어서 상당한 분량으로 엮어나간다. 매카시 반동기에 미국에서 '케인주의'가 곧 공산주의로 몰렸다는 사실이 새삼 허망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또한 저 유명한 1948년 몽펠레린 소사이어트를 조직한 하이에크와 미제스, 그리고 당시는 주니어인 프리드먼의 역사뿐 아니라, 하이에크를 중심으로 그들의 주장도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들이 1970년대말 이후 신자유주의를 대세로 만드는 과정도 짧지 않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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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특히 케인주의로부터 완전한 일탈은 레이건 정부가 아니라 클린턴 정부라고 못박는다. 적자재정 축소는 물론이고 경제를 월가라는 금융자본의 시장논리에 맡겨버리고 글래스 스티글법을 무너뜨린 클린턴 정부를 가장 시장자유주의라고 비판한다.
또한 저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간단한 기술을 하는 가운데 여기에 대한 오마바의 대응이, 은행은 구제하면서 집잃은 가계는 구제하지 않았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케인즈 정신의 복귀를 말할 수 없다고 비평한다. 긴축을 주장했던 유럽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래서 다시 케인즈의 경제관점과 정신이 어떻게 부활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웬지 맥이 없이 끝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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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논점과 무관하게 역시 '정책'을 고민할 때 케인즈 경제학은 여전히 막강한 힘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이 다시 실감하게 해 준다. 코로나19이후 시대의 경제정책과 경제관을 다시 성찰하기 위해 읽어볼만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의 대선과정에서 나오는 경제정책이나 경제비전이라는 것들이 정말 허무할 정도로 과거주장들을 단어만 살짝 바꾸거나 기업가들의 주장을 그대로 베껴서 적는 현실에서 케인즈 경제사상은 다시 생각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