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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자본과 이데올로기 노트>마지막: 그린뉴딜에 대한 피케티의 생각?

  • 입력 2020.06.02 08:46      조회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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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읽은 소감이나 대목들을 좀 요약하면 다양한 코멘트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상 없다시피해서 좀 아쉬웠지만 개인 공부삼아 한것이니 일단 매듭을 지어보려고 한다.

일단 피케티는 불평등과 함께 기후위기가 21세기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도전과제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자본과 이데올로기>에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불평등 증대는 기후 온난화와 더불어 21세기 초 현재 지구가 당면한 주요 도전 중 하나다.”

"불평등과 기후문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둘을 연계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기후 온난화의 해결, 또는 적어도 그 완화를 위해서는 생활양식의 실질적인 전환이 필요리라는 것은 사실 분명하다. 이런 전환이 대다수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려면, 요구되는 변화들과 노력들을 가능한 가장 정의로운 방식으로 분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내에서든 국제적으로든 부자들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 비중이 막중하고 이로 인한 기후 온난화는 가난한 자들에게 더 가혹한 고통을 안겨줄 것이기에 정의로운 분담은 당연하다."

(1)
하지만 그가 정통 그린뉴딜을 주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0년 5월 르몽드에 "위기 이후, 녹색기금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로 "공공부문이 경제활동을 되살리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 중심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건강, 혁신, 환경과 같은 다른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는 것을 보면, 환경 친화적인 성장, 다시 말해서 2008년 버전의 녹색성장 범위안에 제한되어 있다. 이는 지금말하는 기후위기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컬럼을 가지고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피케티가 그린뉴딜을 주장했다고 크게 보도했으니, 한국 언론도 10년전 녹색성장과 지금의 그린뉴딜을 구분 못하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한 가지, 피케티는 그의 전공답게 탄소배출과 불평등을 좀 더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의 다른 논문에 따르면, 지구 전체 탄소배출의 45%에 대해 책임이 있는 상위 10%개인들은 미국에 40%가, 유럽에 19%가, 중국에 10%가 있다고 한다. 결국 지구 탄소배출의 2/3는 미국과 유럽과 중국의 부유층이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미국/룩셈부르크/싱가폴/사우디 등의 초부유층 1%가 세계에서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데, 이들은 1인당 연간 200톤을 배출한다고 한다. 반대로 최저수준의 탄소배출은 온두라스, 모잠비크, 르완다, 말라위 등의 저소득층인데 이들은 겨우 0.1톤을 배출한단다. 세계의 중간 그룹이 대략 6~7톤을 배출하며, 한국의 1인당 평균 배출량은 2018년 기준으로 대략 13톤 내외이다.

(2)
이러한 탄소배출 책임의 불평등성 때문에, 피케티는 탄소배출 상위계층에 대해 누진적으로 더 높은 탄소세를 매기자는 '누진적 탄소세'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세계 평균 이하의 배출에 대해서는 면세를 해주고, 평균을 상회하는 배출에 대해서는 탄소배출 톤당 100달러, 평균의 2,3배 이상일 경우 500달러, 평균의 9배를 넘어가면 1000달러를 과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당연히 한국도 평균값이 세계 평균을 훨씬 상회하므로 상당수 국민들은 탄소세를 내야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결론부분에서 '누진적 탄소세'가 좀더 세부적으로 요약되는데, (ㄱ) 탄소세의 제한성 - "배출감소를 위한 대체로 가장 유효한 방식은, 탄소에 더 높은 가격을 설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교통수단과 난방 및 주택단열 등과 관련한 엄격한 규칙과 금지 및 규범을 정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ㄴ) "탄소세가 수용되고 충분히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은, 세금 인상으로 인해 가장 크게 타격받는 중간 이하 가구에 대한 보상과 함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재원 조달에 세수를 전부 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그는 부유세 폐지를 상쇄하기 위한 유류세 인상에 노란조끼운동이 격렬하게 진행된 것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여러곳에서 이를 언급한다)

(ㄷ) "개별 소비자 수준에서의 탄소배출에 대한 실질적인 누진세가 보다 나은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내 수준에서는 그가 "개인수준에서 배출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인지 잘 납득은 안 된다.

(3)
피케티는 불평등체제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면서 이과 관련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거의 한두번씩은 모두 다룬다. 기후위기나 생태 이슈도 그런 범주에서 놓치지 않고 짚었던, 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다루지는 않은 한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암튼 개인적으로 피케티가 불평등과 관련해서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불평등의 관점에서 20세기가 예외적인 시기"라는 통찰을 준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비슷한 레토릭으로 "에너지의 관점에서도 20세기는 매우 예외적 시기"라고 할 것이다. 지구에 매장된 에너지 스톡(화석연료- 그 중에서도 석유)을 제한없이 맘껏 써서 놀라운 경제성장과 문명을 이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시대는 앞으로 10년 안에 조속히 문을 닫아야 한다. 예외적인 20세기는 불평등의 관점에서는 '20세기의 대압착과 평등화'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에너지의 관점에서는 '20세기의 화석연료시대'는 영원히 작별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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