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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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이데올로기 노트> 첫번째: 불평등에 대한 진짜 도전?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번역 출간된지도 좀 시간이 흘렀지만, 이야기들이 많이 없다. 영어판이 출간되었을때 크루그먼이나 라잔 등이 다소 썰렁한 반응을 보였을때 예견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정도가 좀 더한건가?
이 책은 저자말대로 경제학책이라기 보다는(전작에 나왔던 r>g같은 간단한 수식조차 아예 없다), 경제사책이고 다루는 범위도 시계열적으로 최소 500년, 공간적으로 유럽,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남미까지 다루고 있으니,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내가 이 책을 논평할 역량은 애진작에 없으니 그냥 공부삼아 노트를 좀 해보고 싶다.
(1)
전작의 제목을 <21세기 자본>이라고 지어서 마르크스를 연상케 하더니, 이번에도 인류의 경제사를 훓어가면서 역사적 유형화를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마르크스가 생산양식을 준거로 경제사의 역사적 단절과 유형화를 시도한 것이 연상된다.
그는 일반 경제사라기 보다는 '불평등체제(inequality regime)'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대체로 4개의 틀, 정치체제와 소유체제(Property Regime), 그리고 교육체제와 재정체제(Fiscal Regime)로 접근한다. 왜 이렇게 4개 범주를 끌고 들어왔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단정적인데 아주 치밀한 논리구조가 있기 보다는 실용적인 접근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이어가기로하고, 이 가운데에서도 그는 '소유권'에 대한 역사적 변화에 집중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사회운동에서 그동안 대략 회피해왔던 소유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다시 정면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마르크스를 연상케 한다.(전작의 자본 개념이 마르크스와 다르듯이, 소유권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유에 관한 판도라 상자 증후군'이라는 그의 표현인데, 가진자들은 한번 소유권을 양보하면 어느 경계선에서 끊기가 어렵고 끝도 없이 양보해야 한다는 두려움때문에 절대 소유권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완강하게 저항한다는 점이다. 역으로 소유권지상주의에 밀려 한번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모든 자원과 자산에 대한 사적소유권 논리가 확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2)
그는 주로 소유권에 기초해서 시계열적으로뿐 아니라, 횡적으로도 몇개의 역사적 유형을 구분한다. 특히 그의 시도가운데 돋보이는 것은, 시계열적 소유구조의 변화 보다는, 동일한 역사적 시간대에 다양한 소유방식의 가능성을 찾으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서두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한 사회와 이 사회 내부의 권력관계 및 소유관계를 조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능성의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로 나 있으며, 이러한 차이들이 세부적인 것에만 관련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둘째로, 그의 관점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폴라니에 대한 일관된 옹호(시장은 사회와 정치안에 배태되어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주장)를 하면서, 사회와 정치안에서 시장(또는 경제, 소유)을 보려는 관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글의 요소 요소에서 폴라니를 호출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면서 자기조정 시장에 대한 환상에서 빠져나올 것을 주문한다.
세째로, 그의 기획의 종착점은 스웨덴을 포함한 기존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한계점을 넘어보자는 것으로 읽힌다.
(3)
그는 20세기에 불평등 완화에서 대성공을 거둔 스웨덴과 사민주의가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정의로운 소유의 조건을 다시 사유하지 못한 한계, 고등교육에서의 불평등주의적 도전에 대처하지 못한 한계, 재분배 문제를 초민족적 규모로 확장하지 못한 한계"에 직면했다고 평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와 제안을 한다.
***
개인적으로 피케티의 주장과 제안들은, 서구의 식자들이나 학계에서는 전작에 비해 흥미가 떨어질지 모르나, 정책과 정치를 고민하는 쪽에서는 훨씬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제기를 던진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잘 알려진 학자들 중에서 최근 10여년 동안 학문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이렇게 과감하고, 무모할 정도로 확장적인 문제제기를 한 학자를 본적은 없는 것 같다. 그의 주장이 맞든 틀리든 여러모로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말대로 경제학책이라기 보다는(전작에 나왔던 r>g같은 간단한 수식조차 아예 없다), 경제사책이고 다루는 범위도 시계열적으로 최소 500년, 공간적으로 유럽,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남미까지 다루고 있으니,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다.
어쨌든 내가 이 책을 논평할 역량은 애진작에 없으니 그냥 공부삼아 노트를 좀 해보고 싶다.
(1)
전작의 제목을 <21세기 자본>이라고 지어서 마르크스를 연상케 하더니, 이번에도 인류의 경제사를 훓어가면서 역사적 유형화를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마르크스가 생산양식을 준거로 경제사의 역사적 단절과 유형화를 시도한 것이 연상된다.
그는 일반 경제사라기 보다는 '불평등체제(inequality regime)'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대체로 4개의 틀, 정치체제와 소유체제(Property Regime), 그리고 교육체제와 재정체제(Fiscal Regime)로 접근한다. 왜 이렇게 4개 범주를 끌고 들어왔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단정적인데 아주 치밀한 논리구조가 있기 보다는 실용적인 접근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이어가기로하고, 이 가운데에서도 그는 '소유권'에 대한 역사적 변화에 집중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사회운동에서 그동안 대략 회피해왔던 소유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다시 정면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마르크스를 연상케 한다.(전작의 자본 개념이 마르크스와 다르듯이, 소유권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유에 관한 판도라 상자 증후군'이라는 그의 표현인데, 가진자들은 한번 소유권을 양보하면 어느 경계선에서 끊기가 어렵고 끝도 없이 양보해야 한다는 두려움때문에 절대 소유권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완강하게 저항한다는 점이다. 역으로 소유권지상주의에 밀려 한번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모든 자원과 자산에 대한 사적소유권 논리가 확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2)
그는 주로 소유권에 기초해서 시계열적으로뿐 아니라, 횡적으로도 몇개의 역사적 유형을 구분한다. 특히 그의 시도가운데 돋보이는 것은, 시계열적 소유구조의 변화 보다는, 동일한 역사적 시간대에 다양한 소유방식의 가능성을 찾으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서두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한 사회와 이 사회 내부의 권력관계 및 소유관계를 조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능성의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로 나 있으며, 이러한 차이들이 세부적인 것에만 관련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둘째로, 그의 관점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폴라니에 대한 일관된 옹호(시장은 사회와 정치안에 배태되어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주장)를 하면서, 사회와 정치안에서 시장(또는 경제, 소유)을 보려는 관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글의 요소 요소에서 폴라니를 호출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면서 자기조정 시장에 대한 환상에서 빠져나올 것을 주문한다.
세째로, 그의 기획의 종착점은 스웨덴을 포함한 기존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한계점을 넘어보자는 것으로 읽힌다.
(3)
그는 20세기에 불평등 완화에서 대성공을 거둔 스웨덴과 사민주의가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정의로운 소유의 조건을 다시 사유하지 못한 한계, 고등교육에서의 불평등주의적 도전에 대처하지 못한 한계, 재분배 문제를 초민족적 규모로 확장하지 못한 한계"에 직면했다고 평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와 제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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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피케티의 주장과 제안들은, 서구의 식자들이나 학계에서는 전작에 비해 흥미가 떨어질지 모르나, 정책과 정치를 고민하는 쪽에서는 훨씬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제기를 던진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잘 알려진 학자들 중에서 최근 10여년 동안 학문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이렇게 과감하고, 무모할 정도로 확장적인 문제제기를 한 학자를 본적은 없는 것 같다. 그의 주장이 맞든 틀리든 여러모로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