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국제질서
-
미국 대선 결과와 평화·진보를 위한 대응
[정의와 대안] 2020.11.
- 입력 2020.11.25 14:33 조회 1274
-
- 김수현 정의정책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신국제질서
-
- 평화-통일 분야-202011-미국 대선 결과와 평화 진보를 위한 대응.pdf
태그
공유하기
2020.11.25 김수현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재검표 요구, 소송전, 시위 등을 벌이며 여전히 불복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민주주의와 미국이라는 국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있음. 하지만, 바이든이 차기 미 대통령이 되는 것은 확정적이라고 보고, 바이든 시대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특히 한미관계, 북미관계 및 미중관계에 대한 전망과 대응 관련 각종 조언이 쏟아지고 있음. |
□ 미국 대선 결과와 혼란, 원인 분석
▶ 바이든 승리, 그러나 결과에 대한 불복 : 정치적 양극화와 트럼피즘 지속
- 미 연방총무청이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23일(현지시간) 공식 승인해 정권 인수의 길을 열게 됨.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이양에 협력하라고 지시했다면서도 소송은 계속될 것이고,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고 함. 이렇듯 11월 3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이 실시된 지도 수십 일이 지났지만,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여전히 재검표를 요구하거나 각종 소송을 제기하고 시위를 벌이는 등 선거 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않고 있음.
- 트럼프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 첫째, 마지막까지 역전을 노리는 것임. 선거 결과가 확정되는 것을 최대한 미룸으로써 11월 3일 선거로 각 주에서 선출된 선거인들이 대통령을 뽑는 12월 둘째 수요일 다음 첫째 월요일(올해는 12월 14일)에 진행되는 선거를 무산시키고 하원에서의 선거(전체 하원의원이 아닌 각 주 다수당이 참가하는데, 이 경우 이번 연방하원 선거 결과 26개 주에서 다수인 공화당 후보가 당선 가)를 통해 역전을 노리는 것. 그러나 경합 주인 조지아주에 이어 미시간주에서도 23일 바이든 승리를 정식 인증함으로써 이 계획은 성공하기 어려울 듯. 둘째, 첫째의 노림수가 끝내 실패하더라도 4년 후 선거에서 자신이나 후계자가 승리할 발판을 닦고자 하는 것. 불복 소송전에 대한 지지층의 지지율이 85%에 달하고, 그 지지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이 노림수는 그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나름 합리적.
-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사람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것이 트럼프가 최초의 사례는 아님. CNN은 11월 11일 1801년 존 애덤스, 1829년 존 퀸시 애덤스, 1869년 앤드루 존슨 등 3명의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만을 제기하며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면서, 선거에서 패배한 대통령이 몽니를 부려도 결국 정권은 후임자에게 이양되었고 몽니를 부린 결과 오히려 후임자가 연임을 하는 정치적 이득을 안았다고 꼬집음.(전홍기혜, “트럼프의 ‘몽니’, 미 민주주의 시계 19세기로 돌려놓나?”, 『프레시안』, 2020.11.12.일 자에서 재인용.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1207365641606). 여하튼 트럼프는 150년 이상 패자가 깨끗이 승복했던 역사마저 깨버림으로써 미국 민주주의에 먹칠을 가했다고 할 수 있음.
- 부끄러움은 민주주의의 선두주자이자 보루임을 자부한 미국인들의 몫일지라도 트럼프는 물론 공화당 주요 지도부도 순순히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음. 물론 공화당 인사 중에서도 부시 전 대통령 등은 결과에 대해 승복할 것을 트럼프에 촉구했지만, “트럼프 2기로의 순조로운 계승”을 주장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현직 고위관료는 물론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트럼프의 대선 불복 소송을 지지하고 나섬. 이것은 패배를 절대 수용하지 않는 트럼프 개인의 특성에다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 투표에서의 승리를 통해 상원에서 공화당 다수를 획득함으로써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정책에 제동을 걸려는 공화당 지도부와 당원들의 당파적 이해와 심리가 결합된 때문으로 볼 수 있음.
- 이 같은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 규탄 시위 등은 관권을 동원한 대규모 부정선거가 자행되는 권위주의 국가나 민주주의가 아직 공고화되지 않은 일부 국가에서나 발생하던 현상이었음. 미국에서 대규모 부정선거가 행해졌다는 것은 트럼프나 그 열혈 지지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믿지 않을 것. 그런데도 이런 현상이 2020년 미국에서 발생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우선, 민주당 지지자의 94%와 진보 유권자의 89%, 비백인 유권자의 72%, 도시 거주 유권자의 60%가 바이든을 지지. 반면, 공화당 지지자의 93%, 보수 유권자의 84%, 복음주의 백인 유권자의 76%, 농촌 유권자의 54%가 트럼프를 지지. 여기서 드러나듯, 이념, 인종, 종교, 지역 등 미국 사회 균열 구조, 그 중에서도 지지 정당 관련 유권자의 당파적 정체성이 맹렬히 작동하는 정당 양극화, 혹은 정치적 양극화를 들 수 있음.(김정, “바이든 대통령의 탄생과 트럼프 대통령의 유산”, 『IFES 브리프』NO.2020-27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2020.11). ; 민정훈, 「2020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분석 및 함의」,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20.11). 등 참조 바람.)
- 둘째,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66.9%로 1900년 대선의 73.7% 이래로 가장 높기는 했지만, 트럼프가 약 7천 380만 표를 획득해 4년 전보다 천만 표 이상을 획득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트럼프 및 그의 정책에 대한 견고한 지지, 즉 트럼피즘(Trumpism)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임.
▶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 저변의 원인
- 최근 몇 년 동안 터키, 헝가리, 필리핀, 브라질 등에서 선거로 당선된 권위주의형 리더에 의한 민주주의의 퇴조 혹은 위기 현상이 발생함. 그런데 그런 현상이 단지 과거 권위주의 국가였다가 민주화된, 따라서 민주주의가 아직 공고화되지 않은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같은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발생한 것. 사실 영국에서도 브렉시트를 둘러싼 격렬한 이견 분출과 정치적 혼란이 상당 기간 지속된 바 있음. 유럽 대륙에서도 극우정당이 주요 정당으로 부상하는 등 득세하는 가운데 일부 국가에서는 극우정당과 연합한 보수세력이 집권하는 일도 발생함.
-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전체주의 도래의 가능성 등 근본적 위기인지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어려움. 하지만 미국 민주당 등 리버럴 정당, 유럽의 사민당 등 중도 좌파 정당, 미국 공화당 등 우파 정당을 포함한 기성정치권은 물론, 미국의 경우 ‘진실의 쇠퇴’(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인 랜드 연구소 마이클 리치 대표가 동료인 제니퍼 카바나 박사와 함께 출간한 책에서 확증 편향 때문에 진실이 설 자리를 잃고, 정책결정과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을 표현한 개념인 ‘Truth Decay’의 번역어. 책의 요약본은 다음의 링크에서 볼 수 있음. https://www.rand.org/content/dam/rand/pubs/research_reports/RR2300/RR2314/RAND_RR2314z3.korean.pdf)가 팽배한 것에서 드러나듯 기성 언론 및 이번에도 ‘샤이 트럼프’가 그 존재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등 여론조사기관조차 불신의 대상이 되는 등 기성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팽배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음.
- 미국의 경우, 트럼프라는 인물에 의해 이런 현상이 심해졌다고 치부하고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음. 그러나 4년 전 트럼프라는 기성정치질서 바깥의 비주류 인사가 공화당 후보로 결정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 자체가 미국인들의 기성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폭발한 것이었음.(2016년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에 대해서는 김준형, 『코로나19x미국 대선, 그 이후의 세계』 (평단, 2020), 특히 pp. 85-97. 등을 참조 바람.) 불만과 불신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과 국가 혹은 정치라는 보호막의 제거 등이 기성정치권 절대다수의 동의하에 추진된 것이고, 2008년 금융위기와 오바마 집권 이후에도 제대로 된 대책을 추진하지 않은데 따른 것. 오바마는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집권했지만, 8년간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거나 매우 느려 부시나 트럼프 때보다 오히려 낮음.
▲ 부시, 오바마, 트럼프 집권 기간의 시급 증가율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오바마 재임기가 가장 낮게 나타났으며, 금융위기 이후 급락한 임금을 거의 회복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임기를 끝냄. 강인규, “왜 미국 시민 절반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했을까”, 『오마이뉴스』, 2020.11.26.일 자에서 재인용.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692727&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 오바마를 이어 민주당 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이기는 했지만, 고액의 연설료와 후원금을 받는 등 기성정치인의 기득권 이미지가 너무 강했음. 이에 따라 비록 도덕적 흠결은 많지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통해 과거에 좋았던 시절을 되살리고 난민과 중국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하겠다는 포퓰리스트의 선동이 먹혀들 수 있었음.
□ 미국 대선 결과가 외교·안보 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망과 제언들, 그 한계
▶ 바이든 시대 주요 대외정책에 대한 각종 전망
- 한국에서는 미 대선 전부터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기후위기 및 코로나19 공동 대응 등 세계적 과제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해 방위비분담금 등 한미동맹, 북미관계, 미중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분석 및 의견 개진. 그리고 비록 트럼프가 불복하고는 있지만, 바이든 당선이 기정사실화되자마자 역시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전망과 한국의 대응책에 대한 각종 보고서, 칼럼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
- 트럼프와 비교되는 바이든의 대외정책을 우리와 밀접히 연관된 문제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분석 혹은 전망함.
<표> 트럼프와 바이든의 주요 대외정책 비교
구분 |
트럼프 : 미국 우선주의 |
바이든 : 미국의 리더십 회복 |
한미관계 |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 |
·비합리적 방위비분담금 인상 강압 비판 |
북미관계 |
·김정은 호평,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 |
·김정은을 불량배 호칭, 북한 반발 선례 |
미중관계 |
·통상, 안보, 체제 정체성 등 전방위적 대립과 갈등 |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지적 |
글로벌 |
·기후변화 부정, 파리기후협약 탈퇴 |
·기후위기-그린뉴딜, 파리기후협약 복귀 |
- 앞의 <표>에서 정리한 트럼프 시대 정책과의 비교와 바이든 시대 정책에 대한 전망은 바이든의 2020년 3월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인 “왜 미국이 다시 리드해야만 하는가(Why America Must Lead Again)”, 민주당의 2020 대선 정강정책과 대선후보 토론회 등의 자료 분석에 따른 것이므로 대체로 유사한 입장. 다만, 북미관계 혹은 대북정책의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림.
- 북미관계, 즉 북한과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의 청산, 이와 연동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형성과 관련해서는 트럼프의 재선 실패와 바이든 당선이 부정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오히려 문제해결이 이제야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음.
- 전자의 입장은 최고권력자의 지위와 역할이 압도적인 북한 문제의 경우 지도자 간 관계가 중요한데, 바이든은 김정은에 대해 불량배 등 부정적 평가를 했고 이에 북이 ‘미친 개’ 등의 원색적 용어를 쓰며 강력히 반발한 바 있으며, 탑 다운보다는 실무협상이 전제된 바텀 업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데 새롭게 대북 라인과 정책을 구체화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듦. 그리고 북한이 내년 1월로 예정된 8차 당대회에서 일정한 입장을 정립한 후, 미국은 대북정책에서 일정한 공백기가 있을 때 2009년 오바마 집권 초기와 마찬가지로 전략무기 시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 어필 및 능력 과시를 통한 협상력 증대 등을 꾀하는 반면, 미국은 협상보다는 대북제재 강화를 통해 북한이 손들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가 재연될 수 있다고 봄. 혹은 북한이 먼저 도발하지 않더라도 2말 3초에 한미합동훈련이 재개되면 북한의 반발 행동과 미국의 제재 등 악순환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예측.
- 후자는 트럼프 집권기 북미정상이 세 차례 만나고, 싱가포르 회담에서 공동선언문이 발표되기는 했지만, 최종 목표만 명시했을 뿐 프로세스 등 구체적 방법론에는 전혀 합의가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 이런 한계로 하노이 노딜 등 양국 협상이 교착되었고, 특히 종전선언이나 한미합동훈련 전면 중단 등 트럼프가 구두 약속한 것이 실무진에 의해 전혀 지켜지지 않고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경직된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을 꼬이게 했다는 것. 특히, 2018년 초기 국면과 달리 한국의 대북정책 운신의 폭도 크게 제한해 남북관계도 악화시켰다고 비판. 반면, 바이든의 경우 이미 북한의 핵능력이 크게 강화된 마당에 실패로 끝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반복하기보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고려함으로써 클린턴 2기 당시를 재연할 수도 있다고 봄.
▶ 한국의 대응 관련 제언들, 그 한계
- 미국의 입장을 잘 듣고 보조를 맞출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한국 정부의 주도적·능동적 역할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사람도 있음. 전자와 같은 신중한 접근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 한국의 입장과 국익에 입각한 적극적 정책 전개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그냥 미국의 입장을 추종하자는 수구적인 사람들도 있을 것. 하지만, 2001년 부시 정권 초기에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서둘러 방미해 햇볕정책 설득, MD 반대 등을 천명했다가 미국으로부터 배척만 당하고 제네바합의 파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막지 못했던 사례도 있는 만큼, 섣불리 우리의 희망을 강변하기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제대로 인지한 가운데 그들이 우리의 입장과 정책에 동의할 수 있도록 치밀한 분석과 설득의 논리, 해법을 다듬을 필요는 부정할 수 없음.
- 바이든 당선인이 국무장관에 블링컨,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설리번 등 주요 외교·안보 인사를 조기에 지명함. 블링컨이나 설리번 등은 오바마 정부에서도 주요 직책을 맡았고 대선 과정에서도 바이든 후보에 대한 조언자로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현 국제정세 및 주요 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아 정권 교체기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북핵 등의 이슈보다는 미국의 전 세계적 리더십 회복과 대중 정책이 우선할 가능성이 크고, 한반도 정책을 직접 관할하는 동아태 차관보의 인선과 청문회 인준 등에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측됨.
- 따라서 북미관계, 비핵화 등 한반도 정책 정립과 실무자 간 협상 등 정책집행 시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데 따른 공백기에 북한은 도발을 택하지 않고, 미국은 트럼프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지 않고 긍정의 유산은 계승하는 한편 한계는 극복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노력할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음. 김대중-부시 조합의 재현은 경계하되, 김대중-클린턴의 조합 재현, 특히 대포동 발사와 금창리 의혹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고 ‘페리 프로세스’를 이끌어냈던 경험을 오늘에 되살릴 필요 또한 분명함.(김준형 교수는 바이든 당선 시 문재인 정부가 페리 프로세스의 경험을 벤치 마킹할 것을 권고. 김준형, 앞의 책, 특히 pp. 178-179. 필자도 졸고에서 제2의 페리 프로세스를 추진할 것 주장.)
-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정부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충분한가라는 문제의식도 듦. 앞의 의문은 단순히 이 정부의 한반도 평화 달성의 의지나 그 능력에 대한 불신의 문제가 아님. 한반도 평화 달성과 관련해서는 한반도 비핵화-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혹자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대체)-한미동맹 지속 혹은 강화라는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불가능한 삼위일체, 즉 삼각모순(trilemma)의 문제가 있는데, 이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혹은 남북관계 개선)를 위해 한미동맹이 약화되는 걸 감수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임.(한국의 트릴레마는 구갑우 교수가 먼저 제기함. 구갑우, “평창 ‘임시평화체제’의 형성 원인, 과정, 결과-한국의 트릴레마”, 『평화가제트』No. 2018-G22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 2018). 세 가지 요소 중 한반도 평화체제를 남북관계 개선으로 대체한 주장은 김준형, 「미 대선결과 분석과 한반도 외교·통일 정책」(정의당 조찬세미나 자료, 2020.11.16.) 등.)
- 2018년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졌던 일련의 흐름은 평창올림픽을 발판삼아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NBC 인터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음. 그리고 남북교류협력으로부터 시작하는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약속은 물론 군사분야합의를 이루는 성과를 거둠. 그러나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마저 차단된 상황에서도 현 정부는 북미 간 중재자, 촉진자를 자임하는 한편, 미국으로부터의 첨단무기 도입과 보수정부를 능가하는 군비증강을 지속하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삼.
-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려는 정책이 군비증강과 한미동맹 강화라는 국방정책, 외교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 정부가 인정하고,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노선을 수정할 수 있을까? 현 정부나 민주당이 관성적으로 한미동맹 강화를 계속 주장하고, 민주당은 국방력 세계 5위를 총선 공약으로 내놓고 정부는 코로나19 민생위기 속에서도 내년 국방비를 5.5%나 증액시키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임.
- 또 하나의 문제의식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외교-국방정책의 유기성과 일관성, 관련국들을 설득할 수 있는 치밀한 정책, 단기적인 정치적 유불리를 감내하는 대승적이고 담대한 정책의 전개는 당연히 필요한데, 과연 이것만 잘하면 되는가, 그것으로 충분하냐는 것임.
- 바이든 당선인 등 미 민주당이야 그들이 트럼프가 파괴했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민주주의, 자유무역과 시장자본주의, 팍스아메리카나의 3대 축)’의 회복을 주장할 수 있음. 한국도 국가 차원에서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속에서 전쟁 재발을 막고, 민주화와 경제의 양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사실. 그러나 트럼프 현상이 말해주듯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조합으로 인한 불평등 심화로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다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회복을 지향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혹은 타당한가 하는 것임.
-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에 이어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고, WTO 수장에 한국인이 오르고, 다자무역의 재활성화에 앞장서는 것이 자유주의자의 대안일 수는 있어도, 진보의 대안이 되기에는 문제가 있음.
☞ 대응방향(비판과 제언)
□ 평화를 향한 발상의 전환과 종합적 비전, 유기적 정책, 담대한 실천 필요
- 바이든 당선인과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 등을 설득해 최소한 과도기의 위기를 넘기고 대화의 싹을 유지하기 위한 싱가포르 합의 존중, 한미합동군사훈련 유예 천명 등을 이끌어내야 함. 나아가 싱가포르 합의의 한계인, 3대 목표를 달성할 구체적 방법론의 부재를 뛰어넘는 프로세스의 구체화와 미국 및 북한에 대한 설득을 통해 제2의 페리 프로세스를 현실화시켜내는 것은 현 정부의 당연한 몫. 얼마남지 않은 임기를 의식해 실효성 없는 일회성 행사 성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향후 수년을 지속할 수 있는 정책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함.
- 현 정부는 왜 판문점선언과 남북군사분야합의의 성과를 살리지 못하거나 그것과 충돌하는 군비증강을 지속하는가? 경협과 교류협력에서 시작해 정치, 군사 분야 진전이라는 기능주의로 회귀한 것인가? 경제와 안보의 교환이 아닌 안보 대 안보의 교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들이 있음. 이런 지적에 모 인사는 10.4정상회담이나 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에서 보듯 경협 및 교류협력과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 등이 다 천명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민주당 정부의 정책은 포괄적이며, 제 과제를 병행하려는 것이었다고 함.
- 그의 주장처럼 남북 최고지도자 차원에서 합의는 확실히 포괄적이었다고 할 수 있음. 그러나 이런 합의가 후속 실천으로 현실화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비핵화 과정의 난관 등으로 남북관계도 교착 상태에 빠진 이후 재개를 모색할 때는 주로 교류협력 문제를 우선하는 경우가 많았음. 2019년 하반기 이후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겠다고 나선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
- 문제는 북한이 과거보다 교류협력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고, 경협의 경우에도 대북제재의 올가미 때문에 여의치 않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도 과거 관성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
- 대북정책의 한 축인 국방정책의 경우, DJ 국민의정부 시절이나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IMF 위기가 한창인 1~2년을 제외하고는 ‘튼튼한 안보가 대화를 뒷받침한다’며 군비증강에 매달렸고, 이에 북한이 낯을 붉힌 바 있음. 한미동맹 역시 전략적 유연성 등 주한미군의 공격적 변환을 수용하기도 했음. 그리고 현 정부 역시 2018년의 합의 및 북한의 지속적 입장 천명에도 불구하고 쇠귀에 경 읽듯이 보수정부를 능가하는 군비증강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사실. 북한이 강력 반발하고 각종 단거리 발사체의 능력을 강화하면서 군비증강의 효과가 상쇄되는 등 안보딜레마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의지는 물론 문제의식 자체가 별로 없어 보임.
- 이것은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근간으로 미국의 힘에 기반한 팍스아메리카나를 전제하듯이, 한국의 자유주의 정부 역시 평화란 한미동맹과 자주국방이라는 힘에 의한 안보 유지가 전제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으로 보임.
- 정부는 비핵화가 별 진전이 없다거나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핑계를 대고, 그 주변 인사들은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도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는 주변국 위협론도 제기함. 하지만, 그런 식의 인식과 논리로는 사드 배치도 불가피하다고 승복하거나 합리화할 수 있음.
- 비핵화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포괄적이고 병행적이되 단계적 해법을 밟아야 한다’, 심지어 ‘신뢰 조성을 위한 선제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포괄적 해법의 한 축이자 비핵화 병행의 상대항인 평화의 현실화, 항구화를 위한 군비증강 악순환의 중지, 선제적 군비동결, 상호군축에 대해서는 왜 모르쇠인지 이해할 수 없음.
- 통일·국방·외교 정책을 조정, 통괄하는 청와대 안보실의 기능, 구성, 인원 등을 한반도 평화 정착과 진전에 초점을 맞추어 재구성하거나, 통일부를 한반도평화부로 재구축하고 그 수장이 부총리 겸 NSC 상임부의장이 되어 대통령을 보좌해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한편, NSC 사무처를 강화해 뒷받침하도록 하는 대안도 모색할 필요.
- 이제라도 남북은 물론 주변국과도 상호 안보 차원 불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공동안보의 접근법을 추구하는 지역 차원 안보대화-평화협력체의 토대를 닦을 필요.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를 논의할 다자협의체인 4자회담과 함께 동 논의에 집중할 6자회담 등을 재개할 것을 제기해 중국은 물론 일본 등의 동참도 이끌어낼 필요.
□ 불평등 해소 국내 정책과 세계화의 폐해 해소할 통상 등 대외정책 필요
- 고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고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집권함. 그러나 “모든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선언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한미FTA를 추진함. 문재인 대통령은 “이게 나라냐?”는 외침으로 상징되는 촛불집회로 집권세력이 탄핵되고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들의 여망이 대선으로 이어지면서 당선됨.
- 그러나 소득주도경제는 온데간데없고, 코로나19 사태 와중에서 사회적 약자의 고통이 가중됨에도 불구하고 ‘전국민고용보험제’ 도입, 2·3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에서 보듯 소극적 자세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 여기에 주택매매가뿐만 아니라 전월세도 폭등해 계급·계층·세대 간 자산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 한편, 개발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퇴화하고 있는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한 개혁은커녕, 적어도 일하다 죽게 내버려 두지는 말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마저도 미적거리고 있음. 검찰 특권 개혁의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여권보호를 위한 검찰 견제라는 반격과 추-윤 싸움에 누더기가 돼 버린 공수처 개혁에만 매달리는 형국.
- 국민들은 권력자들의 이전투구에 자신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삶의 불안, 불평등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정치와 국가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지 묻고 있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오바마 시대에 실망한 사람들이 트럼프를 당선시키고 그의 온갖 기행에도 불구하고 트럼피즘이 지속되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음.
- 여야 주요 정당, 특히 현실적 집행력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집권 여당은 이제라도 기득권 장벽 내 소모적 권력투쟁을 멈추고 누구나 존엄하게 살 수 있는 평등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 실천에 나서야 함. 당은 코로나19 시대 더욱 그 필요성이 부각된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의 즉각 도입과 실시,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실현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모든 차별을 금하고 평등 사회를 앞당길 수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동참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부동산 및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획기적 정책의 개발 및 선도가 필요.
- 또한, 통상을 포함한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한미FTA를 비롯한 양자 간 FTA, 혹은 거대 규모의 FTA라고 할 수 있는 RCEP, CPTPP 등에 관성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국내 노동자, 농축산어민 등의 권리 신장과 보호를 전제로 하는 참여국 간 협약, 국내적 보호정책을 우선할 필요. 바이든도 자국의 중산층 보호와 재건을 가장 우선하겠다고 천명하고 있음.
- 코로나 시대 그 필요성이 증대한 리쇼어링(기업의 국내 귀환)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필요. 하지만 섣불리 기업에 유인책을 제공하겠다며 반노동·반환경 친기업 정책을 펴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 기후위기와 불평등 극복을 위한 그린뉴딜의 흐름이 바이든 당선으로 탄력을 받을 가능성. 신규 석탄발전소를 국내적으로는 금하면서도 개발도상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행태는 단기적이고 협소한 국익을 우선한 트럼프의 행태와 다를 바 없음. 국격은 물론 생존을 위해서도 국제적 기후위기 대응 노력에 적극 동참할 필요.
- 미국과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G-0 현상 벌어지자 많은 학자들이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중견국연대를 주장함. 대통령도 코로나19 시대 세계질서를 주도하자며 인간안보를 연대의 핵심 가치로 주장한 바 있음. 국적, 인종, 민족, 계급과 성을 초월한 인간의 가치와 권리의 보편성은 단지 보건과 방역 등에 국한할 수 없음. 무역과 통상 등 국제경제정책에도 적용되어야 함.
- 기업의 국외 진출입에 있어 노동자와 지역 시민 등의 의견 수렴 등을 필수로 하는 등 ‘수정된 세계화’, ‘다수를 위한 통상질서’ 구축에 있어서도 중견국연대, 외교에서의 K-리더십을 발휘할 필요. 당도 이와 관련한 정책을 다듬는 한편, 타국 진보정당, 시민단체 등과의 국제연대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