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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지정학적 갈등 시대에 군비경쟁은 필연? 녹색 군축을 말한다
- 입력 2023.09.15 14:26 조회 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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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정학적 갈등 시대에 군비경쟁은 필연인가, 녹색 군축을 말한다-정욱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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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평화’라는 믿음으로 핵과 전쟁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왔다. 20여 년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에 천착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제8회(2020) 리영희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작으로 《핵과 인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등이 있다.
1. 들어가며
E.H 카는 일찍이 한 국가의 혁명을 빼놓고 역사를 논하기 어렵듯이, 전쟁을 빼놓고 국제정치의 역사와 논리를 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국제정치에서 군사력은 가장 중요한 권력”이고, 이는 곧 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한 무기개발과 군비경쟁으로 이어졌다.(주 : E.H 카 지음·김태현 역, 『20년간의 위기』 (서울: 녹문당, 2000년).) 그리고 정글과도 같은 국제사회에서 생존과 권력을 추구하는 국가에게 안보는 “다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최상위의 가치”로 받아들여졌고, 군사력은 안보를 지키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간주되어왔다. 군사력은 적의 공격 시 이를 물리치는 ‘승리의 수단’이자, 적에게 보복의 두려움을 각인시켜 적의 적대 행위를 방지하는 ‘억제력’으로서도, 그리고 외교적으로도 유용한 ‘지렛대’로도 인식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군사력에 의존하는 안보는 전쟁의 위험을 키우고 전쟁 발발 시 훨씬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안보를 증진시킬 목적으로 군비증강을 무분별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오류가 나타나기 쉽고 그래서 이를 경계해야 할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군사 문제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최근 세계적 차원의 군비경쟁은 냉전 시대보다 더 격렬해지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장기화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세력권 및 전략경쟁도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군비경쟁이 지정학적 위기를 부추기고 지정학적 위기가 군비경쟁을 격화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는 북한의 핵 고도화와 한미, 혹은 한미일의 군비증강이 맞물리면서 한국전쟁 이래로 최악의 군비경쟁에 돌입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도 뚜렷해지면서 지정학적 위기도 증폭되고 있다.
이처럼 주요 국가들이 상대를 위협이자 적으로 삼아 군비경쟁에 여념이 없는 사이에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체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협이 진짜로 나타나고 있다. 바로 기후위기이다. 그런데 군비경쟁과 기후위기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군사 활동 자체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또 지정학적·전략적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후위기 대처에 필수적인 국제협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위기를 넘어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기후변화가 국제분쟁의 주요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본 글은 이 두 가지 문제의식, 즉 군비경쟁과 기후위기가 서로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글로벌 복합위기를 증폭시키는 양대 요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또 이러한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군축을 통한 긴장 완화와 기후위기 대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2.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
1) 이론적 고찰
흔히 국가의 군비증강은 무기와 장비, 그리고 병력과 같은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행위, 군사적 준비태세 강화 및 군사 훈련의 실시, 군사동맹의 형성 및 강화 등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나 군비증강이 명시적, 잠재적 위협세력이 존재하거나 존재한다고 인식하면서 발생하듯이, 어떤 나라의 군비증강은 적대 세력으로 간주되는 상대방의 대응을 수반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군비경쟁은 “정치적 분쟁에 얽혀 있는 국가들이 상대방의 군사적 증강 태세를 인지하고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높여가는 작용-반작용의 현상”으로 정의된다.(주 : Steve Tulliu and Thomas Schmalberger, Coming to Terms with Secuirty: A Lexicon for Arms Control, Disarmament and Confidence-Building (UNIIDIR, 2003), 신동익?이충면 번역, 『군비통제, 군축 및 신뢰구축 편람』 (서울: 외교통상부, 2004), p.5.) 대개 군비경쟁은 적대감과 상호작용이 있는 행위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상대방의 군비증강에 불안을 느낀 행위자가 이에 대응해 군비증강을 하는 상호작용(action-reaction)이 반복되는 상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주 : 한용섭, 『한반도 평화와 군비통제』 (박영사, 2004년), pp. 213-214.)
한편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는 자신의 안전을 증진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가 상대방의 반작용을 야기해 자신의 안보를 오히려 위태롭게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안보 딜레마 역시 적대감과 상호작용이 있는 국가들 사이에, 혹은 국가군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적대감이 없다면 상대방의 군비증강에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을 수 있고, 또한 상호작용이 없다면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 역시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안보 딜레마는 개념적으로 군비경쟁과 대단히 흡사하다. 다만, 군비경쟁은 군비증강이라는 국가 간, 혹은 국가군 사이의 구체적인 정책이 만들어낸 과정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안보 딜레마는 군비증강 및 군비경쟁에 따라 나타나는 심리적인 상황이자, 군비경쟁을 악화시키는 심리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보 딜레마가 반드시 군비경쟁을 악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A의 군비증강(작용)→이에 불안을 느낀 B의 반작용→B의 반작용에 의한 A의 불안감 증대’를 안보 딜레마라고 할 때, 이것이 군비경쟁 격화로 이어질지 여부는 A의 선택과 B와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B의 반작용에 불안감이 증대된 A가 또다시 군비증강을 선택한다면 상호 간의 군비경쟁 격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대로 불안감이 증대된 원인이 자신의 작용에 대한 B의 반작용에 있다고 보거나 자신의 추가적인 군비증강이 상대방의 추가적인 반작용을 야기해 자신의 안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추가적인 군비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상대방과의 협상을 선택하거나 스스로 군비증강을 자제하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어느 일방의 이러한 우려와 선택이 상대방과 공감을 만들어내면, 군비경쟁 대신에 군비통제와 군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지속적인 군비경쟁의 여부는 안보 딜레마를 느낀 행위 주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격용 무기에 이어 방어용 무기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미국과 소련이 1972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을 통해 공격용 무기뿐만 아니라 방어용 무기도 통제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무분별한 군비경쟁이 안보 딜레마를 격화시켜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협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2) 군축의 종말과 글로벌 군비경쟁의 부상
냉전 시대의 군축은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호확증파괴는 냉전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수만 개의 핵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소련이 ‘나를 공격하면 너도 죽는다’라며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생존을 의존했다. 공교롭게도 줄임말이 매드(MAD)다. 그런데 냉전기의 ‘매드’는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일은 벌이지 말자는 인간 이성의 최저치에 대한 호소로 이어졌다. 경쟁은 하더라도 전략적 안정이라도 취하자는 것이었고, 군비통제와 군축 조약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1970년대 미-소 데탕트 시대를 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탄도미사일방어체제를 사실상 금지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 그리고 유럽 탈냉전의 시작점이었던 헬싱키 프로세스와 다양한 군축 조약, 핵무기 감축 시대를 연 중거리핵전력(INF) 조약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 조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실 끝에 매달려 있다. ‘군축의 종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2년 이래 “국제평화와 전략적 안정의 초석”으로 일컬어졌던 ABM 조약이 2002년 미국의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탈퇴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 결정타였다. 그리고 사상 최악의 군비경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글로벌 국방비의 추이를 보더라도 이러한 진단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집계한 세계 군사비의 흐름을 보면, 2020년 화폐 기준으로 2000년 후반에 1980년대 후반기를 넘어섰고, 2021년에는 사상 최초로 2조 달러를 돌파했다. 또 2022년 세계 군사비는 2조2천4백억 달러에 달했는데,(주 : https://www.sipri.org/sites/default/files/2023-06/yb23_summary_en_1.pdf) 이는 세계 군비지출이 가장 컸던 1980년대 후반보다 약 6천억 달러가 많다. 그런데 앞으로 세계 군사비 상승폭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세계 양대 군비지출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있고, 주요 국가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출처: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World military expenditure passes $2 trillion for first time”, 2022.4.25.https://www.sipri.org/media/press-release/2022/world-military-expenditure-passes-2-trillion-first-time.
1990년 이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국방비를 늘려온 중국은 올해에도 약 2,400억 달러를 국방비로 책정했다. 이는 전년도보다 7.2% 늘어난 것이고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5%)보다도 높다. 미국은 중국과의 격차를 더 벌리겠다고 작심한 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국방비를 끌어올리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24년도 국방예산안은 무려 8,860억 달러에 이른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이마저도 적다며 더 끌어올리자고 한다. 국방비 규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미국 의회는 행정부가 제출한 2022년 국방예산안도 250억 달러를 증액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 내 분위기를 감안할 때, 2~3년 안에 미국 국방비는 1조 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들로 재무장을 자제했던 독일과 일본도 대대적인 군비증강에 착수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1.1~1.4% 수준을 유지했던 독일은 GDP의 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GDP 대비 1% 수준을 유지했던 일본 역시 향후 10년에 걸쳐 2%까지 늘릴 계획이다. 냉전기에도 없었던 이들 나라의 군사대국화는 신냉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요구한다. 한국도 밀리지 않는다. 20년 사이에 우리나라 국방비는 무려 3배가 껑충 뛰었고 그 결과 3년 연속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은 남한 국방비의 10분 1 이하 수준이지만, 핵무기 고도화와 각종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나라가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종합해 볼 때, 세계 군사비는 2030년에는 3조 달러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3. 기후위기에 기름 붓는 군비경쟁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이 군비경쟁에 매몰된 사이에 기후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경종이 울렸음에도 주요국들은 기후위기 대처를 뒷전으로 미루고 편협하고도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매몰돼 있다. 보다 못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3월 “화석연료 중독이야말로 상호확증파괴에 해당된다”며 인류가 “몽유병자처럼 기후재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올해 7월에 전 세계 곳곳이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폭염으로 몸살을 앓자 이제는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복합위기의 양대 축은 전쟁 위험을 머금고 신냉전의 기운 속에 격화되고 있는 군비경쟁과 실존적 위협으로 성큼 다가온 ‘기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글로벌 복합위기를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군비경쟁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면서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와 국제협력의 저해를 초래하고 있다. 또 악화한 기후위기는 분쟁의 주된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고 빈번해지는 분쟁은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불평등, 경제 불안, 대규모 난민 발생 등 다른 위기로도 이어진다. 이는 거꾸로 군비경쟁과 기후위기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군사 무기와 장비를 만들고 이것들을 운용·연습·훈련·작전하는 과정에서, 지구촌 곳곳에 퍼져 있는 군사 시설과 부대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또 분쟁과 전쟁, 그리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계 각국의 군사 활동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5~6% 정도를 차지한다는 분석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민간 분야의 항공(1.9%), 해운(1.7%), 철도(0.4%), 파이프라인(0.3%)을 합한 것보다 많다.(주 : Stuart Parkinson. 2020. “The carbon boot-print of the military.” https://www.sgr.org.uk/resources/carbon-boot-print-military-0.)
또 영국의 더함 대학교와 랭커스터 대학교 연구팀이 미국 국방성(펜타곤)이 사용한 연료량을 분석해 산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펜타곤을 하나의 국가로 간주할 경우 2017년에 내뿜은 탄소량은 5,900만 톤으로 세계 47위에 달한다고 한다. 펜타곤이야말로 “대부분의 나라들보다 더 많은 화석 연료를 소비하고 더 많은 탄소 배출을 하고 있는, 역사상 가장 큰 기후 오염자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주 : Jangira Lewis. 2021. "US Military Pollution: The World’s Biggest Climate Change Enabler." https://earth.org/us-military-pollution/.) 2017년에 펜타곤이 소비한 화석연료의 양이 스웨덴과 덴마크 전체가 사용하는 양보다도 많았을 정도이다.(주 : https://www.bostonglobe.com/2021/12/23/science/how-us-military-fuels-climate-change/) 이러한 현실을 두고 미국 브라운대의 ‘전쟁 비용 프로젝트(Cost of War Project)’ 연구팀은 “펜타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소비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관”이라고 일갈한다.
이처럼 군사 활동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군용기, 함정, 전투차량 등 주요 무기와 장비가 대부분 다량의 화석연료로 기동 되고 연비도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개 자동차의 연비는 30mpg 정도이다. 이에 반해 전투용 지프차(험비)는 자동차의 5분의 1 수준인 6mpg, F-35 전투기는 50분의 1인 0.6mpg, B-2 전략폭격기는 100분의 1인 0.3mpg에 불과하다. 다량의 연료 소비와 낮은 연비는 다량의 탄소 배출로 연결된다. 1회 작전 임무 수행 시, 전투용 지프차는 260 kgCO2e, F-35는 27,800 kgCO2e, B-2는 251,400 kgCO2e를 배출하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주 : Stuart Parkinson. 앞의 글(2020).)
또 폭등하는 군사비는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수반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미 많은 탄소를 배출했고 또 현재도 그러한 선진국들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개발도상국들의 동참도 반드시 요구된다.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저탄소형, 혹은 탄소 제로형 인프라와 기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자체적으로 이에 필요한 재원과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다.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의 기후협약 이행을 위해 매년 1천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10~2016년까지는 5백억 달러 안팎을 맴돌았고 그 이후에도 8백억 달러 수준이었다.
이처럼 기후 기금 재원 조달은 크게 미달한 반면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주도해온 세계 군사비는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50여 명의 사람은 2021년 12월에 “인류를 위한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세계 각국이 5년 동안 매년 2%씩 군사비를 줄이고 이 가운데 절반을 전염병, 기후변화, 극한 빈곤 해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인 제안”에 호응하는 나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군비경쟁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국제협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미·중은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면서도 기후변화 대처에는 협력을 다짐했지만, 아직까진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온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협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4. 군축은 기후위기 대처에 얼마나,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대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완화’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즉 임계점을 지나면 돌이킬 수 없다. 섭씨 1.5도는 이를 대표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인류의 안전 및 생태 보전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선’으로 제시한 수치이다. 각국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대비 2도, 더 나아가 1.5도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과 그 이후 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한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2019년 배출량 기준으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84%를 줄어야 하고 이에 앞서 2030년까지는 43%를 줄어야 한다.
또 하나는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다. 초창기 적응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기후위기가 몰고 오는 영향이 선진국을 포함하여 전 지구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적응에 대한 논의 또한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홍수, 가뭄, 태풍 등이 빈번해지고 빙하와 만년설 해빙과 해수면 상승이 빨라지면서 적응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군축은 이러한 기후위기 대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우선 군사 활동의 축소는 탄소 배출의 감축으로 이어져 기후위기 ‘완화’에 기여하게 된다.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이 전체 탄소 배출의 5.5%를 차지한다면, 이는 연간 약 20억 톤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탄소예산’은 얼마 남지 않았다. 탄소예산은 상승하는 지구의 기온을 특정 온도 이내로 붙잡아두기 위해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의미하는데, ‘1.5도 이하’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예산은 2500억 톤밖에 남지 않았다. 매년 380억 톤을 배출한다고 가정하면 7년 이내에 바닥나는 셈이다. 그런데 군사 부문에서 향후 7년 동안 10%의 탄소 배출을 줄이면 총 14억 톤을, 20%를 줄이면 총 28억 톤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군축이 기후위기 대처에 기여할 수 있는 더 유력한 방법은 국방비 감축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예산의 증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완화’와 ‘적응’ 모두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비 감축은 해당국의 탄소 배출 감축 및 기후위기 적응 예산 증대에도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경제체제 전환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예산이 전 세계 GDP의 1% 수준(약 1조 달러)이다. 천문학적인 액수이지만, 선진국들 중심으로 비상한 결단을 내리면 불가능한 액수도 아니다. 세계 군사비를 내년부터 2030년까지 연 2조 달러 수준으로 묶어두고, 이를 예상되는 군사비 증액과 비교하면, 7년 동안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이 5조 달러에 육박한다. 1.5조 달러로 줄이면 8.5조 달러로 늘어난다. 불가능한 액수로 비칠 수 있지만, 과거 사례를 복기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중후반 세계 군사비는 1조6천억 달러였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1조1천억 달러까지 떨어진 바 있기 때문이다. 군비축소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도 보여주고 있다.
5.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군비통제와 군축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기후위기 등 글로벌 복합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은 그 당위성에 비해 현실성은 크게 떨어진다.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 군사 분야 탄소 배출량 보고를 제외키로 했고, 2015년 파리협정에선 의무사항이 아니라 자발적 선택사항으로 담겨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안보 예외주의는 기후위기 대처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군비 축소를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 대응 예산을 늘리자는 주장에 동의할 국가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2021년 12월에 5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세계의 모든 나라가 국방비를 2%씩 줄여 기후위기 등에 사용하자고 촉구했지만 이에 호응한 나라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명확하다. 기후위기 대처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군축을 통해 평화와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의 역할과 분발이 전제되어야 한다. 반핵 운동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핵무기를 ‘금기의 무기’로 만들고 냉전을 촉발·격화시킨 무기를 냉전을 종식시킨 무기로 둔갑시킨 데에는 세계 시민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핵무기를 만든 핵물리학자들이 반핵 투사로 변신했고, 의사와 과학자들이 핵실험과 핵무기 사용이 얼마나 인체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냈으며, 평범한 시민들이 핵전쟁의 공포에 맞서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반핵의 물결로 넘실거리게 했다. 이러한 시민의 힘이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미국의 레이건 등 국가 지도자들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발판으로 삼아 이제는 ‘기후위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기후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결집해 각국 정부에 대한 설득과 압박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군축을 통한 기후정의 실현에 나설 수 있는 국가들을 찾아야 한다.
먼저, 선도국의 역할이다. 우선 세계 양대 탄소배출국이자 경제대국이며 군비지출국가인 미국과 중국의 솔선수범을 떠올려볼 수 있다. 2023년 미국의 국방비는 약 1천2백조 원이고, 중국의 국방비는 약 4백조 원이다. 이 가운데 10%를 기후위기 대응용으로 전환한다면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 미·중 가운데 어느 나라가 먼저 이러한 선택을 한다면, 상대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냉정하게 볼 때, 이상론에 가깝다.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고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도 대중 견제심리가 매우 강한 미국이 솔선수범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중국은 역사적 (누적) 탄소 배출량이 미국보다 현저하게 적고 국방비는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먼저 나서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에 대한 설득과 압박의 수위는 계속 높여야 한다. 군축을 통한 기후위기 대처의 선도국이 되는 것이 배타적이고 악의적인 경쟁을 선의의 경쟁으로 전환시키고, 국제사회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이라는 점을 설파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의 민심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나은 방법은 미·중이 협력해서 두 나라가 함께 나서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군축을 통한 평화와 기후정의 구상에 두 나라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국적, 양자적 차원을 넘어 다자적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포함된 다자주의로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그룹과 G20을 떠올려볼 수 있다. 경제선진국들의 모임인 G20이 지구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총량의 75~80% 수준이다.(주 : https://www.orfonline.org/research/climate-performance-index/) 또 G20 소속 국가들은 국방비 지출에서도 대부분 상위권에 들어 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G20이 군사활동 축소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국방비 감축을 통해 기후위기 대처 재원을 마련키로 결의하면 큰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주도해 ‘군축을 통한 평화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결의’를 채택하는 방법도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크게 두 가지 특권적 지위를 유지해왔다. 하나는 공식적인 핵보유국이라는 지위이고, 또 하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이다. 이러한 지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국제평화와 안정을 지킬 책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가 지구촌의 실존적 위협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이들 5개국은 지구 온난화에 가장 큰 책임을 갖고 있기도 하다. 5개 상임이사국은 1750년부터 2021년까지의 탄소 배출에 있어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압도적인 1위이고, 중국은 2위, 러시아는 3위, 영국은 5위, 프랑스는 8위이다. 또 이들 5개국의 2022년 국방비 합계는 약 1조3,700억 달러에 달해 세계 국방비 총액의 60%에 육박한다.
이러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과 특권, 그리고 임무와 현황을 고려할 때, 군비 조절을 통한 기후위기 대처 기여에 P5(5개 상임이사국)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가령 P5가 2022년 대비 국방비를 10% 줄이면, 연간 1,370억 달러를 기후위기 대응 예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 미국·영국·프랑스와 중국·러시아가 군비경쟁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결의는 상호주의의 맥락도 품고 있다. 또 유엔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의 동참도 끌어내는 데에 효과적이다.
기후위기가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의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개인에서부터 기업과 정부, 그리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왔다. 이와 같은 다방면의 노력은 배가되어야겠지만, 동시에 ‘큰 구멍’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바로 군사 부문이고, 그래서 이 부문에서도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세계 각국이 국방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그 정책이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 체념과 절망을 딛고 ‘할 수 있다’라는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용단이 절실해지고 있다. 군축의 종말 시대를 딛고 군축을 통해 평화와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대장정에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참고 문헌]
- E.H 카 지음·김태현 역. 『20년간의 위기』 서울: 녹문당, 2000.
- Steve Tulliu and Thomas Schmalberger, Coming to Terms with Secuirty: A Lexicon for Arms Control, Disarmament and Confidence-Building (UNIIDIR, 2003), 신동익·이충면 번역, 『군비통제, 군축 및 신뢰구축 편람』 서울: 외교통상부, 2004.
- 한용섭, 『한반도 평화와 군비통제』 박영사, 2004.
- Lewis, Jangira. "US Military Pollution: The World’s Biggest Climate Change Enabler." 2021. https://earth.org/us-military-pollution/.
- Parkinson, Stuart. "The carbon boot-print of the military." 2020.
https://www.sgr.org.uk/resources/carbon-boot-print-military-0.
-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홈페이지: https://www.sip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