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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의』제9호
위기의 외교 · 안보, 평화의 모색
- 입력 2023.09.15 14:00 조회 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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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는 지금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을 향한 격변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일부 보수적 시각에서는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세력과 기성 지배 세력 사이 갈등이 결국 전쟁과 같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투키디데스 함정’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결국 미·중 간 패권경쟁의 결과가 미국의 승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모호한 확신 속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한미일 3각 동맹에 편승하여, 한·미·일 대 북·중·러의 적대적 대결을 촉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자해성 외교 정책이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외교 정책은 오히려 한반도, 동아시아, 세계로 연결된 평화·협력 체제로 나아가는 여러 가능성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이미 안보와 경제가 분리될 수 없는 현실에서 남과 북, 동아시아 국가, 그리고 아세안과 태평양 국가 사이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다층적 협력을 스스로 차단할 수밖에 없으며, 대한민국의 군사 주권과 안보 주권 또한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확고한 군사동맹에 입각한 외교·안보 정책은 핵무기를 포함하는 새로운 군비경쟁으로 귀결되면서, 일국 차원을 넘어 지구 생명체 절멸의 불안을 키우는 거짓 평화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군비경쟁은 대규모 탄소 배출에 따른 기후위기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도 반드시 억제되어야 한다.
최근 준비된 <2023 혁신재창당 정의당 사회비전>이 제시하는 ‘생태사회국가/녹색돌봄사회 10대 비전’ 중 하나인 [한반도·동아시아를 전쟁이 아닌 생태 전환의 출발지로 만드는 그린 데탕트를 추진한다]라는 평화·통일 비전은 이러한 절멸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적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이 평화·통일 비전은 정의당의 지난 20대 대선 정책을 발전시킨 것이다.
평화·통일 비전에 제시하는 ‘동아시아·한반도 그린 데탕트’는 한반도의 생태 평화적 전환이 동아시아의 그것과 분리될 수 없으며 동시다발로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동아시아 그린 데탕트’는 지역 안보협력을 발전시키는 ‘동아시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라 할 수 있다. 이는 전쟁 절대 반대, 대규모 군사훈련 중지, 군사 분야 탄소 배출 보고 의무화 등을 담고 있으며, 남북 군비증강 대결 중지와 남북 재생가능에너지 협력, 산림협력을 결합한 ‘한반도 그린 데탕트’의 실현 과정과 함께한다. 한반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 진전과 함께 남북한과 일본, 그리고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함께 하는 동북아 3+3 비핵지대화를 제안하여 추진한다. 일체의 대화도 없이 강경 대응의 악순환만 강화되는 현재의 대립 국면을 대체하는, 이러한 협력 국면을 열기 위해서 ‘남·북·미·중 4자 평화회담’을 제안한다. 또한, 남북관계에서는 ‘평화 없는 흡수통일’은 물론 ‘적대적 공존’ 모두를 배격하고 평화와 협력의 제도화-항구화, 점진적 과정으로서의 통일, 평화적 통일의 정신과 내용을 기조로 하는 남북기본협정 체결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중 스케일의 평화 프로세스가 정체되거나 후퇴하지 않도록 남북한의 다양한 경제 주체들을 위한 ‘남북경제사회협력강화 협정’ 체결도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정의당의 평화·통일 비전에 대해 누군가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적 발상이라 비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을 단지 근거 없거나 진영론에 따른 편협한 비난으로만 여길 수만은 없다. 현실은 이미 절멸의 시대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게 역동적으로, 그리고 불확실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정책연구소의 <보다 정의> 제9호의 주제를 갈등하는 국제질서 속 평화의 모색으로 잡은 이유는 바로 이상주의적 발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서이다. 남북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오래전 훈련 공습경보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이념적 맹비난과 동시에 강력한 대응을 대통령이 선포한 상황에서, 평화와 안보에 관한 정책을 대안적으로 또는 정권의 기조와 다르게 논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그만큼 이번 <보다 정의> 제9호의 필진들의 혜안은 물론 용기에도 특별히 감사드린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과 좋은 토론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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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김준형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의 "격변의 세계질서와 한반도의 위기,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협력적이고 통합적인 글로벌 거버넌스가 무너지고 배타적 민족주의와 지정학적 진영대결 구조가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 한국의 외교가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를 지향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 더하기는 한·미·일과 북·중·러라는 진영편중 전략을 벗어나서 대외전략 자산을 더욱 확대하고 다변화하는 것이다. 김준형 교수는 특히 미·중 전략경쟁 판에서 배타적 선택 프레임에 빠지는 것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우리와 유사한 입장과 능력을 지닌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한 외교·안보적 완충지대 구축을 제안한다.
김종대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의 "미·중 장기 전략경쟁 속의 평화 만들기"는 장기 전략경쟁으로 표현되는 미·중 간 경쟁이 패권경쟁으로 비화할 경우 자칫 민주주의의 후퇴, 경제적 교류에 대한 정치의 과도한 간섭에 따른 신중상주의의 출현, 기업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투자 위축을 동반하는 ‘신중세주의’로의 회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필자는 그런 패권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 집단안보 등 전쟁 기획이 아닌, 동료 시민들이 평화와 번영의 공공재의 의제화와 함께 주도하는 민주주의와 회복력 있는 경제를 위한 ‘회복의 공간’을 만들고 ‘존중의 외교’ 등을 통해 평화를 기획하고 구축하는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기후경제와 디지털경제 정책연구자인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전 소장의 "동아시아 산업경쟁과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 녹색산업정책과 기후대응 평화협력"은 미·중 간 장기 전략경쟁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인 정치경제학적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김병권 전 소장은 대중(對中) 경제제재가 트럼프 정부보다 바이든 정부에서 더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한국이 미·중 경쟁의 자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져 경제적 의존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 냉전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기후대응과 같은 공통의 대응 명분으로 평화와 협력 코드를 살리는 것과 함께, 녹색산업정책을 착실히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의 "지정학적 갈등 시대에 군비경쟁은 필연? 녹색 군축을 말한다"는 앞서 언급한 정의당의 ‘그린 데탕트’의 핵심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정욱식 대표는 글로벌 군비경쟁이 새롭게 급부상하면서 군축의 종말로 이어지는 듯하고, 기후위기를 더욱 빠르게 악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군비통제와 군축을 통해 군사적 긴장 완화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등 글로벌 복합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정욱식 대표의 혁신적이고 전환적 사고는 정체된 채 불확실성과 불안을 키우는 관성화된 사고보다 진보 정치를 힘있게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준규 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의 "한반도 비핵화의 위기, 진보적·평화적 대안을 위해"는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로 표현되는 윤석열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와 핵우산 등 확장억제 강화에 집중하는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함께 핵무장론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다시 촉진하기 위한 세 가지 필요조건을 제시한다. 우선 상호 자극 군사훈련을 자제하고, 이와 함께 비핵평화 프로세스 추진을 위해 다자협의 틀을 복원하고, 나아가 핵무기 금지조약을 국제규범으로 공고화하기 위해 국제사회 운동과 연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의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 병행 가능성의 탐색"은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이고 조화로운 두 가치가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라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담론 속에서는 양립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실상 서로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면서,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가 어떻게 상호 조화를 이루며 발전 가능할지의 고민을 나누고 있다. 이 둘은 어느 하나가 우선시 되거나, 다른 하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며, 분리되어 다뤄지는 것도 위험하다. 평화권과 인간안보 개념은 이 둘의 조화를 위해 중요하며, 주관적 대북관이나 특정한 대북정책을 맹신하는 것을 피하는 것 또한 필요조건이다.
윤영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조교수의 "한반도 적대적 갈등구조의 평화적 전환과 남북한 상호승인"은 남북한의 갈등이 적대적으로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해, 남북이 자주적으로 택할 수 있는 효과적이면서, 동아시아 평화 프로세스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으로서 ‘남북한 상호국가승인’을 제안하고 있다. 남북한 상호국가승인은 종전/평화협정과 달리, 주변 강대국이 아닌 남북한이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으며, 오히려 동아시아 평화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촉진할 가능성을 크게 만들어 준다. 이는 현재 남북관계보다 더 적극적으로 군축 및 군사적 긴장 완화를 발전시킬 수 있고, 다각적 협력과 교류를 통한 평화 기반을 폭넓게 형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논의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수현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20대 대선 정의당의 적극적·포괄적 평화·외교 정책과 과제"에서 위 정의당 사회비전 중 평화·통일 비전의 정책적 근간을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은 지난 대선 이후 지금까지 변화된, 그러면서도 관통하는 동아시아 외교, 안보, 남북관계의 특징을 분석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정의당이 주장하는 ‘그린 데탕트’, ‘남·북·미·중 4자 평화회담’ 등 핵심적 정책 구상의 배경과 내용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