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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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응시] 지역주의가 아닌 승자독식이 문제
한국선거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세대, 그 뒤를 이념과 젊은층에서 부상하고 있는 젠더가 뒤따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작년 총선에서 김부겸 총리 등 4년 전 대구에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전멸한 것이 그 증거다. 작년 전국적 지지율이 높았던 이낙연 의원에게 역사적으로 백제, 호남이 한반도를 통합한 적이 없는데 이 의원이 승리한다면 “이건 역사다”라고 이야기했다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인터뷰 때문에, 때아닌 지역주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사는 덕담을 지역주의로 몰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낙연 등 호남의원들은 백제 운운한 것 자체가 ‘지역주의 프레임’이며 겉으론 덕담이지만 내용은 ‘은폐된 호남불가론’이며 ‘전국적 확장성’을 들고 나온 것 역시 ‘호남불가론’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장애인’을 선의로 ‘장애우’라고 부르는 것이 차별이듯이, 이 지사는 선의였다고 생각되지만, 백제 운운한 것 자체가 지역주의와 호남의 역린을 건드린,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었다. 확장성을 지역을 중심으로 본 ‘전국적 확장성’이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지역주의는 휴화산이 아니라 활화산이며, 여기에서 진짜 쟁점은 둘 중 ‘누가 지역주의인가’가 아니라 ‘어떤 지역주의냐’이다.
2002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광주·호남은 지역 출신인 한화갑 대신에 영남 출신의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대선에서도 그를 밀었다. 5년 전인 199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에서 대구·경북은 ‘영남후보 필승론’을 내건 지역 출신 이수성 대신에 충청 출신 이회창을 지지했고 대선에서도 그를 찍었다. 이는 지역주의인가? 아닌가? 지역주의지만 과거와는 다른 지역주의다. 1997년 대선 이후, 우리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출신지역 중심의 ‘원초적 지역주의’로부터 출신지역을 넘어 ‘누가 상대지역 후보를 이길 확률이 더 큰가’라는 ‘전략적 지역주의’로 진화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를 떠나 있었고 정동영, 손학규가 당권과 대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던 2011년 초, 나는 곧 문 대통령이 뜰 것이라는 엉뚱한 글을 썼다. 정동영은 정통성은 있지만 확장성이 없고 확장성이 있는 손학규는 ‘짝퉁 한나라당원’이기 때문에, 호남의 전략적 지역주의에 의해 정통성도 확장성도 있는 문 대통령이 뜨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실은 내 예측대로 흘러갔다. 전략적 지역주의는 이처럼 호남이 대선에서 호남 출신을 배제하고 영남 출신을 지지하는 역설을 정착시켰다. 김욱 교수는 이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라고 비판하며 1당 지배 지역정당체제와 대통령제와 같은 승자독식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책을 냈다. 현실에서도 호남지역에서 ‘문재인 비판론’이 등장했고, 2016년 총선에서 호남에서 민주당이 참패하고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압승을 거두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러나 2017년 대선에서 호남은 다시 전략적 지역주의에 의해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번 여권의 대립을 파고들어가면, 원초적 지역주의와 전략적 지역주의 간의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생겨난 말 중에 ‘영충호’가 있다. 호수 이름이 아니라 ‘영남·충청·호남’의 준 말로 세종시 건설 등으로 인구에서 영남에 이어 충청이 호남을 앞질렀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인구의 절대적 열세를 생각할 때, 호남 스스로 호남을 배제하고 영남 후보를 미는 역설이 계속될 개연성이 크다. 사실 권한대행 출신인 최규하는 논외고, 충청과 손잡아 승리한 김대중을 빼면 박정희 이후 모든 대통령들이 영남 출신이다. 이는 승자독식의 체제 때문이라는 점에서, 호남·강원·제주 등 소수지역, 노동자·여성·동성애자·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를 배제하는 승자독식 체제를 깨야 한다. 소수자를 포용하라고 반쪽짜리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더니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되레 독점을 심화시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에서 멀어지고 위기에 처한 것도 조국 사태부터가 아니라 승자독식주의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도 더불어민주당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정의당과 국민의당, 국민의힘의 일부 의원 등이 같이한 것이며 의석수 역시 과반이 되지 않아 개혁입법을 위해 촛불연정이 필요했고 공유와 공생의 정치가 시대정신임에도 불구하고, 집권과 함께 촛불연정을 내동댕이치고 승자독식주의로 갔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소모적인 지역주의 논쟁을 넘어서 위성정당 없는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내각제 내지 대통령제 개혁, 남한연방제 같은 근본적 지방분권 등 승자독식 체제 해체를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