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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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백기완이 그립다
겨울이 문 앞이다. 절기만이 아니라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는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무능한 윤석열 정부는 갈수록 극우적 색채를 띠어 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허우적대며 방어적 대정부투쟁에 올인하고 있다.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으로 창당 10년을 맞은 정의당도 존폐 기로 속에서 재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일부에서는 퇴진촛불을 들고 있지만 어렵게 만들어준 촛불항쟁을 더불어민주당이 어떻게 말아먹었는지 잘 보았기에, 많은 국민들은 “한 번 속았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답답한 마음에 ‘민주성지’로 많은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남양주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2년 전 전태일 열사 옆에 차갑게 누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세월이 답답한 만큼, 그의 가르침과 천하를 호령하던 그의 사자후가 그 어느 때보다 그립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많은 원로와 재야인사들이 있었지만, 백기완은 특별하다. 재야 원로들이 군사독재정권과 그 후예들을 상대로 치열한 민주화투쟁을 했지만, 이 중 상당수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소위 ‘민주정부’, 정확히 표현해 ‘자유주의(리버럴)’ 정권과는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이들에 대한 비판은 보수세력을 도와주는 ‘내부 총질’이자 ‘이적 행위’라는 진영논리에 의해 자제해 왔다. 반면에 백기완은 ‘영원한 재야의 사령관’으로 이들 정부와도 거리를 두고 살았고 이들에 대한 죽비를 멈추지 않았다. 최근 들어, 특히 촛불 덕으로 ‘주류교체’가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주류’는 ‘냉전적 보수세력’이었다. 민주화운동세력은 ‘비주류’지만 그중 ‘주류’(비주류의 주류)인 자유주의세력은 대통령을 세 명이나, 장관 등은 무수히 배출하는 등 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노동운동 등 기층민중에 기초한 ‘진보세력’은 ‘비주류의 비주류’로 아직도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백 선생은 두 번의 민중후보 대선출마 등이 보여주듯이 ‘비주류의 비주류’의 총사령관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를 상징하는 단어인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으로 노동자들이, 민초들이 해방된 세상을 의미한다. 그는 병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해고노동자의 상징인 한진중공업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복직과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다 눈을 감았다.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지정받고 훈장을 받기 위해 노력할 때, 그는 문재인 정부가 주려고 한 훈장까지도 거부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갈 길을 물었지만, 백 선생은 말이 없다. 내친김에 모란공원을 나서 백기완 기념관을 짓고 있는 대학로의 통일문제연구소로 향했다. 그가 수많은 글과 책을 쓴 이곳은 백기완의 유적을 넘어서 노동자 등 민초들이 1988년 벽돌 하나하나를 기부해 지은 ‘한국 민중운동의 참호이자 지휘소’로 한국민중운동사의 중요한 유적이다. 이곳에는 기념관을 짓기 위해 재건축작업이 한창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 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함석헌, 문익환 목사 등 민주화운동에 큰 획을 그은 어른들의 기념관들이 있지만,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년 전 한국현대사 기행 책을 내기 위해 이들 기념관을 찾았을 때 찾는 이가 없는 황량함에 충격을 받았다. 백기완 역시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잊히거나 잊히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기념관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다행인 것은 통일문제연구소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로에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많은 장소에 있는 만큼 북 카페 운영 등을 통해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고 백 선생의 정신과 기백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은 백기완 정신을 이어받아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민초와 시민들의 작은 정성을 모아 짓기로 해 모금작업을 진행해 왔다. 안타깝게도 기념관 건립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자재값 인상 등으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 선생의 2주기인 내년 2월 개장을 목표로 현재 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모금활동을 하고 있지만, 모금은 더디기만 하다. 주변에 백기완노나메기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후원해줄 것을 부탁했다. 뜻있는 사람들의 동참이 절실하다. 세상이 하수상하니, 백 선생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 이 글은 2022년 11월 15일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 썸네일 사진 출처: 노나메기재단(채원희 촬영, 백기완노나메기재단 (baekgiwan.org))
우리 사회에 많은 원로와 재야인사들이 있었지만, 백기완은 특별하다. 재야 원로들이 군사독재정권과 그 후예들을 상대로 치열한 민주화투쟁을 했지만, 이 중 상당수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소위 ‘민주정부’, 정확히 표현해 ‘자유주의(리버럴)’ 정권과는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이들에 대한 비판은 보수세력을 도와주는 ‘내부 총질’이자 ‘이적 행위’라는 진영논리에 의해 자제해 왔다. 반면에 백기완은 ‘영원한 재야의 사령관’으로 이들 정부와도 거리를 두고 살았고 이들에 대한 죽비를 멈추지 않았다. 최근 들어, 특히 촛불 덕으로 ‘주류교체’가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주류’는 ‘냉전적 보수세력’이었다. 민주화운동세력은 ‘비주류’지만 그중 ‘주류’(비주류의 주류)인 자유주의세력은 대통령을 세 명이나, 장관 등은 무수히 배출하는 등 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노동운동 등 기층민중에 기초한 ‘진보세력’은 ‘비주류의 비주류’로 아직도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백 선생은 두 번의 민중후보 대선출마 등이 보여주듯이 ‘비주류의 비주류’의 총사령관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를 상징하는 단어인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으로 노동자들이, 민초들이 해방된 세상을 의미한다. 그는 병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해고노동자의 상징인 한진중공업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복직과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다 눈을 감았다.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지정받고 훈장을 받기 위해 노력할 때, 그는 문재인 정부가 주려고 한 훈장까지도 거부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갈 길을 물었지만, 백 선생은 말이 없다. 내친김에 모란공원을 나서 백기완 기념관을 짓고 있는 대학로의 통일문제연구소로 향했다. 그가 수많은 글과 책을 쓴 이곳은 백기완의 유적을 넘어서 노동자 등 민초들이 1988년 벽돌 하나하나를 기부해 지은 ‘한국 민중운동의 참호이자 지휘소’로 한국민중운동사의 중요한 유적이다. 이곳에는 기념관을 짓기 위해 재건축작업이 한창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 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함석헌, 문익환 목사 등 민주화운동에 큰 획을 그은 어른들의 기념관들이 있지만,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년 전 한국현대사 기행 책을 내기 위해 이들 기념관을 찾았을 때 찾는 이가 없는 황량함에 충격을 받았다. 백기완 역시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잊히거나 잊히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기념관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다행인 것은 통일문제연구소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로에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많은 장소에 있는 만큼 북 카페 운영 등을 통해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고 백 선생의 정신과 기백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은 백기완 정신을 이어받아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민초와 시민들의 작은 정성을 모아 짓기로 해 모금작업을 진행해 왔다. 안타깝게도 기념관 건립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자재값 인상 등으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 선생의 2주기인 내년 2월 개장을 목표로 현재 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모금활동을 하고 있지만, 모금은 더디기만 하다. 주변에 백기완노나메기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후원해줄 것을 부탁했다. 뜻있는 사람들의 동참이 절실하다. 세상이 하수상하니, 백 선생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 이 글은 2022년 11월 15일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 썸네일 사진 출처: 노나메기재단(채원희 촬영, 백기완노나메기재단 (baekgiw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