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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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광기의 사회’ 대한민국
“요즈음의 한국 사회를 규정하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단연코 ‘반지성의 사회’ ‘증오의 사회’라고 부르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지성적 논의, 합리적 논쟁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한 것은 누구 편, 어느 진영이냐는 편 가르기와 진영논리다. 비극적이지만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더 이상 지성이 아니라 진영논리에 의한 증오다.” 내가 10년 전 이 지면에 썼던 ‘반지성·증오사회’(2013년 6월3일)의 일부이다. 이 글은 이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반지성과 증오가 약화되어 이를 벗어났기 때문인가? 아니다. 반지성과 증오가 ‘광기’의 수준에 이른 ‘광기의 사회’에 달했기 때문이다. ‘광기의 사회’, 2022년 말 우리 모습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고 밉다 하더라도, 세상이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직자가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기를 빌며 국민들이 이 염원에 함께하기를 호소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성직자의 경우 대통령 전용기에 탄 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고려해 전용기에서 윤 대통령 부부만 추락하는 것을 비는 ‘인도주의’와 ‘배려’를 보여줬다. 충격적인 것은 누리꾼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그가 보인 반응이다. 그는 비판에 ‘반사’로 답했다. 한마디로, 자기성찰이란 찾아볼 수 없는 ‘확신범’으로, ‘반사’에서 하늘이 내려준 사명감에 충만해 화형에 처할 이단과 마녀를 쫓던 중세 종교심판관들의 잘못된 정의감과 광기를 본다. 더 무서운 것은 일반 지지자들도 정치인 등이 조금만 자기성찰을 요구하거나 자기들과 다른 입장을 보이면 좌표찍기와 문자폭탄이라는 광기에 가까운 사이버테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냉전적 보수진영도 매한가지다. 한 예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로 총살감’이라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발언이다. 수많은 국민들의 지지로 당선되어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었고 세계 정상들을 만나 우리나라를 대표해온 문 전 대통령이 총살감인 김일성주의자라고 주장한다면,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충격적인 것은 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문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는 신영복”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김일성주의자라는 것이다. 물론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1960년대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은 통일혁명당(통혁당)과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고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로 ‘혁명’을 꿈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영복은 통혁당 주범들과 다른 조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북한을 다녀왔다는 등 황당한 혐의를 씌워 엮은 것일 뿐, 통혁당원도, 김일성주의자도 아니었다. 게다가 전향각서를 썼을 뿐 아니라 오랜 감옥 생활에서 깊은 사색을 거쳐 ‘휴머니스트’로 우리 앞에 나타난 신영복을 존경하는 것이 총살감인 김일성주의자라니, 매카시즘의 광기와 비슷하다. 그뿐 아니다. 국정감사장에서까지도 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라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는 그를 다른 자리도 아니고 노동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이태원 참사도, 젊은 자녀 등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나라 구하다 죽었냐, 자식팔이 장사한다는 소리 나온다”는 등 악담이나 퍼부으니 정상이 아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치권, 나아가 성직자, 지식인 같은 ‘사회지도층’들이 이 같은 광기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와 증오와 광기의 정치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상업주의와 선정주의가 지배하는 SNS와 유튜브, 팬덤정치의 시대에 이 같은 광기에 편승하는 것이 자기 진영의 지지를 얻고 진영의 결속에 도움을 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지도층만은 달라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사회지도층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적대진영’에 대해서도 무조건의 증오 대신에 합리적인 논쟁과 절제를 실천하는 한편 이 같은 것들을 우리 사회에, 특히 자기 진영에 주문해야 한다. 내로남불을 벗어나 상대방에 대한 비판의 100분의 1이라도 자기성찰에 쓰라고 설득해야 한다. 갈등은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지금 같은 저질의, 선정적, 파괴적 갈등, 그것도 큰 차이도 없는 세력 간의 지엽적 문제들을 둘러싼 사생결단식 갈등은 백해무익하다. 새해에는 누군가 광기의 질주, ‘총만 들지 않은 사실상의 내전’에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