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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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제3당복'조차 없다!
언론에 글을 쓰다 보니 가끔 독자로부터 논평을 받는다. 최근 ‘여야의 기이한 복주기 경쟁’(8월23일자)을 쓴 뒤 충격적인 논평을 받았다. 이 글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야당복이 있더니 정권을 내주고 나자 윤석열 정부가 죽을 쑤고 있어 여당복이 있고, 민주당도 여당에 복주기 경쟁을 하고 있으니, 국민 입장에서는 여당복도, 야당복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 후배 학자가 이를 읽고 보낸 답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그 내용이 “우리는 여당복, 야당복만이 아니라 제3당복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여당복이 없는 것도, 야당복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들을 대체할 만한, 최소한 이들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정신을 차리게 할 ‘제3당의 복’조차 없는 것인지 모른다. 이는 현재만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도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다.
현대 한국 정치는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관제야당, 관제사회당까지 만들어 다당제를 키웠던 전두환 시절과 1987년 이후 짧은 지역4당 시기를 제외하곤 사실상 ‘보수양당제’가 지배해 왔다. 헌법재판소가 전국구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며 2006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5·16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원내 의석을 가진 제3당으로 등장했다. 부유세 이후 무상급식 등 복지제도의 비약적 도입이 보여주듯이, 이 정당은 10석밖에 갖지 않았지만 한국 정치의 의제를 선도해 갔던, 작지만 강한 ‘강소정당’이었다. 그러나 이 당이 다수파인 자주파의 ‘친북노선’과 패권주의에 따른 정파대립으로 와해된 뒤 ‘의미 있는 제3당’은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후에도 분열했던 진보진영의 상당수가 합치고 유시민까지 합류한 통합진보당의 실험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제3당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비례의원 부정선거와 폭력사태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진보정당 이외에 안철수의 제3당 실험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 가 있는 안 의원의 현재가 잘 보여주듯이, 이는 기본적으로 보수양당체제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제3당이라기보다는 양당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기회주의 전략에 가까웠다.
물론 지금도 정의당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의당은 노회찬 전 의원이 비극적 죽음을 택하고 조국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당대표의 성추행 의혹 등 연이은 추문을 겪은 뒤 의미 있는 제3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부당하게 해체당한 통합진보당을 이어받은 진보당은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불출마한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하고 지방기초의원 등에서 약진했다. 하지만 정당지지율은 1%대에 그쳐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제대로 된 제3당이 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1인 1표제의 뜻을 살려 얻는 표만큼 의석을 갖게 하는, 독일식을 따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마저 독식하는 거대양당의 승자독식주의를 해체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제도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선에서 이 같은 ‘정치교체’를 공약한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가 된 만큼 민주당이 앞장서 위성정당 금지 등 제도개혁에 나서야 한다.
둘째, 정의당이 발본적인 혁신을 함으로써 진보진영과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제대로 된 제3당’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정의당의 일부 세력이 당 쇄신을 위해 현 비례대표 의원들의 사퇴를 권고하는 안을 제안해 당원 총투표를 했지만 부결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당이 현 상태에 이른 것이 단순히 비례의원 등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이를 추구한 것은 사퇴하는 의원들의 후임으로 자기 정파에서 비례의원을 내려는 정파적 이익 이외에도 내용적으로 근본적인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무언가 극적인 모습을 보여줘 혁신하는 척하려는, 또 다른 ‘이미지 정치’일 뿐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 지도부 선출과 관련해, 올봄에 쓴 ‘정의당은 어디로’(4월19일자)에서 지적했듯이, 정의당은 여의도 중심주의, 명망가 중심주의를 넘어서 풀뿌리로 내려가고 ‘민주당 2중대’ 노선을 벗어나 진보적 색채를 분명히 하는 등 실질적인 내용에서 재창당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 여당복, 야당복은 없다 하더라도 제3당복조차 없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국 정치의 미래가 있는 것 아닌가?
* 이 글은 2022년 10월 4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한 후배 학자가 이를 읽고 보낸 답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그 내용이 “우리는 여당복, 야당복만이 아니라 제3당복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여당복이 없는 것도, 야당복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들을 대체할 만한, 최소한 이들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정신을 차리게 할 ‘제3당의 복’조차 없는 것인지 모른다. 이는 현재만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도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다.
현대 한국 정치는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관제야당, 관제사회당까지 만들어 다당제를 키웠던 전두환 시절과 1987년 이후 짧은 지역4당 시기를 제외하곤 사실상 ‘보수양당제’가 지배해 왔다. 헌법재판소가 전국구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며 2006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5·16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원내 의석을 가진 제3당으로 등장했다. 부유세 이후 무상급식 등 복지제도의 비약적 도입이 보여주듯이, 이 정당은 10석밖에 갖지 않았지만 한국 정치의 의제를 선도해 갔던, 작지만 강한 ‘강소정당’이었다. 그러나 이 당이 다수파인 자주파의 ‘친북노선’과 패권주의에 따른 정파대립으로 와해된 뒤 ‘의미 있는 제3당’은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후에도 분열했던 진보진영의 상당수가 합치고 유시민까지 합류한 통합진보당의 실험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제3당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비례의원 부정선거와 폭력사태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진보정당 이외에 안철수의 제3당 실험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 가 있는 안 의원의 현재가 잘 보여주듯이, 이는 기본적으로 보수양당체제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제3당이라기보다는 양당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기회주의 전략에 가까웠다.
물론 지금도 정의당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의당은 노회찬 전 의원이 비극적 죽음을 택하고 조국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당대표의 성추행 의혹 등 연이은 추문을 겪은 뒤 의미 있는 제3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부당하게 해체당한 통합진보당을 이어받은 진보당은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불출마한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하고 지방기초의원 등에서 약진했다. 하지만 정당지지율은 1%대에 그쳐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제대로 된 제3당이 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1인 1표제의 뜻을 살려 얻는 표만큼 의석을 갖게 하는, 독일식을 따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마저 독식하는 거대양당의 승자독식주의를 해체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제도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선에서 이 같은 ‘정치교체’를 공약한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가 된 만큼 민주당이 앞장서 위성정당 금지 등 제도개혁에 나서야 한다.
둘째, 정의당이 발본적인 혁신을 함으로써 진보진영과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제대로 된 제3당’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정의당의 일부 세력이 당 쇄신을 위해 현 비례대표 의원들의 사퇴를 권고하는 안을 제안해 당원 총투표를 했지만 부결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당이 현 상태에 이른 것이 단순히 비례의원 등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이를 추구한 것은 사퇴하는 의원들의 후임으로 자기 정파에서 비례의원을 내려는 정파적 이익 이외에도 내용적으로 근본적인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무언가 극적인 모습을 보여줘 혁신하는 척하려는, 또 다른 ‘이미지 정치’일 뿐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 지도부 선출과 관련해, 올봄에 쓴 ‘정의당은 어디로’(4월19일자)에서 지적했듯이, 정의당은 여의도 중심주의, 명망가 중심주의를 넘어서 풀뿌리로 내려가고 ‘민주당 2중대’ 노선을 벗어나 진보적 색채를 분명히 하는 등 실질적인 내용에서 재창당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 여당복, 야당복은 없다 하더라도 제3당복조차 없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국 정치의 미래가 있는 것 아닌가?
* 이 글은 2022년 10월 4일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