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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소셜 코리아] 진보정당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일... 6공화국 질서 무너뜨려야
  • 입력 2022.09.02 16:59      조회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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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요즘은 더불어민주당을 '진보정당'이라 부르곤 하지만, 본래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란 '좌파정당'의 대체 용어였다. 한국 바깥 대다수 나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나 혁명적 사회주의처럼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 흐름에 속한 정당들을 좌파정당이라 통칭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분단 반공체제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아직도 '좌파'나 '사회주의' 같은 말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좌파정당을 만들고 가꾸려 한 이들 스스로 진보정당이라 자처해왔다. 

하지만 한국판 좌파정당이라는 규정만으로는 한국의 진보정당을 다 설명했다 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현대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맥락이 있다. 제6공화국 질서에 맞선 도전자라는 성격이 그것이다.

우리 시대의 진보정당 운동은 그 출발점이 1987년 무렵이다. 1987년이면 물론 현 제6공화국 질서의 탄생 시점이다. 이 해에 민주항쟁이 있었고, 뒤따라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다. 한국 사회가 변화의 요구로 들끓었다. 결국 이 요구들을 일부 반영한 새 헌법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20여 년 만에 다시 대통령 직접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새 헌법이 거리의 외침을 반영했다고는 해도 이는 간접적이고 지극히 부분적인 것에 그쳤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민중 집단들의 대표들이 새 헌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국회 안의 기성 정당들이 지금껏 이어지는 헌정 질서를 짰다.


민주항쟁 주역 배제된 6공화국
 

▲ 1987년 새 헌정 질서는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민중 집단들을 배제한 채 짜여졌다. 사진은 19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 당시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그 기성 정당들이란 누구인가? 군부 독재정권의 여당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김대중의 정당들이었다. 광주 학살 원흉이 새 공화국의 중심 설계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한국 정치를 독점하는 양대 정당의 뿌리가 되는 김영삼, 김대중의 정당 말고는 민주항쟁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됐던 것이다.

당장 첫 번째 대통령 직접선거에서부터 이런 신생 제6공화국 질서에 이의와 불만을 표하는 흐름이 대두했다. 무소속 백기완 후보를 앞세운 민중후보 운동이 그것이었다. 여기에 참여했던 세력들은 민중의당을 결성해 1988년 총선에도 뛰어들었다.

이들은 이렇게 1987년 이후 새롭게 열린 정치 공간에 진출하면서도 아직 제6공화국을 넘어서는 방도를 고전적인 혁명론에서 찾았다. 그래서 민중당 같은 진보정당을 만들고 국회에 입성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혁명'을 외치는 지하 사회주의 조직들이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쯤 되면 분위기가 확연히 바뀐다. 소련의 붕괴로 혁명적 사회주의 흐름들이 커다란 타격을 받은 탓이기도 했지만, 김영삼 정부 등장 이후 한국 사회에도 대의민주주의 질서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 무렵부터는 대중정치 공간에서 활동하려는 진보정당 형태가 제6공화국 질서에 대한 도전을 오롯이 대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6~1997년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을 겪으며 정치적으로 각성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뒤늦게나마 합류했다. 2000년에 출범한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운동이 만나 맺은 결실이었다. 

2000년대 초는 제6공화국의 정당 정치사에서 과도기였다. 김영삼에 이어 김대중도 집권에 성공하자 두 사람의 집권을 지상과제로 삼았던 1인 지배 정당 형태는 시의성을 상실하게 됐다. 물론 끊임없이 이른바 재야, 시민사회, 젊은 피 등을 흡수해 현대화를 꾀했으나 총재 1인이 지배하는 명망가 정당이라는 낡은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이제껏 한국 사회에 없던 정당 유형을 선보임으로써 상당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것은 서유럽에 정착된 현대적 정당 정치에 근접한 대중정당 모델이었다. 

원외정당으로 출발한 민주노동당은 당비를 내고 당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진성 당원들을 바탕으로 창당했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특히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에 힘입어 당원을 계속 늘려나갔다. 또한 기성 정당들과 달리 당원들이 실제로 결정권을 행사해 내부 대의기구와 집행기구를 구성했고, 공직선거 후보 역시 당원 투표로 선출했다.


민주노동당을 키워준 두 가지

민주노동당은 유럽에서나 가능하다고 치부되던 이런 정당 활동이 한국에서도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양김 시대가 저물며 정당 정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 보이던 한국 사회에서 이는 분명 신선한 충격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이런 충격을 기성 정치에 대한 더욱 실질적인 도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두 가지 요소 덕분이었다.

하나는 앞에서도 언급한 민주노총의 지지였다. 한국적 맥락에서 보면 민주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나선 노동자들은 제6공화국 수립 과정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배제된 세력이었다. 동시에 민주노동조합의 결집체인 민주노총은 한국 시민사회 안에서 기득권 세력에 맞설 저력을 지닌 거의 유일한 구심이었다.

보다 보편적인 맥락에서 보더라도 조직 노동 세력은 늘 좌파정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대중적 공산당은 하나같이 다 노총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집권에까지 이르렀다. 한국 자본주의에서도 이 경로가 반드시 반복될 것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민주노총의 지지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원외정당으로 출발하면서도 생존력을 갖출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부분 도입이었다. 민주노동당이 낸 헌법소원의 결과로 2001년에 기존 전국구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았다. 그 결과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전국구에 한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병립형'(일본 중의원과 같은 방식)으로 바뀌었다.

민주노동당의 목표는 전체 의석수가 정당 투표 결과로 결정되는 '연동형'(독일 연방의회와 같은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일부 의석에 한해 실시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 민주노동당에는 커다란 기회가 되었다.

이 선거제도가 처음 적용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상당한 바람을 일으켰고, 2년 뒤 총선에서는 드디어 원내에 입성했다. 그간 지역구에서 범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던 유권자의 상당수가 정당투표에서는 진보정당을 선택(이른바 '교차 투표')하기 시작한 결과였다. 


20년의 도전 끝에 마주한 좌절 
 

▲ 정의당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러고 나서 20여 년이 흘렀다. 그간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은 사라졌고, 진보정당운동은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하지만 어쨌든 원내 진보정당으로 정의당이 있고,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등의 진보정당들이 있다.

비록 시련이 있었다 하더라도 20여 년의 세월이면 민주노동당에 디딤돌이 돼준 앞의 요소들을 바탕으로 진보정당이 제6공화국 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했음직하다. 그러나 지금 진보정당들은 그 정도로 성장해 있지 못하다. 아니, 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다음 총선에서 진보정당 운동의 맥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다. 
     
어찌하여 이런 중간 결산서와 마주하게 된 것인가? 20년 세월의 무게에 걸맞게 이를 둘러싸고 이야기할 거리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측면만 짚겠다. 역설적이게도, 진보정당 운동의 장애물이 된 것은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뒷받침했던 요소들의 한계와 모순이었다. 

우선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성공을 반복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비록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에 민주노총이 특정 진보정당을 조직적으로 지지하는 양상은 사라졌지만, 어쨌든 진보정당은 1차적으로 조직 노동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한다고 전제돼왔다.

그러나 한 세기 전 서유럽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진보정당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시간적 특성과 분단 반공국가라는 공간적 특성이 결합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한 반면에 노동자들은 하나의 계급으로 채 성장하지 못했다. 조직 노동 세력이 대기업 정규직 너머로 빠르게 확장하지 못하자 진보정당 역시 그 한계 안에서 정체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럼에도 진보정당은 노동조합과 함께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하며, 여전히 노동계급을 가장 중요한 지지 기반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노력하더라도 이런 지향이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20세기 중반에 이룬 것과 같은 성공과 직결될 수 없음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진보정당이 직면한 침체나 혼란은 새삼스레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노동 중심 정당'을 표방한다고 하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편 진보정당 원내 진입의 결정적인 통로가 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역시 기회 요소에서 위기 요소로 돌변했다. 진보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지난 20년 내내 대한민국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석은 50석을 넘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하는 노선을 취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도록 압박했다. 촛불항쟁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이 목표는 거의 실현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준연동형 도입이라는 기이한 타협과 비례위성정당 촌극을 거치며 결국 처참하게 무산돼 버렸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은 막상 선거제도 개혁은 성사시키지 못하면서, 진보정당이 더불어민주당의 하위 파트너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인상만 퍼뜨리고 말았다. 이런 정체성 위기와 노선 혼란 탓에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의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들을 모두 합친 정당투표 득표율이 5%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이것은 지난 20년 동안 진보정당 전체가 정당투표에서 거둔 최악의 성적이다. 


민주노동당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 8월 25일 오후 민주노총 경남본부에서 열린 "진보정치 전망 모색 집담회”. ⓒ 윤성효


정의당이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참담한 결과와 마주하자 당 안팎에서 여러 진단과 대안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진보정당이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하던 노선에서 벗어나 독자적 비전과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는 흐름에서 많이 보이는 주장은 "민주노동당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2010년대 통합진보당, 정의당의 행보보다는 2000년대 민주노동당의 그것이 진보정당의 원칙에 더 충실했다고 기억되는 탓에 나오는 주장이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04년 총선에서 양대 정당 모두를 극복 대상으로 삼으며 내세운 '판갈이'론을 돌이켜보면 이런 기억과 주장이 영 틀렸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런 외침은 답이 되지 못한다. 시대가 바뀌었고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민주노동당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들(노총의 지지에 바탕을 둔 발전 전망,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한 정치적 영향력 확장)이 이미 벽에 부딪혔다.
     
게다가 2000년대 초에는 신선하게 느껴졌던 민주노동당의 현대적 대중정당 실험이 이제는 하나도 참신하지 않게 돼버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난 20여 년 동안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대중정당의 표준적 구성요소들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히 진성 당원에 바탕을 둔 유럽식 대중정당 모델과 미국식 국민참여 예비경선제를 결합시켜 한국식 대중정당 형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제6공화국과 한국 사회 현실 사이의 괴리가 더욱더 커지는데도 불구하고 양대 정당의 대중적 토대나 시민사회 장악력은 오히려 유례없이 강화돼 있다. 고전적 대중정당 모델만으로는 진보정당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에 비해 더 혁신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30년 묵은 정치 질서 넘어서야

그럼 이제 진보정당 운동의 대안은 무엇인가? 이 짧은 글에서 이를 상세히 타진하기는 힘들다. 다만 진보정당 운동이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대원칙 정도만은 제시하고 싶다. 그것은 무엇보다 진보정당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갈 곳이 민주노동당은 아니다. 그보다 더 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첫머리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제6공화국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애초에 한국의 진보정당은 이 질서에서 배제되고 억압된 이들의 입장에서 제6공화국을 넘어 새 질서로 나아가려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진보정당들은 현 상황에서 다시금 이러한 수단이 되려고 노력하는 데에서 출구를 찾아야 한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독선에 관해 말들이 많지만, 이것은 현 정부-여당만이 아니라 양대 정당이 정치를 독점해온 제6공화국 질서 전반의 무능이자 독선이다. 정치가 이래가지고는 불평등의 심화, 스태그플레이션형 경제 위기, 미국-중국 충돌의 격화, 팬데믹의 지속, 기후 재난의 급속화 등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처할 수 없다. 30년 묵은 정치 질서를 넘어서는 일이 이제는 한국 사회 전체의 존립을 좌우하는 숙제가 되고 있다. 

이런 때에 진보정당들은 '새 공화국 건설운동'의 판을 까는 일에서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이 역사적 임무를 온전히 떠맡을 때에만 현실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활로 또한 조금이나마 열릴 것이다. 반대로, 역사적 임무를 직시하지 않은 채 현실 정치의 활로만 찾아 나선다면 끝내 길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2022년 9월 2일자 오마이뉴스 <소셜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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