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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여야의 기이한 '복 주기' 경쟁
‘야당복.’ 문재인 정부가, 아니 국민의힘이 한국 정치에 기여한 새 용어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가 실정을 할 때마다 국민의힘이 더 죽을 쒀서 살려줬기 때문이다. 나는 2020년 초에 쓴 ‘야당복? 야당독!’이란 칼럼에서 이 같은 국민의힘의 죽 쑤기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사실은 야당복이 아니라 ‘야당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나의 우려대로 야당복에 안주한 민주당은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달려 나와 성공시킨 촛불항쟁을 5년 동안 다 말아먹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주는 역사적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시중에는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하나님’ 수준이 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죽은 사람(나사로)을 다시 살린 것은 하나님이 유일한데, 이들이 촛불항쟁과 박근혜 탄핵으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국민의힘을 실정과 내로남불 등을 통해 5년 만에 소생시켰다는 비아냥이다. 그리고 이어진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고 말았다. 나의 우려대로, 국민의힘의 죽 쑤기는 단기적으로는 야당복이었는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야당독이었던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두 달 만에 한국 정치에 새 용어를 추가했다. 그것은 ‘여당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진짜 복도 많다. 여당이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여러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죽을 쒀서 살려주는 야당복이 있더니, 정권을 내주고 나니 이제는 여당복을 만끽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은 야당복에 취해 혁신을 외면하다가 대선에 패배하고도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에 나서는 대신 ‘잘싸졌’(잘 싸웠지만 졌다)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졌다가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기대했던 공정, 상식과는 거리가 먼 한심한 인사를 강행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도 오히려 “전 정권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화를 내는 등 연이어 실정을 하면서 유례없이 집권 두 달 만에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앞선 데드크로스를 기록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혁신노력 등의 한 일도 없는데, 아니 당 혁신을 주장하는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팽시키는 등 거꾸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앞서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의힘이 당 혁신의 상징이었던 이준석 당대표를 중징계했고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대표가 바뀌니” 당이 달라졌다고 쾌재를 부르는 등 자해나 하고 있으니, 민주당은 손 안 대고 코 푼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야당복이 복이 아니라 야당독이었듯이, 여당복은 여당복이 아니라 ‘여당독’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이 여당복에 취해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의 쓰라린 기억을 잊어버린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민주당이 현실에 안주해 혁신을 하지 않도록 유도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다시 패배하게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책략으로 윤 대통령이 일부러 죽을 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된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한국 정치는 야당은 여당의 죽 쑤기라는 ‘여당복’에 의존해 지지를 유지하고, 여당은 야당의 자해정치라는 ‘야당복’에 의존해 지지를 유지하고 생존하는, 기이한 공생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여야가 잘하기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못하나의 ‘못하기 경쟁’, 누가 상대방에 더 많은 복을 주냐는 ‘복 주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당과 야당의 자해 경쟁, 이를 통한 ‘복 주기 경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유권자들, 곧 국민들이라는 사실이다. 야당은 여당복이, 여당은 야당복이 있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여당복도, 야당복도 없다. 한마디로, 국민은 지지리도 복이 없다.
여당이 너무 정치를 잘해 야당은 여당복이 없다고 한숨을 쉬어야 하고, 반대로 여당은 야당이 너무 혁신과 대안 제시를 잘해 야당복이 없다는 비명을 질러야 하는 한국 정치는 불가능한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은 여당복에 안주하지 말고 빨리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중심으로 약속한 다당제 등 정치개혁, 나아가 문제가 되고 있는 팬덤정치 등에 대한 혁신에 들어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도 이재명 의원을 둘러싼 사법리스크와 팬덤정치 등 야당의 악수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통치시스템을 갖추고 민생정치를 펼치도록 혁신에 나서야 한다. 여야가 아니라 국민들이 야당복과 여당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빈다.
*이 글은 2022년 8월 23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두 달 만에 한국 정치에 새 용어를 추가했다. 그것은 ‘여당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진짜 복도 많다. 여당이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여러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죽을 쒀서 살려주는 야당복이 있더니, 정권을 내주고 나니 이제는 여당복을 만끽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은 야당복에 취해 혁신을 외면하다가 대선에 패배하고도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에 나서는 대신 ‘잘싸졌’(잘 싸웠지만 졌다)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졌다가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기대했던 공정, 상식과는 거리가 먼 한심한 인사를 강행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도 오히려 “전 정권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화를 내는 등 연이어 실정을 하면서 유례없이 집권 두 달 만에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앞선 데드크로스를 기록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혁신노력 등의 한 일도 없는데, 아니 당 혁신을 주장하는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팽시키는 등 거꾸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앞서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의힘이 당 혁신의 상징이었던 이준석 당대표를 중징계했고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대표가 바뀌니” 당이 달라졌다고 쾌재를 부르는 등 자해나 하고 있으니, 민주당은 손 안 대고 코 푼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야당복이 복이 아니라 야당독이었듯이, 여당복은 여당복이 아니라 ‘여당독’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이 여당복에 취해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의 쓰라린 기억을 잊어버린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민주당이 현실에 안주해 혁신을 하지 않도록 유도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다시 패배하게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책략으로 윤 대통령이 일부러 죽을 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된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한국 정치는 야당은 여당의 죽 쑤기라는 ‘여당복’에 의존해 지지를 유지하고, 여당은 야당의 자해정치라는 ‘야당복’에 의존해 지지를 유지하고 생존하는, 기이한 공생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여야가 잘하기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못하나의 ‘못하기 경쟁’, 누가 상대방에 더 많은 복을 주냐는 ‘복 주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당과 야당의 자해 경쟁, 이를 통한 ‘복 주기 경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유권자들, 곧 국민들이라는 사실이다. 야당은 여당복이, 여당은 야당복이 있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여당복도, 야당복도 없다. 한마디로, 국민은 지지리도 복이 없다.
여당이 너무 정치를 잘해 야당은 여당복이 없다고 한숨을 쉬어야 하고, 반대로 여당은 야당이 너무 혁신과 대안 제시를 잘해 야당복이 없다는 비명을 질러야 하는 한국 정치는 불가능한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은 여당복에 안주하지 말고 빨리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중심으로 약속한 다당제 등 정치개혁, 나아가 문제가 되고 있는 팬덤정치 등에 대한 혁신에 들어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도 이재명 의원을 둘러싼 사법리스크와 팬덤정치 등 야당의 악수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통치시스템을 갖추고 민생정치를 펼치도록 혁신에 나서야 한다. 여야가 아니라 국민들이 야당복과 여당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빈다.
*이 글은 2022년 8월 23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