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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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윤석열 정치실험’은 실패했다
지난해 6월 중순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을 떠나 정치에 나서며 대변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은 ‘압도적 정권교체’이며,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대선에서 보수와 중도, 이탈한 진보세력까지 아울러 승리해야 집권 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도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바른 소리를 하다가 민주당에서 밀려난 금태섭 전 의원, 조국사태 이후 민주당 비판에 앞장섰던 진보논객 등과 교감하는 등 이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시간이 흐르며, 윤 대통령은 이 같은 중도세력, 이탈 진보세력과는 결별하고 냉전적 보수세력에 올인했다. 그 결과, 압도적 정권교체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작은 표차인 0.73%로밖에 이기지 못했다. 대선에서는 이겼는지 모르지만, ‘보수와 중도, 이탈한 진보세력까지 어우르려던 윤석열 정치실험’은 실패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는 윤 대통령 개인을 넘어서 한국 정치에 커다란 비극이라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정말 중요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승만 시절의 자유당에서 시작해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의 ‘냉전적 극우보수정당’을 현대화시켜 중도까지 어우를 수 있는 ‘글로벌한 기준의,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당’이라는 회복하기 어려운 낙인이 찍혀 있었고 윤 대통령이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대항해 싸운 ‘법치의 상징’으로 정권교체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만큼, 이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늘이 준 ‘별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고 반대로 냉전적 보수세력에 포위되고, 포섭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고 ‘박근혜 탄핵당’이라는 낙인만 세탁해준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의 결별이다. 결별의 구체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고, 여야를 전전한 김 전 위원장의 행적에는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가 상징하는 것이 중도를 어우르는 ‘현대적 보수’였고, 그와의 결별은 결국 냉전적 보수정당에의 포섭을 의미했다. 특히 이후 그의 여러 정책교사들이 국민의힘의 ‘보수정책통’, 특히 냉전적 보수정책통들로 채워지며 윤 대통령의 보수화는 가속화됐다.
보수만이 아니라 중도와 이탈한 진보까지를 어우르는 압도적 정권교체 이외에도 주목할 것은 지난해 6월 말에 있었던 윤 대통령의 출마선언이다. 윤 대통령은 출마선언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한 것입니다. 승자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을 보면 이 같은 출마선언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여러 경제정책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출마선언에서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가 절대 아니라고 비판한 승자독식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사 등도 마찬가지다.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문제검사, 국정교과서 불법 추진으로 징계 대상이 된 사람을 각각 공직기강비서관, 교육부 기조실장 같은 요직에 중용하는 것이 어떻게 ‘자유를 지키는 것’이고 ‘진짜 민주주의’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 윤 대통령 임기가 많이, 정확히 이야기해, 60분의 59가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압도적 정권교체론에서 피력한 보수, 중도, 이탈한 진보를 어우르는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은 출마선언에서 비판한 ‘자유 없는 가짜민주주의’와 ‘승자독식주의’를 넘어서 자유, 그리고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 기회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실패’, ‘반쪽 승리’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1년 전 정치로 나서며 밝혔던 압도적 정권교체론과 출마선언을 다시 읽어보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글은 2022년 6월 21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